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나는 ‘잘생긴’이라는 단어에 왠지 기분이 안 좋아졌다. 카란의 말처럼 외양 따윈 우리를 죽이려는 마물들에게 의미가 없는 일일 테니까.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외모란 말인가?’
지금 나는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가고 있었다. 그들이 내 외모를 보고서 얼마만큼 ‘안심’할지는 의문이었지만, 그저 예쁜 백작가의 사생아로 수녀원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비키의 일을 조금 수월하게 만들어 주자 마음먹었다. 그녀가 의욕에 찬 만큼 일을 잘하면 결국 그 덕을 보는 건 나였으며 사람들이었다.
“시찰을 순조롭게 지휘하시리라 믿어요.”
“가,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만약을 대비해 진영을 짜 놓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어떤 식으로요?”
“이렇게요.”
나는 그녀에게 여태 싸웠던 전투의 경험을 살려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성기사와 소환사들이 배치되어야 할지 의견을 피력했다.
“성기사 1, 2, 3이 이런 식으로 마물을 몰아가면, 저를 비롯해 소환사 2, 3이 마물을 차원의 문으로 날려 버리는 거예요. 물론 이건 마물의 수가 열을 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예요. 마물의 수가 그 이상이면 솔직히 전멸당할 위험이 있어서 도망가는 게 낫거든요.”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비키는 내 말을 종이에 적어 가며 들었다. 신중하게 듣는 태도가 꽤 성실했기 때문에 나는 이것저것 설명했고, 비키는 알겠다며 고개를 일일이 끄덕였다.
“역시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네?”
“그러니까, 말레드레드의 첫인상이요. 너무 예쁘고 우아해서 동화책에서 본 공주님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과찬이세요.”
나는 미약하게 웃었다. 그녀가 정말 과분한 칭찬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전 거짓말 안 해요! 처음 봤을 때 높은 신분이신가 생각했는걸요. 다른 사람들도 말레드레드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마을 사람들도 감탄할 거고요. 저리 아름다운 사제도 있구나! 마치 활짝 피어난 꽃처럼 화사하면서도, 봉긋하게 여문 꽃봉오리처럼 고상한 것이…….”
비키는 홀린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레드레드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니까요. 너무 예뻐서요.”
“아…… 감사합니다.”
“혹시 저희 숙부를 소개해드릴까요? 숙부라지만 저랑 여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아직 미혼이신데.”
“괜찮습니다.”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번 권유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저희 숙부 정말 괜찮아요. 성격도, 얼굴도요. 말레드레드가 귀족이 아니라고 해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분이에요. 애초에 사제로서 일하는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아는 분인지라. 어때요? 제가 소개해드릴까요? 네?”
마치 친한 사이처럼 연거푸 물어오는 것에 나는 짐짓 당황하고 말았다. 왜 나를 편하게 느낀 걸까.
나는 가만히 내 주변을 둘러봤다. 마차를 타고 있는 소환사와 성기사들은 모두 화려했다. 외모를 보고 뽑은 만큼 그들은 특유의 멋들어짐과 우아함을 뽐냈는데, 그네들 중에서도 비키는 유독 내게 마음을 연 것 같았다.
“말레드레드는 보면 볼수록 저와 친하게 지내는 사교계의 언니랑 닮았어요. 신분을 밝힐 순 없지만, 언니는 유명한 수도 가문 출신이거든요! 그 언니만큼 고귀하고 참한 빛을 뿜어내는 여인이 어디 있나 했는데, 말레드레드를 본 순간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죠!”
“……너무 황홀한 칭찬이에요.”
“아니에요, 정말 이웃 나라 왕녀님보다 기품 있으셔요. 그래서 그냥 이곳에 계시기에는 보기가 안타깝다고 할까요?”
나는 그녀가 계속해서 소개해 주겠다는 숙부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면서 마차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마차는 포장도로를 이용해서 빠르게 달렸다. 우리는 3시간 뒤 낮은 동산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키는 먼저 내려서 마을 전경을 쳐다보며 탁 트인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가 첫 번째 시찰을 돌 곳이에요!”
작고 소박한 둥근 통나무집들이 굽이굽이 흐르는 냇물 사이로 한적하게 펼쳐져 있다. 닭과 오리가 풀밭을 느긋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으며 어린아이들은 맨발로 풀밭을 뛰어다니며 서로를 잡으려 한다. 울타리도 없고 담장도 없는, 어느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정경이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소환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여긴 마물과 전혀 상관없는 곳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한 군데도 빼놓지 말라고 하셔서요!”
비키는 힘차게 말했다.
“얼른 이 마을을 돌고서 다른 마을로 가요.”
“하루에 두 곳이나 가는 거예요?”
성기사 하나가 자신의 멋들어진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언짢다는 듯이 물었다. 비키는 그의 사제복에 머리칼이 떨어진 것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 네, 네. 왜냐하면 가깝거든요. 하루에 한 곳을 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시찰이 길어질 거 같아서…….”
비키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그의 사제복에 있는 머리칼을 직접 손대서 떼어 주었다. 성기사는 그녀를 내려다봤다. 비키는 ‘사제복 및 신의 물품 청결은 필수입니다.’라는, 중앙에서 세뇌시킨 말을 딱딱하게 중얼거리고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괜찮냐는 의미였다.
“솔직히 전 길어져도 상관없어요.”
손톱을 손질하고 있던 소환사 하나가 말했다. 다른 성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왔다.
“저도요.”
“저도 찬성입니다.”
“느긋하게 진행하면 좋겠어요.”
“어어, 그, 그래요……?”
비키는 당황한 듯싶었다. 얼른 시찰을 끝내려 했던 그녀의 의욕으로 가득 찬 마음과는 달리 모여든 사제들은 이 임무가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모처럼 거칠고 험악한 전투에서 벗어나 제 멋짐도 뽐낼 수 있는 임무라서 그런 걸까.
‘우리가 할 일이란 그다지 없어 보이는데…….’
나는 아이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꽃물과 흙물로 엉망인 옷을 입은 채 옹기종기 마을 입구 울타리에 매달려 우리를 보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너무나 맑고 선하다. 그들에게 마물로 인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일단 내 역할이 주어진 이상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런 내 수동적인 태도를 비웃듯, 아이들은 더 환하고 밝게 웃어 왔다. 까르르, 하며 번져 나가는 청량한 웃음소리가 마치 천상의 나팔 소리인 양 아득함을 안겨 주었다.
비키를 비롯한 다른 사제들의 시선도 아이들을 향했고, 어느새 그들은 모두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그 흉내 낼 수 없는 순박하고 따스한 미소에는 내 외모나 지위보다 훨씬 더 공포와 불안을 잠식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 역할이란 무엇인가. 사제로서 내 역할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저 아이들의 미소가 세상 어디에서나 피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아이들의 환상적인 미소에 홀린 듯 오랫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첫 시찰은 순조로웠다. 나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때를 제외하고선 깃대를 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은 도회적이면서 신성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우리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연신 황홀한 눈빛으로 우릴 바라봤고 제국에서 자신들을 챙겨 준다는 것에 기쁜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반나절을 마을에서 보낸 우리는 마을에 여관이 따로 없어서 팀을 나눠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나는 비키와 함께 촌장의 옆집에 살고 있는 순박해 보이는 부부의 집에서 잤고, 그들이 차려준 소박하지만 정갈한 식사를 마치고 거칠지만 깨끗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익숙한 장소에서 눈을 떴다.
“왔군.”
마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적막하고도 기이한 붉은 눈이 나를 관통한다. 나는 기꺼이 그에게 몸을 던졌다.
“아읏, 흣…….”
낮에는 소환사로서 책임을 다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욕망에 충실한 존재가 되어 내 기아를 충족시켜 줄 그에게 몸을 내던진다.
“아……!”
나는 말레드레드, 말갛게 발로한 욕구 앞에 선 자였다.
“오늘은 무슨 일을 했지?”
한창 그의 밑에서 다리를 벌린 채 그의 더운 살덩이를 받아들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읏, 흣, ……네?”
“왠지 오늘따라 차분한 거 같아서 말이야.”
한마디도 없던 마왕은 내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한 끝에 결론이 난 것처럼 물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태연하게 물으며 성기를 안쪽까지 고환이 닿을 정도로 쑤셔 넣자 뒷골이 울려오는 걸 느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황홀한 감각이 배 속에서부터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나는 숨을 헐떡였다.
“흣, 그, 그게…….”
대답하지 않으면 그가 짓궂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왜 자꾸만 나의 소환사 일에 관심 있어 하는지 몰라 불편했지만, 대답을 아예 안 해 줄 순 없어서 돌려서 말했다.
“제국민들을 달래는 임무를, 흣, 읏……!”
“달래는? 설마 몸으로?”
순간이지만 그의 눈빛이 매우 얼어붙었다. 냉기가 흘러나오며 주변 공기까지 얼려 버리는 듯한 느낌에 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마을을 도는 거예요! 마물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고!”
“아.”
마왕은 그제야 의미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성기를 안쪽으로 나른하게 내리누르면서. 그 탓에 예민한 곳을 자극당한 나는 움찔하며 크게 허리를 들썩였다.
“흐읏…….”
“내가 오해를 했군. 소환사로서의 반듯함을 중시하는 그대가 그런 일을 함부로 할 리가 없는데.”
마왕은 붉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 눈은 이상할 정도로 진지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우리 관계는 어디까지나 서로를 탐하는 육체 정사만이 다가 아니었는가. 내가 순결하든 난잡하든 그는 상관할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걸 궁금해하는 거죠……?”
“……그건.”
마왕은 멈칫했다. 그는 잠깐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듯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그들로 인해 내가 그대를 탐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