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천부적인 사냥꾼 (2)
김지한은 그에게 ‘태릉기사단’의 명함을 건넸다.
“···저는 말했다시피······”
“압니다. 하지만 생각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계속 혼자로 지내는 건, 안 그래도 수명이 짧은 사냥꾼들한텐 좋지 않아요. 물론 그만한 장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균열탐색’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크다고 생각되시지 않습니까?”
지구에는 ‘균열’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 차원과 차원, 혹은 세계와 세계의 틈이라는 의미다. 균열의 내부는 몬스터들이 가득한데, 이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해야만 균열이 소멸된다. 그리고 이 균열 하나를 소멸시키고서 얻는 순이익은 최소 10억, 최대 100억이다. 사냥꾼이든 기사든, 균열탐사에 한번이라도 참여하면 명예와 명성은 물론 웬만한 목돈까지도 단 한번에 벌 수 있는 것이다.
“한번만 생각해보세요. 천부적인 사냥꾼은 기사와 함께하면 더욱 빛납니다. 아, 맞다. 근데······ 그 메이스로 해골병을 부수신겁니까?”
지한이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하급 몬스터를 혼자 처치하는 건 보통의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예. 이게 워낙 좋은 물건이긴 하지만···. 몸이 튼튼한 건 저희 집안 내력입니다.”
“아··· 그렇군요.”
마나활용력과 마나친화력이라는 재능이 각각 두개로 엄격히 구분된 오늘날, ‘평범’이라는 상식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비범’의 한계는 끝이 없어져버렸다.
마나친화력이 좋아, 특별한 교육없이 호흡만으로 몸에 마나를 축적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단지 시간이 흐르기만 해도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강골’이 된다.
그리고 그 강골은 사냥꾼 중에서도 드물지만 분명 존재한다. 친화력은 충분하지만 기사가 되기 위한 ‘마나활용력’이 부족해, 기사가 아닌 사냥꾼으로 먹고 사는 조금은 애매한 종자들. 물론 그 애매함조차도 평범한 일반인들은 부단히도 원하는 특별함이지만.
“생각은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시간이 없어서.”
고작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세진은 인간과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예. 혹시나 생각이 있으시면, 먼저 저희에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태릉기사단은 사냥꾼, 기사를 불문하고 대우가 좋기로 유명하니까요.”
* * *
특성레벨이 4에 다다른 잿빛늑대의 크기는 늑대의 효율을 위해서인지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그 위맹함만큼은 마치 대호의 그것을 방불케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늑대폼으로는 별다른 도핑 없이도 사냥이 몹시 쉬워졌다.
대부분의 하급 몬스터는 단 한번의 기습이면 충분했다. 슬금슬금 수풀속에 숨어 사냥감을 기다리다가, 사거리에 들어오는 그 순간. 잔상조차도 남지 않는 쾌속으로 쇄도하여, 그 목을 단번에 물어뜯는다. 굳이 이런 전투스타일을 언어로 표현하자면, 일격 필살.
세진은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 ‘선풍의 질주’를 사용하여, 하루에 두 마리까지는 대단히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세진은 늑대폼으로 먹이감을 찾으러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늑대의 예민한 후각은 과연 대단했다. 그러나 그 후각은, 진한 냄새는 근거리고 옅은 냄새는 원거리, 이런 추상적이고 모호한 느낌이 아니라,
[동남쪽 방면 680m. 인간 세 명.]
이런 시스템의 형식이었다. 이 시스템의 도움을 톡톡히 받아, 세진은 요 근래 3일 간 무려 10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또 인간이야?’
하급지대는 최하급에 비해 사냥중인 인간의 수가 꽤나 많았기에, 이렇듯 인간과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불만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힌 늑대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진이 좋네.”
“···!”
그러나 수풀을 헤매는 세진의 귓가에 별안간 또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근방이었다. 어떠한 냄새도 없었기에, 세진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200m 남짓한 지척이다. 도망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위험했다. 결단을 내린 그는 재빨리 인간폼을 취했다.
“···사람이네.”
다행히 타이밍 맞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세진은 가슴을 쓸어내리고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특이하게도 두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아무리 봐도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젊디 젊은 여자와, 이 풍경에 맞지 않는 정장을 입은 장신의 남자.
“안녕하세요.”
여자는 홀로 있는 세진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가볍게 꾸벅 숙이고서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저는 하급기사 유세정이라고 합니다.”
목주변까지만 내려오는 짧은 단발머리, 오똑 솟은 콧대와 날카로운 눈매. 그녀는 분명 ‘소녀’의 축에 들어갈 것임이 분명한 앳된 얼굴이었지만,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목구비가 그녀에게 성숙을 더하고 있었다.
“아, 예.”
얼떨결에 그녀와 악수까지 한 세진은 다시금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기사라니, 몬스터폼으로 도망이라도 쳤으면 많이 피곤해질 뻔 했다. 차라리 얼굴 한번 맞대고 헤어지는 것이 백 번 낫지.
“그리고 이쪽은 하급사냥꾼 윤도한.”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하급사냥꾼 윤도한입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자, 세진은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생김새나 옷차림을 봐서는 무슨 고위기사처럼 생겨 놓고 고작 하급 사냥꾼이라니······
“사냥 중이셨던 건가요? 기척을 숨기는 기술이 뛰어나시네요. 별다른 장비도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유세정은 세진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나지막한 찬사를 보냈다.
요즈음 사냥터에서의 인맥은 학연, 지연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유세정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냥터의 인맥은 그 대상이 인맥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으니, 세진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시험에 합격한 것이었다.
“예. 사냥감을 잡을 때는 어떠한 흔적도 남겨서는 안되니까요. 그쪽이 냄새를 지운 것처럼요.”
“아···.”
세진이 그의 팔찌를 흘겨보며 말하자, 여성은 낮은 탄성을 툭 내던졌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근데 저는 아직 그쪽이 누구인지 듣지 못했습니다만···.”
“아, 저는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하급 사냥꾼이죠.”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하다는 듯이, 방금보다는 다소 차가워진 목소리로 묻는다.
“···하급이 혼자 다녀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으니 여태 이러고 있죠.”
처음에 보였던 흥미는 그의 대답에 완전히 사그라들었고, 세정은 퉁명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를 기사로 착각했던 듯 했다.
“그래요 뭐.. 그럼 알아서 잘 하세요. 여태 해오셨던 것처럼.”
그녀는 코웃음을 한번 치고서 뒤로 돌아섰다. 그 냉정한 모습에 세진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도대체가, 몇 살이길래 저렇게 삶을 이해타산적으로 사는건지. 세진은 혀를 끌끌 차고서 그녀와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앞에서 아른거리는 알림창이 그 발걸음을 붙잡았다.
[동쪽방면, 500m. 식탐(食貪)의 트롤]
“···오 시발.”
마치 나무의 표면처럼 흉측하게 갈라지고 주름진 낯짝과, 다 성장했을 시 3m에 다다르는 거대한 육체를 지닌 몬스터. 그 비대한 몸집과는 모순되게 그 움직임도 굉장히 기민.
절로 욕설이 뇌까려질 몬스터, 무려 ‘트롤’이다. 하급, 중하급, 중급, 중상급까지. 그 개체마다 저마다의 강함이 골고루 분포 되어있는 몬스터. 물론 하급지대에 서식하는 트롤은 다른 지대의 트롤보다는 분명히 약하다. 그러나 앞에 붙은 ‘식탐’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트롤이라는 족속은 특이하게도, 대개 같은 종족이라면 비슷하게 띄는 보편적인 행동이나 습관이 드물다. 그래서 트롤은 몬스터학자들이 연구하기 가장 좋아하는 몬스터이고, ‘개성’이 있는 유일한 몬스터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중 ‘식탐’이라는 개성은 가장 드물고 또 심각한 것이었다. 식탐, 말 그대로 음식을 탐낸다. 그러나 다른 점은, 이 개성이 붙은 트롤은 몬스터를 소화하면 할수록 강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식탐의 트롤이 지닌 강함은 특히 지금 이 곳, 하급지대에서 배가된다. 하급지대에서 만큼은 만인지상의 독보적 몬스터인 트롤은 아무런 방해나 위협 없이 성장이 가능하니, 그 강함은 성장세에 따라 최대 중급이상의 몬스터와도 맞먹을 수 있다.
“···잠깐!”
머뭇거리며 고민하던 세진은 결국 빠르게 달려, 제 발로 사지를 향해 걷는 유세정의 어깨를 붙잡았다. 태도가 어찌됐든 재앙에 가까운 수준의 위험은 알리는게 옳으니.
“···깜짝, 뭐야!”
그러나 그런 상황도 모른 채 별안간 어깨를 붙잡힌 세정은 신경질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뭐하는겁니까!”
옆에 있던 남자도 거들었다.
솔직히 키는 크지만, 방금 하급사냥꾼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이 남자는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남자도 과연 자신의 분수를 알고있는지, 세진이 뚫어져라 자신을 노려보자 헛기침을 내뱉으며 세정의 뒤로 숨어들었다.
“당신, 지금 무슨···.”
“앞에 몬스터가 있으니까, 도망쳐야합니다.”
세진의 다급한 표정과 말에도, 세정은 그를 차갑게 응시하다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풋. 하급 몬스터따위를 앞에 두고 도망가는 행위는 당신같은 사냥꾼들이나······”
그러나, 명백한 적대를 표출하는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으으으으으···
그것이 내는 소리는 일견 야수가 으르렁대는것과 흡사했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3m에 달하는 거대한 높이와, 유황불에 용융되다만 것 같은 흉측한 얼굴. 하나의 거대한 기암괴석이나 다름이 없는 이 트롤은, 우연히 찾아낸 먹이감들을 위압적인 눈빛으로 굽어보았다.
놈의 패도적인 면모에 압도된 세진의 눈동자가 경악과 공포로 물들어갔고, 그에 세정은 천천히, 아주 서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아, 시발.”
드디어 그 패악의 형체가 망막에 비치자, 그녀는 세진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 욕설에 퍼뜩 정신을 차린 세진은 이제야 청소년 답네, 따위의 가벼운 생각을 했다.
“···도한오빠? 도한오빠!”
“어.. 어! 아, 알겠어!
그녀는 허리춤에 매인 검을 꺼내들고서, 넋이 나간 윤도한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도한은 별안간 육상의 자세를 취했다.
“···하급지대인데?”
하급지대와 상주기사가 머무는 군부대 간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당신같은 사냥꾼과는 다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그쪽도, 방해되니까 좀 비켜있어요.”
젊은이의 패기인지, 아니면 만용인지. 세정은 트롤과 독대하겠다는 각오로 검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아아앙-
윤도한의 신형이 음속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라졌다.
세진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런 불가능한 움직임은 '특성'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으으으--
도한이 사라지고, 먹이감이 하나 사라진것에 분개한 트롤이 좀 더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후······”
한 번의 심호흡. 유세정이 정신을 집중하자, 움켜쥔 명검에 푸른 마나가 서렸다. 기사의 가장 대표적인 마나활용방법, ‘마나검기’였다.
‘저거 가지고는 안 될텐데..’
저걸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검을 쥔 그녀의 고사리같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미 전투 시작도 전에 두려움을 느끼고있다는 반증이었고, 그것은 곧 필패로 이어질 터.
그러나 도와주고 싶어도 지금은 무기가 없으니 불가능하다. 원래 늑대폼으로 사냥하려는 계획이었기에 강철 메이스는 동굴의 한 구석에 고이 잠들어 계신다.
‘도망치자.’
어쩔 수 없이, 세진이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
[조건 완료: 압도적인 몬스터와의 만남]
- 승산이 보이지 않는 적과 마주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만큼 상승합니다.
- 이제 오크가 아닌 오크전사로 포밍이 가능합니다. 포밍능력치가 상향조정됩니다.
- 스킬 ‘역전의 전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액티브스킬 ‘역전(逆轉)의 전사’ [숙련등급: F]
- 모든 몬스터 폼일때 사용 가능.
- 5분동안 근력이 200%, 내구가 100% 상승하고, 통증에 무뎌집니다. (인간형일 경우에는 1분 동안)-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는 오크전사의 스텟을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 근력과 내구의 수치에 따라 24시간에 동안 (1)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다시금 진화의 알림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