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71화 (171/220)

171화

“뭐 하는 거지?”

거슬린다는 듯이 갤더 경이 손을 휙휙 저었다. 옆으로 비키란 의미였다.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 또 그 이야기인가.”

갤더 경이 인상을 썼다. 횃불로 밝힌 동굴 안에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분명한 거부감이었다. 나는 간절하게 말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에요.”

“말했다시피 후환이 될 거야. 지금 없애 버려야 해.”

“말도 안 돼요! 저 아이들이 무슨 해가 된다는 거죠? 살기 위해 몸을 피한 것뿐이잖아요! 괴생명체들도 마찬가지고요!”

“자네 지금 우리를 무엇으로 매도하는 건가? 무자비하게 살생을 가하는 협잡꾼들로 보고 있는 건가?”

갤더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비난이 실려 있었다. 갤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외쳤다.

“물정 모르는 소환사 하나가 외친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달라질 건 없어! 저들은 모두 없애야 할 존재들이야! 만약 방해한다면!”

갤더는 눈을 부릅떴다.

“자네도 그와 같은 무리로 취급할 걸세!”

갤더가 검을 위로 쳐들며 소탕하라고 외칠 때였다. 아론이 갑자기 그의 앞으로 나서는 게 아닌가. 아론은 검을 아래로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한 손으로 검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모양이 긴장한 것만 같았다. 언제라도 검을 휘두르겠다는 듯한 그의 태도를 보며 갤더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물었다.

“뭐지? 지금 자네도 내게 반항할 생각인가?”

“지휘관으로서 말씀드릴 뿐입니다.”

아론은 딱딱하게 굳어진 어조로 대꾸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멀쩡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도시의 시민들이요. 우리의 이번 소탕의 목적은 도시의 시민들을 보호하고, 사악한 존재를 무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멀쩡하다면, 그들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나와 말장난을 하고 싶은가? 자네도 괴생명체와 함께하는 인간이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잘 알 텐데?”

갤더가 목소리를 낮추며 불만스럽게 으르렁거렸다. 아론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전 어디까지나 이번 소탕의 목적을 상기해 드린 겁니다. 말장난을 할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아론나이드…….”

갤더는 씹는 듯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휘관으로 버젓이 나와 함께 출병했으나, 어디까지나 자네는 내 보조일 뿐, 같은 급으로 취급될 수 없다는 것을 알 텐데? 내가 모조리 죽이라고 한 명령을, 수하로서 어길 셈인가?”

“그럴 의도는 없으나, 소탕 목적이 어긋난다면.”

아론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기꺼이 막아설 겁니다.”

“……!”

아론의 말에 갤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지휘관의 심상치 않은 기 싸움에 주변 성기사들은 숨을 멈추고 지켜보고 있었다. 갤더는 아론을 쏘아보았다. 건방지고 괘씸한 자식! 이런 비난이 쏟아지는 게 보였으나 갤더는 의외로 자제심을 발휘했다.

“좋아, 그렇다면 사람들은 살려 두도록 하지.”

갤더는 더 작고 낮은 목소리로 아론과 나만 들리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곳에서 지휘관 둘이 싸운다면 그것만큼 꼴불견은 없을 테니까.”

“괴생명체들도.”

아론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죽이지 않고 가둬 두는 걸로 해야 합니다.”

“말도 안 돼!”

갤더의 언성이 높아졌다.

“괴생명체들은 사악한 것이야! 당장에 죽여야 하는 것들이야! 저들은 타협의 여지가 일절 없어!”

“사악하다는 표현은 우리의 터전을 위협하고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때에야 적합한 말입니다. 지금 저들이 어떤 상태입니까? 우리를 두렵고 공포스럽게 합니까? 지금 저들을 보세요!”

아론은 손을 뻗었다. 그가 가리킨 쪽에는 두려움에 떠는 괴생명체들이 가득했다. 일부는 작았고 일부는 컸다. 키가 어찌 됐든 검을 든 성기사를 보는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아론은 힘 있는 목소리로 의견을 피력했다.

“이미 상부에서도 괴생명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굶주림에 식량을 훔치거나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것만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크나큰 위협이야!”

“동물들은 안 그럽니까?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온 동물들도 우리 인간들을 보면 놀라서 도망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잔인하게 검을 들어 멸하겠다고 하던가요? 괴생명체도 그 동물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론은 한층 더 강하게 외쳤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인간이었다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물보다 더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아론나이드!”

갤더가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은 부름이라기보다 경고에 가까웠다. 온몸에서 기세를 뿜어내는 갤더는 아론이 더 말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살벌했다.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는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추측만으로 괴생명체를 우리 인간과 같이 대접하겠다고?”

아론은 답하지 않았다. 검을 아래로 하고 등을 반듯하게 세워 그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시선만으로도 자신이 어떤 결의를 했는지 보여 주듯이.

“으으으.”

갤더는 불만족스럽게 신음을 흘렀다. 이대로 동굴에서 아론과 싸울 것인가. 건방진 애송이의 콧등을 잔뜩 눌러 주고 싶다는 살기가 팽배했다. 그때 정적이 흐르는 동굴 안을 깨는 기이한 외침이 있었다.

“카악, 카악!”

괴생명체였다. 괴생명체는 무언가를 보고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성기사들은 그들이 공격하는 줄 알고 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이내 그들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 마물이었다. 작은 마물은 어두운 동굴 벽을 틈타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사 하나가 외쳤다.

“죽여!”

신성력이 쏟아졌으나 마물은 재빠르게 피해 바위 뒤로 숨었다. 기사가 다가가자 갑자기 튀어나온 그것은 곧 방심하고 있는 성기사의 앞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크억!”

성기사는 깜짝 놀라서 손을 허우적거렸다. 당황했는지 신성력을 쓸 엄두를 못 낸 듯했다. 공 마물은 갑옷으로 스며들었고 곧 그 부근이 녹슨 것처럼 탁해졌다. 동료 성기사들이 달려와서 얼른 신성력을 쏟아냈지만 변화가 시작된 것인지 성기사의 피부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맙소사…….”

눈앞에서 변화를 직접 본 성기사들은 두렵다는 듯이 물러났다. 변해 가는 동료의 모습이 처참했고 끔찍했다. 그것은 성기사 본인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절망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동굴을 울리는 커다란 울음에 갤더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런…….”

병신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갤더의 뒷말을 씹듯이 중얼거리더니 검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성기사를 죽이려는 모습에 주변 기사들이 얼어붙었다. 아론이 그때 나섰다.

“나이트 갤더.”

“비켜.”

이젠 존대해 주지 않겠다는 듯이 갤더가 거칠게 나왔다. 아론은 뒤쪽에 겁먹은 채 검을 쥐고 있는 변화된 성기사를 힐끔 보고는 갤더에게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방금 전까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마물로 인해 변화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당장에 우리의 적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느슨한 태도가 우리 신성한 제국을 무너뜨리는 거야.”

갤더는 윽박질렀다.

“자넨, 아직 젊으니까 몰라. 봐주고, 타협하면 금세 적은 코앞까지 다가오지.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에 우리를 무너뜨리는 거야!”

갤더는 다시 말했다.

“전쟁을 모르는 건 어리니까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어리석은 건 이런 시기에 용납될 수 없네. 다시 한번 내 검과 죽일 대상 사이에 선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갤더의 말에 아론은 어찌할 수 없다는 듯이 검을 꽉 잡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그때 누군가 움직였다. 괴생명체로 변한 소녀였다. 소녀는 무서운 표정의 갤더와 아론을 두렵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그 뒤에 얼어붙어 있는 성기사의 팔을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저, 저쪽으로.”

“……어?”

“도망가요.”

소녀의 말에 성기사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소녀는 큰 눈을 깜박거리며 어눌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큰 바위 뒤로, 안 다치게…….”

소녀는 자신처럼 숨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성기사는 놀란 얼굴이었으나 이내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녀를 뿌리쳤다. 그러자 힘에 소녀는 바닥으로 밀쳐져 넘어지고 말았다.

“이, 이거 놔! 나는 너랑 같은 존재가 아니야, 나는, 나는…….”

성기사의 얼굴은 우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서, 성스러운 사제의 표본으로, 위대한 신성력을 소유한 엘크리찬의 성기사…….”

그러나 그의 몸은 딱딱한 껍질을 가진 몬스터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우아한 말을 내뱉는 입술은 툭 불거져 튀어나왔고 귀와 눈은 길어졌다. 그 기괴한 변화에 동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났고, 성기사는 더욱 울부짖었다.

“나, 나는……!”

그의 어둡고 축축한 피부 위로 진액이 흘러넘쳤다. 성기사는 그것이 눈물인 줄 알고 닦았으나 녹색 진액이 묻어나오자 커어억,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으허엉-.”

순간이지만 기사의 우는 소리가 동굴을 크게 울렸다. 너무나도 달라진 외모. 변해 버린 체형은 더 이상 그를 인간이라고 하기 우스울 지경이었다. 다 큰 성인인 그가 갑자기 넋 놓고 울어 버리자 갤더 역시 당황한 듯싶었다. 아론은 그 틈을 타서 조용히 말했다.

“말했다시피 사악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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