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64화 (164/220)

164화

“마물에 대한 건 곧 도착할 사제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사제님은 이만 가시죠.”

“자, 잠깐!”

나는 기사들의 팔을 다시 뿌리쳤다. 그러자 기사단장의 눈초리가 더 매서워졌다.

“또 뭡니까.”

“하, 한 명, 아이가 하나 있어요! 음식을 구하러 밖에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도시 주민 말입니까?”

기사단장이 묘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를 도와준 아이예요.”

기사단장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도망치는 걸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로 들렸나 보다. 나는 서둘러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 도착해서요. 숙소를 안내해 주었던 아이인데, 별일 없는지 찾아보고 싶어요.”

“안내? 여행자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고아를 말하나 보군요. 운이 좋다면 살아남을 겁니다. 버려진 고아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기사는 건조하게 대꾸하고는 나를 끌고 가라고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나는 도리질 치며 강하게 말했다.

“제가 직접 찾을게요. 제 눈으로 무사한 걸 확인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꺼운 팔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흐윽…!”

그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목을 잡히자마자 머릿속이 터져 버린 것처럼 하얗게 변했다. 나는 벗어나고자 그의 손을 팍팍 쳤지만 바위를 치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 시야는 금방 흐릿해졌다. 의식마저 뿌옇게 변할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제라고 계속 고분고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우리를 죽이려는 사악한 의도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방심하거나 돌아서면 우리의 것을 탐내는 추악한 것들이 달려드니까요. 이런 시기에 수하가 제 고집대로 행동한다면 피해는 커질 겁니다. 상상할 수도 없이요.”

“읏, 흐윽…….”

그의 칼날 같은 눈이 내 눈을 관통해 왔다.

“이미 날 한 번 곤란하게 했으니, 더는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다음엔 명령 불복종으로 보아, 무기징역이나 사형으로 다스릴 테니.”

기사단장은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더니 이윽고 나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퍽.

“흐읏…….”

“숙소에 가둬.”

기사단장의 명에 따라서 기사 둘이 내 양팔을 붙잡았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다시 숙소에 처박힌 나는, 곧 대대적인 공격 명령을 들었다.

“살아 있는 괴생명체와 협조한 변절자들을 남김없이 죽인다! 그 시체는 모두 불태운다!”

“이아앗-!”

살벌한 함성이 들리고 기사단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도시 전체로 기사들이 빠져나가는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소녀에 대한 걱정, 공 마물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녀는 과연 살아 있을까. 무사히 몸을 피했을지 궁금하다. 공 마물, 그것도 또한 걱정거리였다. 만약 공 마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더 많은 괴생명체를 만들어 내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기사들까지 변해 버리면, 이 도시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불안한 마음에 나는 방 안을 맴돌았다. 초조한 심정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던 중, 갑자기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마기? 불현듯 깨달은 순간, 숙소에 무언가 쾅! 하고 부딪쳤다.

“윽!”

나는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서둘러 손을 더듬어 지팡이를 간신히 움켜쥐자 하얀 빛이 날아오는 가루와 조각들을 튕겨 낸다. 나는 흰 빛 사이로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했다.

날아온 건 돌벽이었다. 한 면을 뜯어낸 것처럼 들쭉날쭉한 형태로 뽑힌 벽은 방 벽을 완전히 관통해 천장까지 부술 참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뒤로 걸어갔다. 조심스럽게 걸은 것인데도 그 충격으로 벽과 바닥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서 얼른 몸을 옆쪽 풀숲으로 던지자 쾅 소리가 나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벽과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하아, 하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멍하니 폐허 더미에서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내가 머물던 숙소가 파훼되어 버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더욱 처참했다.

여기저기 시끄러운 날개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거대 마물이 날뛴다. 마물은 칼을 뽑아내는 기사들을 통째로 잡아먹고, 그들의 말을 손으로 움켜쥐어 터트린다. 분노한 마물들을 피해서 살아남은 기사들은 이내 날아다니는 마족이 던진 가시에 꽂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 절망적인 광경 한가운데 누가 있는 것을 보았다.

에레나.

화려하게 늘어진 검은 드레스 안의 그녀는 잔혹할 정도로 우아해 보였다. 활동하기 좋도록 허벅지까지 트여 있는 드레스를 천천히 늘어뜨리며 걷는 그녀를 따라서 마물들은 기사들을 처참하게 죽여 나갔다. 에레나는 그때마다 쾌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 사악한 마족……!”

어느새 기사단장이 말을 몰아 그녀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뭐라 하기도 전에 쿵쿵 소리를 내며 달려온 거대 마물이 기사들을 밟아 터트려 버렸다. 기사들은 마물에게 창과 화살을 쏘았지만 소용없었다. 신성력이 없는 공격이란 그저 그들의 성질만 돋울 뿐이었으니까.

“네가 대장인가?”

기사단장이 수하들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에레나가 불쑥 그의 뒤로 나타나더니 손을 그의 어깨에 꿰어 넣었다.

“으아아악!”

어깨를 관통한 하얀 손은 하얀 창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맺혀 있는 피를 더러운 것을 보듯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툭툭 쳐냈다.

“내 수하를 잡고 있던데.”

“크, 으윽……!”

기사단장은 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고통이 극심한지 투구가 떨어진 얼굴은 온통 찡그려져 있었다. 에레나는 건장한 체격의 기사단장을 아무렇지 않게 꿰어진 팔로 들며 말했다.

“내 수하가 어디 있지? 마기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니 살아 있는 거 같은데, 기운을 찾을 수가 없군.”

“크, 흐윽, 누, 누가 사악한 마족에게, 쿨럭, 알려 줄 줄 알고…….”

기사단장은 피가 섞인 기침을 뱉으면서도 대꾸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천천히 그쪽으로 기어갔다. 온몸이 떨렸지만 에레나 뒤에 심상찮은 마기가 모여 있었다.

저것이 폭발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도시 전체가 망가지는 게 아닐까? 두려움과 불안이 앞선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을 모아 마기가 뭉쳐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흩트리자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부서진 벽과 천장을 엄폐물 삼아서 기어가는 동안, 에레나는 기사단장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 순순히 갈 수도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구나.”

“너, 너 같은 존재에게 협조할 날은 영원히 없을……커헉!”

남은 손이 반대쪽 어깨도 꿰뚫자 기사단장은 절규했다. 나는 그가 경련이 온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면서 기는 속도를 빨리했다. 무릎이 아팠고, 흙을 부여잡는 손끝이 쓰려 왔다. 그러나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에레나만 보면 분노가 솟았고 앙갚음을 해 주고 싶었다. 나는 더욱 힘을 냈다.

“영원히, 라. 인간은 그 단어를 신성하다는 듯이 쓴단 말이야. 웃기게도 너희 인간들처럼 변덕스럽고 변심이 잦은 종족이 없는데도.”

“무, 무슨 말이냐……흐윽, 우, 우린 절대…….”

“절대라? 너희 인간이 그렇게 결점 없는 무고한 종족인 줄 아나? 가식적인 인간이여. 너만 해도 오늘 같은 인간을 수백 죽인 걸 안다.”

“무, 무슨!”

기사단장이 피를 토하며 울컥했다. 헛소리하지 말란 듯한 반항에 에레나는 몰랐냐며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죽인 괴생명체. 잔인하게 그들을 도륙하고 불태웠잖아? 그들은 얼마 전까지 너와 같은 인간이었어.”

“크윽…!”

기사단장이 이빨을 콱 물며 반응했다. 에레나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며 입가를 올렸다.

“왜 그러지? 거부감이 굉장한데. 설마 같은 인간이라는 걸 몰랐던 건가?”

에레나의 눈빛이 번쩍였다. 기사단장을 관통할 것처럼 바라보며.

“아니면 결코 인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거나.”

기사단장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순히 고통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에레나는 그 반응에 깔깔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무엇이 됐든 상관없어. 본인이 그렇게 변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걸 아니까.”

“……!”

두 어깨를 꿰뚫고 있는 에레나의 손이 빛났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어느새 공 마물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며 기사단장은 거부하듯 몸을 비틀었지만 자신의 어깨를 꿰뚫은 팔 때문에 도망갈 수 없었다.

공 마물이 천천히 그에게 스며들었다. 비명이 귀를 찢을 듯이 들려왔다.

“이 도시 인간들은 모두 괴생명체가 될 거야.”

에레나는 변하기 시작하는 기사단장을 보며 방긋 웃었다.

“인간들은 도시 전체의 생명을 없애려 하겠지. 네게는 당할 기회를 먼저 주는 거니까, 영광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잔인한 말이 들려온다. 기사단장의 모습은 기회나 영광과 전혀 관련 없어 보였다. 골격이 뒤틀리고, 피부가 뒤집히며 전혀 다른 형태의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지고, 귀는 쏙 들어가고, 머리카락은 눅눅해지는 그 변화들. 손과 발은 갑자기 커져서 갑옷이 터져 버리는 그 무참한 변화는 눈으로 보고 있으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워 보였다.

“으아아아악-!”

기사단장은 두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절규했다. 어느새 에레나는 그의 어깨에서 팔을 빼내 자신의 옷에 피를 닦고 있었다. 발광하는 기사단장을 즐거운 듯이 바라보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두 손으로 지팡이를 잡았다. 위치는 이 정도면 적당하다.

‘마기, 그 흐름을 파고들어.’

모여든 모든 것들을 망가뜨린다. 이것은 원래 차원의 문을 만들어 마기로 생성된 문을 방해할 때 쓰는 방식이다. 내 목적은 이러했다. 그녀가 모은 마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여태 한 발언으로 추측하건대 공 마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그녀가 마기를 폭발시키기 전에 기운을 어지럽혀 흩트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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