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200화 (200/220)

200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힘겹게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도, 심지어 변이가 일어난 괴생명체도 여전히 인간다움이 존재한다.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있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고, 좋은 걸 먹고 싶고, 안락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그리고 인간답게 죽고 싶은. 그들은 외양은 달라도 우리처럼 바라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우리가 인간을 괴롭히는 마족을 상대하는 사제라면, 이들을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사제들은 대체 누구지? 우리랑 다른 이들일까.”

내 중얼거림에 아론의 눈빛이 깊어졌다. 공간을 바라보는 아론의 눈에도 지금 이 광경에 대한 참담함과 괴로움이 비친다. 아론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사제일 겁니다. 명령만을 수행하는.”

“이해할 수 없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를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런다는 거야……? 그저 명령이라서? 같은 인간을 이런 식으로?”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아론은 그런 나를 보며 말이 없었다. 그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른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를 발견하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그에게 휘둘렀다.

“악!”

맞는 줄 알았던지 그는 호들갑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아론은 그가 놀란 틈에 그에게 다가가 검을 목에 들이밀었다.

“으, 어…….”

“아이들은 어디 있죠? 괴생명체 중에 어린애들도 있었는데.”

내 질문에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손을 올렸다. 그가 가리킨 곳은 복도의 끝이었다. 내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가려 하자 그가 눈치챘는지 서둘러 말했다.

“풀어주면 안 돼요! 이미 변이가 심해서, 끔찍하게 변한 상태라……!”

“그건 내가 알아서 하죠.”

말이 끝나자마자 아론이 그의 목을 조였다. 그가 곧 실신해 기절하자, 아론은 그를 바닥에 놓았다. 그의 몸에서 무기를 빼낸 뒤 아론은 나를 따라왔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변이가 심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작은 몸으로 육체적인 변화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복도 끝에 도착하자 열쇠를 꽉 쥐었다. 그러나 안을 보고서 나는 그만 열쇠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

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처참했다. 아이들은 온전한 사람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팔이나 발이 마물의 것처럼 흐물거리거나 길어졌다. 눈이 하나 더 생기거나 등에 알 수 없는 혹이 솟았다거나 다리가 하나 더 생겼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어, 언니?”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머리 한쪽이 기이하게 부어오른 소녀가 보인다. 피부는 어두운 녹색으로 변한 그녀는 예전보다 더욱 변이가 심해져 있었다. 나는 소녀의 힘없는 눈빛을 발견하고 철장을 두 손으로 잡았다.

“괜찮아?”

“네, 근데 여,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소녀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절 보러 오신 거예요……?”

보러 온 게 아니다. 너를 구하러 왔다. 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와 차마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는 걸 깨달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소녀의 얼굴이 이루 말할 데 없이 환해졌다.

“저, 정말 기뻐요. 언니가 여기에 와 주었다니!”

소녀는 정말로 행복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상태를 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소녀는 바깥에 관리자가 없다는 것을 살피고는 말했다.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상태에 따라서 분류되었어요. 멀쩡한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갇혔고요, 저처럼 변이가 된 이들은 성인과 아이로 나누어져 아이들은 갇혔어요. 하루에 두 번씩 밥을 주고, 몸이 어떤지를 물어요. 그리고…….”

소녀의 눈빛이 갑자기 흔들렸다. 목소리는 겁을 먹은 것처럼 잔뜩 움츠려져 있었다.

“가끔은 끌려가서 이상한 걸 먹기도 하고요.”

“먹어? 어떤 걸?”

“모,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걸 먹으면 몸이 더 아파요……. 그날 밤은 잠도 잘 수 없을 만큼요…….”

“혹시 먹고서 변이가 더 심해진 거야?”

소녀는 그런 거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애들 전부 더 심해졌어요. 어떤 친구는 다시 볼 수 없었고요…….”

소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볼 수 없는 친구라니. 그건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나는 입술을 꽉 다물고는 철장 아래 떨어진 열쇠를 주웠다. 그리고 열쇠 자리에 꽂아 넣었다.

“얼른 풀어 줄게.”

나는 맞는 열쇠를 찾으려 애썼다. 소녀는 내가 용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내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묻고 말았다.

“어, 언니. 제가 나가도 될까요?”

“응?”

“사람들은 전 영원히 여기서 살아야 한대요. 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평생 격리되어야 한다고……. 더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나는 그녀를 보았다. 절망하고 실망하고 슬퍼하는 기색이 완연한 눈빛. 누가 어린 소녀에게 저런 눈빛을 갖게 했을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그리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전했다.

“다르더라도 괜찮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됐어. 마물과의 싸움에서. 그건 내가 바란 것도 아니고 원한 것도 아닌데, 운이 나빠 그렇게 된 거야.”

삶이 때때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리란 걸 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였다.

“세상 사람들이 다르다고 욕하더라도, 내가 살고 싶다고 한다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남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고.”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다. 생을 끌고 가는 주체일 것이다. 나는 마지막 말을 반복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제일 중요해.”

나는 소녀를 보았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물어야 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을. 소녀는 내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철장을 꽉 쥐었다.

“살고 싶어요…….”

소녀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친구도 만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어요…….”

“그래.”

“여기서 나가 햇빛도 느끼고 싶고요, 너른 들판도 뛰어다니며 꽃이랑 열매도 줍고 싶어요. 밤새 친구랑 수다 떨며 놀고 싶고요.”

인간다움이란 어떤 형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삶의 경이로움과 특별함, 평범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소녀에게 미소 지었다.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줄게.”

네가 나를 도왔듯이. 나는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철창을 열었다. 그러자 소녀가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걸음걸이는 편치 않았으나 나왔다는 즐거움에 소녀는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까지 눈치를 보고 있다가 소녀가 얼른 나오라고 손을 까닥이자 하나둘 용기를 내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열쇠를 주세요.”

아론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다른 철장으로 향해 있었다.

“다 열어 놓을게요.”

“괜찮을까.”

내 걱정은 여기서 도망가는 것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나가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냐였다. 아론은 무언가를 생각한 것인지 눈을 빛냈다.

“도시로 가죠. 이들을 데리고.”

“하지만 시민들이 무척 놀랄 텐데.”

“그걸 노리는 거예요.”

아론은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이 살아 있다는 걸 시민들도 봐야 해요. 이들도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요.”

아론의 말은 어쩌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일지 모른다. 생존자와 괴생명체를 다르게 취급하기에 이들은 여기에 갇혀 있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갇혀 있는 이들을 풀어 주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 물었다. 아론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제예요.”

내 대답에 아론도 미소 지었다.

“저희는 신성국의 사제죠.”

“그,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저희를 구해 주셔서!”

사람들은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며 고마워했다.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우선 나가야 해요. 기사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어서 저희를 따라오세요.”

나는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로 그들을 안내했다. 아론은 반대편 통로를 보고 있었다. 신전과 이어졌을 거라 보이는 그 통로에 왜 눈길을 주나 했는데, 아론이 곧 검을 꺼내 들었다.

“곧 있으면 기사가 몰려올 겁니다.”

아예 파괴해 버리겠다는 의미일까? 그 생각이 맞았는지 아론의 몸에서 기의 광풍이 불었다. 대검에 찬란한 빛이 맺혔다고 느낄 때, 아론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쾅-.

소리가 울리자 모든 이가 깜짝 놀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아론은 통로의 입구만 부순 것이었다. 벽과 천장이 와르르하며 무너지나 통로는 곧 틈 하나 없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아론은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가죠. 도망갈 시간을 벌어 줄 겁니다.”

“어, 어.”

아론의 시원시원한 결단력에 매번 감탄한다고 할까? 그는 목표를 정하면 뒤를 돌아보거나 망설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오로지 목표를 위해 냉철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행동한다. 나는 아론이 앞장서서 달려가는 모습이 그토록 듬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라면 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아론을 완벽하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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