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뭐요……?”
뜻밖의 질문이라서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마왕은 내 어리숙한 태도를 보며 더욱 재미있다는 미소를 베어 물었다.
“아니. 저번에 마물에 당해서 엉뚱한 신성력을 품고 오기까지 했잖아. 마물과의 전투는 순조롭냐는 말이야.”
나는 그를 말 없이 노려보았다. 마왕이 피식 웃었다.
“대답하기 곤란한가? 마물의 창조주인 내게?”
내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자 마왕은 퍽 귀엽다는 듯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가 보군. 하지만 마물은 내가 인간계로 보낸 게 아니야. 그들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먹이 삼아서 위로 올라가곤 하지.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할까. 인간계의 마물 출몰이 마족의 의지일 때도 있지만, 마물의 의지일 때도 있어.”
“……당신이 보낸 게 아니에요?”
나는 멈칫 다소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거짓말은 하는 것은 아닌가. 경계하며 바라보자 손을 욕조에서 꺼내며 담백하게 대답한다.
“나라면 좀 더 말끔하게 인간을 소거하는 방법을 쓰겠어.”
마왕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힘을 무리하게 쓰면 당장 마계가 무너지고 말지. 나에게도 한계가 있고, 생의 끝이 있으니까.”
나는 움찔했다. 여태까지 마왕이란 무적이며 무한의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에게도 힘의 소진이 있고, 생명의 유한함이 있다는 말에 나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여태 이런 것을 명확히 알려 주던 신성국의 교과서가 있던가. 어쩌면 이것은 활자로 찍어 내야 하는 정보인지도 모른다.
내가 심각해져 있자 마왕이 나른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내가 너무 많은 비밀을 알려 주었나 보군.”
그의 손이 바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음탕한 사제님을 앞에 두고 말이야.”
“아읏…….”
가슴을 둥글게 만져대는 손길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마왕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노련하게 내 가슴 외곽과 안쪽, 그리고 유두를 자극적으로 만져 왔다. 나는 아련한 열기가 몰려옴에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은 그런 나를 유심히 보며 말했다.
“목욕해서인지 이미 얼굴까지 달아올라 있군.”
“아…….”
“아주 요염하게 보여.”
그는 허리를 숙여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손길이 어느새 날갯죽지를 누르면서 그 아래로 미끄러졌다.
“정말 갈증 나게 만드는 몸이야.”
“읏, 아읏…….”
엉덩이를 양손으로 꽉 잡아서 누르듯이 주무르자 발끝까지 짜릿하다. 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마왕은 혀를 쯧쯧 찼다.
“벌써 이런 것에 허물어지면 어떡하나. 그대를 서서히 공략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데.”
“으응…….”
마왕은 이제 손을 허벅지로 이동시켰다. 그는 어느새 내 다리를 양쪽으로 잡고 있었고, 그대로 자신의 몸에 올라타게 하려는 듯 살짝 나를 들어 올렸다.
“아!”
나는 기묘하게 그의 허리에 올라탔다. 다리가 좌우로 그의 골반에 걸쳐져 있었고, 내 가슴은 그의 입술에, 하복부는 그의 중심에 맞닿아 있었다. 마왕은 젖은 옷을 굳이 입은 채로, 내 맨살에 비벼지는 감각을 즐긴다는 듯이 나를 보며 눈가를 휘었다.
“야외에서 보는 그대의 몸은 더욱 자극적이군.”
그렇게 말하며 마왕은 내 유두를 물었다.
“으, 으읏…….”
은은하게 혀로 휘감아 빨아 당기는 동작은 몸을 점차 예열시켰다. 이성이 무너지듯 눈앞이 조금씩 흐려졌고, 손끝에 힘이 빠져 가며 배 속에 야릇한 열기가 차올랐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가 한술 더 떴다.
“물에 닿지 않도록 꽉 잡아. 그대의 신성한 애액이 사라져 버리면 안 되니까.”
그는 웃음기 어린 어조였다. 나는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가 팽 돌아갈 정도로 자극적이어서, 그런 스스로가 믿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벌써 물을 흘리는가.”
마왕은 자신의 옷에 맞닿은 내 은밀한 곳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한 손만으로 나를 든 채로, 자신의 다른 손을 움직여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그것은 매우 뜨거웠고 나무 기둥처럼 단단했다.
나는 내 다리 사이에 그것이 생생하게 느껴지자 흠칫하고 말았다. 좋으면서도 절망적인 기분. 그것은 욕망에 빌붙어 늘 쌍으로 나를 따라왔다.
“자, 허리를 음란하게 흔들어서 내 것을 더욱 흥분시켜 봐.”
“아, 으, 으…….”
나는 그가 말하는 대로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어깨를 잡은 채로 공중에 떠서 허리를 움직이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자 마왕은 달래듯이 말했다.
“괜찮아. 그대의 속살은 여전히 벌렁거리며 내 것을 빨아들이고 있으니까.”
“우읏…….”
“느끼지? 내 것을 먹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대의 것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지금 애달픈 상태였다. 마치 활활 타오르기 직전의 초처럼 그를 향해 어서 불을 붙여달라고 간절해진 육신이었다. 나는 잡념을 앗아갈 정도의 강렬한 자극을 원했고, 그는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였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해 줘요.”
“뭘?”
일부러 물어오는 그는 확실히 짓궂다. 아니. 짓궂다는 표현으론 부족할지 모른다. 내 음부에 성기를 비비면서 내 살을 빨아대는 그가 모른 척 묻는 태도란 사악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애달프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것을 내 안으로 쑤셔 줘요.”
“그래? 얼마만큼.”
짓궂고 사악한 그에게 나는 이미 순종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아니, 나는 본래 욕망에 순종적인 인간이었다.
“머릿속이 흐려질 만큼.”
“좋아.”
내 대답에 마왕은 진하게 웃었다.
“소원을 이뤄 주지.”
마치 나의 신인 양 그는 거룩하게 답하고는 내 안으로 자신의 상징을 강하게 박아 넣었다.
“아흑……!”
입구가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래가 젖어 있었음에도 경이로울 만큼 큰 성기는 내 안의 속살을 모두 파열시켜 버리겠다는 듯이 꽉 채우며 들어왔다. 나는 배 속이 후끈해지는 느낌과 동시에 강렬한 압박감에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에게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성기가 들어오는 느낌이 평소와는 달랐고, 그 때문에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센 자극이 나를 뒤흔들었다.
“으, 읏…….”
“오늘따라 좀 뻑뻑한데.”
마왕은 내 귓가를 잘끈 깨물며 말했다.
“왜 그러지? 어딘가 긴장되어 있어.”
“아흣…….”
지금 이 순간 답하기엔 정신이 없었다. 그의 성기가 뒤로 빠졌다가 찔러댈 때마다 내 등판도 성기 모양대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배 속을 꽉 채우는 성기의 거대한 존재감에 나는 입술을 잘근 물었다.
“말해 봐. 무슨 일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지?”
마왕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나는 살기 위해 그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 신음을 거칠게 토해 냈다.
“어서.”
마왕은 나를 재촉했다. 나는 울상을 지었고, 실제론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괴로운 탄성을 내뱉은 후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고, 곧, 으읏, 싸울 참이긴 한데, 아…….”
“마물과? 평소와 달리 심각한 건가?”
“그, 그건 읏, 마, 말해 줄 수, 아읏! 없어…….”
마왕의 움직임은 조금씩 느려졌고, 나는 이제 고통보다 쾌감을 더욱 짙게 느끼기 시작했다.
마왕은 내 몸이 조금 이완되어 부드럽게 흔들리자 내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더운 듯 느릿한 숨결이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그렇단 말이지?”
무언가를 결론 내렸다는 듯이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가 잠시나마 침묵한 것이 의아했지만, 단순히 말해 줄 수 없다는 말에 화가 난 것이 아닐까 추측했을 뿐이다.
마왕은 계속해서 내 안을 찔러대며 물었다.
“아읏, 흐읏!”
“상당한 전투를 앞둔 모양인데, 잘할 수 있겠나?”
어느새 고개를 든 그는 웃음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번에 마물 때문에 다친 걸 들킨 뒤로 나를 허약하고 무능력한 자로 본 걸까.
자존심이 상했지만 나는 이미 그에게 안겨서 삽입당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야외 욕조에서 굴욕적인 섹스를 즐기는 입장에서, 그에게 이런 멸시를 조금 더 받는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가 내 엉덩이를 꽉 쥐며 성기를 극점으로 찔러 넣자, 나는 허리를 휘며 강하게 몸을 들썩였다.
“아읏!”
“말해 봐. 이길 수 있겠나?”
“그, 그건! 흣!”
다시 한번 마왕의 거센 삽입 동작이 이어졌다. 나는 손발이 떨려 더 이상 마왕의 어깨를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곧이어 내 몸이 뒤로 무너지자, 마왕은 얼른 검은 기운을 피워 나를 떠받쳤다.
“별로 믿음직하지 않군. 이번에도 내 체면을 깎을 것 같아 걱정이야.”
마왕은 괜히 저번에 다쳤던 곳의 피부를 응시하고는 나를 욕조 위로 끌어 올렸다. 나는 상체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하체는 마왕과 연결된 채 물속에 잠겨 있었는데, 마왕은 그 상태로 천천히 위로 걸어 올라왔다.
그러자 그를 따라서 물 밖에 완전히 나와 있게 된 나는 흐려진 눈으로 마왕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눈을 가진 그는 살짝 젖은 흑발을 아래로 떨군 채,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야하면서도 나른한, 관능적인 미남은 한편으론 소름 돋게 이질적이었다. 절대 사람이라 볼 수 없는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는 악의 존재.
그가 내게 엎드려 속삭여오는 것을 보며 나는 스스로를 어떤 궁지로 몰아간 건가 싶어 불현듯 뒷목이 서늘해졌다. 마왕은 음산할 정도로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기 전에 그대의 몸을 충분히 즐겨야겠군.”
“뭐…… 아!”
갑자기 어둠의 기운이 그에게서 폭발했다. 몇 줄기의 어둠이 내 가슴을 뒤덮자 나는 죽는 것인가 싶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프진 않았고, 차가운 금속의 느낌만이 나자 슬며시 눈을 떴다. 내 꼿꼿하게 솟은 유두에 걸려 있는 고리가 보인다. 고리 가운데에는 은방울이 달려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황당해져 바라보자 마왕이 키득거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나는 속절없이 흔들렸고,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미친 듯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