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아론은 그저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짧게 말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지금 상황이…….”
“아주 단순한 상황이야.”
갤더는 아론을 지긋한 눈길로 한 번 본 뒤, 동굴의 어두운 입구를 바라보았다.
“튀어나오는 것들을 모두 죽여 버리면 되니까.”
“저, 근데…….”
은신처를 찾아낸 수색 기사가 끼어들었다.
“괴생명체 말고도 일반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서요.”
“같아서?”
갤더는 눈썹을 찌푸렸다. 표현이 언짢다는 느낌에 수색 기사는 다시 말을 정정했다.
“부, 분명 일반인들도 있었습니다! 어린애들로 보였는데….”
“괴생명체랑 함께 있다면 정상이 아니야.”
갤더가 딱 잘라 말했다. 수색 기사는 뭐라고 더 말하려 입을 벌렸다가 갤더의 차가운 눈빛에 입을 다시 다물고 말았다. 갤더는 못 박듯이 말했다.
“이런 시기에 괴생명체와 함께 있는 인간이란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야. 이미 타락했다고 봐야겠지. 골치 아픈 일이 없으려면 이 기회에 제거해야 해.”
갤더는 팔을 들어 올렸다. 그 신호에 따라서 뒤따라온 성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입구 앞에 진을 쳤다. 무기를 꺼내 들며 살기를 고조시키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린애들. 혹시 내가 알던 그 아이들이 아닐까? 이곳은 소녀가 살던 판자 더미와 거리도 멀지 않았다. 나는 수색 기사에게 물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섞여 있던가요? 행색이 초라하고요.”
“얼핏 보았지만 그렇게 보였습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둘러 갤더에게 말했다.
“나이트 갤더. 소환사 말레드레드라고 합니다. 이 동굴에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다면 무작정 살생은 하지 말아야 해요. 이 도시의 몇 안 되는 생존자이니까요.”
“이 시점에서 생존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지. 그대가 소환사라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의 눈은 나를 비아냥거리는 듯했다. 낮게 보는 눈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전투를 마냥 외모로만 한 게 아니라면 말이야.”
“갤더 경.”
아론이 끼어들었다. 아론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갤더는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눈매를 가늘게 하더니,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언제부터 일개 소환사가 나이트가 내린 결정에 뛰어들어 말할 수 있게 된 건지 모르겠군. 젊은 지휘관이라면 알 텐데? 괴생명체가 혹시라도 수도에 가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는 걸. 따라서 지금 후환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갤더가 그렇게 말하며 대검을 들자 말이 두렵다는 듯이 목을 빼 울었다. 갤더는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잔인했고, 냉정했다. 나는 기사들이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말에서 뛰어내렸다.
“말레드레드!”
아론이 불렀지만 나는 재빨리 동굴 앞쪽으로 달려갔다. 내 행동에 놀란 것은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내가 다가오자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갤더와 아론을 쳐다보았다. 갤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명령에 불복종한다는 건가?”
“말레드레드, 지금 이렇게 나서면 안 됩니다.”
아론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론을 잠깐 보았다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내가 지팡이를 꺼내자 기사들이 긴장한 것처럼 대검을 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아론의 서슬 퍼런 눈빛에 잠시 굳어지는 듯했다. 아론 역시 준비된 것처럼 대검을 쥐었을 때였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말레드레드!”
“내가 갈게.”
나는 반말도 서슴지 않으며 아론을 쳐다보았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 불안한 금빛 눈동자를 보면서 말해야 했다.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를 도와준 애들이 있어.”
“…….”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어.”
나는 다시 갤더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사태가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그 뒤에 기사들을 투입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네.”
내 대답에 그가 눈빛을 빛냈다.
“괴생명체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이런 일로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건 너무 허망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아직 제가 사제로 불린다면.”
나는 똑똑하게 말했다.
“들어가서 아이를 구하고 싶어요.”
갤더는 입을 다물었다. 무모한 행동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이 전해졌다. 나는 그를 뒤로한 채 아론에게 잡힌 팔을 빼려 했다. 그러나 그가 더 강하게 잡아 왔다. 뭐하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아론이 입을 열었다.
“같이 가요.”
“…….”
내가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자 아론이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저를 떼어놓고 가려고 했던 거예요?”
“하지만…….”
나는 다른 기사들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눈으로 보았지만 아론은 단호했다.
“가죠.”
그가 앞장서며 말했다. 시선 따윈 상관 안 한다는 듯이 동굴로 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 서둘러 지팡이를 움켜쥔 채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몹시 추웠다. 온기가 돌지 않는지 한기에 몸이 딱딱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론은 신중하게 앞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를 따라서 발을 옮기며 신성력으로 지팡이를 환하게 밝혔다. 아론은 그걸 잠깐 보고는 자신의 검에도 힘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휙!
순간이지만 무언가가 바위기둥 뒤로 숨었다. 아론은 내게 가만있으란 듯이 손을 움직였다.
위협적인 신성력이 번쩍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먼저 지팡이를 휘둘렀다.
퐁-
빛이 튀어 나가 벽에 튕기며 기둥 뒷면을 밝혔다. 그러자 무언가 놀라서 튀어나왔고, 나는 그것이 작은 괴생명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괴생명체는 겁에 질려 있었다. 동물의 이빨처럼 기형적으로 변한 송곳니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괴생명체의 다리가 상처로 너덜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괜찮니?”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괴생명체가 더욱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두렵고 공포에 찬 눈. 커다란 동공에는 무서움만이 차 있다.
“이게 통할지 모르겠지만…….”
신성력이 맺힌 지팡이를 뻗자 상처가 아문다. 괴생명체는 놀라서 허둥거렸다. 곧 아픔이 사라졌는지 괴생명체는 자신의 다리를 만져 보기 시작했다.
“혹시 다른 이들도 있어?”
내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뒤쪽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분다 싶더니 무언가가 나를 덮쳤다. 그러나 아론이 더 빨리 그 움직임을 차단하며 검을 휘둘렀고, 검의 옆면에 맞은 인영은 벽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카아하, 악…….”
이상한 소리로 기침을 내뱉는 그 인영은 괴생명체였다. 눈빛에는 독이 오른 듯이 세모로 변한 붉은 혈관의 동공이 있었다. 굳어질 때 아론이 조용히 말했다.
“성인 개체군요. 뒤쪽에 인기척이 더 느껴집니다.”
아론은 공격할 준비를 하듯이 자세를 낮췄다. 긴장한 그를 보면서 나는 으르렁거리는 인영과 작은 괴생명체를 번갈아 보았다. 작은 괴생명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는 듯하더니 이내 눈을 끔벅거렸다. 그리곤 커다란 인영에게 가서 다독이듯이 그를 토닥여 주었다. 아이가 어른을 달래 주듯이.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그들 뒤쪽에서 괴생명체가 더 나타나자 움찔했다.
“곧 성기사들이 몰려올 겁니다.”
아론은 괴생명체밖에 보이지 않는 광경에 차갑게 말했다.
나는 그들 사이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자 괴생명체 뒤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더 보인다. 얼굴이 익숙한 것 같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론, 저기!”
“……!”
아론은 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고 다소 놀라는 눈이었다. 나를 알아본 것인지 아이들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
나는 땟자국 가득한 얼굴들 사이에서 느낌이 다른 얼굴을 발견했다. 변해 가고 있는 것인지 얼굴에는 이상한 물집이 가득했다. 귀는 축 늘어지고, 손톱과 발톱은 까맣지만 어딘가 친숙한…….
그러던 중 입고 있던 옷을 보자 어떤 깨달음이 들고 말았다.
“너는…….”
내 말에 괴생명체가 반응을 했다. 지팡이로 밝혀진 불에 내 얼굴을 확인했는지 이내 두려운 표정이 걷히면서 입술을 열었다.
“야, 약속을 못 지켜서.”
소녀가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발음은 어눌했지만 의미는 정확했다.
“죄송해요.”
나는 순간 할 말을 모두 잊어버리고 만 기분이었다. 소녀가 사과한 것은 비오타로 향하는 길 안내에 대한 것이었고, 이렇게 변한 도시에서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약속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소녀가 안도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어두운 동굴 안. 괴생명체와 어린아이들. 두 명의 사제. 이것이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것인지. 이들은 죽여야 할 적이 아니라 도와줘야 할 생명이었다. 사제로서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말레드레드, 곧 기사들이 올 겁니다.”
아론은 생각의 정적을 깨며 말했다. 그는 곤란한 듯이 보였다. 곧 그의 말처럼 동굴이 울리기 시작했다. 괴생명체와 어린아이들은 서로를 껴안았고 먼지가 떨어지는 천장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갤더 경이었다.
“이야. 한데로 잘 몰아넣었군.”
칭찬한다는 듯이 아론에게 말하는 그였다. 그가 고갯짓을 하자 곧 기사들이 달려들 채비를 끝냈다. 나는 얼른 그들 앞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