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늑대가 되다 (1)
특성을 얻고난 뒤, 처음 일주일 동안은 폐인처럼 살았다.
별안간 하루 스물 네 시간 중 스물 세시간을 몬스터로 살아야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르바이트 사장님들의 전화를, 문자를 본의아니게 모조리 씹게되었다.
두 분은 걱정을, 한 분은 욕설을 하셨다. 그러나 세 분 모두 이해가 갔다.
나는 오직 지금의 내 상황만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거기서 일주일이 더 지나자, 좁지만 깔끔하다 자부했던 내 집은 완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이 빌어먹을 발톱이 나 있는 수족으로는 살짝 걷기만 해도 집 안에 흉터가 났으니.
사는게 사는게 아닌 상황으로 사흘이 더 지났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몸길이 대략 2m, 어깨높이 대략 1.2m, 꼬리길이 대략 50cm, 몸무게 확실히 90kg. 털은 갈색.
언뜻 보면 덜 자란 호랑이의 스펙이 아닌가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내 신체스펙이다.
나는 지금 갈색 늑대가 되었다.
요즈음 ‘기사’나 ‘용병’ 혹은 ‘사냥꾼’을 표방하는 작자들이 가장 먼저 때려잡는다는 최약체.
몬스터라 부르기도 애매해, 야수와 몬스터의 경계라고 불리는 그 애매한 존재.
게다가 초보자용 몬스터의 특징인 1. 개체수가 많다. 2. 일반인이 상대하기에는 버겁다. 라는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어 보이는 즉시 척살당하는 몬스터.
그게 지금의 나다.
그러나 인정하기까지가 힘들었지, 인정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별 것이 없었다. 단지 ‘살 수 있는 방법’을 미치도록 갈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삶에 대해 품고있던 의지는 내 생각보다 훨씬 컸다. 통장에 400만원이 남아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하루 1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음식은 5분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온 조리시간이 짧은 도시락으로, 오직 인간형으로 섭취했다. 몬스터로서 밥을 먹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치못할 사정을 대비하여 하루 30분은 꼭 여유시간으로 남겨두었다.
또한 늑대로서 온전히 있기 위해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흘 간의 노력 끝에 어떻게 해야 발톱을 집어넣을 수 있는지 깨우쳤다.
그러는 동안에는 틈틈이 고블린으로 변해 집 내부를 청소했다. 140cm정도의 고블린은 체격이 작지만 손재주가 섬세해 청소하는 데는 제격이었다.
흉터는 이곳저곳에 남았지만, 어느새 예전 그때처럼 청결하고 깨끗한 집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아직 남아있었다.
수입원의 부재.
월세도 못 벌어서는 이대론 시한부인생일 뿐이다.
그래서 한쪽 구석탱이에 처박아 두었던 팔찌형 컴퓨터를 이용했다.
「집에서 돈버는 법」
···을 검색하려다 그만두었다. 고등학교 중퇴, 최종학력 중졸인 내가 자택근무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괜한 아쉬움에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컴퓨터화면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몬스터에 관한 내용을 쳐보았다.
그리고 아주 우연찮게 인생의 구원이 될 힌트를 발견했다.
그 대목을 보는 순간, 내 두 눈에 마치 섬광과도 같은 한줄기 빛무리가 번쩍 튀어올랐다.
Q:「늑대계열 몬스터의 최고봉인 라이칸스로프는 실존하는 몬스터인가요?」
A:「과거 세계의 균열을 통해 넘어온 1세대 수인들의 말로는, 실존했던 전설이라고 합니다. 꼬리 없는 완벽한 인간형과 무시무시한 이족보행 늑대형을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는 그들은 어찌보면 수인의 계통과 비슷했지만, 그들과는 비교자체가 되질 않는 격이 다른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 특유의 포악한 성정 탓에, 모두 멸족당해 이제는 신화나 전설속의 이야기로만 남았습니다.」
라이칸스로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전설 속 몬스터다.
몬스터이면서도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고, 완벽한 인간이면서도 몬스터가 될 수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 동물형과 인간형을 번갈아 취할 수 있는 수인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라이칸스로프의 인간형에는 ‘꼬리’가 남지 않는다.
“분명···.”
이 빌어먹을 특성에 따르면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몬스터의 단계가 상승된다’ 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이것 뿐이란 것을.
특정 조건이 무엇이든 간에, 최대한 빨리 그것을 완료해 진화와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
물론 라이칸스로프가 아닌 엉뚱한 몬스터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가능성은 이것 밖에 없으니.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해야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강원도의 산간지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몬스터의 땅’이 되었다. 그런 만큼, ‘균열’의 최초 근원지였던 이 산간지방은 이제는 인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살아가고 있다.
늑대, 오크, 고블린 같은 하위급 몬스터와 트롤과 가고일 같은 중위급 몬스터, 그리고 오우거와 와이번 정도의 상위급 몬스터까지.
대한민국 강원도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 생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지역은 몬스터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그것들을 잡는 기사나 사냥꾼에게는 완벽한 돈벌이 장소였다.
“임마! 정신 좀 차려!”
그러나 이 강원도를 단순한 ‘돈벌이’로 보는 낙관적인 견지는 최소 중~상급쯤 되는 기사나 되어야 가능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겐 이 산간지방은 몬스터들이 서로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지옥도이고, 몬스터를 잡아 먹고사는 이들에게는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가는, 여건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을 살얼음판같은 직장이었다.
“여기까지와서 기절하면 어쩌겠다는거야! 일어나!”
조금만 더 걸으면 군부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강원도의 초입.
하급 사냥꾼, 김태조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동료 사냥꾼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는···안 돼.”
그러나 동료사냥꾼은 맥없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눈을 감은 채, 당장이라도 그 가녀린 숨결이 끊길 것 같아 보이는 동료는 한쪽 다리가 잘려 있었다.
그 단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끔찍했다. 흉험한 야수의 이빨자국이, 그 짧은 새에 그들이 겪었던 끔찍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급 사냥꾼 3명, 중하급 사냥꾼 2명으로 이루어진 출발했던 그들의 무리는, 야수화가 된 대호를 만났다.
운이 안좋았다.
야수화가 된 대호는 보통 산간 깊은 곳에서, 보다 강한 몬스터들과 투쟁의 삶을 계속한다. 즉, 이런 초입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몬스터다.
헌데 그들이 그런 대호를 이 산간지방, 몬스터필드의 초입에서 마주친 것은··· 아마 길가다 벼락을 맞은 것과 비슷할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얌마! 일어······”
김태조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어디선가, 그르릉- 하는 야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
그는 숨을 죽인 채, 그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갈기가 갈색으로 빛나는, 딱 봐도 오래 굶주린 것 같은 늑대가 한 마리 보였다.
얼마나 굶었는지, 뼈가 앙상하고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어있다.
“···씨···.”
갈색늑대는 최약체다. 하급 사냥꾼이 세명만 있으면, 아니 저 정도로 굶은놈은 두명만 있어도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최악이다. 동료는 다리가 한짝 잘렸고, 자신은 그런 동료를 끌고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다.
“···저리 가! 가라고!”
태조는 절박하게 외쳤다. 그러나 본능적 식욕에 사로잡힌 갈색늑대는 아가리에 침을 질질 흘리며 서서히 다가올 뿐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먹이감의 상태를 탐색하는 듯.
“이런 시발!”
어쩔 수 없다. 김태조는 동료 사냥꾼을 버려두고서 혼자라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르렁!
늑대의 부르짖음과, 한계까지 중첩된 피로 탓에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애당초, 아무리 굶주렸다 한들 늑대를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개개, 개새끼. 내가 너 같은 개새끼만 100마리를 잡았는데···.”
결국 체념한 태조는 욕설을 뇌까리며 ‘마나탄’도 없는 엽총을 집어 들었다. 잘하면, 정말 운이 좋으면, 대가리를 정통으로 찍어서 기절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태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나 다름이 없었다.
늑대가 지축을 박차고 돌격해왔다.
그는 차마 그것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꽉 감고 엽총을 휘둘렀다.
콰직.
둔기의 타격음과는 조금은 다른, 모가지가 비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
그 의아한 사운드에 태조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다시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허..?”
또 한 마리의 갈색늑대였다.
그런데, 거대했다. 호랑이. 야수화가 되기 전의 호랑이의 몸집과 비슷하다.
거대한 갈색늑대. 놈은 아까 태조에게 달려들었던 늑대의 모가지에 이빨을 박아 넣고 있었다.
헌데 그 크기 차이가, 같은 몬스터라고 말하기에는 괴이할 정도로 컸다. 물론 굶주렸던 갈색늑대가 유난히 크기가 작긴 했지만, 이토록 큰 갈색늑대는 태조로서도 평생 처음봤다.
“시발.”
그리고 그런 갈색 늑대의 시선을 받으며, 태조가 욕설을 읊조렸다.
날카로운 야수의 눈매에, 형형하다 못해 고고하기까지 한 동공. 그 위맹한 눈빛이 이쪽으로 향하니,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 삶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야수화된 대호에, 호랑이만한 갈색늑대.
그래. 마지막치고는 운이 너무 좋았다. 아니. 운이 참 젠장맞을 만큼 좋았기에 마지막이다.
“···후.”
체념한 태조가 눈을 감았다.
저벅저벅- 하는 묵직한 발소리가 귓가에 속삭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에 의아한 그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왁!”
코앞에, 갈색늑대가 있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늑대는 바닥에 쓰러진 동료사냥꾼의 갑옷 사이에 이빨을 넣어, 마치 그를 들어올리는 듯한 행위를 하고 있었다.
“···뭐···뭐야?”
놀리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한 태조였지만, 다음에 이어진 늑대의 행동은 그의 얼을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늑대는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휘젓고는, 동료사냥꾼을 잡아 물고 군부대가 위치한 서쪽 방면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