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아니나 다를까. 마왕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불러냈다. 바닥에 끌리는 비단옷을 입은 채로 나를 쳐다보는 사내는 유혹적인 색기가 풍부하게 흐른다.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가 손을 내미는 대로 안겨들었는데, 순간적으로 아론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에게 안기려는 동작이 망설여지고 말았다.
“왜 그러지?”
마왕은 내 옷을 벗기면서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를 내려다본 사내는 내 드러난 허리를 은근한 손길로 만지며 말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가. 나를 두고서?”
“아니에요, 흣, 전 그냥…….”
나는 내 가슴을 원을 그리듯 만져 대는 남자의 손길에서 야릇한 쾌감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저번 전투를 생각하느라고…… 흐읏…….”
“저번 전투?”
“아, 그러니까…… 읏, 힘겹게 싸웠던 걸……. 아읏.”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마왕의 손이 내 유두를 건드리고 있었다. 유륜을 매만지면서 유두를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오늘 내내 자극되었던 가슴이 금방 반응을 보내왔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신음을 토해 내자 마왕은 그런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론이 몇 시간 동안 가슴을 물고 빨았던 터라 봉긋한 살은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었다.
“변명이 그럴싸한데 말이야. 이렇게 음탕해져서 와 놓고는 그런 말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군.”
“아, 으으읏…….”
마왕은 내 몸을 샅샅이 훑었다. 조소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얼마나 했지, 그 성기사와?”
“으으읏, 흣…….”
나는 도리질 치며 거부했다. 마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내 음부에 바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소환사와 성기사. 늘 들어도 그럴싸한 커플이란 말이야.”
“우, 으으…….”
안을 쿡 찌르는 손길이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마왕은 부어 있는 음부와 예민해진 질벽을 손가락으로 쓸어 확인하고 이내 뺐다.
“그 기사는 그대가 이렇다는 걸 모를 텐데.”
“그, 그만…….”
“그 인지가 그대에겐 더욱 짜릿하게 다가오겠지?”
“아흣, 읏, 으…….”
“죄책감과 쾌감이 동시에 솟구칠 테니까.”
마왕은 날카롭게 나를 꿰뚫고 있는 질문을 하면서 그대로 나를 바닥에 눕혔다. 침대에서 행위를 이어 갈 줄 알았던 나는 차가운 돌바닥의 감촉이 느껴지자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마왕은 그 상태에서 내 한쪽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만들었다. 그러자 적나라하게 다리가 벌어지며 젖어 있는 음부가 드러났다. 마왕은 그곳을 손으로 비비듯이 매만졌다.
“벌써 움찔거리고 있군. 부어오른 채 말이야.”
“아, 아읏…….”
“오랫동안 한 것 같은데. 이 안도 엉망으로 젖어 있고.”
분명 씻었으나 마왕은 단순히 겉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론의 정액이 한참이나 담겼던 내 안을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마왕은 수치심으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나를 평소보다 어두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단단하게 발기한 자신의 것을 밀어붙였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성기가 내 안으로 파도처럼 밀려오자 나는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동시에 어금니까지 물어졌다.
‘담담하게.’
받아들여야지, 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그의 육중한 성기는 나를 반으로 쪼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칼로 저며진 조개처럼 입을 벌렸고, 결국 온몸을 비틀며 신음하고 말았다.
“아……!”
선연한 고통에 크게 신음하자 마왕이 멈칫했다. 그의 눈빛은 변함없이 차가웠으나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마왕이 천천히 머리를 내려 내 유두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읏, 흐으응…….”
뜨거운 혀로 유두를 휘어 감기 시작한다. 그러자 나를 찔러 왔던 모든 고통이 둥글게 마모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바짝 섰던 긴장은 와해되듯이 풀어지고 나는 전신에 돌고 있는 달콤한 유쾌함을 느꼈다. 그렇게 내가 힘을 풀자 마왕은 은근슬쩍 몸을 전진시켰다.
“흐읏, 아!”
쾌감과 은근한 고통이 합쳐지자 그 나름대로의 야릇한 만족감을 자아냈다. 나는 어느새 그의 것을 모두 머금고 있었다. 마왕은 그 상태로 나를 몰아치듯 쑤셔 왔다.
“흣……! 아읏……!”
강렬한 충격의 연쇄가 나를 덮쳐 온다. 내 껍데기를 깨부수며 그 안의 욕망을 드러나게 한다. 나는 기뻐서 환호했고 열락에 사무쳐 울부짖었다. 쾌감과 욕망이 내 전부란 듯이 외치면서.
“아…….”
맹렬하게 달렸던 감각은 금세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와 내 안을 채우는 무언가. 그 다른 체액들은 서로 섞여 내 다리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왕 역시 사정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한숨을 내쉬는데, 그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확실히 다른 때보다 체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
그 또한 아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늘 오전과 오후 내내 아론에게 시달렸다. 비키가 오기 전에 아론이 가서 다행이었지만, 비키 역시 내 얼굴을 보면서 아까보다 수척해 보인다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을 정도로 나는 아론과 정열적으로 교합했던 상태였다.
전투보다 힘든 성교라니. 내 온몸의 기력을 쏙 빼놓은 진득한 성교는 아론이 나를 가지는 방법이자 마음의 표현이었다. 나는 아론의 진심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절정을 몇 번이고 맞이했으니, 지금 마왕과의 성교에서 그를 떠올리고 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나는 말없이 마왕을 쳐다보았다. 내 해쓱한 얼굴을 보면서 마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대가 사제란 게 싫다는 말을 했었지.”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마왕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성기사와 관계를 맺는 것도 그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아.”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나는 결국 묻고야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거론한 이가 아론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성교할 때 아론이란 주제가 나올 때마다 흠칫하고 만다. 마왕이 강력한 초월자여서, 그가 아론을 적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해 혹시라도 움직이게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상상하기도 끔찍한 미래. 마왕의 손에 아론의 머리가 잡혀 있는 상상을 하자 나는 목 뒤가 서늘해졌다. 피를 흘리는 아론, 죽어 가는 아론. 그 모습을 떠올리고 말자 손발이 떨려 온다. 재빨리 몸에 힘을 주어 감추려 했지만 마왕은 내 동요를 눈치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야 그대가 이렇게 반응하니까.”
나는 흠칫했다.
“질펀하게 쾌감을 느끼던 그대가 성기사라는 말에 꼬박꼬박 겁먹어 오는 게 무척 재미있단 말이야.”
그러나 재미있다는 표현과 달리 마왕은 눈빛은 차가웠다. 그 사실이 영 맘에 들지 않는 것처럼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왕은 내 볼을 쓰다듬었다.
“물론 그대를 놀려 먹는 재미가 있지만, 그를 떠올린 후에 그대가 흥분하게 되면 반대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
“……그럼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즐기면 되잖아요?”
나는 일부러 마왕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유혹하듯이 그에게 몸을 비비면서 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유희를 주기 위한 존재들이니까.”
마왕은 미소 지었다.
“흥미로운 말을 하는군.”
내 성적인 신호를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마왕은 기껍게 눈을 빛내며 손을 아래로 움직였다.
“눈에 보이는 뻔한 말 돌림이지만 넘어가 주지.”
마왕은 눈을 빛냈다.
“그대가 여전히 내 밑에 있다면 봐줄 수 있어.”
마왕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대 안을 쑤시는 게 내 성기라면 말이야.”
“아……!”
나는 강렬하게 파고드는 그를 느끼면서 신음을 질렀다. 그는 손으로 내 가슴을 튕기면서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하체를 부술 것처럼 쳐오는 그의 움직임에 골반이 얼얼했고 배 속이 아파 왔다. 그 아픈, 고통스러운 듯한 감각 속에서도 진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왕은 내 몸을 모조리 쥘 것처럼 강하게 누르면서 말했다.
“유희를 주는 자답게, 그대는 한동안 내게 속해 있을 거야.”
“아! 아읏!”
“격한 전투 중에도, 성기사와의 성교 중에도 잊지 마.”
“흐읏, 읏……!”
“그대가 날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야!”
마왕은 격렬하게 움직였다. 나는 눈앞이 번쩍이며 빛났고 곧 그의 몸에 빨려가듯이 신음을 지르기 시작했다.
***
‘……힘들어.’
그와의 성교가 모두 끝났을 때,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마왕은 아론만큼이나 내 몸과 정신을 흔들었고, 내가 간신히 애원하고 나서야 겨우 나를 놓아주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도무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나는 체액으로 엉망이 된 몸을 보았다. 정액 때문에 미끄러지는 다리를 간신히 추스르는데, 정사가 끝나고 나갔던 마왕이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직도 그러고 있나.”
마왕은 쯧쯧 혀를 차며 나를 보았다. 민망함과 난처함에 얼굴이 뜨거워지는데 팔이 뻗어 온다. 나는 나를 안아서 침대에 내려 주는 마왕을 커다래진 눈으로 보았다.
“왜?”
“아, 아뇨…….”
비웃고 말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마왕은 친절하게 내 옷을 주워 입혀 주기까지 했다. 나는 씻지도 않은 몸에 옷이 달라붙는 게 불편했으나 어찌 됐든 처참한 몸을 가리게 된 셈이었다. 마왕은 작게 안도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물었다.
“아까 전투에서 힘겹게 싸웠다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