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2화 (12/174)

04. 연금술의 귀재 (2)

세진이 떠나가자마자 하젤린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기사님?”

-예. 책임자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아가씨께서 병실에서 누워계시는 모습을 본 직후라, 저도 모르게······

전혀 죄송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여유로이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방금 전에 물건이 들어왔거든요.”

-오! 정말입니까!

그 즉시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핸드폰 너머, 벌떡 일어난 박현오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 벌써부터 상상이 되었다. 하젤린은 입가에 가벼운 조소를 머금었다.

“후훗, 네. 근데 말했듯이 당장 방금 들어온 터라, 물품은 일단 제가 상급 판정을 내릴 예정이긴 한데 중앙협회쪽에서 다시 심사를 하고서 판매인가를 해줘야 해요.”

-아 괜찮습니다! 하젤린님의 눈썰미를 그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일단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풋. 네. 조심히 오세요.”

전화가 끊기고, 하젤린은 기분 좋은 숨결을 내뱉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빌어먹을 대기업과 기사단년놈들에 염증을 느끼고, 연금의 세계에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선 지 어언 3년이 지났다.

물론 일선에서 물러났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과신하는 년놈들이 귀찮게 구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 포션 하나를 잘 만들어서, 또는 잘 만든 포션 하나가 들어와서, 갑을관계가 잠시나마 뒤바뀌는 지금.

‘..금방이면 한 5분이면 오겠지.’

새벽기사단의 상급기사는 마나석을 연료로 쓰는 전세기를 띄울 수 있다. 물론 유사시도 아닌데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그 초음속 전세기를 타고 오는 것은 명백한 낭비지만, 그래도 환자가 환자이다보니 도저히 지체할 수 없겠지.

하젤린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벗어 두었던 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푹 눌러썼다.

‘근데 그냥은 안 주지.’

아직 놈들은 그 연금술사가 판매요청서에 지장까지 찍은 것을 모른다. 그렇다면······ 최대한 뽑아낼 때 까지 뽑아내고, 장기가 다 녹아내릴 때 까지 애간장을 태우리라.

이것은 그녀만의 소심한 복수, 그러나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끔찍한 악취미다.

“아! 맞다.”

그 전에, 하마터면 해야할 일을 잊어버릴 뻔 했다. 하젤린은 부랴부랴 핸드폰을 집어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윤희정 기자님. 오랜만이네요. 아, 별게 아니라. 그냥 오랜만에 좋은 포션이 나와가지고. 어? 아, 매물도 꽤 많아. 4개. 신기하지? 나도 이만한 포션이 한꺼번에 4개나 들어오는건 처음이야. 응. 아 고마워요. 일단 정보는 당장 직원들 시켜서 보내줄게. 인가는 3일이면 받을 거 같으니까, 그때 기사 써주시면 돼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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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등급 포션 ‘고블린의 선의’ 전격 발매, 혜성처럼 등장한 귀재(鬼才)의 처녀작.]

「개벽일보 윤희정 기자」

오늘 오전 8시. 한 연금술사가 제조한 ‘고블린의 선의’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여진 포션이 중앙연금술협회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그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역시 바로 그 이름이다. 이 포션을 제조한 연금술사가 자칫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고블린'의 이름을 차용한 이유는, 고블린의 포션제조 능력이 인간에게 선의로써 적용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단순하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과연 이 포션을 제조한 연금술사는 고블린의 그 손재주마저도 닮은 것인지, 이 포션은 완벽한 재생·치유의 효험이 있다고 판명되어 연금술협회로부터 ‘상등급’의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더욱 주목할만한 점은 '고블린의 선의'가 이 연금술사의 처녀작이라는 사실이다.

···

···

···

이 포션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요선'이라는 알케미하우스에서 8일 오후 12시 정각부터 경매가 시작된다. 포션가뭄현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극빈한 상황에 단비처럼 등장한 이 ‘고블린 선의’를 기점으로, 침체기에 빠져든 포션시장에 다시금 활기가 맴돌기를 작게나마 한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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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칠흑기사단 본부의 분위기는 근 반년만에 등장한 상등급 포션에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한국은 물론 그 반경을 세계까지 확대하더라도 수위를 다투는 기사단, 칠흑기사단은 ‘강습’한 몬스터들이나, 중상급 이상의 희귀하고 가치가 드높은 몬스터들을 주로 다룬다. 그러나 중상급이상의 몬스터들은 저마다의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각각이 걸어다니는 재해수준이라 그들의 능력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사실, 부족하다기 보다는 두려운 점이 많다는 게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치유마법이 지구자연의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하여 사멸해버린 오늘날, 몬스터로 인한 상처의 치유는 현대의학과 포션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절단된 수족을 붙일수는 있어도 재생시킬수는 없기에, 기사들은 대부분 현대의학보다 포션을 더욱 선호하고 신뢰했다.

하지만 근 반년동안, 기사들이 상급이상의 몬스터에게 두려움없이 대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상급이상의 포션의 씨가 말라버렸다. 회복·재생효과가 있는 포션은 물론, 일신의 무력을 순간적으로 증폭시켜주는 포션까지도. 그리하여 상급몬스터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파동이 전해져도, 요즈음 기사들은 쉽사리 몬스터 사냥을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소문 들었냐?”

“어. 이름 이상하던데. 근데 그거 우리 기사단도 살 수 있겠지?”

“설마 못 사겠냐. 용량도 개당 40ml래. 게다가 한번에 매물로 두개나 나왔다는데.”

“40ml면 6명 분이니까.. 그거면 이번에 알 깼다는 바실리스크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칠흑기사단의 기사들이 갑작스레 등장한 상급포션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흐음..”

기사단의 로비에서, 기사 김유린은 알케미하우스가 전해준 포션의 효험과 예상가격을 읽으며 한숨을 흘렸다. 아주 오랜만에 나온 상등급 포션이라 경쟁자가 많긴 하겠지만 칠흑기사단이라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을 터였다.

‘두개면.. 네 개중에 두개를 선거래로 판거네.’

그러나 유린은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꾸겼다. 알케미하우스의 선거래는 보통 하우스 쪽에서 관계가 좋은 쪽에 정보를 일부러 흘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그 정보를 받지 못한 칠흑기사단은 그쪽과 관계가 좋지 않다는 뜻.

‘요선 알케미하우스면 하젤린이겠지.’

순간 떠오른 하젤린의 안면에, 유린은 지끈거려오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하젤린과 김유린. 두 사람은 2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알아온, 절친한걸 넘어 의자매나 진배없는 관계였었다.

그러나, 그 돈독한 사이는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해 급속도로 뒤틀렸다. 어이없을 정도로단순하고 유치한 오해. 그러나 그 당시에는 오해가 얽히고 섥혀 너무나도 심각했고, 한번 어그러지기 시작한 관계는 브레이크따윈 없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날이 지날수록 험악해져가던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지금으로부터 결국 3년 전, 완전히 사단이 났다.

하젤린은 유린의 포션에 독을 탔고, 사경을 헤매다 기어코 살아남은 유린은 하젤린의 팔을 베었다.

그러나 그 처참한 사건은 서로 간의 암묵적 동의로 인해, 잘잘못을 따지거나 누군가에게 퍼지는 일도 없이, 현재까지도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철저한 비밀로 남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끊은 채 제 삶을 살아왔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 유린은 최연소 고위기사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쟁취했으며, 하젤린은 자신이 만든 '요정의 술'이라는 포션으로 잘린 팔을 재생해 알케미하우스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렇듯 두 사람은 모두 과거보다 찬란한 미래를 거머쥐었지만, 둘의 관계는 남보다 못한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렸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함께했던 추억은, 이미 모두 그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유린 상급기사님!”

잠시 과거의 상념에 젖어있던 그녀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말했다. 유린이 고개를 돌리자 그쪽에는 꽤 많은 인원의 기사들이 있었다.

“어······ 무슨 일?”

그녀는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말했고, 남자 다섯 여자 셋으로 이루어진 기사들은 환히 웃으며 네모 반듯한 상자를 내밀었다.

“선물입니다 기사님! 고위기사 승급, 축하드립니다!”

그들의 대표격인, 귀엽게 생긴 남자기사가 말했다. 유린이 중급기사일 때 견습으로 들어와 2년간 직속부하로 근무했던 김수겸이다.

“그래. 고마워 다들.”

유린은 자신과 키가 비슷한 이 귀여운 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서 선물을 받았다. 수겸은 그 손길을 수줍어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열어보세요!”

괜스레 홍조를 붉히며 말하는 모양새가, 이 상자 안에 든 물건이 꽤나 좋은 물건임을 알려주었다. 그 상기된 모습에 유린도 괜히 기대하며 상자를 열었다. 쓸데없는 기대임을 알면서도.

“······”

짜잔-

그녀는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 기사들의 얼굴 면면을 슬쩍 살폈다. 잔뜩 기대한 얼굴. 실망시키기는 싫었다.

“오오······ 이거 꼭 필요했던건데. 고마워 다들.”

유린은 체통에 맞게 날뛰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래의 경험으로 인해 연기는 이미 수준급이었다. 아니 애당초 연기라할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축하하는 기사들의 마음만으로도 고마웠으니.

“너무 미안하네. 제노비스면 많이 비쌀텐데..”

그녀가 온통 검은색으로 색칠된 건틀렛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제노비스’라는 상표가 세련되게 새겨진, 얇지만 견고한 건틀렛이다. 제노비스는 최소 상등급 이상의 금속만을 사용하는 고급공방이니, 이 건틀렛의 가격은 적어도 억단위를 가볍게 호가하리라.

“아뇨 괜찮아요. 기사님이 저희한테 해주신 걸 생각하면 그것도 너무 값싸서 미안할 지경인데요.

“내가 뭘해줬다고 그래. 아 근데······”

유린은 그들의 눈치를 살살 살피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검은색밖에 없었니?”

“예? 아.. 아니요! 여성용이라 하니 밝은 색밖에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특별히 요청해서 검은색으로 덧칠했어요. 절대 색이 해지는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하······.”

그냥 밝은색이 더 좋았을텐데. 그러나 유린은 수겸의 웃는 낯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김유린, 그녀의 27년 생애. 평생 받아본 수 많은 선물들은 모두 이런 전투장비들 뿐이었다.

*

같은 시각. 몬스터 사체의 처리를 위해 몬스터상점으로 온 세진은 왠지 흐뭇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반년만에 상등급 포션이 시중에 판매됩니다. ‘고블린의 선의’라고 네이밍이 된 40ml용량의 이 포션의 가격은 상등급 포션 최고상한가인 4억원으로 기정사실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는 물론 해외의 기사단까지 구매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선 알케미하우스'에서 고블린이라는 네이밍의 특허권을 협회에 요구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고블린의 선의'와는 다른 효능이 있는 고블린시리즈 포션이 출시되는 것이 아니냐며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김세진이 TV에만 집중하자, 공무원이 답답해하며 살짝 소리질렀다.

“아, 예. 죄송합니다.”

“여기, 받으세요. 김세진씨는 경험일수 60일 채우셔서 하급 사냥꾼에서 중하급 사냥꾼으로······”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진의 온 신경은 다시금 TV의 음성에 집중되었다.

-게다가 이 포션이 연금술사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은 물론 해외 등지 커뮤니티사이트에서도 이 연금술사를 '고블린 연금술사', 혹은 '연금술의 귀재'라 부르며 많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션을 유통하는 ‘요선 알케미하우스’는 이 과도한 관심집중에, 포션을 제조한 연금술사가 압박감을 느낄까 우려한다며 지나친 관심은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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