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25화 (25/220)

25.

그의 시선은 내게 좀 더 길게 머물렀다. 타박의 의미였다. 반성한다는 뜻으로 눈을 내리깔자 카란이 잠깐 주시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미 알겠지만 이번 작전의 목적은 소탕이 아닌 소거네. 즉 불길한 기운을 모조리 없애는 데 주력한다는 거지.”

카란은 조리 있게 말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어조로 말했다.

“알다시피 마물이 잦게 출몰하는 지역은 그 대지가 다른 곳에 비해 음습하며 영역 자체가 불안정하다고 알려져 있어. 그런 만큼 마물이 출몰할 수 없도록, 땅 전체에 신성력을 쏟아부을 거네.”

말을 마친 카란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너머의 땅을 가리켰다. 그곳엔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근 마을 주민은 얼씬도 하지 않는 숲으로, 이름도 딱히 없어서 버려진 터처럼 취급받는 장소였다.

나는 그 이름 없는 숲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굴절된 것처럼 나무가 빼곡히 대지를 가려 태양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런 곳의 땅은 어두웠고 음기가 가득했으며 일반적인 숲에선 볼 수 없는 사악한 식물과 동물이 자라났다. 그것들은 독을 품은 공격성이 강한 것들이라서 사람들은 그곳을 지날 일이 있으면 통과하기보다는 멀리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카란은 진지하게 말했다.

“팀이 어떻게 배치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있을 걸세. 이번 작전은 성기사 아론나이드가 이끌 것이니 그렇게 알고 그를 잘 따르도록 해.”

카란이 가자 에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론나이드? 그 새파랗게 젊은 성기사가 우릴 지휘한다고요? 소거는 완전치 않겠어요.”

에일은 회의적인 얼굴이 되어 결과를 성급하게 점쳤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펠이 한마디 해 왔다.

“그는 뛰어난 공격력과 전술을 가진 성기사입니다. 충분히 믿어볼 만합니다.”

그러자 에일의 눈살이 강하게 찡그려졌다.

“같은 성기사라 옹호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그는 이런 대규모 소거를 지휘해 보지 않았잖아요. 언제 영역이 불안정해져서 마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경험도 없는 자가 이 많은 사제를 이끈다니요. 말도 안 돼요.”

에일은 불만스럽게 떠들고는 추측의 말을 빠르게 쏟아 냈다.

“분명 본인이 요구했을 거예요. 이 작전을 맡고 싶다고요. 나이트에서 자꾸 밀리니까, 공을 세워 어떻게든 상부에 잘 보이려고 무모한 시도를 한 거죠!”

에일은 아론나이드의 출세 욕망이 보통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성기사들이 많은 만큼, 에일의 추측이 마냥 질투심에 근거했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아론은 이곳에 본인 의지로 왔으며, 출세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아론은 그러했다. 여기서 싸우는 것도 중앙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 스스로 그러는 것 같았다.

‘잠깐. 그렇다면 아론은 무엇이 목표인 거지?’

출신도 실력도 범상치 않은 자가 이 소도시 변방에 머무르는 것은 정말 소환사 말레드레드 때문일까?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론은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봤자 어차피 의미 없을 텐데.’

그는 언젠가 떠날 것이고 조용히 사라져 있을 것이다. 그건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고, 막을 권리도 없는 부분이었다. 어느 날 그가 사라진다면 그게 당연한 거야, 하고 내 마음을 갈무리하는 정도가 그와의 이별에서의 내 몫일 것이다.

“…….”

그러나 이런 결론과는 달리 가슴 한편이 이상하게 싸늘해지자 나는 그만 생각하자며 시선을 멀리 던졌다.

아론은 어느새 사제들이 모인 정중앙에 서서 그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검집으로 흙바닥에 간략한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숲을 둘러싸고 신성력을 쏟아부을 겁니다. 모든 힘을 쏘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대지에 자극을 줄 정도면 충분하고,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이 경로로 마물들을 몰겠습니다.”

“소환사들이 미리 소환 영역을 만든 곳으로요?”

“네. 따라서 성기사들이 정확하게 그곳으로 마물을 모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물들이 나타나 신성력을 감지하면 흥분할 것이기 때문에, 미쳐서 사방으로 날뛰기 전 통제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론은 차분하게 말했다. 망설임 없는 눈빛에는 이 작전을 어떤 식으로 이끌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

처음인데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상황을 분석하는 머리, 냉정하게 목표를 이끌려는 태도가 빛났다. 남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 내가 넋을 빼고 보듯 다른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아론이 땅에 그림을 그리려 팔을 뻗고 나서야 우리는 아론에게서 눈을 뗄 수 있었다.

아론이 그린 그림에는 커다란 원이 있었고, 그 주변을 빙그르르 두르고 있는 점들이 있었다. 그 점들은 성기사들을 뜻했다. 소환사들은 그곳에서부터 쭉 도로처럼 뻗어 나온 곳에 주로 머물렀는데, 소환 영역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물이 예상 밖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소환사들이 다른 곳에도 소환 영역을 그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론은 몇 개의 점을 성기사 뒤로 뺐다. 혹시나 마물이 예상대로 몰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마물을 모는 것과 소환 영역을 그리는 것은 동시에 합니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소거이기 때문에, 마물을 몰아서 소환 영역으로 보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땅을 정화해야 하는 분명한 임무가 있는 만큼 신성력을 쏟아붓는 것은 숲으로 한정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신성력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성기사와 소환사들은 평소와는 다른 소거 작전에 눈을 크게 떴으나 곧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소거 작전은 모든 사제가 일렬로 서서 신성력을 쏘아 땅을 정화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나야 소거 작전은 처음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분고분 따를 것이었지만 다른 이들도 그러리라 보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노련한 사제들은 당장에 반발하며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자고 할 것 같았지만 의외로 반론들이 없었다. 아론의 새로운 작전을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그 말은 아론이 전사로서의 실력뿐만 아니라 지휘자로서의 재능도 괜찮다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이지만 아론이 제시한 작전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먹혔음을 의미했다.

“이런, 저는 다른 쪽으로 가야 하네요.”

성기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자 나는 에일과 헤어졌다. 에일은 몰아진 마물을 소환사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곳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는 나랑 떨어진다니 당혹스러운 얼굴이었으나 곧 순응할 수밖에 없어 아쉬운 표정으로 떠나갔다.

“갑시다.”

나는 펠과 함께, 마물이 예상 밖으로 움직일 때 반응해야 하는 자리로 움직였다. 작전을 지휘하는 아론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을 만큼, 지척인 곳.

‘설마 이번 배치, 아론이 짠 건 아니겠지?’

의아해하는데 펠이 신성력을 보조해 줄 도구를 받아온다며 뒤편으로 사라졌다. 곧 자리 배치를 일일이 점검하고 있는 아론이 다가왔다.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황금빛 시선은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빛났다.

“다치지 않도록.”

신중한 눈빛은 우리 사이가 알려질까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다칠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이다. 나는 충고가 아닌 염려를 보내는 사내에게 빤한 시선을 주었다.

언제나처럼 완벽한 얼굴에, 침착하면서도 서늘한 빛나는 눈동자. 어쩐지 다른 날과 달리 초초해 보였다. 그것은 그가 큰 전투를 앞두고 긴장했다는 의미이다. 나를 눈앞에 두자 더욱 그러한 티를 내는 사내는 두려움이 아닌 임무 완수의 의지를 불태우며, 진지하게 나를 바라봤다.

문득 에일의 주장이 떠올랐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이번 작전, 아론이 일부러 맡은 거야?”

“이 지역에서 마물이 일으키는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봐서 상부에 소거 작전을 제안하게 됐습니다.”

아론은 잠깐 머뭇거렸다.

“직접 지휘까지 하라고 할지는 몰랐지만요. 아마도 황제 폐하께 말이 들어간 게 아닌가 합니다.”

아론은 그 점이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이었다. 이모인 아드리아 폐하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고 알려진 탓일까.

‘그런데 정말 사이가 안 좋으면 지휘를 맡길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론을 살폈다. 그는 황제 폐하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지만 그렇다고 제안을 건의했던 것을 후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에일의 말이 틀렸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두 눈동자에서 의욕을 뿜어내는 사내는 이번 임무를 사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출세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고, 나이트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신의 사제로서 성실히 작전을 수행하려는 태도였을 뿐.

그의 기본적인 마음 상태를 읽어 내리자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그에게 감복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운 느낌이 든다고 할까.

‘내가 신실한 사제가 되지 못해서인가.’

잠자코 생각하며 나는 몸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론은 그런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위험해지면, 저를 불러야 합니다.”

그는 은밀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저를 찾아야 합니다.”

“그 말은, 내가 반드시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너를 찾아야 한다는 거야?”

긴장을 풀어 보고자 우스개처럼 던진 내 반문에도 아론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지해졌고 심각해졌다.

“모든 생명이 귀중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귀한 것을 고르라면 말레드레드 하나만을 고를 겁니다.”

“……아론.”

“저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말레드레드를 제 근처로 배치한 것이고요.”

“……뭐?”

멈칫한 내 얼굴을 보면서 아론은 그제야 웃었다. 그 작은 반응이 너무 귀엽다는 듯이.

“이미 말했지만, 저는 말레드레드를 지킬 겁니다.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아론은 눈으로 내 얼굴을 훑었다. 그것은 손길처럼 내 피부를 어루만지는 눈길이었고, 애정과 애틋함을 떠밀어 보내는 다정한 감정의 물결이었다.

‘……안 돼.’

나는 이상한 기분에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에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에게 끌려가는 기분이 드는 건 왜 그럴까.

“그러니 꼭 저를 찾으셔야 합니다.”

아론은 여지없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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