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인간계로 향하는 마족에게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 할지, 인간 수뇌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마왕은 효과적인 파괴와 효율적인 공격을 중시하면서 싸우는 유형이었다. 대군을 상대할 때면 그들의 핵심 진영을 무너뜨려 사기와 의욕을 꺾게 하고, 거대 마물을 이용해 그들이 쳐 놓은 장벽을 망가뜨려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한 뒤, 기사들의 머리를 쳐서 그들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소환사보다 성기사에게 집중해. 그들을 말살해 버리면 우리의 승리는 분명해지니까.”
나는 마왕이 마지막 말을 하고 돌아서서 내게로 오는 것을 두려운 시선으로 보았다. 마왕은 내 두려움을 읽었을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리 와.”
방금까지 나의 세상을 무너뜨리라는 명령을 하고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나를 원했다. 나라는 존재와 신성국의 존재를 완전히 이분해서 보는 것처럼, 그는 욕망에 찬 붉은 눈으로 나를 꿰뚫어 보았다.
“늘 하던 것처럼, 내 아래에서 다리를 벌려.”
그가 얼마나 매혹적인 존재인지, 얼마나 육욕적인 매력을 강하게 풍기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의 그런 강한 남성적인 향기에 취하듯 옷깃을 벌리고 두 다리를 벌렸을 것이다. 허벅지를 열어젖혀 내 은밀한 곳을 마음껏 쑤셔 달라고 말이다.
“오늘은.”
그러나 그 대신 나는 옷깃을 꽉 잡으며 어두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좀 쉬고 싶어서요.”
“……쉬고 싶다고? 그대의 휴식은 내 것을 받아들이면서 이뤄지는 거로 알았는데.”
마왕은 음탕하게 나를 자극했다. 나는 동요하지 않고, 이게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하려고 애썼다.
“그냥, 피곤해서요. 훈련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제 기운을 사용해 나를 코앞으로 끌어다 놓은 상태였다.
“으읏…….”
“이런 민감해진 몸을 해 가지고 와서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마왕은 옷 위로 내 가슴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살살 비틀며 속삭였다.
“어떤 훈련이었지? 기사 아래에서 허리를 들썩이며 성기를 받아 내는 훈련이었나?”
“그, 그만…… 흣…….”
어느새 그의 손이 옷깃을 파고들어 와 내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 거친 자극에 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을 때, 마왕의 다리 하나가 내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 왔다.
“이 아래가 얼마나 젖었을지 궁금해지는군. 내가 샅샅이 살펴볼…….”
“마왕이시여.”
그때 방 밖에서 소리가 울렸다. 내게 한눈을 팔고 있던 마왕은 그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잠깐 멈칫했다.
“무슨 일이지, 에레나.”
마왕은 불쾌한 듯 곧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방해를 받은 것이 썩 달갑지 않다는 기색이었다. 그걸 읽었는지는 몰라도,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매우 정중했고 예의 발랐다.
“쉬고 계신 공간까지 찾아오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렉토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이라면 나도 보고받고 있어. 그대가 일일이 시끄러운 새처럼 소식을 물고 오지 않아도 말이야.”
마왕은 여전히 불쾌하단 음색으로 대꾸했다. 에레나라는 여자 마족은 그 반응을 읽었는지 침울한 어조로, 그러나 특유의 나긋한 음색을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왕께서 저희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계심을요. 허나, 워낙 그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보니 제 영역까지 그 영향을 받는지라…….”
에레나는 고민을 많이 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왕께서 사태를 진정시켜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에레나, 차기 마왕 후보인 자네가 진정시킬 수 없는 사태라서 나를 찾아온 건가.”
마왕은 이제 그녀와의 대화가 익숙해졌는지 슬슬 손을 다시 움직였다. 나는 그의 손이 가슴 아래로 쑥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손길은 뜨거웠고, 적나라했다. 그는 곧이어 내 음부의 가장 민감한 곳을 자극하며 나를 들쑤셨다.
“……읍!”
나는 얼른 입가를 틀어막았으나 신음이 나오는 것을 완벽하게 참아낼 수는 없었다. 마왕은 그런 나를 가느다란 눈초리로 내려다보면서 손가락으로 내 민감한 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곧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창백해진 채로, 그의 손길에 허리를 바르르 떨어야만 했다.
“아니면, 내 휴식을 방해하러 성에 찾아온 건가.”
“그게 무슨……. 당연히 전자입니다, 왕이시여.”
에레나는 당혹해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제가 어찌 왕의 안식을 방해하려 들겠습니까. 왕께서 쉬고 계신 걸 아는데도 굳이 찾아온 건 렉토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하여…….”
“어쭙잖은 변명하지 말게. 그대는 사악한 성향인 우리 중에서도 가장 냉담하고 잔인한 성정이니까. 같은 고위 마족을 걱정하는 일이란 건 그대에게 없는 일이야. 그저 관심과 흥미, 그리고 목적성. 그것만이 자네를 움직이는 힘이니까.”
에레나는 말이 없었다. 정곡을 찌른 것인지, 아니면 그의 평가가 부당하다고 느낀 것인지 내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이런 순간에도 나는 내 몸을 자극하고 있는 마왕이 허술한 왕이 아니며, 자신의 유희를 방해받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그대라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
나는 흠칫했다. 그 말인즉 에레나라는 마족이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인가? 내가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을 때, 마왕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검은 드레스를 맵시 있게 입은 여인이 보였다.
에레나. 그녀는 고귀함을 상징하는 흰 피부와 끔찍한 마족임을 상징하는 검은 머리가 대조적으로 빛나는 압도적인 미녀였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미녀였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빛나고 있어서 보는 순간 등줄기가 쭈뼛해지며 소름이 돋게 했다.
내가 굳어진 것과 달리 마왕은 그녀를 보면서 입가를 올렸다.
“아까 내 안식을 방해할 이유가 없다고 했나?”
“…….”
“이게 내 안식을 방해한 이유겠지. 내가 사제를 마계로 소환시키는 걸 그대가 모르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감히 묻습니다. 제가 알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아셨는지요?”
에레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녀는 차분했고 우아했지만, 한편으론 독기를 품은 것처럼 마왕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왕을 싫어해서라기보다 마왕이 너무 좋은데 자신의 맘을 몰라 줘서 화가 난다는 듯이, 그녀는 기이하게 일렁이는 눈빛으로 마왕을 쏘아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 숨이 막혀 왔다. 그녀가 내뿜는 기운이 잔혹하리만큼 내 살갗을 찌르는 것도 한몫했다.
‘읏, 아파…….’
마기란 인간들을 부패시키는 경향이 있다. 여태 마왕의 힘이 나를 상하게 했던 적이 없어서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녀를 마주하자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괴롭다고 느꼈을 때, 마왕에게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나를 보호하듯 감쌌고, 여인의 기운을 튕겨 냈다. 여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을 때 마왕이 말했다.
“그대는 마기를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내 힘이 약해진 원인, 급격하게 마기가 줄어드는 원인이 무엇일지 렉토나 세가처럼 조사하고 다녔을 테니까. 겉으로 표현은 안 했어도 호기심이 일었을 것을 내가 모르지 않지.”
마왕은 자신의 수하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술술 말했다.
“그 때문에 렉토의 상태도 민감하게 확인한 것이고, 내 성에도 들러서 마기의 흐름을 관찰한 것이겠지. 나는 그대가 어디로 이동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대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어.”
마왕의 말에 에레나는 두 손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존경하는 왕이시여.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렉토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그의 머리를 휘저었던 것이 다른 기운이 아닌 우리의 마기란 걸 첫눈에 알아차렸습니다. 그의 몸에 남아 있던 고귀한 당신의 기운을 느꼈거든요.”
에레나는 이제 애처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용서해 달라는 듯이 사랑스럽고 요염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그러면서 마왕에게 가까워지고자 발을 떼었다. 그러나 문턱에 다다르자 검은 기운이 거세게 몰아쳐 그녀를 밀어냈고, 에레나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아니, 이게 무슨…….”
“누가 그대에게 방에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했지?”
“와, 왕이시여.”
에레나는 당황해서 마왕을 바라보았다.
“에레나, 그대가 착각한 것 같은데.”
마왕의 눈은 살벌했다. 초월자의 잔인함과 냉정함을 머금은 것처럼.
“그대는 아직 후보일 뿐, 마왕이 아니야. 명심하도록 해.”
“……부디, 제 맘을 알아주십시오.”
에레나는 간절해 보이는 얼굴로 하염없이 마음을 표현했다.
“호기심이 들어서 조사하던 것은 맞으나, 그 이면에는 왕께서 약해지고 계신다는 사실이 있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던 것도 있습니다!”
“여전히 제 자신을 위한 허술한 변명만 늘어놓는군. 그대는 나를 걱정해서 조사하고 다닌 게 아니야. 내가 그대에게 관심을 쏟지 않아서 이러고 다니는 것이지.”
움찔한 에레나를 보면서, 마왕은 더욱 강하고 자극적으로 내 아래를 휘저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신음을 적당히 참아낼 수 없었다. 그의 음탕한 손길이, 내 공포와 이성을 흐트러뜨리며 야릇한 탄성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아……!”
나는 그의 가슴팍에 갇힌 채로 커다란 신음을 내질렀다. 그가 줄기차게 자극하던 곳에서 애액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민망할 정도로 흥분한 스스로가 느껴지자 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마왕은 그런 내 얼굴을 비틀어서 마족이 보고 있는데도 굳이 입을 맞췄다. 간단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입술을 빨아, 혀를 삼키듯 거칠고 음탕한 키스였다.
“똑바로 보도록 해, 에레나.”
마왕은 흠칫 놀란 마족 여인을 보며 음산하게 경고했다.
“이게 내가 약해진 원인이자, 내 관심의 전부니까.”
“…….”
“설사 내 존재가 흐릿해진대도 나는 이 기막힌 유희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만일 내 앞을 막는 마왕 후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