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5화 (5/174)

02. 고블린의 선의 (1)

이제는 어엿한 안식처가 된 동굴로 돌아온 세진은 매번 시내에 나갈 때 마다 찾아오는 우울함은 재빨리 털어버리고, 가장 먼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잿빛늑대가 되었으니 조금 더 멀리까지 사냥을 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나 그 위험성이다. 아무리 특성의 레벨이 3으로 올랐고 갈색늑대에서 잿빛늑대로 성장했다 한들, 하급지대의 몬스터들은 여전히 버겁다.

하급지대에 살아가는 몬스터들은 잿빛늑대, 오크전사, 해골병, 트롤 등이 있는데, 모두 개개인의 무력으로는 잿빛늑대를 압도하는 몬스터들 뿐이다. 잿빛늑대가 하급몬스터로 인가받고 하급지대에서 원활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무리'를 지어다니기 때문이니까.

‘오크폼도 진화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갈색늑대만 혼자서 잿빛늑대로 진화한 것을 보면, 오크와 늑대, 고블린 이 셋은 각각 특정한 조건을 따로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만약 오크도 진화하여 오크전사폼이 가능했다면, 갈색늑대를 때려잡았을 때 썼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오크는 진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오크폼을 취하더라도, 오히려 잿빛늑대 상태의 근력이 더 높다.

‘그럼 일단 늑대로 사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가던 세진은 이내 머리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죽치고 앉아 고민만 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일단 직접 가서, 한번 보고 오자.

그는 네 개의 발을 움직여 동굴 밖으로 나갔다.

*

-크르릉···

과연 하급지대의 섭리는 최하급지대의 그것보다 더욱 험악했다. 흉흉하게 으르렁거리며 야성의 눈을 부라리는 잿빛늑대들은 갈색늑대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물론, 몸 크기만 따지자면 지금의 세진은 보통의 잿빛늑대보다 1.5배정도는 거대했다. 그러나, -크와아아알!

-그왈!!

흉폭한 기세의 잿빛늑대 6마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튀어올라, 주변을 정찰하던 오크전사 한마리를 덮치는 광경은······ 감상하기에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푸릉..

기가 죽은 세진은 등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뒤에서 오크가 개껌마냥 뜯어 먹히는 게걸스러운 사운드와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지금은 그저 저 늑대들의 먹이감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잿빛늑대는 하급지대의 변방으로 향했다. 살짝 머리를 쓴 행동이었다. 이처럼 시냇가나 강물같은 식수가 흐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몬스터들이 모여, 일종의 킬링필드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무력적으로 약한 하급몬스터들은 식수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무리를 형성할 것이다.

예를들어······ 고블린 같은.

-··그르릉.

그리고 세진의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늑대의 눈이 번뜩이고,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절로 걸렸다. 저 멀리. 불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원시형태의 움집 여러개가 희끗희끗 보이는 부락이 하나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하급지대에 사는 고블린이라면 약재나 주술과 관련된 고블린부락일 것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은 무력적인 면에서는 형편없다. 약재와 관련된 고블린이라면 독을, 주술과 관련된 고블린이라면 저주만을 조심하면 된다. 물론 그걸 조심하는게 어려워, 하급 이상의 고블린은 등급을 불문하고 모든 사냥꾼과 기사들이 뽑은 기피 몬스터 1위로 선정되었지만.

-크렝 켕!

-트킹!

저기 두 마리 녹색 피부의 고블린이 보였다. 그 중 한 놈은 몸에 많은 문신이 덕지덕지 덧대어져 있는 것이, 아무래도 들어만 봤던 ‘엘리트고블린’인 듯 했다.

‘약재쪽이다.’

그리고 그는 냄새를 맡으며 확신했다. 늑대의 예민한 후각은 찌르는 듯한 약재의 낌새를 맡을 수 있었다.

-크렝!

-크렝!

두 마리의 고블린은 무슨 인사로 보이는 행위를 하고서는 서로 헤어졌고, 그는 그 즉시 수풀에 숨어 몸을 바짝 엎드렸다.

두 놈 중 한 놈, 몸에 문신이 많은 놈이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손에 들린 망원경 비슷한 물체와 발에 신겨진 신발로 보아서는, 정찰 혹은 약재채취를 하러 떠나는 것 같았다.

놈이 점점 가까워지고, 그 좁혀지는 거리에 비례하여 심장의 박동 또한 빨라졌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풀숲에 누가 숨어있을지는 상상도 못한 채 놈은 사지 안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내딛었고, 세진은 근육을 팽팽히 조여오는 긴장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습격의 시간이 다가오자, 세진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귀를 눕혔다. 고블린은 본래 영악하고 예민한 몬스터이지만, 저 엘리트 고블린은 그 중에서도 특히 빼어날 터.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크릉?

과연, 눈치 빠른 고블린은 사정거리에 채 들어오기 전에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듯 했다. 그러나, 세진은 그 즉시 지축을 박차고 내달렸다.

흉악한 야수는 마치 노도처럼, 대지를 사정없이 파헤치며 먹이감을 향해 쇄도했다.

‘···멀다.’

하지만 거리가 아슬아슬하게 모자랐다. 설상가상으로 이 고블린은 침착하기까지 했다. 놈은 원시형 무기, 바람총을 꺼내 이쪽으로 쏘려했다. 과연 엘리트다운, 두려움이 결여된 침착함. 저 수많은 문신은 허투루 칠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런 씹!’

그러나 세진은 그보다 더욱 절박했다. 그 처절하기까지 한 절박함은 야수의 사족에 한계의 힘을 더했고, 잿빛의 선풍을 일으키며 쇄도한 늑대는 고블린이 반격을 하기 한발자국 앞서, 놈의 목을 꿰뚫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치 승전보처럼 느껴지는 알림이 떠올랐다.

▶[완료 : 한계를 넘은 뜀박질] 액티브스킬 ‘선풍의 질주’를 습득.

- 질주를 순간적으로 가속합니다. (인간형일때도 사용 가능)- 현재 민첩 수치에 따라, 하루에 (2회)를 초과하여 사용하면 육체에 무리가 갑니다.

콰직.

세진은 그 문장을 읽으면서 고블린의 목뼈를 부러트렸다. 놈의 피가, 늑대의 이빨 틈사이로 흘러들어왔다. 그러자 또 다시 알림창이 하나 떠올랐다.

▶[완료 : 고블린의 전통, 기억전이]

- 약재 고블린의 피를 섭취하셨습니다. 이제 고블린폼 혹은 인간폼으로 있을 때 ‘엘리트 고블린의 약재지식과 제조능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세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건가? 그러나 적진으로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에게, 그런 속편한 탐구는 허락되지 않았다.

-크렝 켕!

맹수의 사냥이 야기시킨 난리통에 고블린무리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세진은 뒤도 안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 등 뒤로 놈들이 쏜 독침이 바람을 가르며 날라왔으나, 늑대의 질주는 그보다 곱절은 쾌속이었을 따름이다.

*

전리품인 엘리트 고블린을 아가리에 대롱대롱 매달고, 최하급지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늑대의 씰룩이는 뒷모습은 흥겨워보이기까지 했다.

“···?”

그러나 그렇게 걷던 중, 별안간 어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일단 고블린을 내려놓고서 귀를 쫑긋 세웠다.

-···하아..

부서질 듯 희미하지만, 분명하다.

사람의 신음소리.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데에 별 다른 고민은 필요치 않았다.

세진은 고블린을 다시 집어물고서 그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날렸다.

때아닌 전력질주를 한 1분정도 계속했을까. 그는 큰 부상을 입은 채, 수풀속에 쓰러진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부상의 정도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찢겨진 복강에서는 선혈이 철철 흘러나옴은 물론 장기까지 희미하게 비쳐보이고, 간헐적으로 신음을 내뱉는 입에서는 역류에 가까운량의 혈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중대한 용태였지만, 그러나 이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의식은 없으면서도 신음을 내뱉으며, 죽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두 손에 주먹을 꽉 쥔 채로.

-..크릉.

세진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종족은 엘프···같은 인간, 직업은 기사.

대한민국 최고의 기사단이라는 ‘칠흑기사단’ 단장의 딸이자, 최연소 고위기사 등극을 목전에 둔 ‘미래 한국을 대표하게 될 여기사’, 혹은 ‘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기사’, 김유린.

그 아름다움에 대한 극진한 칭호는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이처럼 죽음의 경계를 바로 마주했으면서도, 그녀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모와 능력, 인성에 대한 찬탄과 경탄은 훗날로 미뤄야 마땅하다. 일단 그 모든 영광은 살아있어야만 유지되기에.

그는 재빨리 고블린을 내려놓고서, 오크폼을 취했다. 오크가 되니 이 가녀린 여자는 깃털보다도 가벼웠다. 그래서 그는 버리고 가려던 고블린의 시체까지 어깨에 짊어매고서, 안식처로 발걸음을 급하게 옮겼다.

그때까지, 부디 살아있어야 할텐데.

*

세진은 가장 먼저, 그녀를 돌침대에 눕히고서 고블린 폼으로 전환했다. 키가 작아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상처를 관찰했다.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무슨 약재를 통해 어떤 포션을 만들어야 하는지가 떠올랐다.

‘몽유초, 제증유, 물망초, 그리고···하급 마나석. ’

그는 아까 지고 온 고블린의 몸을 뒤졌다. 다행히 놈의 등에는 조그마한 가방이 매달려있었고, 그 안에는 앞서 말한 재료와 절구통까지도 모두 들어있었다. 그리고 위 재료 중 가장 중요한 재료인 하급 마나석은 한 두 개쯤 있으니 상관 없다.

세진은 어느샌가 뇌에 스며든 포션제조과정을 그대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일단 재료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절구통에 넣고, 최선을 다해 빻는다. 그렇게 해서 어느정도 가루가 된 것 같으면 마나석을 하나 집어넣고, 다시 빻는다. 그러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고체였던 마나석이 약재의 재료들과 합쳐져, 푸르른 빛무리를 영롱하게 발하는 ‘액체’로 성질이 변화한다.

시중에서 파는 응급물약과 그 겉보기만은 비슷하지만, 그 성능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세진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약재에 대한 지식이 그 비교우위를 확신했다. 아마 이정도면 적어도 중하급 포션쯤은 되지 않을까. 응급물약이 자상같은 얕은 상처만 치료가 된다면, 이 신비한 약은 깊은 상흔의 회복은 물론 잃은 혈액의 보충까지도 도울 수 있다.

그는 만들어진 약의 일부는 그녀의 상처부위에, 나머지 전부는 그녀의 입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신비함이 발생했다. 장기가 내다보일정도로 흉측하게 찢겨졌던 복강이 그 형체를 느리지만 확실하게 재생하기 시작했고,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듯 창백했던 안색은 점차 정상을 찾아갔다.

“휴우···.”

회복되어가는 모습에 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별안간, 그와 동시에 알림창이 여러개 연이어 떠올랐다.

「조건 완료: 고블린의 선의」

- 최소 1명 이상의 사람에게 긴요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만큼 상승합니다.

- 이제 평범한 고블린이 아닌 ‘약재 고블린’으로 포밍이 가능합니다. 포밍능력치가 상향조정됩니다.

▶패시브스킬 ‘고블린의 손재주’를 습득하셨습니다.

- 손재주와 관련된 모든 행위전반(제조, 요리, 청소, 치유 등등···)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는 다소 하향되어 적용됩니다.

"···어?"

고블린이 진화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스킬까지 생겼다.

한달을 뼈빠지게 사냥했는데도 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던 스킬이, 하루만에, 그것도 세 개씩이나 생겼다.

감격일까, 당황일까, 허무일까.

어찌되었든 고블린폼의 세진은 멍하니 앉아 그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이마에는 어느새 수줍은 문신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