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4화 (4/174)

01. 늑대가 되다 (3)

몬스터의 시체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뼈나 가죽이 튼튼하고 질긴 몬스터의 사체는 다른 몬스터를 처단하는데 용이한 무기의 원자재로 쓰이고, 마나가 심장에 축적되어 ‘마나석’을 형성한 사체는 마법과 기적의 원천으로 소모된다. 여기서 기적이란, 자연과학법칙으로는 증명이 불가능한 마법효과를 사람이나 물건에 부여하는 행위, 일명 '인첸트'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의 사체를 처분하는 주체는 ‘국가’다. 돈에 눈이 먼 유통업자들이 기사나 사냥꾼들을 상대로 사기치는 걸 막음과 동시에, 국가차원에서 몬스터들의 시세를 정확히 측정하고 그에 알맞게 대응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몬스터사체처리공영화법’은 전세계에서 오로지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특별한 제도다. 그래서 한국은 몬스터 사체로 먹고사는 직종들에게는 천국이라고 불리며, 인구대비 가장 많은 수의 기사와 용병, 사냥꾼이 살아가고 있다.

“갈색늑대 두 마리. 우선 정부 보상금 100만원과 하급 사냥꾼 등록증입니다. 승급 축하드려요.”

그리고 이곳은 몬스터 사체를 처분하는 국가공인 ‘몬스터상점’. 이 상점은 몬스터의 사체를 매입하고 여러 장비들을 판매함 동시에, 특별한 행정처리업무도 담당하고있다.

그것은 바로 사냥꾼의 '등급제'를 전담하는 것. 어차피 사냥꾼의 등급과 직결되는 건 실적이고, 그 실적은 잡을 수 있는, 혹은 잡은 몬스터의 개체수로 결정되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에 사냥꾼협회가 사냥꾼의 등급제를 ‘몬스터상점’ 전부 일임했다.

“나머지 금액은 나중에 적어주신 계좌로 일괄 정산될 예정이에요. 그건 그렇고, 도축능력이 정말 깔끔하시네요? 요 근래 쌓으신 실적도 대단하시고··· 겨우 경력이 한달되신 사냥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에요.”

여공무원이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세진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서, 사냥꾼 등록증을 집어든 채 곧바로 뒤로 돌아설 뿐이었다.

세진은 약 30일 전에 '최하급 사냥꾼'이라는 딱지를 얻었다. 그 과정은 대단히 쉬웠고, 또 간소했다. 그저 몬스터를 한마리라도 직접 잡아오면 그 순간 최하급 사냥꾼이 될 수 있었으니.

사냥꾼이 된 이후로. 그는 사흘에 한번, 딱 2~3개 분량의 몬스터 사체만 처리하기로 했다. 그 이상은 너무 눈에 띄어 의심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고, 지금 그의 상황으로는 그런 관심은 지금 최대한 피하는게 옳기 때문이었다.

물론 ‘특성’이란 걸 지니고 있는 사람이 오직 세진 혼자 뿐인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누가 ‘내 특성은 종족이 인간에서 몬스터로 변한거에요’ 라는 미친 소리를 믿어주겠는가. 차라리 몬스터가 인간으로 변장했다는 게 더욱 믿기 편하다. 실제로 최근에 그런 몬스터 사건이 발생해서, ‘괴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40분 남았네.’

이 곳은 몬스터 필드와 가장 가까운 몬스터상점이지만, 시간이 곧 생명과 직결되는 세진은 곧바로 밖으로 나서려 했다.

-어제 오후 7시경. 강원도의 산간지방, 일명 ‘몬스터 필드’에서 기묘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TV음성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은행을 닮아 내부가 현대식으로 세련된 이 몬스터 상점에는,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선명한 화질의 홀로그램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바로 갈색늑대가, 같은 갈색늑대에게 잡아 먹힐 위험에 처한 사냥꾼을 구해준 사건인데요. 이 영상은 하급사냥꾼 김태조씨가 자신의 녹화렌즈에 녹화된 영상을 SNS에 게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 한번 같이 보시죠.

앵커가 거기까지 말하자, 화면이 바뀌고 화질이 선명치 않은 녹화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총알도, 여력도 다 떨어진 절체절명의 상황에 굶주린 갈색늑대와 마주친 태조씨. 그러나 쓰러진 동료를 두고 갈 수 없었던 태조씨는 늑대와 대항하기로 결심한 듯, 두 손으로 엽총을 꽉 움켜쥡니다.

흉험하게 으르렁대는 굶주린 갈색늑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엽총을 휘둘러 보지만 여의치 않고, 결국 태조씨는 포기한 듯 눈을 감습니다.

잠시 암전되는 영상.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자, 태조씨가 의아해하며 조심스레 눈을 뜹니다.

탁 트인 시야에는 또 다른, 아까보다 거대한 갈색늑대가 있었다. 그 늑대의 이빨에는 방금 전까지 사냥꾼을 위협하던 갈색늑대의 모가지가 꿰뚫려있었다.

-더욱 거대한 갈색늑대가 나타나서 태조씨를 공격하려던 늑대를 물어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태조씨는 여전히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거대한 갈색늑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이 늑대는 달랐습니다.

갈색늑대는 공격은 커녕, 시체나 진배없는 동료 사냥꾼을 물어 올리고 어딘가로 훌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늑대는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고개짓까지 하더니, 기절한 동료사냥꾼을 물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태조씨도 부랴부랴 몸을 일으켜 그 뒤를 조심스레 따릅니다.

얼마 정도 걸었을까, 마침내 시야 사이로 희끄무레 보이는 초소의 모습. 그러자 늑대가 물고있던 사냥꾼을 내려놓고 다시 산속으로 돌아간다.

-이 늑대는 상처입은 사냥꾼들을 도와줄 수 있는 초소가 나타나자, 동료사냥꾼을 내려놓고 아주 쿨하게 떠나갑니다.

마지막 장면은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늑대의 뒷모습이었다.

‘···쿨해?’

-현재 이 영상은 태조씨의 개인SNS에서 퍼져나가, 포털사이트, SNS, 커뮤니티 등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영상을 두고 ‘저 늑대 얼굴이 왜 저렇게 잘생겼지? 키우고싶다, 아니 키워지고싶다.’, ‘몬스터지만 반할것같다’, ‘마지막장면의 듬직한 뒤태에 기절할 뻔 했다’ 등등의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흐흠.”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온다. 그렇게 멋졌나?

-그리고 이 이상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혹시 ‘성장형 몬스터’ 혹은 ‘영물’이 아니냐는 추측을 조심스레 했습니다.

“성장형 몬스터는··· 예전에는 익히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몬스터 타입으로, 말 그대로 성장을 하는 몬스터입니다. 늑대로 치자면 갈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흑색으로 점차 성장을······”

그리고 전문가의 말은 언제나 도중에 끊긴다.

-네 정말 기묘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런 몬스터라면, 저도 한번 꼭 보호를 받아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미모 앵커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세진은 괜히 얼굴이 붉어져선 헛기침을 했다.

“..오호, 신기하구만. 내가 어제 잡은 것이 늑대였는데, 이거 조금은 미안해지네.”

“흑색늑대였잖아 그건.”

“어쨌든. 다 늑대잖아.”

어디선가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사냥꾼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바라보니, 겉으로 보이는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등에 짊어 맨 저건··· 바주카포?

괜히 뜨끔한 세진은 황급히 몬스터 상점을 나섰다.

***

몬스터 상점의 밖으로 나오니, 많은 인파가 오고 가는 대로가 목전에 보였다.

참, 어찌보면 안전불감증이 아닌가 싶었다. 바로 근처가 강원도의 산간지방, 일명 몬스터필드인데 이렇게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사람들이 나다니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고층빌딩까지 지어져 있다니.

물론 저 수많은 빌딩 중 특히 빼어난 하나의 마천루는 ‘기사의 성지’라 불리는 에덴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몬스터를 쉬이 쳐죽일 수 있는 기사나 사냥꾼같긴 하지만···.

“···후.”

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괜한 분풀이였다. 저 사람들은 편히 잘 사는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고있느냐, 하는. 하지만 분풀이를 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고작 30분 남짓이니.

-저는 그저 좋습니다.

재빨리 몬스터 필드로 돌아가려던 세진의 귓가에, 옥외광고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성을 얻고나서부터 오감이 민감해진 세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아무리 큰 부상을 당하더라도, 심지어 사지가 분질러져서 영영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싸울겁니다. 부귀와 영예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민중을 위해서요.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낸 걸로 보이는 기사 중 한명이 온 몸에 피칠갑이 된 채로 인터뷰하는 영상이었다.

선하게 쳐진 눈매와 날렵한 턱선. 금발로 염색한 머리가 퍽 잘 어울리는 저 기사는 세진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토크쇼나 예능에서도 많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핫한, ‘빛의 구원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기사 김인수.

-제 이름은 김인수. 개벽기사단의 상급 기사입니다.

기사단 홍보 광고는 마지막에 기사단의 상징문양과 김인수의 얼굴을 겹쳐보이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세진의 가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씁쓸함과 먹먹함이 차올랐다.

‘같은 특성인데··· 차암 다르네.’

깊은 탄식과 헤아릴 길이 없는 슬픔을 그저 한숨으로 달래고서, 그는 터덜터덜 초라한 발길을 옮겼다.

목적지는 저 멀리, 고고한 산봉우리만이 희뿌옇게 보이는 ‘몬스터 필드’.

가장 위험하지만, 지금의 세진에겐 가장 마음편히 있을 수 있는 모순적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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