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38화 (38/220)

38.

“아.”

“말했다시피 나는 당분간 집중하고 싶어. 그대의 이 신성하면서도 탐욕스러움이 공존하는 육체에 빠져 있으니까.”

마왕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중얼거렸다.

“그대를 매일 소환시킬 만큼 말이야.”

“…….”

나는 어쩐지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의 아래에서 타락한 신음을 내뱉는 만큼, 상대에게 몰두하고 싶은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마왕은 모처럼 일찍 나를 보내 주었다.

“내일도 부를 테니까.”

마왕은 태연하게 설명하고는 손을 휘저었다. 검은 기운이 그의 주변에 어른거리는 순간, 나는 자고 있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고용한 방 안. 다행히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씻고,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셨어요?”

아침이 되어 사제복을 입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비키였다.

그녀는 오늘은 분홍색 리본으로 매우 엉성하게 머리를 묶어 올린 채였다. 내가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곳을 쳐다보자 어색한 미소가 따라왔다.

“하녀가 없어서 혼자 해 봤는데, 잘 안 되네요.”

“제가 해 줄까요?”

“정말요? 그럼 감사하죠!”

단번에 얼굴이 환해진다. 나는 그녀를 의자에 앉게 해서 그녀의 뒤에서 머리를 만졌다. 매끈하고 기름진 머리는 그녀가 잘 먹고 잘 관리된 신분임을 말해 준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빗어서 좌우로 곱게 땋아 하나로 묶어 주었는데, 그녀는 나중에 거울을 보며 맘에 든다고 기뻐했다.

“아주 솜씨가 좋아요! 저희 하녀보다도 더요!”

“많이 해 봐서요.”

백작가에서 천대를 받았던 건 아니지만,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내 지위는 그야말로 애매했다. 하녀보다 높은 신분이었지만 정통 핏줄보단 낮은 신분이었기에, 때때로 나는 하녀의 도움 없이 내 머리를 매만져야 했다.

나는 늘 비안나의 화려하고 잘 다듬어진 머리가 부러웠다. 아끼는 인형에게 시도해 볼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비안나가 인형을 망가뜨린 후론 하지 않았다.

나는 제 머리를 기분 좋아서 만져 보는 비키를 보며 기억을 떠올려 보고는 이내 그녀에게 물었다.

“바로 출발하나요?”

“네! 마차를 준비해 놨어요!”

그러나 소환사와 성기사들이 모이는 것은 매우 더뎠다. 그들은 마을에 더 머물고 싶어 했다. 미혼의 마을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매우 좋았던 것이다. 친해진 몇몇 아가씨나 남자와 수다를 떠는 사제들을 보며 비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예정대로 가야 해요.”

그녀가 제법 매섭게 말하자 소환사와 성기사들은 마지못해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처음 달렸던 도로보다 훨씬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렸다.

그다음 마을은 이전 마을보단 훨씬 컸고,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미리 마을 입구에 나와 있었는데, 마차 덧창으로 보이는 사제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마을 광장을 도는 일은 마치 축제처럼 이어졌고,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머물 수 있었다.

“제국에서 우리 같은 작은 마을까지 신경 써 준다는 게 너무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마을 촌장은 감격한 얼굴로 거듭 소감을 말했다. 비키는 칭찬에 얼굴이 제법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채로 중앙 관리답게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폐하께선 제국 모든 곳을 아끼고 계십니다. 신의 은총 아래에서 우리 펠더 제국이 빛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시고요. 저희는 신성국의 관리로서 소명을 다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정한 사제들이십니다.”

촌장은 하나같이 훌륭한 외양의 사제들에게 허리를 숙여 가며 인사했다.

축제는 곧 술과 노래가 난무했다. 아름다운 외부인들이 몰려온 만큼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우리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쏠려 있었다.

나는 과하게 접근해 오는 청년들을 보면서 웃고 있는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 일일이 답하기도, 또 상대하기도 귀찮았던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일찍 방으로 돌아왔다.

촌장을 상대하고 있던 비키는 내가 빠져나오자 재빨리 함께했는데, 그녀의 얼굴에도 피로하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오래 머물러 달라고 그러네요. 마물 습격이 이 근방에서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면서. 이곳은 마물이 습격할 시 너무 취약한 장소라 피해가 클 거라고 했어요.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했는데도 반복해서 요청하셔서요.”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비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이곳이 정말 취약할까요?”

“……네.”

나는 나지막하게 강조했다.

“많이 취약해요.”

나는 이전에 들렀던 마을과 지금의 마을에 싸울 수 있는 이들을 떠올려 봤다. 항시 머무는 성기사와 소환사가 없는 만큼, 마물이 출몰하면 일반 청년들이 마물과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신성력이 없으면 마물에게 닿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조금 싸우다 죽고 말 것이다. 한마디로 마을은 마물에게 대항할 사람들이 없어져 금세 쑥대밭이 될 거라는 의미였다.

나는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웃음, 그리고 선량한 주민들을 떠올려 보고는 가슴이 시려 오는 것을 느꼈다. 나태하고 방관적인 자세로 바라보기엔 너무 선명한 존재들이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마물로 인해 제국 전반에 사제가 부족해진 시점이라서요. 사제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마물이 출몰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할까요? 때문에 이 시찰도 최소 인원으로만 구성된 거예요. 워낙 사람들이 불안해하니 일단 안심시킬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요.”

“……폐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까요?”

“음……. 저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이트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마물 소탕 및 소거 작업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마물과 마족을 뿌리 뽑자는 신념이 강하시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국의 황제 아드리아라면 충분히 그런 일을 주도해서 대대적으로 작전을 진행할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자 금발의 청년을 자연스레 생각하고 말았다.

‘무사할까.’

짧은 불안이 스며들었다. 그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설렜다가도 차갑게 식는 일을 반복한다. 그것은 그의 훌륭한 몸을 보며 욕정하는 것과는 다른 깊이였다. 좀 더 어둡고 내면에 잠겨 있는 감정들을 건드린다고 할까.

나는 그가 잘 지낼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비키를 보았다.

“전 내일 중앙에 일단 건의된 것을 전달해 봐야겠어요. 전서구를 보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니 먼저 잘게요.”

비키는 내게 인사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방에 홀로 남아서 신성력을 끌어모으는 훈련을 해 보았다. 며칠 안 했더니 왠지 스스로 녹슨 느낌이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연습하고 잠들자, 꿈속에선 그 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내가 나른한 자태로 나를 유혹해 왔다.

“아읏, 흣…….”

느릿하게 시작된 애무는 어느새 내 가슴까지 닿아 있었다. 마왕의 길고 뜨거운 혀가 뱀처럼 봉긋한 정점을 휘감아 빨아들여 오자 나는 관능적인 신음을 토해 냈다.

“오늘은 조금 신선하게 해 볼까.”

마왕은 가늘어진 눈매로 말했다. 나는 정욕으로 흐트러진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의미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검은 기운에 휩싸여 나타나는 마물들이 있었다. 나는 기겁하고 말았다.

“……!”

“걱정 마.”

마왕은 발딱 일어나려는 나를 껴안았다. 그리곤 공포에 떨고 있는 내 몸을 매만지며 자신의 성기를 긴장한 내 입구에 집어넣었다.

“아, 아아……!”

나는 목구멍 너머로 신음과 비명이 튀어나오는 걸 느꼈다. 신음은 그의 거대한 성기에 놀라 나온 것이고, 비명은 마물들을 앞에 두고 성교를 한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이건, 말도 안…… 흐읏!”

“말도 안 되는 걸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세세히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보는데.”

마왕은 허리를 내리눌렀다. 그러자 성기가 안쪽으로 더욱 치받혀 들어왔고, 나는 조악한 기분에 몸을 비틀었다. 마왕은 떨고 있는 내 몸을 풀기 위해서 더욱더 빠르게 안을 박아 왔다.

“아, 아, 아!”

“봐, 공포에 질렸어도 충분히 반응하는 그대의 몸을.”

마왕은 강한 붉은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사제군.”

“아……!”

나는 울상을 지은 채로 커다랗게 신음했다. 다행이라면 마물들이 움직이지 않고 주위에만 멈춰 서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알몸이 된 채로 마왕의 아래에서 그의 성기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가 들쑤실 때마다 아찔한 쾌감과 공포감이 주는 흥분이 동시에 폭발한다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마물을 곁에 두고 그것들을 비웃는 느낌마저 나서 좋았다.

“으으읏……!”

“이렇게 깊게 빨아들이고 내 것을 흡수하려는 그대의 속살은.”

마왕은 감명 깊다는 듯이 감탄했다.

“참으로 황홀하다.”

마왕은 눈을 빛냈다.

“이대로 나만 즐기게 할 순 없지.”

마왕이 손을 뻗자 소환된 마물들이 촉수를 뻗어 왔다. 그의 아래에서 흥분해 신음하느라 잘 몰랐던 나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자 흠칫하고 말았다.

“시, 싫어……!”

“걱정 마. 인간의 육체를 훼손하는 마물의 특성은 내가 제거했으니까.”

마왕은 안심시키려는 듯 말해 왔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나는 내가 평소에 쳐부수는 마물들에게 닿고 싶지 않았고, 야릇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마물을 근본적인 악이라고 치부해 상대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끔찍한 생명은 명백한 나의 적이자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 인간들을 말살하고 세상을 파괴해 가는 절망적인 생명. 아이들의 웃음과 평화로운 정경을 앗아가는 괴물이 나는 싫었다.

“으읏……!”

나는 마물들의 촉수가 내 가슴을 옥죄어 오자 기겁하고 말았다. 촉수는 마왕의 명을 들은 것처럼 내 가슴과 내 유두, 내 허벅지로 파고들었다.

내 성감대를 공략하려는 듯 끈끈한 피부로 마찰하기 시작하자 소름 끼치는 감각들이 내 머릿속을 찔러 왔다.

“시, 싫어…… 윽, 흣……!”

나는 완전히 울상을 지었다. 그들이 건드리는 내 예민한 부위들은 이미 한차례 마왕이 달아오르게 해 놓은 곳들이었다. 내 경악과 거부에도 자극해 와서, 나는 조금씩 뜨거운 신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나를 더욱 절망으로 끌어들였다.

“저, 절대 싫어, 아흣…….”

마왕은 촉수에게 점령되어 가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내 촉수 하나가 마왕과 결합되어 있는 부위에 닿으려는 찰나, 마왕의 손이 그것을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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