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왜 저희를 도와주시죠? 이렇게까지.”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파루는 빙그르르 웃듯이 말했다.
“말했다시피 신전은 아픈 자들, 약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설사 외양이 다르더라도, 누군가 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신전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제는 더욱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이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을 준 이유는, 더 많은 생명을 이롭게 하라는 데 있다고 확신하니까요.”
파루는 그 말을 마치고 떠났다. 아론은 나를 보았고 나도 아론을 보았다.
“저분은.”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짜 사제 같아. 나처럼 엉터리이지 않지.”
아론이 천천히 나를 보더니 이내 맞장구를 쳤다.
“저처럼 허술하지도 않고요.”
나는 깜짝 놀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론이 허술하다니.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하는데. 넌 누가 봐도 진짜 성기사야.”
“대단한 배경에 놀랄 만한 신성력. 이 두 가지의 조합 때문이에요. 후광과 능력이 없다면, 전 기억도 안 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
나는 인상을 쓰며 반박했다. 속에서 울컥한 것이 치밀었다.
“그 두 가지 없더라도 너는 기억될 만한 사람이야. 돌아볼 남자야. 절대 허술하지 않은 사제야. 목표를 정하면,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기사잖아.”
“그건 말레드레드도 마찬가지예요.”
“뭐?”
“말레드레드도 엉터리 사제가 아니란 거죠.”
“아…….”
아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절하고 상냥했던 면모는 그대로예요. 지금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처럼요.”
“나는…….”
부도덕한 일을 했다. 지금도 그것이 나에게는 수긍할 만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세상에는 배척받을 짓인 건 분명하다.
“너무 제멋대로라서…….”
“그러면 어때요. 그런 것까지 합쳐서 말레드레드인걸요.”
아론은 편안하게 말했다. 나를 바라본다.
“전 그런 말레드레드가 좋아요. 말레드레드가 고민하는 부분까지 모두 합쳐서.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아론.”
“좋아하고 또 좋아해요.”
“아, 아론…….”
“주체할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걸.”
그의 감정이 따스하게 물결쳐 밀려온다. 나는 그 온도와 깊이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약간 물 먹은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겐 못 당하겠어.”
고맙고 미안했다.
“왜 그렇게 날 특별하게 바라봐 주고 있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아.”
“모르겠어요? 말레드레드가 먼저 그랬잖아요.”
아론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손이었는데, 아론은 무언가를 쥔 것처럼 손을 오므렸다.
“제게 쿠키를 주며 웃어 주었잖아요. 세상이 외면해도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면서.”
어린 시절로 회귀한다. 우리는 지금 그때로 돌아가 있다. 울고 있던 아론에게 쿠키를 내미는 나. 그런 나를 놀라서 쳐다보는 그. 아론은 쿠키를 받아들며 울음을 그쳤고, 나를 그제야 미소 지었다. 그의 선망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기쁘다는 듯이.
“저는 그래서 특별해졌어요.”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한 사내가 근사하게 자라났다. 사내는 아름다운 눈빛으로 나를 강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말레드레드 덕분에 특별한 기사가 되었어요.”
“아론…….”
“그러니까, 손을 내밀어 줘요.”
“뭐?”
“쿠키를 내밀었던 그때처럼.”
아론은 한 발짝 다가왔다.
“이제는 쿠키만으로 부족하거든요. 욕심이 많아져서.”
귓가가 뜨거워졌다. 아론의 목소리가 살랑거리며 파고들고 있었다.
“말레드레드 전부여야 만족해요.”
피곤하고 지쳤다. 일행을 끌고 오느라 당장에 쓰러져도 모자랄 판인데, 아론의 목소리가, 눈빛이, 그리고 태도가 마법처럼 나를 잡아끈다. 잠자고 있던 내 욕망을 다시 들춰낸다.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총체를 만난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제발.”
감미롭게 울리는 목소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 되겠지. 그와 나는 더는 함께할 수 없겠지.
그런 처연함과 다급함이 고개를 함께 쳐든다.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는 듯이 아론이 내 얼굴을 잡았고 내 고개를 당겼다.
이렇게 되리라. 이것은 해야 마땅하리라.
그런 생각이 눈빛을 통해 전해지자 나는 더 망설일 수가 없다. 나는 그가 당기는 대로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말았다.
키스는 거칠었고 서툴렀다. 서로가 처음인 것처럼 탐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몸을 벗겨 갔다. 갑옷을 벗기고, 옷을 내리고, 속옷을 떨어뜨렸다. 그의 살결에 내 맨살이 비벼질 때면 아득한 기분이 휩싸인다. 그 기분은 이내 초조함과 부끄러움으로 바뀌어, 그가 내 위로 올라탔을 때 뜨거움과 두근거림으로 산화했다.
“아……!”
아론이 다리를 벌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아읏…….”
찻잔에 있던 온기보다 뜨거움을 머금은 숨결이, 그리고 그의 혀가 배 아래를 희롱했다. 나는 민망하게도 빠르게 젖었다. 신전에서 정사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자 약간 두려워졌으나, 그 불안을 잠식하는 아론의 대범함이 있었다.
“읏!”
그의 혀가 가장 예민한 곳을 훑었다. 손이 바르르 떨렸고 허리가 욱신거렸다. 그 통증은 아래가 저며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아론이 혀를 빠르게 움직이며 아래를 집요하게 자극하자 금세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 입을 막았다.
“읏……, 으읍……, 흣!”
그러나 신음이 조금씩 빠져나오고 만다. 그가 핥으면 핥을수록 숨이 가빠지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울음이 터질 것처럼 좋았다.
“완전히 젖었어요.”
마침내 아론이 입술을 떼고 말했다. 나는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허벅지로 흐르는 물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솜씨가 좋은 것인지 금방 동해서 반응하고 만 나를, 아론은 오래 혼자 두지 않았다. 곧 건장한 몸이 내 위로 올라왔다. 그의 뜨겁고 습한 눈빛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
“다리를 더 벌려 줘요.”
아론은 부드럽게 말하면서 제 손으로도 직접 허벅지를 벌렸다. 고스란히 드러난 나의 음부, 투명한 물로 흠뻑 젖어 있을 그곳에 아론은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완전히 부푼 남성의 상징. 들어가는 순간부터 벌써 자극적일 만큼 컸다.
“으읏.”
허리를 비틀었다. 아릿하면서도 빡빡했다.
“좋아요, 제 걸 빨아들이고 있어요.”
아론은 기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읏…….”
“느껴지죠? 아주 좋다는 듯이 먹고 있으니까.”
달콤하면서도 진득한 이야기가 귀를 점령한다. 나는 더욱더 파고드는 그의 성기에 허리를 들썩였다. 아랫배를 조이는 감각이 생경하면서도 기쁘다. 안을 꽉 채우는 느낌이 행복했다.
“이렇게 들어간 채로 가슴을 애무하면.”
“으읏……!”
“더 제 걸 압박해 와요.”
아론은 짓궂게도 그대로 고개를 숙여 내 가슴을 핥았다. 혀를 내밀어 굳어 있는 유두를 건드렸다. 살짝살짝 건드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충격이 느껴졌다. 마치 전기 자극을 당하는 이처럼,
“으흥, 아흣…….”
신음이 커지기 시작하자 아론이 허리를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그 상태로 움직이면…….”
아래를 꿰뚫린 채로, 위로 자극을 당하는 기분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래위로 불이 지펴진 기분이었다. 나는 온몸을 비틀었다.
“아……!”
“안이 저를 당겨요.”
아론이 속삭였다.
“예쁜 유두도 부풀었고요.”
네가 자극해서 그런 거라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정작 말은 나오지 않고 신음만 터져 나왔다. 그가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온몸이 달아올랐다. 무력할 정도로 황홀해했고, 기뻐했다.
“제 거예요, 이거 전부.”
아론이 중얼거리며 다시 유두를 물었다. 동시에 콱 하며 안을 눌러 오자 나는 헉 하는 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거칠게 움직이는 그 때문에 눈앞이 혼미해진다. 나는 입을 막는 것도 잊고서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아흣!”
강렬함이 온몸을 뒤흔들 때, 아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술은 벌겋게 젖어 있었고 금세 내 입술을 탐하며 달려들었다.
“으음……!”
숨이 막히는 절정. 그가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자 아래가 불이 난 것처럼 화끈했다.
“아, 아……!”
몸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경련이 일었다. 눈물이 나올 듯한 강한 자극에 목을 뒤트는데, 아론이 입술을 떼었다.
“정말 예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으읏…….”
“제 것을 물고 흐느끼는 얼굴은 순수하죠. 아주 야하고 아름다워요.”
색기에 잔뜩 젖은 눈으로, 아론은 내 입술을 탐했다. 적절한 언사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겹쳐오는 입술에 숨을 빼앗긴 채로,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내 마음은 붕 떴다.
“아…….”
황홀하다. 아득함이 넘쳐흐른다. 아론은 절정을 눈치챈 것처럼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였다. 나는 완전히 그의 목에 매달렸고 아론의 혀와 엉켜 들었다.
“아…….”
그리고 잠시. 내가 견디지 못하고 먼저 떨어졌다.
“음…….”
절정 후 여운으로 나른해지려는 찰나, 아론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을 찾았다. 나는 가만히 입술을 내어 주었다. 보드라운 혀가 입술을 간질이는 것이 못내 정겹다. 나는 입술을 벌렸고 곧 그의 혀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나른하게 키스를 하고서야 그는 만족했다는 듯이 떨어졌다.
“좋아요.”
아론은 묻는 건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어조로 말했다. 낮은 어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한 욕망이 묻어 있었다.
“너무 좋고 좋아서 못 멈추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