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연금술의 귀재 (1)
“고블린의 선의? 무슨 이름이 그래.”
세정이 미간은 살짝 좁히며 말했다. 도저히 신뢰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이름이 아닌가.
“그렇지?”
신뢰도가 생명인 포션은 보통 등급과 효능에 맞게 네이밍이 된다. 요새 인지도로나 신뢰도로나 가장 유명한 ‘드렌트’시리즈의 포션을 예를 들자면, 자상이나 찰과상 같은 가벼운 외상만 치유가 가능한 하급 회복포션은 ‘드렌트의 응급약’이지만, 그 질병까지도 치유가 가능한 중상급 치유포션은 ‘드렌트의 기적’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참고로 여기서 드렌트는 잎사귀 하나만으로 약을 만드니,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엘프전설 속 ‘생명의 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신뢰와 고블린 사이에는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오히려 그 사이에 불신과 증오가 존재한다고 하면 백 번 옳다고 할 정도로. 근데 포션의 이름을 고블린으로 붙이다니······.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설명을 좀 들으니까 그럴 싸 하더라고. 왜 고블린이 포션 만드는 능력 하나 만큼은 죽여주잖냐. 그거 하나만 노리고 독극물이랑 독향이 그득한 약재 고블린 부락을 털려는 정신나간 놈들도 있을 지경이니까. 게다가 이미 네이밍시리즈 등록까지 다 했대. 이 포션을 많이 기대하고 있나봐.”
네이밍시리즈는 일종의 이름 특허권을 말한다.
익명이 특징인 연금술의 세계에서 그 신뢰도와 효능은 오직 물약의 이름으로만 결정되는데, 다른 연금술사가 포션에 그것과 비슷한 이름을 지어버리면 구매자에겐 혼동을 주고, 제조자에겐 불신이라는 타격을 입힐 수 있기에, 연금술의 세계에서는 꼭 지켜야하는 법률 중 하나다.
“그래? 진짜 효과는 확실한 거겠지?”
“당연하지. 설마 우리 회장님이랑 단장님이 미심쩍은 걸 구하겠어? 그······.”
말을 하려다 멈추고, 살짝 주변의 눈치를 살핀 현오는 별안간 그녀의 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책임자 다크엘프 하젤린이 확답을 준거니까, 걱정 안해도 돼.”
굳이 VVVIP전용 1인실인 이곳에서 귓속말을 할 이유따윈 없었지만, 예우의 차원이었다.
연금술사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걸 미덕으로 삼는 이유는, 현 연금술사의 절반 가까이가 ‘다크엘프’라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조차 극히 꺼려하여 항상 온 몸에 두꺼운 로브를 두르는 종족.
일단 엘프라는 단어가 붙어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크엘프가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 확신을 하지만, 그들은 밝고 사람이 많은 공간은 광적일정도로 싫어하기에,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도 드물뿐더러 기록으로 남은 것은 아예 없다.
애초에 인터넷에 사진이 올려진 다크엘프가 그 최초 유포자를 찾아서 죽였다는 괴소문까지 공공연한 사실처럼 퍼져있는 실정이니까.
“하젤린, 그 분이? 그럼 괜찮겠네. 그래서 물건은 구체적으로 언제쯤 들어온대?”
“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잠깐, 나가서 다시 물어보고 올게.”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오실겁니다?”
-..하젤, 아니 책임자님. 마지막 말꼬리는 뭡니까? 묘하게 의문형인 것 같은데요.
“······착각이에요.”
-후우, 책임자님. 저희 아가씨께서는 만 17세의 어린 기사이십니다. 한창 훈련하고 또 뛰어놀아야 할 나이이신데 지금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아 알았다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니까요!”
다크엘프, 하젤린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서 핸드폰을 책상 위로 내던졌다. 그리곤 씩씩거리며 눈을 꼭 감고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것이, 빈말로도 기분이 좋다 말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잇······ 도대체 언제 오는거니? 분명 완제품 있다고 하지 않았어?”
눈을 치켜 뜬 그녀의 뾰족한 눈빛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로 향했다.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직원은 땀을 흘리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저도 잘······ 근데 완제품이 무려 3개나 있으시다고 말하시긴 했는데······ 적혀진 연락처로 전화를 해도 받으시질 않으시고···.”
“하······. 아이 씨, 진짜 짜증나네! 아니, 이 인간 놈들은 포션이 하루아침이면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안다니까?! 그 새끼들이 맨날 이 지랄하니까 연금술사들이 지쳐서 포션가뭄현상이 나타난거아냐! 근데 이 빌어먹을 년놈들은 반성은 커녕··· 아오 이런 썅!”
결국 노기가 정수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그녀가 양껏 움켜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퉁-
그 분노의 격렬한 정도와는 다르게 조금은 앙증맞은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와 동시에 책임자실의 문이 벌컥 열어젖혔다.
“오, 오셨습니다 책임자님! 그때 그 연금술사님께서 오셨어요!”
갑작스런 직원의 외침에, 하젤린은 눈이 휘둥그래진 채 몸을 벌떡 일으켰다.
* * *
연금술사의 종류는 두가지다. 첫째는 흔히들 알고있는 ‘연금’과 ‘연성’을 주 업무로 삼는 자들이고, 둘째는 ‘포션’이라는 신비한 액체에 평생을 매달리는 자들이다. (일부 엄격한 전문가들은 이 둘을 전자는 '연금술', 후자는 '연단술'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주력으로 삼는 기술이 다를 뿐이지, 아주 동일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들의 공통적인 습성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암흑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커피는 입맛에 맞으신가요?”
음침하지는 않지만 햇볕 하나 비치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오직 하젤린의 미소만이 환하게 빛이났다.
“예.”
세진은 최대한 태연히 찻잔을 내려놓았지만, 도저히 앞에 있는 엘프의 얼굴을 쳐다보기는 힘들었다. 과연 ‘미의 종족’ 엘프라는 말이 걸맞는 극상의 미였기에.
다크엘프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빛이 날 정도로 새하얀 피부. 남색의 장발과 절절한 조화를 이루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아름답다는 형용도 터무니 없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럼 제 소개도 다 마쳤겠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연금술사님?”
앞에 있는 다크엘프, 하젤린은 이례적으로 자신의 본명과 종족, 그리고 얼굴까지 세진에게 모두 공개했다.
그 소문과는 전혀 다른 개방된 모습에, 세진은 처음에 이 여자가 자신을 동족 다크엘프로 착각하는건지 의아했었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눈치챈 그녀는 그저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 주었다.
“예. 제가 만든 포션에 관한 이야기겠지요. 저도 그 포션이 좋은 물건인 건 알고 있습니다. 제 평생의 역작이죠.”
세진은 담담히 말했으나, 물론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구라다.
엘리트 고블린의 지식에는 현재 연금술사들은 결코 모를 특별하고 뛰어난 배합법들이 가득했고, 최고의 재료인 ‘검치’까지도 있는 세진은 평생의 역작은 커녕 고작 7일만에 뚝딱 이 포션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 7일도, 피치 못하게 숙성을 해야하는 기간이었다.
“물론, 저희도 당연히 알고 있어요. 이만한 포션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아주 오랜 세월을 고뇌하고 번민하셨겠지요. 같은 연금술사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엄숙한 목소리와 심각한 표정. 그 진지한 태도에 세진은 순간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뱉을 뻔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태연히, 뜨거워서 그런 척 입가를 훑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주시니 다행이군요.”
“네. 그리고 그만큼 좋은 포션이니만큼··· 아직 판매개시도 되기 전이지만, 벌써부터 소문을 듣고 몰려온 작자들이 있더군요. 그리고 이건 그들이 긴히 보내온 판매요청서예요.”
하젤린이 반듯한 종이 다섯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사단, 기업, 유명한 갑부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0이 몇 개냐, 4억 5억 7억···?’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 쓰여있는 숫자들은, 세진이 일평생 감히 꿈꿔보지도 못했던 액수였다.
“합법적 커미션이에요. 현재 연금술사님이 가지고 계신 포션의 용량에 따라, 그 절반 미만에 해당하는 용량을 개인 혹은 집단과 선거래를 할 수 있는 제도죠. 대신 국가에서 세금으로 무려 48%나 가져가긴 하지만,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포션 가격과는 별개로 지불하는 금액이기에 별 상관은 없을거에요.”
“좋군요.”
세진이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그의 눈치를 슬쩍 살핀 하젤린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근데······ 사실 이 커미션을 받기 위해서는 포션의 효험뿐만아니라, 그걸 유통하는 알케미하우스의 역량도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도 그 일부를 받게 되어있어요. 아무 연줄이 없는 알케미하우스가 이런 포션을 받으면, 그냥 별 생각없이 시중에 내놓을테니까요. 그래서 그런데······”
하젤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 어느 알케미하우스에서나 이게 옳은 절차이지만, 그래도 앞에 있는 남자가 가지고 온 포션이 포션이다보니 긴장이 됐다.
“원래 이런 커미션은 보통 알케미하우스가 그 금액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데··· 저희는 특별히 딱 40%, 아니 35%만 떼어갈게요. 이 이상은 다른 알케미하우스도 무리일거에요. 한번 가서 물어보셔도 좋아요. 세전금액에서 가져가는 것이기에······.”
“네. 좋아요.”
세진은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엘프든 보통엘프든 하이엘프든, 엘프들이 사기를 친다는 이야기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도 했지만,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도 그녀의 말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중요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알아본다는게 조금 한심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건 연금술사나 다크엘프의 특성을 아예 모르기에 하는 생각이다.
그들은 익명을 좋아한다. 그리고 익명만 확보된다면, 그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은 그 익명커뮤니케이션의 정점에 위치한 매체고.
연금술사의 절반은 게임중독자라는 우스개소리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네?”
일이 이토록 쉽게 끝나자, 하젤린이 잠시 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정신을 퍼뜩 차리고서, 그가 변심하기 전에 재빨리 다음을 계속했다.
“이 그러면, 여기 제일 커미션이 높은 판매요청서에 지장을 찍어 주시면 되어요! 기업 새벽달이 7억으로 가장 높은 금액······아, 잠깐 인주가 어디갔지?”
세진은 허둥지둥 인주를 가져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두고 안달하는 모습은, 평생을 사회적약자로 살아왔던 그에게는 퍽 기분 좋은 광경이었다.
“여기요!”
하젤린이 허겁지겁 인주를 건네자, 세진은 다시 한번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서 지장을 찍었다.
“휴우··· 아, 그리고 혹시 물건은 지금 가지고 계신가요? 그때 세 개나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최소 두개는 있어야 해요. 반드시 절반은 시중에 내놓아야 한다는 법적문제 때문에, 그래야 하나를 합법적커미션으로 팔 수 있거든요.”
“아··· 네. 일단 물건은 모두 가져왔습니다.”
세진이 들고 온 가방 속을 뒤적이자, 하젤린이 눈을 빛내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총 4개. 모두 균일한 효능일겁니다.”
“오, 오옷!”
드디어. 그때와 같은 영롱한 빛이 퍼져나오는 포션통 4개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하젤린의 만면에 미소가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하지만 곧 책임자가 지켜야하는 체면을 떠올린 그녀는 재빨리 그 체통없는 미소를 지웠다.
······물론 이미 너무 늦었지만.
“좋습니다. 모두 4개. 다행이군요~~”
그러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해 말꼬리가 늘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듯 했다.
하젤린은 포션통을 하나 집어들어 흔들어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요리조리 살펴도 보고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포션을 내려놓았다.
“판정심사도 필요 없겠네요. 완벽해요. 완벽한데······”
그리고는 로브에 가려지지 않은 세진의 입술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도대체 어디서.. 이 정도의 연금술을 연마하셨던거죠? 보통 연금술사라면 포션이 불완전해도 판정이라도 받아보기 위해 실험작 하나씩은 내놓기 마련인데······ 연금술사님은 이번이 처음이고, 거기다 물건이 굉장한 상품(上品)이라서 실례인걸 알면서도 감히 물어보고 싶네요.”
“아···.”
그녀의 질문에 세진은 살짝 고민했지만, 오기 전에 미리 생각해뒀던 변명으로 둘러댔다.
“제 스승님의 명이셨습니다. 머릿속에 불확신이라는 편린이 존재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니 확신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잡생각은 말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분의 말을 따랐을 뿐입니다.”
연금술사나 마법사들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 사제관계를 중시 여기기 때문에, 하젤린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사님께서는 정말 좋은 스승님을 두셨군요. 스승님께서도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제자가 이렇듯 뛰어난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아.. 예. 그저, 그분께서 이 모습을 못보고 돌아가신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만약에라도 스승의 이름을 물어보지는 않겠지만, 제 발이 저린 세진은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었다.
그리고 어차피 거짓도 아니지 않은가.
모든 지식을 전해준 스승님, 있긴 하니까.
······물어서 죽였지만.
“아, 그렇군요..”
그러나 실상을 모르고, 그저 씁쓸한 진실로 받아들인 하젤린은 무겁고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시간이 없어서.”
눈 깜짝할 새에 30분이나 흘렀기에, 지체할 시간이 더 이상 없는 세진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하셀린도 따라 일어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건넸다.
“저희를 선택해주신 연금술사님을 위해서라도, 이 ‘고블린’시리즈를 최고의 포션 시리즈로 꼭 만들어드릴게요. 믿어도 좋아요. 지금 당장,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릴 예정이니까. 요즘은 언론플레이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세진은 그녀의 미소를 마주보며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