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30화 (30/220)

30.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가슴 벅차도록 환하고 밝았다. 볼까지 살짝 발그레해진 사내를 보면서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나른한 웃음소리를 터트리자 풀이 죽어 있던 아론의 성기가 다시 부푸는지 배 속이 팽팽해졌다. 나는 아찔한 신음을 토해 내고 말았다.

“흣, 뭐, 뭐야.”

“너무 유혹적인 미소라서요.”

아론은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내 엉덩이를 양손으로 꽉 잡았다. 위에 올라가서 하는 체위로 힘이 풀려 있던 다리는 아론의 손에 의해서 다시 강제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아읏! 흣!”

아론의 성기가 내 안으로 솟구쳐 들어올 때마다 나는 기분 좋은 탄성을 터트렸다.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다. 내 안쪽을 뚫어 버릴 것처럼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성기는 내 안에서 갈구하는 욕망을 완전히 채워 주고 있었다.

“아, 아론……!”

그의 이름을 높게 부르면서, 야외에서 하는 정사는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한동안 계속되었다.

아론과 그날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서, 나는 말 없이 그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정사로 나른하게 풀린 몸과 달리 마음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한없이 혼란스러웠다.

그에게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 거리는 더 좁아지고 말았으며 그라는 존재가 더 든든하게 마음속에 각인되는 결과까지 낳고 말았다. 가볍다는 말로 시작한 관계가 어떻게 이런 결과에 도달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눈을 꾹 감고 말았다.

“다 왔습니다.”

아론은 숙소에 도착하자 먼저 내려서 내가 내려오는 걸 도와주었다. 바람에 휩쓸리면서 오느라 헝클어진 내 머리를 보며 아론은 손을 움직여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천천히, 지난한 동작으로.

그 느리고 띄엄띄엄한 시간이 왜 이리 부끄러운지. 나는 오히려 정사를 나눌 때보다 더욱 민망한 느낌이 들고 말았다. 아론은 나를 부드럽게 훑고는 정리가 모두 끝난 후에야 손을 내렸다.

“내일은 변방의 도시로 지원을 나갑니다.”

“어?”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멈칫했다. 아론의 눈은 더욱 그윽해졌고 어두워졌다.

“일주일 후쯤 돌아올 텐데.”

그는 벌써부터 그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아론은 그 각오로 진지해진 표정이었다.

마물을 속결로 처리할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이 대단할 뿐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론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듯이 내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는 내게 키스를 바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내 입술에 지그시 닿아 있는 걸 보건대.

“……잘 다녀와.”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내밀었다. 곧 열감이 오른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입을 떼려고 했지만 아론의 손이 내 뒤통수를 감싸오자 그럴 수가 없었다. 키스는 길고 진하게, 오랫동안 이어졌다. 다행히 내가 밀어내기 전에 아론이 먼저 입술을 떼었다. 그의 표정은 눈빛처럼 진해져 있었다. 열정과 욕망이 다시 피어오른 느낌으로.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 어조는 강력했다. 나는 그가 떠나기 전에 먼저 숙소로 들어와 버렸고, 아론은 잠깐 밖에서 멈칫하는 것 같더니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나는 천막으로 돌아와 그날은 나가지 않고 안에서 보냈다. 미뤄 두었던 방어구 손질을 했으며 지팡이에 묻은 손때도 제거했다. 그리고 날마다 배급하는 옷들도 잘 정리해서 서랍에 넣어 두었으며 거울도 모처럼 천으로 먼지를 닦아 냈다.

“…….”

그 속에 비친 여자. 먼지떨이를 들고 거울을 쳐다보는 여자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아침나절의 햇빛 아래에서 했던 정사 때문에 그러할까. 아니면, 아론에게 심신이 무장 해제되듯 풀려 버려서 그런 걸까.

무엇이 됐든 나는 살갗 위로 온기가 솟아오르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점심이 되자 나는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는 소환사들 사이에서 에일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굳어져서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아마도 내게 받은 모욕감, 배신감 등이 할퀴듯이 그를 괴롭히는 모양이다.

나는 덤덤하게 그에게서 눈을 돌렸고, 곧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기사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바로 레너드였다.

“말레드레드, 어제 했던 소거 작전이 꽤 대단했다면서요?”

그는 벌써 흥분된 어조였다.

“마물 소거를 그렇게 깔끔하게 한 것은 처음이라고 위에서도 칭찬이 내려왔대요!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떠들고 있어요. 아론나이드가 첫 지휘를 했는데도 긴장하는 기색 없이 훌륭하게 소거 작전을 마친 것에 대한 찬사가 굉장해요!”

“그가 훌륭하게 잘해 냈죠.”

나는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너드는 내 반응에 더 신이 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괜히 가슴이 뿌듯해지더라고요! 같은 성기사로서 그분처럼 멋지게 활약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마물을 처단하는 데 저도 단단히 한몫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처럼 의욕에 넘쳐 외치는 레너드가 귀여워 보였다.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싱긋 웃었다.

“지금도 무척 잘하고 있으니까요.”

“아, 아…… 그럴까요.”

레너드는 내 칭찬이 부끄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곧 나와 함께 식사하기를 바랐다. 나는 별 느낌 없이 그러자고 했는데, 레너드와 함께 앉자 시선들이 몰려들었다. 우리가 좀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한 걸까. 조금 신경 쓰였던 나와는 달리 레너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발랄하게 말했다.

“함께 싸워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하지만 그분은 역시나 인기가 많으시더라고요. 워낙 뛰어나니까 중앙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지원을 보내겠다는 거지만요. 그분은 안 간다고 했는데, 가지 않으면 아예 담당 지역을 옮겨 버리겠다고 위에서 반협박성 말까지 내려온 모양이에요.”

“위에서요?”

나는 멈칫했다.

“그랬어요?”

“네. 제가 직접 들은 거라 확실해요. 상관에게 전투 보고를 하러 갔을 때 아론나이드가 마침 그곳에 있었거든요. 심각한 얼굴로 거듭해 안 가겠다고 하는데, 상관이 곤란하다는 듯이 가라고 하더라고요. 황성에서 내려온 명령이라서 자신도 어쩔 수 없다면서. 안 가겠다면 아예 중앙으로 보내 버리겠다면서요.”

나는 갑자기 아론나이드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황성에서 명이 내려왔다니. 이곳에 남으려던 그도 황제의 명에는 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옥수수 죽을 떠먹었다. 한 입 먹으려는 순간 레너드 옆에 소환사들이 찰싹, 하고 달라붙듯 앉았다.

“자, 자크와 렐!”

“왜 그렇게 얼굴에 홍조를 띠며 먹고 있나 했더니.”

40대의 소환사는 나를 힐끔 보았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나보다도 이 일을 10년 이상 오래 한 자였고 마물 소탕에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잔뼈가 굵은 자였다. 그는 내가 인사하는 걸 말없이 지켜보고는 레너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좀 더 잘 챙겨 먹어야지. 고기를 먹으라고, 고기.”

“안 먹으면 내가 먹을게.”

“렐, 그거 제 거예요! 자크! 그러면서 은근슬쩍 제 고기 다 집어 먹지 말아요!”

소환사 자크와 렐은 레너드의 외침에도 꿋꿋하게 그의 야채와 고기를 강탈했다. 울상을 지으며 다급하게 반응하는 레너드를 왜 그리 괴롭히는지. 세 사람은 곧 아이들처럼 아웅다웅 장난을 쳤고, 나는 왠지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해! 둘 다 진짜 못됐어요! 저도 빼앗아 먹을 거예요!”

원망을 토해 내며 자크와 렐의 식판을 노리는 레너드를 보니, 그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반응이 순수해서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전투하는 동료 같지 않다고 해야 할지.’

다 큰 어른인데도 레너드는 아이 같은 느낌 있었다. 챙겨 주고 싶은 동생 같고, 장난을 치고 싶은 이웃집 소년 같은.

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크와 렐, 레너드를 모두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가 속한 팀과는 완전히 달랐다. 훨씬 친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들이 서로에게 불쑥불쑥 하는 행동들. 아무렇지 않게 상대에게 불만을 털어놓고, 상대에게 농담을 던지는 모습들이 동료를 넘어서 생활을 같이하는 가족들처럼 다가왔다.

‘동료와 친분이 있으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자크와 렐, 레너드의 눈에서 서로를 향한 믿음과 편안함이 부드럽게 섞여 내게 전해졌으니까.

우리, 전투를 함께하는 동료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저 승패를 공유하는 전사로서만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이 고독하고 광활한 싸움에서 어떤 특유의 안식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동반자로서도 의미가 있을까.

나는 즐겁게 투덕거리는 그들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에 잠겼다.

***

식사를 다 끝내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왜 선두에 서게 하는지 알겠어요.”

떠나기 전에 자크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레너드와 렐이 장난치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갑자기 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렐과 장난치다 쾌활하게 웃음을 터트린 레너드를 보았다가 나를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게 있거든요. 저 애송이가 뭣도 모르고 당신을 따르는 게 이해될 만큼.”

“…….”

“다 좋은데, 조심해요. 소환사가 시선을 끌기 시작한다는 건 마물이나 마족의 시선도 끌고 있다는 거니까.”

그의 말은 충고였을까 경고였을까. 나는 왠지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에 주먹을 억세게 쥐고 말았다.

그날 밤은 일찍 잠이 들었다. 어쩐지 머리가 복잡해 피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얼마 후, 내가 깨어난 곳은 마계였다. 서늘한 자줏빛 하늘이 보이자 가슴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그것은 흥분이나 쾌감과는 달랐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괴상할 정도로 불쾌한 기분을 자아냈다.

아마도 내가 마왕에게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마왕을 보자마자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당장에 따져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마왕은 내가 있는 넓은 방에 없었다.

‘어디 있는 거지?’

나는 방을 벗어나 복도로 걸었다. 웅장하게 울리는 발소리가 더욱 나를 긴장시켰다.

한참을 걸었을까. 나는 저번에 보았던 커다란 문 앞에 도달했다. 그 문을 보면서 밀어야 하나 고민할 때, 그 안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