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흐, 으읏…….”
마왕은 엉덩이 뼈에 닿을 만큼 세게 자신의 허리를 내리눌렀다.
“아……!”
목을 뒤로 젖히면서, 나는 몸을 조각내는 듯한 그의 삽입에 크게 신음을 터트렸다. 마왕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안쪽에 내 것을 뿌리면, 성기사의 아이가 임신될까, 내 아이가 임신될까.”
“……!”
“궁금하지 않나?”
“무, 무슨……!”
그의 잔인한 물음에 내가 기겁하자 마왕이 소리 내어 웃었다.
“농을 던져 본 거야. 그대가 질겁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즐겁군.”
마왕은 사악하게 말하고는 빠르게 내 안을 쑤셔 댔다.
“아, 흣, 읏!”
강렬한 쾌감이 머릿속에서 불꽃처럼 튀었다. 입안이 얼얼했고, 배 속이 아려 왔다. 마왕은 체액이 척척 하고 빠르게 튀는 소리를 감미롭다는 듯 들으면서 내 다리 하나를 어깨에 걸쳤다.
“읏……!”
종아리가 그의 단단한 어깨에 걸쳐지자 골반이 비스듬히 열리며 그 안으로 마왕의 성기가 더욱 강하게 찔러 들어왔다.
“아!”
“어때, 이런 것도 좋지? 색다를 테니까.”
마왕은 음란하게 속삭이며 내 도드라진 유두를 손으로 튕겼다.
“얼마나 빨았지? 아주 통통해져 있는데.”
아론이 물고 빨고, 한시도 가만 놔두질 않았다. 그 때문에 유두는 붉게 부어올라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마왕은 가소롭다는 듯이 조롱했다.
“아주 잡아먹으려고 애썼나 본데.”
마왕은 내 가슴 아래에 입술을 댔다.
“진짜 잡아먹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아……!”
마왕이 입술을 열어 내 살점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은 거대한 강물 표면에 떠다니는 것처럼 무기력했다. 나는 눈만 옆으로 굴렸다. 마왕이 보였다. 마왕은 거대한 거울을 열어서 수하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레나. 그대가 따로 하는 것은?”
-잘 되고 있습니다.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그녀가 일이 잘 진행되고 있어 몹시 흡족하다는 듯이 보고했다.
-인간들은 똑똑한 척해도 결국 어리석은 존재이니까요. 그들 안에 심은 어둠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멸을 자초할 겁니다.
섬뜩한 문장은 절로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나는 보고가 끝나고 마왕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왕의 기이한 눈빛이 와 닿았다.
“어쩐지 불만스러운 눈빛이군.”
쾌락에도 정도가 있다. 이건 사람을 완전히 말리는 수준이 아닌가.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별거 아닌 동작에도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허벅지 사이로 체액이 하얗게 밀려 나왔다. 그것을 얼빠진 얼굴로 보고 있으려니 마왕이 말했다.
“이제 돌아가 봐야 하하니 어서 정신 차리도록 해.”
기가 막혀 노려보자 마왕이 뻔뻔한 얼굴로 덧붙였다.
“왜? 부족한 거 같다면 더 해 볼까?”
나는 정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마왕은 짧게 웃었다.
“우리의 유희는 여전히 즐겁군.”
아무렇지 않게 원래대로 돌아간 그를 보면서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간 걸까.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과장된 연극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나는 불안하게 그를 쳐다만 봐야 했다. 마왕은 그런 나를 알 텐데도 모른 척 인사를 했다.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그의 마기가 나를 덮었다. ……안 돼. 이렇게 가면. 나는 재빨리 말하려고 했으나 이미 어둠 속에 휩싸인 터였다.
왜냐하면, 왜 안 되냐 하면은…….
“……말레드레드.”
침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한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에.
“어딜 갔다 온 거예요?”
아론, 그가 말이다.
“그런 모습으로.”
나는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뭐, 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직 아침 해가 밝지 않은 터라 방 안은 묽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지 몰라 긴장하며 침대의 천을 끌어당겼다. 몸을 가리려고 본능적으로 그런 것인데, 그러다가 정면에 있던 한 쌍의 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며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나, 난…….”
목소리가 떨렸다.
“…….”
“그, 그러니까…….”
입술이 마르고 눈앞이 돌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막상 이런 일이 닥치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문장과 문장이 엉키고, 입 안에서 단어와 단어가 뒤집힌다. 죄책감에 휩싸여 그를 보고 있자, 그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동작은 눈썹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보일 정도로 가슴이 떨렸다.
“자고 일어났더니 말레드레드가 없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던지. 밤새 찾으러 다녔어요.”
“…….”
“도시 전체를 뒤졌지만 없더군요. 그 어디에도.”
천천히 해가 뜨고 있었다. 창문에서 뻗어 오는 햇살에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아론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의 머릿결은 젖어 있었고, 얇은 윗옷도 살갗에 달라붙어 투명하게 빛났다. 밤새 찾아다녔다는 게 거짓이 아니란 듯이, 그의 장화 또한 질척한 진흙이 가득했다.
“그래서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어요. 혹시나 해서……. 너무 좋았던, 온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근데.”
“…….”
“마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희미하지만 강렬한 마기가.”
“……아, 아론.”
아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언제부터 마계에 드나든 거예요?”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두, 두 달 정도.”
“본인의 의지로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론은 멈칫했다가 파고들듯이 물었다.
“그럼 누가 소환했죠? 어떤 마족이?”
그는 분노한 상태였다.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마족이 아니다. 나를 소환한 이는 마왕이다. 그러나 밝힌들 달라질 게 있을까. 나는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그게…….”
“상관없어요. 누가 됐든 죽여 버리겠어요. 어떤 존재가 됐든 제 검으로 직접 처단하겠어요!”
아론의 외침에 방 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살기를 보건대 그게 거짓으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안다. 나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아론을 향한 미안함이기도 했고, 나를 위한 위로이기도 했다.
“아, 아론……. 이미 말했잖아. 난…… 너 말고도 다른 남자하고도 잔다고.”
아론이 어둡게 나를 쏘아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불붙은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
“설사 그 남자가 마족이라고 해도……, 그 남자가 소환을 빌미로 관계를 요구해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내가 말한 게 달라지는 건 아니야. 나는 이미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했어…….”
“가벼운 관계라고 했잖아요! 전 그게 진지하지 않은 관계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어요. 설마 다른 종족, 마족하고의 관계일 줄은 모르고……!”
아론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제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요? 말레드레드를 지킨다고 마족을 죽이러 전장을 뛰어다니는 제가.”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당황해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탓에 천이 떨어지면서 몸에 남은 흔적이 드러났다. 아론은 그걸 보고 상당히 놀란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난 흔적들, 마왕은 여린 피부를 깨물었고, 자신의 체액을 뿌렸다. 성감대인 입술과 가슴, 다리 사이를 지저분하게 덮고 있는 정액을 보면서 아론은 경직되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남긴 흔적이 아니었으니까.
“……아론.”
“…….”
“아론.”
나는 그의 이름을 애타게 연속해서 불렀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반응이, 그의 실망이 두려웠다. 언제나처럼 그가 나를 절대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론은 그러지 않았다.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을 뿐이다.
나는 서둘러 외쳤다.
“아론, 이건 널 모욕하려고 그런 게 아니야! 그저 내가, 그저 나란 사람이…….”
나는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것이 죄책감만은 아니었다. 그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깨달을 때 오는 씁쓸함이었다. 이중적인 나는 아론이 내 한쪽만을 바라봐 주길 바랐다. 인간계 사제로서의 말레드레드만.
마왕을 상대하며 즐거워하는 여자는 영원히 모르기를 바랐다. 내 치부와 속내를 모두 그에게 보인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 뿐이야……. 너하고 하는 것도 즐거웠고, 다른 사람하고 하는 것도 즐거웠어. 나는 그랬어……. 내가 사제라는 사실보다, 나라는 존재의 욕구를 채우는 게 훨씬 중요했으니까…….”
“……언제부터요?”
아론이 물어 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녀원을 들어가기 전날 깨달았어.”
“…….”
“네가 첫 상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앞으로도 마음껏 관계하고 질펀하게 놀고 싶으니까.”
“제가 부족해서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꼭 여러 사람하고 관계하고 싶다는 건 아니야. 그저, 마음껏 음란하게 굴고, 욕망하고 싶을 뿐…….”
내 말에 아론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잡아내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몸을 가린 천을 꼭 쥐면서 말했다.
“아론, 미안해. 네게 말했어야 했는데. 어,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용기가 나지 않았어…….”
사제이면서 마왕과 관계를 맺는다고 어찌 쉬이 고백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아론이 아니었다면 이를 밝혀야 한다고 절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론이었기 때문에, 다름 아닌 내게 늘 순정을 주었던 그이기에 나는 그를 기만할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뜨며 가라앉은 어조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말이야……. 사제들을 모욕하려는 것도, 음해하려는 것도 아니었어……. 그저 살아남고자 시작한 일인데, 해 보니 즐거워서…….”
“…….”
“하지만 사제 일을 하면 할수록 마계로 소환되는 게 껄끄러워졌어. 멈추려고 했지만 그건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강제로 부른다는 거죠? 그 마족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의 의미란 걸 알았는지 아론이 중얼거렸다.
“그럼 강한 마족이라는 거네요. ……아니지. 인간계에 있는 말레드레드를 소환할 정도면 그냥 ‘강한’ 정도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