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스스로를 납득시키듯이 중얼거린 그가 그다음으로 한 행동은 내 손목과 가슴을 움켜쥔 그의 기운을 느슨하게 한 것이다. 의외였다. 나는 온몸에 피가 제대로 돌기 시작하는 느낌에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무언가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맑은 액체가 아닌 무언가 농도 짙고 점성이 있는 것이 낙하하는 듯한 소리였다.
“관능적이어야 해. 그대가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느낄 수 있도록.”
“……!”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보자 그가 옷 밖으로 꺼내놓은 거대한 성기가 보인다. 그 끝, 선단에서 진한 하얀 빛깔의 점액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왕의 정액이었다.
마왕은 그 게걸스럽게 체액을 떨어뜨리고 있는 성기를 내 입구에 가져다 댔다. 나는 선단이 살짝 입구를 파고드는 것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었다. 마왕은 선단을 살짝 꽂아 넣기만 했을 뿐이다.
곧 몸이 움찔거렸다. 이상한 갈증이 치밀었다. 내 배 속이, 내 입구가 무언가 부족하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더한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온몸을 흔들 만큼 선명한 강렬한 자극을.
“제, 제발…….”
나는 애원하고 말았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허벅지를 조이면서. 마왕은 모른 척 물었다.
“왜 그러지?”
“읏…….”
마왕이 짓궂게 웃었다. 나는 난감해지고 말았다.
“어디가 불편한가?”
“그러니까, 아…….”
“표정만 찡그리지 말고 정확히 말해 봐. 무얼 원하는지.”
마왕의 것이 사정없이 내 안을 쑤셔 줬으면 좋겠다.
나는 고상치 못한, 타락한 문장을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한순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의 어두운 붉은 눈을 바라본 순간, 나는 내가 망설인 이유를 깨달았다.
저 압도적인 존재에게 휘말렸다가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나 내가 꿈꾸는 소환사로서의 미래, 순탄하고 순조로운 사제로서의 삶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쾌락과 욕망 속에서도 한 가닥의 두려움을 느끼고 만 것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줬나 보군. 딴생각을 하는 걸 보니.”
마왕은 기막히게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굵은 성기를 입구에서 빼냈다.
“문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기름을 칠해 주지. 부드럽게 말이 나오도록.”
기름이라니?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마왕의 거대하고도 섬뜩한 생김의 성기가 내 입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읍!”
“이로 물면 안 돼.”
마왕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혀를 써. 귀한 설탕 과자를 빨아 먹듯이.”
하지만 나는 다짜고짜 들이밀어진 성기를 간신히 물고 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목구멍까지 들어온 거대한 성기는 내 목을 찢어 버릴 것처럼 단단했고, 굵기가 컸다. 나는 꺽꺽거리면서 간신히 입만 옴짝거렸고 마왕은 혀를 찼다.
“음탕한 사제치고 너무 어리숙한데.”
“으, 읍…….”
“처음인가? 성기사와도 해 본 적이 없나 보지?”
나는 추궁당하는 게 싫어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조용하자 의아함이 느껴져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의외로 마왕은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닌, 기분 좋다는 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영문을 몰라 쳐다보고 있자 곧 마왕의 나른하고도 타락한 눈 맞춤이 따라온다.
“좋아, 그럼 손수 가르쳐 주지.”
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내 입 안에서 성기를 뺐다. 마왕은 내 분홍빛 혀를 들여다보며 그 안에 남겨진 정액을 응시했다.
“일단 삼켜 봐.”
나는 내키지 않았으나 나를 쏘아보는 붉은 눈이 신경 쓰여서 그대로 했다. 꿀꺽, 익숙지 않은 그의 정액이 목구멍으로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먹어서는 안 되는 독약을 삼키는 기분이라서 눈가를 찡그렸는데, 마왕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성기를 들이미는 게 느껴졌다.
“혀를 내밀어.”
마왕은 명령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고서 어쩔 수 없이 혀를 내밀었다. 그러자 내 혀에 뜨거운 살덩이가 닿았다. 그것은 잔뜩 성이 난 상태였다. 혀 돌기로 느껴지는 그의 성기는 마치 가죽처럼 단단했고 질겼다. 부드러우면서도 울퉁불퉁한 결이 나 있었다. 마왕은 그것을 핥도록 지시했다.
“좋아, 신의 물품인 듯 정성스럽게 핥아.”
그의 말은 거북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것을 느릿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핥기 시작하자 마왕은 뜨거운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것은 한숨을 토해 내는 것도 같았고, 만족감을 표현해 내는 것도 같았다. 뭐가 됐든 그가 이완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좋아, 아주 좋아.”
그의 기분 좋음이 완연하게 드러난 목소리를 듣자 나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의 것을 핥으면 핥을수록 느껴지는 기분은 뭘까. 배 속이 꿀렁거리고 손발이 저려 오는 기분이 있었다. 아니, 그건 손발이 묶여 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한동안 그의 것을 핥고 빨자, 곧 그의 것이 잘게 흔들리며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그가 사정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입을 벌려.”
마왕은 붉은 빛을 번쩍이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천천히 입을 벌리자 너무 느리다는 듯이 내 턱을 억지로 내리누른 그는, 크게 벌려진 내 입 안에 사정했다.
“읍, 읏…….”
차마 다 삼키지 못한 체액이 입술을 타고 턱으로 떨어졌다. 목이 막혀 왔으나 그가 내 손발을 꽉 붙들고 턱을 아래로 당기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꾸역꾸역 먹고서 흐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한층 부드러워진 눈빛이 보인다.
“잘했어.”
마왕은 나지막하게 칭찬하고는 자신의 시든 성기를 다시 내 음부로 가져다 댔다.
“읏……!”
젖어 있는 속살에 부푼 살덩이를 비벼 오는 그의 동작은 노골적이었다. 나는 그의 성기가 금세 일어나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강하게 입구를 찔러오는 것을 발견했다.
숨을 들이켰을 때는 그의 성기가 내 안을 깊숙하게 찌르고 있었다.
“아……!”
나는 목을 뒤로 넘기며 탄식했다. 눈앞이 환해질 만큼 황홀한 감각이 나를 덮친다. 성기가 안을 꾹꾹 누를 때마다 막혀 있는 혈관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고 움츠려 있던 감각이 날개를 펴는 느낌이었다.
“아흑, 으흐읏……!”
나는 우는 듯이 신음했다. 마왕이 흡족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기다려 왔던 것이지?”
“으흥, 흣……!”
“벌이라고 하기엔 지독히 달콤할 거야.”
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이며 깊숙하게 침투했다.
“이 느낌 없이는 못 살 만큼.”
“아읏, 아아……!”
마왕의 빠른 움직임에 나는 그야말로 불타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침없이, 어떤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로, 나의 답답한 껍데기에서 벗어나서 소리치고 있었다.
몸을 불태우면서, 가슴 속의 허전함과 부족함을 채우면서. 그 기막힐 정도의 이중적인 만족감이 나를 관통했다.
믿을 수 없이 기분 좋게.
“그러니까 내게 전념해. 나도 그대에게 전념할 테니.”
마왕은 소리 지르는 나에게 읊조렸다. 시야가 흐릿해진 나와 달리 그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뚜렷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이 달콤한 벌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
“아, 아, 아―!”
나는 마왕의 무기를 품은 채로 아득한 신음을 질렀다. 마왕의 붉은 눈이 저주를 내리듯 쏘아졌다.
“아주 어리석은 짓이 될 테니까.”
마왕은 꽤나 확신하고 있는 말투였다.
***
그렇게 그와 밤새 정사를 하고서 숙소에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내 몸을 뒤덮은 정액 때문에 온몸이 더할 나위 없이 끈끈했고 목이 아플 정도로 뻑뻑했다.
‘일부러 그랬나.’
평소와는 달랐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의뭉스럽게 물어오며 나를 육체적으로 애끓게 만들었다가 풀어 주기를 반복했다.
입 안에 사정하는 것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 번쯤 했을 때, 이미 내 몸에는 그의 정액이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음부에선 그의 정액이 줄줄 새고 있었고, 턱에서 떨어진 정액은 목과 가슴을 적셔 배로 떨어지고 있었으니 말을 더해 뭐하겠는가.
나는 그야말로 그의 체액에 뒤덮인 짐승처럼 신음했고 온몸을 비틀며 반응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가 던진 질문에 어떻게든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독촉에 나는 변명에 지쳐 무언가를 말하고 말았다.
‘흣, 그가 더 깊은 관계를 원해서요……!’
답하고서도 아차 싶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이야기하고 말다니. 그러나 잠깐 멈칫했던 마왕은 이내 별거 아니란 듯이 ‘그 성기사가 그런 걸 원했나?’하고는 덤덤하게 반응해 왔다.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내 안을 쑤셔 오며.
생각해 보면 그랬다. 마왕은 이미 아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와 내가 어릴 적의 추억이 있는 사이며, 재회했을 때 뜨겁게 몸을 나눴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아론과 관계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이용해 더 음란하고 야한 정사를 시도하려는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당분간은 자주 불러 주지.’
왜 그런 말을 남겼을까. 마왕이 마지막에 내게 던진 말은 범상치 않았다. 나는 흐린 눈빛으로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서 그를 바라봤다.
‘그 성기사와 균형을 맞추려면 말이야.’
마왕은 그게 재미있을 거란 투로 말했다. 비록 눈은 별로 흥미를 못 느낀다는 듯이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아론을 신경 쓰는 거지?’
성기사라는 존재가 단순히 거슬리기 때문일까.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이 스며든 으스름한 나의 숙소.
‘일단 씻자.’
나는 자꾸만 늘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움직였다. 깨끗한 옷을 입고 가서, 땀과 체액에 절어 돌아왔으니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은 필수였다.
나는 씻으면서 내 손목과 발목에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운이 움켜쥐었던 가슴이나 유두도 깨끗했다. 정사의 영향으로 약간 부어오른 듯 탱탱해져 있을 뿐이다.
‘그대가 지키고자 하는 빛의 세계. 그 유리성처럼 연약하고 눈부신 세계를 건드리지 않겠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