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65화 (65/220)

65.

아론은 싱긋 웃으며 말하고 나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를 따라가면서도 의아하다는 듯이 묻고 말았다.

“카란은 어디 있는 거야?”

“그는 사제들을 데리고 건건 풀을 캐고 있습니다.”

“건건 풀? 그건…….”

나는 멈칫하며 말했다.

“벽돌을 쌓아 올릴 때 쓰는 거 아니야? 보통은 그 질긴 잎을 끓여서 액체 형태로 쓰잖아.”

“맞습니다.”

아론은 내가 특수한 풀을 알고 있자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이유를 말했다.

“수녀원에 있을 때 알게 됐어. 돌담을 보수할 때 필요한 풀을 우리보고 캐라고 했었거든.”

“그랬군요.”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수녀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물었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내 우울과 침체를 자아냈던 공간에 대해 굳이 내 입으로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

아론은 그 마음을 아는 것처럼 건건 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 풀은 원래 저도 알지 못했습니다. 홀로 섬에 떨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눈에 들어왔지요. 섬에는 마물이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 주변에 건건 풀이 많았거든요.”

아론의 목소리는 어딘가 가라앉아 있었다. 한참을 내 쾌락과 신음을 자아내며 색스러움에 최고치를 찍었던 사내는 이제 금욕적인 씁쓸함을 몸에 휘감고서 차분하게 경험을 나열하고 있었다.

“다른 마물들과 달리 그곳에서 출몰하는 마물은 속도가 느리고 마기를 잘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건건 풀이 짓이겨져서 몸에 붙어 있으면 움직임이 둔화된다는 걸 한참 마물에게 당한 후에야 알아차렸고요.”

그때를 떠올린 듯 아론의 눈빛이 일렁였다.

외딴 섬에서, 고독하게 산발하는 마물과 싸운다. 그의 주위에는 안아 줄 가족도, 도와줄 친구도 없다. 오직 혼자 싸우고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의 연속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당시 소년에 불과했던 아론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험난했을지에 대해서, 나는 잠깐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론의 눈빛 속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읽고 나면, 가슴이 착잡해지면서도 알 수 없는 동질감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림자로 표현되는 아론의 슬픔과 고독, 고통의 감정들. 이는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었다. 형태나 강도는 다를지라도 나 또한 그런 느낌을 받아 봤기 때문에 아론에게 더욱 친근감을 느꼈고,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아론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신성력을 발휘하기 전이라 마물을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방법에 몰두했었는데, 그렇게 가까운 곳에 해답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약간 누그러져 뭉클해진 목소리로 반응했다.

“건건 풀이 마물을 잡는 데 효과가 있다는 걸?”

“네.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닫자 건건 풀을 엮어서 다른 마물에게도 사용해 보았습니다. 그물처럼 만들어 마물을 감싸자 확실히 움직임이 둔화되고 마기가 약해지더군요.”

“아주 유용한 정보인데?”

내 놀란 목소리에 아론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물의 수가 많아지면 소용이 없어집니다. 마물이 떼로 몰려와서 다른 풀과 함께 건건 풀을 깔아뭉개 버리니까요. 힘을 저지하는 효과가 매우 미미해지지요. 물론 마물을 단독으로 잡을 때는 건건 풀이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아론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건건 풀이 이 대륙에는 흔하지 않다는 겁니다. 따로 길러서 재배하는 방식도 까다로워서 차라리 방어구를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상부에서 그러더군요.”

아론은 이미 섬에서 나왔을 때 건건 풀을 상용화하는 걸 제안해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흔하지 않은 풀, 따로 재배도 어려운 풀은, 그것을 길러서 마물에게 사용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보다, 그냥 무기나 갑옷을 더 만들어서 마물을 상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안겨 준 모양이었다.

나는 아쉽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런 건건 풀을 채취하는 거야?”

아론이 대답했다. 눈빛에는 신중함과 예리함이 담겨 있었다.

“마물에게 통한다면 마족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긴, 그럴 가능성이 있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기쁘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아론은 미소 지으면서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시도해 본 건 아닙니다. 마족에게 사용해 봐야 아는 거니까요.”

“그래도 혹시 몰라 준비하려는 거구나. 마족과의 싸움에 대비해서, 철저하게.”

아론은 가만히 시선을 내게 주었다. 침착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빛나는 눈이 정말 아름다웠다.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모조리 내어 주고 의지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의 다소곳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강한 마족이니까요. 그녀를 상대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정말 안심이 돼.”

진심이었다. 내가 가졌던 불안을 이렇게나마 선견지명으로 가볍게 해결해 버리는 사내에게 나는 무장 해제되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마워, 아론.”

“당연한 일인데요.”

아론은 다정하게 말했다. 눈부시고 찬란한 것만 골라 모은 듯한 남자는 속눈썹도 길고 어여뻤다. 한 번씩 아래로 감겨들 때마다 꽃과 보석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나는 그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론은 내가 저를 넋 놓고 쳐다보자 멈칫하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당연한 일인데, 말레드레드가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손길은 아주 귀한 것을 매만지는 것처럼 가만가만 섬세했다. 툭 건드리면 터질 듯한 꽃망울처럼 나를 다루는 사내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귓가의 머리를 정리해 주는 그의 손길이, 새벽바람에 차가워진 그의 체온이, 달콤하고 청량해 가만히 즐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더한 인사까지 받고 싶어집니다. 말레드레드의 예쁜 입술로요.”

왠지 표현이 야했다. 나는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말았다. 붉어진 내 얼굴을 보는 그의 얼굴이 찬찬히 가까워졌고, 나는 어느새 아론에 붙잡혀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으음, 아음…….”

이른 아침의 숲속. 그러나 본대와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오솔길에서 아론과 입술을 부비고 몸을 맞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성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어느새 목덜미에 달라붙어 여린 살을 빨아들이자, 그곳에서부터 쾌감이 번져 배 속까지 퍼져 나간다. 머릿속이 혼미해졌고 숨결이 가빠졌다. 나는 할딱거리며 아론의 뺨을 부여잡았다.

“아, 아론…….”

그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짙어져 있었다. 정념이 일렁이는 황금색 눈동자는 너무나 강렬해서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맹수의 것처럼도 보였다. 나는 긴장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우리…….”

투명한 액으로 매끈거리는 입술. 두 눈에 들어찬 농밀함. 내 허리와 등을 감싼 그의 단단한 팔이 그가 얼마나 정열에 휩싸일 수 있는지 말해 주는 듯하다. 나는 녹아내리는 이성을 부여잡으며 한 자 한 자 말했다.

“흣, 다, 다음에, 아읏, 이어서 하자.”

“……그래야죠.”

아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내 입술로 달려들었다.

“음……!”

통통한 입술을 빨아들이는 그의 흡입력이 날로 거세어진다. 잡아먹을 듯 내 입술을 섭취한 그가 곧 혀를 뻗어 내 입 안의 모든 구조를 나른하고 섬세하게 확인하고 힘겹게 빠져나갔다. 나는 시야가 어릿거리는 걸 느꼈다. 그렇게 흔들거리는 나를 아론은 놓치지 않고 코며 인중이며 턱이며, 이곳저곳에 솜털 같은 키스를 하며 더욱 뒤흔들어 놨다.

“아, 아음…… 이, 이건 말과 행동이 다른, 읏…….”

“아는데, 마음대로 안 되네요.”

아론은 짙어진 목소리로 감정을 토해 냈다. 어느새 그의 뜨거운 동작에 상의가 벌어져 있었다. 가슴 방어구는 한쪽 어깨에만 걸쳐져 아래로 대롱대롱 매달렸고, 속옷에 단단하게 숨겨진 가슴은 아론의 손가락에 힘없이 풀어져 봉긋한 살을 내놓았다.

아론은 그 연분홍의 살결에 얼굴을 묻었다.

“아! 다른 사람이 오면 어쩌려고, 으읏……!”

“그래서 한적한 길을 골라 왔습니다.”

아론은 철두철미하게 정직한 사내였다. 자신을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며 행동을 고지식하게 실천할 줄 알았으니까.

“아무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읏, 으응…….”

“말레드레의 살결 하나 표정 하나, 절대 남들에게 내보일 수 없습니다.”

나는 아론이 지나치게 금욕적인 것인지 아니면 미치도록 탐욕적인 것인지 헷갈렸다. 욕구나 욕망을 절제해서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을 기막히게 잘 조절하는 한편, 나에게는 제 욕망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얼마나 농밀한지 시시각각 말해 온다. 마치 무차별적인 공격처럼 나를 공략해 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입술에 빨려 들어간 유두에서 쾌락의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신음하고 말았다. 다리가 부르르 떨렸고 배 속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간질거렸다.

가슴을 둥글게 매만지며 빨고 핥는 동작이 음탕하게 이어지자 나는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아찔한 탄성을 깊게 내지르고 말았다.

“아―!”

“젖었군요.”

아론은 빠르게 내 상태를 알아차렸다.

싸우기 좋게 챙겨 입은 바지를 내리자 레이스 달린 드로어즈가 드러난다. 하얀 속옷이 벌써 흠뻑 젖어 버렸다는 건 욕망에 적극적인 나로서도 민망한 일이었다.

‘장소 때문인가. 쉽게 흥분해 버린 것은.’

얼굴이 다시 뜨거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아론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장소가 좋지 않으니.”

아론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푸르른 욕망이 있었다. 누구보다 선명하고, 진해서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울렁이고 마는.

“말레드레드만을 애무하고 싶은데요.”

“하지만…….”

나는 아론의 불룩 솟은 바지를 보았다. 어느덧 팽팽하게 부푼 그의 성기가 보란 듯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게 신경 쓰였다.

아론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말레드레드가 기분 좋은 게 더 중요하니까요.”

“……아론.”

그의 다정하고도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말은 내 부끄러움과 체면을 가라앉히고 억압된 욕망에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가게 해 준다. 나는 그에게 몸과 마음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내 모든 것을…….

아론은 강렬하게 나를 쏘아보았다.

“허락해 주세요, 아랫입술을 애무할 수 있도록.”

어쩔 수 없다. 나는 본디 쾌락에 약했는데, 그가 직선으로 공격해 오며 나를 유혹해 오지 않는가. 세상 달콤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뒤도 보지 않고 달려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슥.

드로어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론의 입술이 내 은밀한 입구에 느껴지는 순간,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아……!”

나의 옅은 신음은 깊은 숲길 사이로 점점이 아련하게 흩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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