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늑대가 되다 (2)
‘잘 따라오네.’
세진은 조심조심 뒤따라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남겨두고 온 갈색늑대가 조금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그만큼 굶주린 놈이면 시체로서의 활용가치가 없어 받아봤자 정부보조금 50만원이 끝이다. 그러니 그저 사람 두 명 살린 것으로 만족하자.
그렇게 얼마동안 걸었을까, 드디어 저 멀리 산간지방의 입구가 보였다. “이 앞으로는 몬스터가 다수 출몰합니다.”는 팻말과 함께.
그것을 확인한 세진이 아직 맥박이 희미하게나마 띄는 남자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흡!”
그러자 따라오던 남자가 숨을 멎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세진은 괜히 심술이 동해서 한번 장난을 쳤고, -그르릉.
“으아악!”
그는 멋진 반응을 보이며 뒤로 나자빠졌다.
‘너무 위험하게 살지마쇼.’
그 반응에 피식, 입가를 비틀어 올린 세진은 잔뜩 긴장한 남자의 어깨를 앞발로 두어번 두드리고서, 그대로 그를 지나쳐 숲속으로 향했다.
남겨진 남자, 김태조는 한참동안을 멍하니 있었다. 늑대는 이미 저 숲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애써 정신을 차린 그는 방금 벌어진 일을 되새겼다. 갈색늑대가··· 그 몬스터가··· 자신을 구해주었다.
꿈인가, 싶어 뺨을 한번 짝 때려봤다.
“악.”
아팠다. 꿈이 아니다. 그는 얼이 나간 채, 늑대가 사라진 방면을 응시했다.
“···쿨럭.”
“아. 상윤아! 일어났냐?!”
그러나 곧 동료사냥꾼이 마른 기침을 했고, 태조는 재빨리 동료사냥꾼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저기요!!!!”
크게 소리치자, 저 멀리 입구를 지키는 초소에서 반응이 부산스럽게 일었다.
“도와주세요!!!”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고 부랴부랴 달려오는 군인들을 바라보며, 태조는 아까 벌어졌던 꿈결같던 상황은 잊고 생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영물이요?”
“예.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크기며,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는 지성있는 모습이며···”
태조는 차를 홀짝이며, 다시금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몬스터가 영물이 될 수 있을까요?”
초소의 경계병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영물, 신령스러운 짐승. 자연의 영기를 받아들여 육체적, 정신적 강함을 얻었다는 신비한 존재. 그들은 마나에 의해 폭주한 짐승, ‘야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취급을 받는다.
“늑대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은 그 성정의 포악함 때문에 몬스터 취급을 한다지만, 늑대는 원래 짐승이었어요.”
“···만약 사실이라면.. 신기하네요.”
그러나 경계병은 그 말을 완전히는 믿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영물은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다. 영물의 범주에는 그 전설속의 구미호가 포함되어 있으니.
불신이 뒤섞인 태도에 태조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만약이 아니라. 완벽한 사실입니다. 저희가 직접 겪은······아! 맞다!”
하지만 그는 불현듯 무엇인가가 떠오른 듯, 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녹화렌즈! 나, 녹화렌즈를 끼고있었어!”
녹화렌즈. 말 그대로 망막에 비치는 시야를 녹화할 수 있는 이 렌즈는, 태조같은 극히 생계형 사냥꾼들은 종종 끼고 다녔다. 혹시라도 희귀몬스터를 영상에 담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돈이 되고, 잘 뽑아진 사냥과정을 담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교육 영상이랍시고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예?”
“잠깐 딱기다려! 내가 보여줄 테니까!”
그는 피가 나올까 걱정될 정도로 급하게 눈에 손가락을 비집어넣어 렌즈를 하나 꺼냈다.
“어디, 어디 함 보자고!”
* * * *
“에취!”
그리고 같은 시각. 근처 토굴에서 고블린폼으로 여태 모은 몬스터 사체를 해체하던 김세진은 별안간 재채기를 했다.
“···크흥.”
뻘건 손으로 코를 한번 푼 그는 해체가 완료된 사체의 부위부위들을 모두 정리해놓고서,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
“크헹.”
고블린의 특성은 ‘가만히 있질 못한다’는 것이다. 그 탓에 고블린폼일때는 차분히 있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코를 풀거나, 손을 비비적거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뱉거나 하는, 본능적 행위들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것이 정말 싫었던 세진은 다시금 늑대폼을 취했다. 그리고는 돌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자신의 시스템창을 한번 띄어보았다.
▶특성 「몬스터」 [등급: 희귀] [특성 레벨: 3]
- 종족이 인간에서 몬스터로 변경된다. 단, 현 기력수치에 따라 하루 24시간에 (70분) 동안은 인간의 형체를 취할 수 있다.
- 몬스터의 힘은 인간형일 때는 다소 하향되어 적용된다.
- 수면욕을 상실한다.
- 현재는 갈색늑대*로 포밍중
▶능력치
[근력 16] [지구력 15] [민첩력 19][기력 7]
[마나친화력 1] [마력 1] [운 3]
[*갈색늑대: 근력과 지구력이 5만큼 상승하고, 민첩력이 8만큼 상승한다. 인간 형체를 취할 시 효과가 3배만큼 감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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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이룬 성과로, 특성레벨이 무려 ‘2’나 올랐다.
-그르릉.
그 만족 못할 성과에 괜히 화가 난 세진이 으르렁댔다.
대략 한달 전. 라이칸스로프로 진화하자, 는 목적을 가진 그 즉시. 세진은 짐을 모두 챙겨서 강원도로 떠났다. 거의 타임 어택의 수준이었다. 송파구에서 강원도의 산간지방까지 30분 안에 가기. 마나 기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세진은 아슬아슬하게나마 성공했고, 군부대와 기사단의 눈을 피해 산간지방의 초입에 조심스레 잠입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별안간 몬스터의 섭리에 끼어들게 된 세진은 혼란과 혼돈을 거듭했다. 그러나 시비를 거는 몬스터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오크형으로 때로는 늑대형으로 그들에 대항했다.
많은 고생을 했다. 이빨사이에 낀 살점의 역한 냄새와, 둔기로 생명체를 짓이기는 소름끼치는 감각.
모두 도저히 익숙해질 수는 없는 경험들이었다. 점점 인간이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에 매일 밤을 울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에 익숙해질 순 없더라도 역한 감정은 어느정도는 마모되어 갔고, 세진은 목표를 향해 한발짝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사냥꾼들은 절대 찾을 수 없을 만큼 괜찮은 동굴 하나를 근거지로 삼고, 그곳에 아예 살림을 차렸다.
고블린의 특성 중 하나인 섬세한 손재주로 동굴을 다듬고 추위에 견딜 수 있게끔 몬스터들의 모피를 깔았다.
식수는 근처에 강이 있었으니 상관이 없었고, 음식은 야생짐승을 잡아 고기로 구워 먹었다.
그 이후로는 사냥의 연속이었다.
처음, 특성 레벨이 1일때는 적대하는 모든 몬스터가 위협적이었다. 그 흔한 갈색늑대조차도.
그래서 조금 머리를 썼다. 무리에서 탈락하거나 뒤떨어진 늑대들만 노려, 늑대보다 근력이 훨씬 강한 오크폼으로 대가리를 깨부쉈다. 그렇게 한 10마리 정도 잡았을까. 드디어 특성이 처음 레벨업을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물론 오크나 늑대의 몸뚱아리는 더 비대해졌고, 힘은 더욱 강맹해지긴 했다. 고블린은 이상하게 그대로였지만.
하지만 그가 원한 건 이런 ‘성장’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건 ‘진화’였다.
예를들면, 갈색늑대는 그 동류의 상위몬스터인 잿빛늑대로. 오크는 마찬가지로 동류의 상위몬스터인 오크전사로. 고블린은··· 그냥 아무거나.
그러나 변화는 오직 동일한 몬스터가 지닌 무력의 '성장'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더욱 노력했다. 한번 더 레벨 업 하면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특성 레벨이 2가 되니, 사냥이 조금 더 쉬워졌다.
같은 갈색늑대끼리 싸움이 붙더라도 세진의 몸집이 1.5배 정도는 더 거대했고, 힘의 차이는 그보다 더욱 확연했다.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이 일대의 포식자가 되었다.
하지만 레벨업은 오히려 더욱 더뎠다. 레벨 1에서 레벨 2까지는 고작 3일, 10마리면 충분했다. 그러나 레벨 2에서 레벨 3까지는 무려 30일, 100마리로도 부족했다.
그 답답함에 세진은 좀 더 상위 몬스터가 있는 쪽으로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만뒀다.
아닌 게 아니라, 몬스터의 세계에선 한 등급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예로, 갈색 늑대와 잿빛 늑대.
두 몬스터의 관계는 갈색늑대가 최하급, 잿빛늑대가 하급으로 딱 한급간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그러나 갈색늑대가 잿빛늑대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무리. 12마리 이상의 개체수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어쩔수 없이 이 최하급 몬스터 서식지에서 끔찍한 사냥 노가다만을 반복하길 31일. 그는 드디어 한번 더 레벨업을 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역시, 진화가 아닌 성장이었다. 몸과 힘이 호랑이와 맞먹는 잿빛늑대와 비슷한 정도가 되었지만, 결코 잿빛늑대로는 진화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되냐고.’
그가 늑대폼으로 한숨을 내쉬자, 푸릉- 하는 귀여운 콧소리가 났다. 물론 우연히 마주친 사냥꾼들은 이 비대한 몸에 놀라 도망치느라 바빠 전혀 귀여워해주지 않았다만.
헌데,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 그의 망막에 별안간 이상한 문자가 맺혔다.
「조건 완료: 최소한의 명성」
- 최소 100명 이상 사람들이 ‘갈색 늑대’의 존재를 뇌리에 각인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만큼 상승합니다.
- 이제 갈색늑대가 아닌 잿빛늑대로 포밍이 가능합니다. 포밍능력치가 상향조정됩니다.
- 이제 인간형일때에도 ‘잿빛늑대의 후각’이 적용됩니다. (활성/비활성 가능)
▶능력치
- [근력 22] [지구력 21] [민첩력 28][기력 8]
- [마나친화력 2] [마력 2] [운 4] - [*잿빛늑대: 근력과 지구력이 10만큼 상승하고, 민첩력이 16만큼 상승한다. 인간 형체를 취할 시 효과가 1/3배으로 감소한다.]
“···푸헹?”
너무나도 믿기 힘들 정도로 갑작스런 변화였기에, 세진은 순간 넋이 나갔다.
그러나 황급히 정신을 차린 그는 곧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해보았다.
확실히, 달라졌다.
개털과 다름이 없었던 갈색 털이, 윤기나는 회색빛털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