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47화 (147/220)

147화

“흉흉한 일?”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요!”

움찔. 등 뒤가 뻣뻣해졌다. 주인장은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영주님께서 얼른 기사를 파견해서 쫓아내긴 했지만, 홀연히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그 뒤로도 이어졌답니다. 정말 두려워요……! 언제 어디서 나타나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농작물을 망가뜨릴지 몰라서요! 도시의 경계가 강화되고 기사들도 많아졌지만, 다들 공포에 질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답니다.”

“사제단이 도착하지 않았나요?”

혹시나 하는 내 질문에 주인장이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처 부대에서 오셨다면서 한 무리의 사제단이 다녀가셨어요! 그분들은 괴물들이 나타난 곳을 자세히 조사하고 축복까지 해 주셨지요. 하지만, 그 이후에도 괴물들이 출현해서 영주님께서 아주 곤란해하고 계셔요. 마물도 아니라서 딱히 사제를 파견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위에서도 도시의 치안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터라서요.”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 그녀를 보며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본대의 대장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조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괴생명체가 어디서 나와 자꾸만 사람들의 터전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고 초조함과 불안을 키우고 있었다.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도시를 직접 보니 말이다.

“진짜 좋지 않아요. 괴물들이 출현하고 나서는 손님들이 확 줄었어요. 상인들도 먼길을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고요. 습격도 잦다 보니…….”

주인장은 애써 웃으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신랑 신부님이 온전히 오셔서 너무 기쁘다고 할까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제가 행복해야 할 신부에게 너무 우중충한 이야기를 떠들었죠? 근데 신랑님은 언제 오실까요? 하늘이 어두워졌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는 내 반응에 주인장은 창밖을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많은 비가 올 거 같아요.”

어느새 그녀의 말대로 해가 사라지고 먹구름이 짙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불길한 심정을 반영한 것처럼 어둑해진 날씨를 보며 주인장이 화제를 바꾸듯 말했다.

“한동안 머무르실지도 모르니 요기할 만한 것을 만들어서 가져올게요.”

그녀는 여관 주인처럼 상냥하게 말하고 점원을 데리고 위층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예언처럼 곧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의 강도가 무척 거세서 나는 자연스레 아론이 떠올랐다.

‘위대한 성기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왜 이리 심장 한구석이 초조해지는지 걸까.

아론에 대한 감정은 늘 이렇듯 두 감정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걱정과 분노. 이것이 맞물려 있었다. 착한 그를 그렇게 변하게 했다는 죄책감과 멋대로 변해 버려 내게 강압적으로 구는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양극단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나가야 할까. 두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지칠 때 누군가 가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스으윽.

먼저 등골이 오싹해진다. 피부에는 위험한 기운을 감지한 것처럼 솜털이 쭈뼛 서면서, 손과 발을 타고 경직이 일어난다. 나는 간신히 뒤로 물러났다. 사내는 가게 안을 느릿한 눈길로 훑으며 여유 있게 나를 발견했고 자연스레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랑, 차랑. 그의 기운에 치이는 가게 안의 방울들이 때아니게 맑은소리로 울린다. 그의 어둡고 암담한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청량한 소리였다.

“이런 가게에는 무슨 볼일이지?”

그가 물었다. 아주 평범한 어조였다.

“누가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

고급 비단들 틈새에 선 이질적인 나를 알아본 느낌이다.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그를 마주하며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도망갈 곳은 없다. 마왕은 이미 그런 내 입장을 정확히 파악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마기가 은은하게 피어나며 우리 둘 주변으로 회오리바람 같은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인 듯하군.”

사내는 나른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그동안 성기사가 그대를 예뻐한 모양이야. 고운 얼굴이 상한 걸 보니.”

나는 내 얼굴을 적나라하게 훑는 시선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여, 여긴…….”

뒷말을 삼켰지만 마왕은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왔지.”

사내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내 뺨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곧 그의 손을 쳐내는 신성한 빛에 움찔 손을 거두었다. 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맺혔다.

“귀엽군. 얼마나 신성력을 쏟아냈는지 아주 앙칼지게 반응해.”

마왕은 내 가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신성력을 파악할 수 있다는 듯이 쏘아보는 눈은 강렬했다.

“정말 곤란하단 말이야. 그대를 소환하지 못하도록 만드니까. 결국 내가 올 수밖에 없지.”

그 말은 마왕이 내가 소환되지 않는 것을 못 참고 올라왔다는 건가? 힘들고 거센 차원의 저항을 감내하면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마왕이 살짝 웃어 왔다.

“이해가 되지 않는가? 나는 제안을 하러 왔어.”

“무슨 제안이요?”

나는 침착하게 물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심장 박동은 두려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쿵쿵쿵……. 설마 아론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자신을 만나러 오기 위해 아론을 죽이라고 한다든가…….

그러나 내 걱정과 달리 마왕은 밝게 말했다.

“그가 받아들이면 좋을 제안.”

“그요? 제가 아니라……?”

당황스럽다. 마왕은 나를 찾아온 게 아니란 말인가? 마왕은 내 반응에 당연하지 않냐며 대답했다.

“그대에게 제안을 해 봤자 어차피 그대는 이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늘 자신의 신분과 직업에 억압되어 있지. 그 굴레는 무엇보다 크다. 인간인 그대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한계이기도 하고.”

마왕의 손길이 내 뺨에 닿을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기가 일어나고 신성력이 맞서 일어나며 묘한 경계를 만드는 것을 즐기듯이 바라보면서.

“하지만 성기사는 달라. 녀석은 나처럼 무언가를 위해 제 종족도 서슴없이 저버릴 녀석이야.”

“아, 아론이?”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마왕은 ‘아론이라. 고지식한 성기사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하고 반응했다. 얼른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그의 이름을 흘려 버린 터였다. 하지만 그만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론이 마왕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제일 사악하고, 인간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하사하는 종족의 왕이 그런 소릴 하다니. 나는 기가 막혀서 그에게 따졌다.

“그는 훌륭한 성기사에요.”

내 반론에 마왕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조소에 가까웠다.

“그런가. 그래서 그에게 꼼짝 못 하는 것인가?”

마왕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가 훌륭한 기사라서 그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마땅히 이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가. 이런, 내가 그 성기사를 우습게 봤군. 그는 내 생각보다 더 영리하고 음험한 남자야. 그대를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게 서서히 옭아매고 있었다니.”

“으읏……!”

마왕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신성력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뺨을 꽉 잡아 끌어당겼다. 마기가 그를 방어하고 있었지만 인간계의 빛의 힘이란 그에게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잔뜩 미간이 일그러져 짙어진 눈으로 마왕은 내게 읊조렸다.

“정신 차려, 그대. 그는 욕심 많은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그저 그대를 갖고 싶어 하는 탐 많은 생명체일 뿐이지. 그대를 진정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대를 소유하고 싶은 거야. 남들에게 주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거지. 상대 마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그 이기심을 진정 훌륭하다고 칭할 것인가?”

“이, 이거 놔요!”

나는 울상을 지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빛이 마기에 시름시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마왕도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마왕은 그럼에도 나를 놓아줄 생각 따윈 없어 보였다.

“내 말이 틀린 거 같나? 그대 얼굴을 보면 이미 답을 알 수 있다. 고통스럽지 않나? 답답하지 않아? 그대를 억압하고 강요하며 자유의지에 반하는 것들을 요구할 텐데.”

“우읏…….”

“말해 봐. 행복한지. 그럼 그대도 분명하게 답을 알게 될 거야.”

“이, 이거 놔……!”

나는 잇새로 처절하게 외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그가 손을 거두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아, 하아…….”

“…….”

마왕은 거칠게 숨을 내뱉는 나를 고요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두려웠다. 내 앞에 마왕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순간 그가 던진 질문에 동요하고 만 나를. 그가 던진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만 나를 말이다.

호흡을 가라앉힌 나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참담하고 씁쓸한 기분이 가슴을 휑하게 쓸고 갔지만, 마왕이 이곳에 있는 것부터 일단 해결하고 봐야 했다.

“설령.”

침을 삼키며 나는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그가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그와 나의 문제예요. 당신이 관여할 이윤 없어요.”

“그렇지 않아. 내 쾌락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니까. 그대와 즐기면 그만인 내 생활에 아주 큰 훼방꾼이 되어 버린 남자니까.”

마왕은 그렇게 잘라 말하며 주위의 비단을 쓸었다. 그의 손길에 비단은 반짝 빛을 내는가 싶더니 금세 마기에 침식되어 검게 변해 갔다. 알록달록한 천들이 까맣게 변해 버리는 것은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악의 근원. 악 그 자체라고 칭해지는 그가, 지금 성기사의 모범이자 기둥인 아론나이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경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에게 제안을 할 생각이야. 내 탐욕에 지장이 없도록.”

“무슨…….”

그때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갑자기 굵어진 빗소리로 문이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온 자는 아론이었다. 온 몸이 젖어있는 남자. 뚝뚝. 금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닥에 첫 동심원을 그리던 순간, 아론은 마왕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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