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로써 더욱 잘 알게 되겠군요. 이 기이하고 끔찍한 괴물에 대해서.”
“저, 조사단을 이끌던 대장님께서는 언제 떠나셨죠?”
“얼마 되지 않으셨습니다. 일대를 다 돌아보셔야 한다면서, 아주 의욕에 넘치는 기사단장을 끌고서 가셨으니까요. 우리 도시에 나타난 괴생명체 숫자가 많은 이유가 무척 흥미롭다고 하셨습니다. 도시의 특성 때문인 거 같다 하시면서요.”
“도시의 특성요?”
레너드의 순진한 되물음에 사제가 어른스럽게 미소 지었다.
“네, 상인의 도시 말입니다. 이 도시는 사방이 뚫려 있고 유입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괴생명체도 사람이고 짐승이고 더 많이 들어오거든요.”
“아…….”
레너드는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는 나와 레너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시찰단에서 오신 분들이 도시를 이렇게 보호하고 계실 줄이야. 역시나 신의 충실한 종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말았다. 레너드가 먼저 머쓱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운이 좋았어요. 정말 우연히 발견해서…….”
“신을 충실히 모시니 이런 우연도 찾아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 이제 그럼 그만 영주의 성으로 가시죠. 이 괴생명체는 제 동료 사제들에게 연락해서 옮기기로 하겠습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나는 진물이 흘러나오는 피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신전 지하로 데려갈 겁니다. 그곳에는 이런 괴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있거든요.”
사제는 기절한 괴생명체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어쩐지 잔인했다. 순간적으로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럼, 가죠 말레드레드.”
나는 힘겹게 괴생명체에서 눈을 뗐다. 우리와 닮은, 그러나 우리를 습격하는 생명체. 어쩐지 찜찜함을 한껏 남기는 특징이었다.
여관으로 돌아가자 사제들이 다행이라며 나와 레너드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는 그들은, 나와 레너드의 사이가 괜찮아진 것을 보며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영주님께서 한시라도 빨리 행진을 했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방으로 돌아간 우리는 서둘러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다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이자 영주가 탄 마차가 도착했다.
“오오, 시찰단 사제분들이여!”
향수 냄새가 진하게 흘러나오는 남자는 매우 젊었다. 최근에 영주가 바뀌었다는 노트담의 군주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휘황찬란한 비단으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 걸쳐져 있는 보석 액세서리들이 움직일 때마다 풍만한 몸을 따라서 흔들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시찰단 중에서도 나를 빤히 보며 콧소리를 냈다.
“흐음, 신전에서 찾는 사제분이 바로 당신이군요? 말레드레드 사제?”
“신전에서 절 찾아 연락이 왔어요?”
바로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나는 원래 도시에 도착하는 대로 상부와 카란에게 연락해야 했다.
“네, 방금 전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신전이라기보다 어떤 분이 당신을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누가…….”
멈칫하는 내게 그가 진하게 웃었다. 어쩐지 거북한 눈빛이었다.
“아론나이드 경이라고. 요즘 수도에서 가장 거론되는 위대한 성기사이시죠.”
“……!”
나는 크게 몸을 떨고 말았다. 내 예상보다 훨씬 일찍 아론이 깨어났다. 몸이 다 나은 걸까. 안도감과 씁쓸함이 교차한다. 안도감은 그가 괜찮아졌다는 데서, 씁쓸함은 그의 다음 행보를 알고 있다는 데서. 나는 천천히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뭐라고 하기는요! 당연히 여기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사실 제가 이런저런 소문에 밝지 않겠습니까? 아론나이드 경과 묘한 관계에 있다는 사제에 대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시찰단에 오셔서 직접 뵐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영주는 히죽 웃었다.
“정말 듣던 대로 시선을 끄는 분이시군요.”
그의 시선이 내 몸을 더듬으며 훑는 것만 같았다. 그 시선은 어딘가 징그러웠고 모욕적이었다. 마치 천한 여자로 취급하며 쳐다보는 듯한 기분에 나는 차갑게 반응했다.
“무슨 의미죠?”
“별 의미 아닙니다. 그저, 굉장히 관심이 간다고 말해 두고 싶습니다만…….”
손을 비비면서 말하는 모습에 나는 건조하게 웃었다.
“관심 두셔야 할 일이 따로 있으실 텐데요. 지금도 도심에는 괴생명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피해가 심각하고요.”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정말 골칫덩어리죠! 그 문제도 큰 문제이나, 저는 어디까지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분께서 당신이 여기 있다고 하자 무슨 말을 전하라 하셨거든요.”
“무슨 말을…….”
“아시다시피 치안이다 정무다 해서 바쁜데도 제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위대한 성기사의 말을 전하는 임무 말이죠!”
사설이 길다. 나는 잠시 도시 저편을 둘러보았다. 도시의 크기로 보건대 행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른 도시보다 길게 소요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빨리 돌고 빠져나갈까. 중앙 도로로만 행진하고 끝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찾을 거예요, 말레드레드.’”
나는 다시 영주를 돌아보았다. 영주의 목소리인데도 왠지 아론이 직접 귀에다가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반드시.’”
“…….”
“라고 말씀하셨죠! 정말 의미심장한 문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캬- 하면서 감탄하는 영주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내 몸은 떨리고 있었다. 아론이 말한 문장이 마치 쇠사슬이 되어 내 몸을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나는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레너드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 행진은 레너드가 맡아 줘요.”
“네?”
레너드는 무척이나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쉬어야겠어요…….”
“괜찮은 거예요?”
걱정스럽게 묻는 레너드에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저런. 그렇다면 방에서 쉬어요. 행진은 맡아서 할게요.”
레너드는 흔쾌히 받아 주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주가 내 곁에 바짝 다가왔다.
“이런, 속이 갑자기 안 좋다니. 괜찮습니까? 사제? 안색도 그러고 보니 좀 창백하시군요. 저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가시면 제 방에서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좀 누워 있으면…….”
나는 질색하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영주는 강경했다.
“잘 쉬어야 저를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말이 이상해 쳐다보자 영주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저의 도시를 말이죠! 하하하. 이 도시가 전부 제 소유이다 보니, 자꾸 저라고 지칭하고 마는군요!”
“…….”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는데, 뜻밖에 레너드가 영주를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니, 괜찮은데…….”
“말레드레드. 요새 얼굴이 계속 안 좋았잖아요. 영주님의 성이라면 좋은 치료사들과 사제들이 있을 테니까 그곳에서 진료 받으세요.”
“아, 그렇습니다! 제 성에는 능력 있는 치료사들이 가득 있지요!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창백해져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른 사제들도 내가 아프다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보았다. 더 고집을 부렸다간 이상하게 보일 것만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군요! 그럼 얼른 제 마차에 올라타시지요.”
영주가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보곤 들고 있는 다른 짐을 넘겼다. 영주는 잠깐 굳어졌지만 곧 태연하게 그 가방을 시종에게 넘기고 나를 따라서 마차에 올라탔다.
“여긴 걱정 말아요.”
레너드가 말했다. 덧창으로 보이는 청년의 얼굴은 그래도 씩씩했다.
“신께서 우리를 돌보실 겁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의 의연한 얼굴을 바라봤을 뿐이다.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빠르게 대로를 달렸다. 영주는 나를 보며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모른 척하기엔 시선이 무척이나 음흉했고, 거북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모른 척하자 결국 영주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소문엔 사생아라는 말이 있던데요.”
“…….”
“사실인가 보죠? 아니라고 말을 안 하시는 걸 보니.”
영주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천한 출신으로 귀족 세계는 살아남기 만만한 것이 아니죠. 황홀한 외모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창녀굴에서 몸을 팔다가 정신까지 이상해져 버리는 여인네들이 한둘이 아닌 걸 보면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시죠?”
“아, 아, 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어떤 걸 원하는지 묻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 외모를 가지고 소환사로 일한다는 건 정말 신실함이 압도적으로 높다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거나 한 것이니까요.”
영주는 나를 은근히 보았다. 다리에서부터 허리를 지나, 가슴으로 올라오는 시선에는 알 수 없는 성욕이 그득했다.
“하지만 당신은 전자처럼 보이지 않거든요. 이래 봬도 제가 사람을 잘 읽어서 말입니다.”
“상인 도시의 영주라서요?”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감춰진 속내와 바람을 파악하는 게 제 일이자 습관이었습니다. 상인들은 이미 제 속내를 감추는 데 일인자들이지요. 그런 자들만 오래 상대하다 보면 첫눈에 통달하게 되는 능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어요.”
영주는 드디어 씨익 본성을 드러낸 자처럼 웃었다.
“당신도 감춘 것이 있다고요. 아주 은밀하고 유혹적인 것으로.”
나는 영주를 분명히 보았다. 그는 얼른 나의 내면을 꺼내 놓으라고 무언의 독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을 때, 내가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내 내면을 꺼내 보이기란 죽기보다 싫다. 내가 감춰진 욕망을 드러내는 때는, 내가 원했을 때이고, 내가 원한 남자가 눈앞에 있을 때뿐이다.
아쉽게도 그는 그 두 경우 다 아니었다. 오히려 내 비위를 거북하게 했으면 했지. 나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아까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여쭤보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