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74화 (74/220)

74.

그녀는 아론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기사단장께서 찾고 계셔서요. 그런데…….”

그녀는 그제야 나를 보았다는 듯이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

“두 분께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군요.”

순진한 듯 커다래진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렇다면 제가 가서 기다려달라고 말을 전하고 올게요.”

나는 그녀가 우리를 배려해 주겠다는 듯이 말하는 게 조금 재미있었다. 내가 아론과 말을 나누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인데도 저렇게 말해 주겠다는 절제력 있는 태도라니.

나는 천천히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대화가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어요.”

나는 다시 아론을 상냥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다친 걸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잘 회복해서 작전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론은 당황하지 않고 내 말에 호응해 왔다. 아론이 먼저 뒷문을 통해 치료소로 들어가자 여인은 표정을 싹 바꿔서 나를 바라보았다. 차갑고 경계 서린 눈동자로, 순진한 여자 따윈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노려보면서.

“아론나이드와 정말 무슨 관계에요?”

“제가 아론나이드를 좋아하죠.”

“흠…….”

여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그게 다예요? 아론나이드를 좋아하는 여자는 많이 봤는데, 그 아론나이드가 챙기는 여자는 별로 보지 못해서요.”

여인은 나를 파헤치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론나이드가 그쪽과 관련이 없는 거 맞아요?”

“관련이 없진 않죠.”

내 말에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듯한 눈길에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매일 같이 협동해서 훈련하고 얼굴을 맞대니까. 저희는 늘 함께하는 사제인걸요.”

“아아.”

여인은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반응했다. 동료라서 함께한다는 내 말이 가당찮기라도 하다는 듯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나를 본 여인은 차갑고 이지적인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아론나이드가 성기사가 된 날부터 지켜봐 왔어요. 그가 황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호기심 있게 지켜봤죠. 가까워진 건 최근이지만 지켜본 건 오래되었어요.”

여인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래서 그가 어떤 남자인지, 어떤 성품인지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해요. 여자에게는 꽤 무심한 분이라고 판단했었는데.”

여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질투와 질시가 서린, 나에 대한 반감이었다.

“그쪽을 벌써 두 번이나 직접 챙기셔서요. 아론나이드가 그렇게 나온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보니 이상하게 관심이 간다고 할까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아론나이드가 정말 제게 마음이 있는 걸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연하게 반응했다. 여인의 눈빛이 더욱 첨예해졌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멈췄겠지만, 아까 아론의 옆에서 살랑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왠지 심술이 나서 나는 한술 더 뜨고 말았다.

“아론나이드가 절 좋아한다면 무척 기쁠 것 같아요. 저도 그분을 참 좋아하니까.”

그러면서 해맑게 웃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은 찬물을 뒤집어쓴 이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의 천진한 반응도, 대사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인은 잠깐 분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가 이내 가시가 돋친 눈빛으로 말했다.

“아론나이드는 언젠가 수도로 돌아가야 해요. 자신의 혈관에 흐르는 고귀한 피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요.”

나는 그녀가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경고하듯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런 작은 본대에, 소환사 한 명에게 얽매일 수 없다는 의미에요.”

“충고는 고마운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당신이 그런 말을 하죠? 당신 또한 아론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인데.”

“……!”

여인은 내가 무심하게 던진 대꾸에 멈칫하고 말았다. 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아론나이드의 마음이 중요한 거잖아요?”

“…….”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고 한다 하더라도요. 결국 본인의 결정이 중요한 거니까.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선 관여할 수 없을 거예요.”

나는 어느새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 역시도 아무리 주위에서 뭐라고 한들 내 소신껏 일을 하고 육체관계를 지속하고 있지 않은가. 남들이 모두 안 된다고 할 것도 내가 하겠다면 하고 말 것이고, 남들이 틀렸다고 하는 것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해 버릴 것이다.

나조차도 이런데. 문득 나는 아론에게 날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고, 애틋한 감정을 품은 채로 내게 더 깊은 관계를 원해서는 안 된다고 타박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생각하면 그건 그의 결정이고 마음이었는데.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런 것을 지적해 고치려고 했던 모습들이 조금 오만하고도 어리석게 다가왔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걸 고쳐서라도 그와 계속 만나고 싶어 했다는 건가?’

나는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깊이 아론에게 빠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눈앞의 여인이 아론에게 살랑거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맞받아치고 있는 걸 보면 분명하게.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인은 내 대꾸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은 채로 비웃듯이 입가를 올렸다.

“제가 당신하고 입장이 똑같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여인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아론나이드의 옆에 설 수 있을 만큼 좋은 가문 출신이에요.”

어느새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인 그녀는, 내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방 가문에 사생아인 소환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훌륭한 핏줄이라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은 채로 쳐다보자 어느새 우아한 듯 어여쁘게 웃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싸하게 나를 쳐다보고는 승리했다는 듯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그 문을 환한 달이 와서 비춘다.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까 아론을 비췄을 때보다 훨씬 창백하게 느껴지는 빛의 반사를 보면서 조금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여인이 나를 신분으로 내리누르는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신분이야 어차피 정해진 것이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인데 새삼스럽게 놀랄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다만 그녀의 말이 내가 사생아로서만 규정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다.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사생아인 말레드레드는 그 가문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끝내 쫓겨나듯 수녀원으로 가야만 했다.

‘결국 울면서 남자들에게 다리를 벌리겠지.’

나는 기억 속의 문장이 들려오자 지겹다는 듯이 잠깐 인상을 찡그렸다. 어느새 내 손은 내 얼굴을 더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울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안도하며 치료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아론은 그날 밤, 내 숙소로 찾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이야기를 들으니 기사단장과 함께 밤새 수도에서 온 지시에 관해 논의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날 밤 마왕에게 불려간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일 수밖에 없다.

“아, 아……!”

“더 소리를 내 봐, 말레드레드.”

마왕의 음험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커다란 성기처럼 내 안을 쑤셔서 망가뜨려 버리겠다는 듯이 파괴적이었다.

“흣, 아읏……!”

“아직 부족해. 이 안이 더 강하게 자극되길 원한다면, 더 음탕하게 소리를 질러야지.”

“아……!”

목이 터져라 신음하고 있었지만 마왕에겐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그는 나를 뒤에서 껴안은 채로 굵은 성기를 내 좁은 입구에 쑤셔 넣고 있었다. 그의 고환이 느껴질 만큼 뿌리째 박아 넣고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마왕은 내 다리를 더욱 활짝 벌렸다.

“흣!”

그 탓에 내 허벅지가 절로 당겨졌고, 음부가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마왕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내 통통한 귓불을 빨기 시작했다.

야하고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정념들. 통제할 수 없는 감각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나는 신음을 절제 없이 쏟아 냈다. 온몸을 풀썩거리고 손발을 파닥거렸다. 쾌감과 어우러진 욕망은 하얀 빛이기도 하고 검은 빛이기도 했다.

마왕은 그렇게 온몸으로 신음을 내지르듯 반응하는 나를 보면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 제법 그럴싸한 반응인데.”

“아…….”

한차례 절정을 맞이하고 축 처져 있는 나를 향해 마왕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안은 분명 멀쩡해. 입 안도 그렇겠지?”

“무슨…….”

나는 지쳤던 탓에 반쯤 감겼던 눈을 떠 마왕을 흘겨봤다. 마왕은 어느새 제 성기를 빼내서 나를 그대로 침대에 눕힌 터였다.

하얀 정액이 음부에서 흘러나와 침대를 적시고 있었지만 나도 그렇고 마왕도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음액이 더 야하고 음란하게 흘러나오지 않아서 아쉽다는 듯이 마왕은 내 안에 벌써 두 번째 사정을 한 터였다.

나는 마왕이 내 머리 위쪽에 서는 걸 보았다. 마왕은 자신의 키스로 빨갛게 달아오른 입술을 노골적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대로 내 것을 물 수 있다는 걸 아나?”

“……뭐?”

나는 당황했다. 마왕은 내 당황한 얼굴을 보면서도 그대로 내 목을 침대 끝에 걸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목이 뒤로 젖혀지자, 그의 커다랗고 흉기 같은 성기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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