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그의 입술이 단번에 나를 파고들었다.
“읏……!”
맹렬할 정도로 뜨거운 입 속의 온도가 나를 덮쳤다. 입 안으로 깊게 침투한 혀는 내 안을 모두 쓸어 버릴 것처럼 노도와 같이 움직였고 나는 그의 어깨를 꼭 쥔 채로 눈을 감고 말았다.
“으, 읍, 그만…….”
그가 입술만 탐해 온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한쪽 다리가 내 다리 사이로 깊게 넣어져, 가장 은밀하고 예민한 부위를 슬쩍 쓸어 올리면서 몹쓸 자극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아래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자 민망해졌다. 동시에 우울했고, 치욕감이 올라왔으며, 이런 순간에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원망했다.
“하아.”
마왕은 틀어쥔 턱을 놓아주며 입술을 뗐다. 그리고 흐트러졌을 내 표정을 태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내게 전념할 준비가 되었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나는 입술에 흥건히 묻은 그의 흔적을 느끼며 힘겹게 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길은 무척이나 회의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의 태도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이 유희가 당신에게 그토록 의미가 있나요?”
“방금까지 나에게 자신의 세계에 끼어드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그대가 이제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가? 내 행동의 이유를 찾아서?”
마왕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대는 정말 제멋대로에 건방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평가가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예의 바른 모습 뒤로 늘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고, 크게 문제 되는 게 아니라면 그대로 해 왔으니까.
그게 나였으며, 나란 존재의 본질이었으니까.
따라서 나는 궁지에 몰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간파한 그 때문에 말이다.
마왕은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재미있지. 난 재미있는 것에 사족을 못 쓰거든.”
마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간들처럼 내 겉옷을 벗겨 나갔다. 윗옷 단추를 툭툭 풀고 있는 손길은 유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일까. 유희를 즐긴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내가 관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을 때, 마왕은 기분 좋게 의견을 늘어놨다.
“그대는 흥미로운 인간이야. 나는 이 관계가 아주 만족스러워. 몰두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직감했다. 그와의 관계가 다시 끈끈하게 이어질 것이란 것을.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대로 욕망이란 감정에 몸을 담그면 되는데 누군가 떠오르고 만다. 그는 금발에 금안을 가진 사내였다. 뜨겁고 깊은 연심으로 나를 바라보는 고귀한 성기사.
그를 떠올리자 믿을 수 없이 죄책감과 불편함이 커졌다.
‘왜 이러지. 난 그냥…….’
즐기고 있을 뿐인데.
“정말 다행이야.”
그때, 내 상의를 전부 벗겨 버린 마왕이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치지 않아서.”
그는 내 말끔한 살결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나는 조금 놀랐고, 살짝 의아했다. 그가 내 신체를 이렇게나 염려하는 건 유희 때문일까. 자신의 창조물인 마물을 죽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도 그렇게 전투에 임하도록 해.”
마왕은 강조했다.
“내가 탐하는 몸을 절대 다른 것에게 상처 입히도록 두어선 안 돼.”
“…….”
“이건 내 거니까.”
나는 절망적으로 마왕을 바라봤다. 마왕은 내가 자신의 소유라는 걸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마물에게 뺏기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단호한 눈빛에서 그의 분명한 진심을 알아차렸다.
“알겠나? 말레드레드.”
그가 미소 지으며 손을 뻗어 왔다. 어차피 내 대답은 필요하지 않는다는 듯이 촘촘한 손으로 내 몸을 감싸면서.
옷이 모두 벗겨져 그의 아래에 깔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쉽게 달궈지지 않는군.”
“우읏…….”
마왕은 내 은밀하고 좁은 질벽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다리를 더 벌려 봐.”
나는 누운 채로 그의 말을 착실히 따랐다. 상당히 오래 애무했음에도 다른 날과 달리 애액이 충분하게 나오지 않아서 마왕은 불만스럽다는 어조였다.
다리를 벌리자, 그의 손가락이 더욱 깊게 들어온다. 그것은 미끈한 질벽을 꾹꾹 누르면서 내 자극 점을 찾기 위해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아, 아앗……!”
나는 튀어 오르듯이 몸을 움직였다. 아픈 것과는 달리 짜릿한 감각들이 머릿속을 콕콕 찔러온다. 그는 신음하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손가락 하나를 더 늘렸다.
“평소와는 다르단 말이야.”
마왕은 면밀하게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가 쑤셔댈 때마다 흘러나온 애액이 그의 손가락에 휘감겨 찔걱, 끌걱 하는 야한 소리를 만들어 냈지만 여전히 그는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뭘까. 그대를 식게 만든 것이.”
마왕은 궁리하는 투로 말하고는 손가락 하나를 또 늘렸다.
“아……!”
손가락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되자 하나가 들어올 때보다 더욱 강렬하고 짜릿한 쾌감이 손끝으로 뻗쳐 왔다. 나는 손이 찌릿한 느낌에 주먹을 쥐었다 폈고, 그사이 그의 손가락 세 개가 내 안을 들락날락했다. 나는 속절없이 신음했다.
“아읏, 흣……!”
“그 성기사와 무슨 일이 있었나? 그와 언제 관계를 했지?”
“그, 그런 건……!”
나는 신음하는 중에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묻지 말아 줘…… 앗……!”
-요.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손가락이 푹, 안을 강하게 찌르며 들어왔다. 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질렀다. 분명 의도적인 손길이었다.
마왕은 괘씸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고요한 듯 보였지만 분노와 잔인함이 강하게 맺혀 있었다. 나는 왠지 흠칫했다.
“그대는 내게 숨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
“아닌가?”
“그, 그게…….”
나는 망설이고 말았다. 마왕은 나의 이중적인 생활과 깊은 욕망까지 알고 있었다. 기억을 들여다본 그였으니 나의 과거까지 꿰뚫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어째서 그에게 아론에 대해 말하기가 싫을까.
나는 마왕과의 관계를 좋아하는 만큼, 아론과의 관계도 좋아했다. 두 사람이 각각의 세계를 대표하는 특성 있는 존재인 만큼, 둘의 교차점이 없도록 분리해 놓고 싶었다.
영원히 마주 볼 일이 없는 아침의 해와 밤의 달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주저하는 반응을 보이자 마왕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식어 갔다.
“그 성기사와 무슨 일이 있었군.”
“아니, 아무 일도 없, 읏, 흣…….”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왕의 손이 내 안을 거칠게 쑤셔 오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자극적이어서 나는 허리를 흔들며 신음하고 말았다.
마왕이 낮게 꾸짖었다.
“거짓말하지 마.”
“아, 흐읏……!”
마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손으로 내 질벽 안을 휘젓듯이 강하게 파고들었다.
“아흣……!”
“마왕을 기만하면 어떤 벌을 받는지 아나?”
“흐윽, 읏……!”
“끔찍한 고통 속에서 신체가 뭉개져 가며 절규하게 되지. 하지만 그대에겐.”
마왕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조금 다른, 관능적인 벌을 선사하지.”
그 미소는 섬뜩했다. 나는 그 미소의 정체를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흣.”
어느새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은 기운이 내 손과 발을 각각 묶으며 마치 실로 묶인 꼭두각시 인형처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나는 기겁했다.
마왕은 그 상태로 다른 검은 기운을 풀어서 내 봉긋 솟은 가슴 밑에 똬리를 틀게 만들었다.
“읏‧‧‧…!”
가슴이 터질 것처럼 모이자 고통스러운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나는 눈가를 찌푸렸다.
“뭐, 뭐하는 짓, 큿……!”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얇은 끈 모양의 기운이 빠져나와 내 가슴 돌기를 칭칭 감았다. 그것은 손목을 묶은 기운처럼 단순히 조이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손가락으로 비비듯이 움직여서 나를 자극했다.
나는 아찔하면서 아픈 느낌을 받았고 묶여 있는 손목을 풀어 저항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몸만 비틀어지면서 그에게 잔뜩 벌어진 음부만을 보이고 말았다.
“아, 아앗…….”
“정말 음탕하게 살랑거리는데 말이야.”
마왕은 비웃듯이 말했다.
“그대의 것은 이런 것에 흥분하는군. 이제야 물이 제대로 나오는 걸 보면.”
치욕감과 수치심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데 그에게 내 부위를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야릇하고 난잡한 쾌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왕은 손으로 흥분한 입구를 지분거렸다.
“여길 봐. 아주 쑤셔달라고 물을 흘리며 애원하고 있잖아.”
“읏, 그, 그렇게 만지지 마…….”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멍울 있는 부위를 툭툭 건드리자 몸이 흠칫거렸다. 소름 끼치는 감각이었다. 내 애원에도 마왕은 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대의 입과 몸은 따로 노는군.”
“아니야, 흣…….”
“이렇게 좋아하고 있는데 멈추라니.”
마왕은 멍울을 꾸욱 눌렀다. 그러나 사나운 쾌감이 눈앞을 치고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으며 탄성을 질렀고, 견딜 수가 없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손목에 감겨 있던 기운이 반응하듯이 나를 더 억세게 움켜쥐어 왔다.
“읏!”
가슴과 유두를 감싸고 있는 기운도 더욱 강하게 살을 문질렀다.
“아!”
완전히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자 마왕이 멍울을 자극하던 손을 뗐다. 그는 잠시 고통에 괴로워하는 내 얼굴을 보며 흠칫한 듯싶었다. 그러나 곧 그런 자기의 모습이 생소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대를 단순히 아프게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겠지.”
마왕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나는 희미한 의문을 가진 채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