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20화 (20/220)

20.

나는 그가 어떤 방법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담겨 있는 짙고 깊은 욕망의 그림자를 굳이 찾아 읽을 필요도 없었다. 잡고 있는 손의 뜨거움이,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의 절절함이 나를 집어삼키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선망과 열망. 그것은 강렬한 감정이었으며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드러낼 수 있는 집약된 욕망의 완전체였다.

나는 그것에 저항할 만큼 바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력했고 나약했으며, 충동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고 2층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말레드레드-! 하고 외치는 게 들려왔다.

“어디 갔지? 말레드레드!”

“……아.”

에일의 목소리였다.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내가 돌아오지 않자 직접 찾으러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려고 했으나 나를 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론은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자는 절대로.”

일부러 술잔을 던진 거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질투와 분노를 머금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에일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저만 보세요. 제가 당신의 전부입니다.”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말인지.

나는 가슴이 속절없이 뛰는 걸 느꼈다. 우월감과 흥분감이 치솟는다. 덩달아 알 수 없는 열감이 올라왔다. 아래에 나의 동료들, 생사를 함께하는 사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시야를 점령한 눈부신 미남자가 우선이었다.

나는 그에게 끌리다시피 방으로 들어섰고, 그가 내 목을 감싸왔을 땐 적극적으로 그에게 입술을 겹치고 있었다.

“아읏, 읏…….”

질척거리는 키스가 끝나고, 아론의 손은 가쁘게 내 옷 위로 움직였다.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허물을 벗듯 옷을 벗어 갔고, 금세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의 여인이 되었다.

“바로 느끼고 싶어요, 오늘은 왠지.”

아론은 나를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

“가장 안쪽부터.”

“……!”

“그래도 될까요?”

그의 시선이 내 눈과 다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나는 움찔했지만 이미 그를 허락한 만큼 순서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다리를 벌려 주자 곧 그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온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허벅지에서 살랑거리는 그의 금발과 뜨겁게 번져 나오는 호흡을 음부에서 느꼈을 때, 긴 혀가 와 닿았다.

“아……!”

메마른 곳을 적시는 혀는 놀랄 만큼 열정적이었다. 시원하면서도 뜨겁다. 나는 그 모순적이고 황홀한 감각에 목 안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신음을 내질렀다.

“아읏, 흣……!”

깊이 파고드는 혀의 움직임에 눈을 질끈 감았다. 허리를 들썩이고 손발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지만 그가 주는 자극은 더 선명해져서 머릿속까지 뒤흔들었다.

“아읏, 읏……!”

긴 혀가 미끄러져서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온다. 아주 여리고 예민한 살을 핥으면서 깊게, 깊게.

“아……!”

나는 불길이 치솟듯이 몸이 더워지는 걸 느꼈다. 나는 몸에 불이 붙기 시작한 짐승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다리를 잡은 그의 단단한 손 때문에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더욱 그의 혀를 잔인할 정도로 느끼면서 쾌락에 신음할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해요.”

아론은 잠깐 혀를 떼며 중얼거렸다.

“더 느끼게 해 줄게요.”

“아론, 읏……!”

그의 입술이 음부를 빠는 순간, 내 정신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는 과일의 달콤한 즙을 빨아먹는 것처럼 은밀한 부위를 소리 나게 빨아 왔고, 그것은 청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사나운 쾌감이라서 나는 빠르게 절정으로 달려갔다.

“아……!”

온몸의 열기가 모조리 배 속으로 쏠리는 기분. 나는 곧 절정에 달해서 커다란 탄식을 터트렸다. 동시에 아래로 무언가 분출되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빠른데요?”

아론은 혀를 날름거리며 얼굴을 들었다. 그의 혀는 붉었고 내 체액이 묻은 입 주변은 번들거렸다. 나는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가시지 않은 절정의 감각에 헐떡였다. 아론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척 야해요. 제가 침대에서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아, 아론…….”

아론은 어느새 어둡게 미소 짓고 있었다. 금욕적이고 반듯한 그가 여느 때보다 저돌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말해 오는 것에 왠지 몸과 마음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론은 그런 나를 느낀 것처럼 조심스럽게 턱 아래부터 몸 전체를 쓸어 만졌다.

“크게 앓고 나니까 더욱 그리워지는 거예요. 말레드레드의 온기가.”

“으, 읏…….”

“이렇게 모든 게 멀쩡하다는 걸 느끼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아론의 손길은 더없이 부드럽고 야릇하다. 내 몸을 꼼꼼히 어루만지는 손길은 마치 모르는 곳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집착 강한 수컷의 손길 같았다. 아론은 그렇게 내 몸을 살피고는 내 몸의 가장 솟아오른 부위이자 민감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읏, 흣…….”

유두를 문지르며 유륜을 스치는 손길은 자극적이었다. 내 입에서 신음이 짙어지자 그는 애무의 도구를 손에서 입으로 바꾸었다.

“아, 아…….”

내 민감한 정점을 빨아들이는 그의 뜨거운 입술에 허리를 비틀었다. 그가 주는 것은 그 자극만이 아니었다. 그의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가 내 다리 사이를 비비면서 마찰을 주는 것 또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열기의 주된 이유였다.

“저도 이제 견딜 수가 없어요.”

한참 내 가슴을 빨고 주무른 그가 상체를 들며 말했다. 어느새 그의 풍성한 음모 아래 꼿꼿하게 서 있는 남성이 보인다. 나는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의 것이 완전하게 흥분했다는 것을 보여 주듯 잔뜩 부푼 모습이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몸이 온전할 것 같지 않다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말레드레드, 나를 봐요.”

아론은 마치 내 감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불편한 감정에서 이끌어냈다. 나는 자신의 흐트러진 금발을 한 손으로 넘기면서 극한대의 유혹과 매혹을 해 오는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꿀꺽.

왠지 온몸이 긴장되고 침이 절로 삼켜진다. 눈앞에는 환상적인 몸을 가진 사내가 있었다.

단단한 어깨. 군더더기 없는 가슴 근육들을 지나서 반듯한 치골이 보인다. 그 아래 짙은 금발의 음모가 있다. 바로 그의 우람하고 흥분한 남성이 살고 있는.

“제가 당신의 전부라고 했던 거 기억나죠?”

아론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성기를 한 손으로 잡고, 내 허벅지가 벌어지도록 내 배를 눌렀다.

그의 눈빛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고 선명한 욕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짓이 아니에요. 제가 말레드레드의 안을 다 채워서 증명해 보일게요.”

그리고, 아론의 성기가 내 안으로 치달아 왔다.

“아……!”

그가 나를 달궈 가는 속도가 평소와는 다르다. 그동안 굶주렸다는 듯이 그는 빠르고 정열적으로 허리를 움직여 왔다.

나는 그에게 붙들린 채로 뜨겁게 신음을 내뱉었고 온몸을 흔들었다. 나라는 불길에 아론이라는 불길이 더해져서 하나로 불타오르는 과정이 눈앞을 혼미하게 만들었으며 정신을 아득하게 날려 버렸다.

“아, 아론……!”

“말레드레드!”

절정에서 내뱉은 서로의 이름은 그 불길에서 가장 강렬하게 튄 불씨였다.

나는 그 불씨가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리길 바랐지만, 그의 뜨겁고 빛나는 금안을 보고 있노라면 그건 어려운 일이란 걸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불씨가 영원할 거란 듯이 눈 안에 담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너무 좋아요.”

아론은 나를 세 번째나 절정으로 몰아넣고서야 사정했다. 나는 어른거리는 시야 속에서 내 배 속에 퍼지는 뜨거운 그의 정액을 느꼈다. 아론은 사정을 하고 나서도 내 몸 안에서 성기를 빼지 않았고, 팔을 뻗어 지친 나를 끌어안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

말에 담긴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침묵했다. 그에게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애매해진다.

몸을 달궜던 열기가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것도 있었고, 그와 했던 빠르고 거친 정사에 지친 탓도 있었다. 한마디로 아직 냉정히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론은 고개를 들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

어느새 그의 손은 내 팔에 닿아 있었다. 그가 신성력을 쏟아부은 곳은 상처가 언제 있었냔 듯이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아론은 천천히 그곳을 손으로 쓸었다가 이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입술을 내리눌렀다.

“아, 아론.”

내가 당황하자, 아론이 대답했다.

“마물에게 공격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짜 걱정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진실을 이야기하듯 묵직해져 있었다. 나는 멋쩍게 말했다.

“……보다시피, 큰 상처는 아니라니까.”

“하지만 마물에게 당한 거잖아요. 그들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니까.”

아론은 한 쌍의 긴 속눈썹이 우아하게 내리뻗도록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름다운 눈동자가 가려지자 아쉬움이 느껴졌다.

“작은 상처라도 어떻게든 없애고 싶었어요.”

아론은 다시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성력을 무모하게 쏟아부어서라도.”

아론의 절절한 눈빛과 젖은 목소리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가 내게 품은 감정의 밀도가 얼마나 짙은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묵직한 감정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론 냉정하게 그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가볍게 만났다 헤어지는 사이에 너무나 부담스러운 감정선.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네가 아프단 이야길 듣고.”

나는 살짝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했어. 나 때문인 거 같아서.”

“말레드레드 탓이 아니에요. 이건 제가 결정한 것이고, 그래서 마땅히 얻은 결과인 거예요.”

아론은 다시 내 상처에 입술을 묻었다. 우아하게 내리누르는 그 동작은 외설적이라기보다 축복하는 사제의 행위처럼 신성했다.

나는 그의 오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에 더욱 마음이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왜냐하면 그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에게 병문안을 가지 않은 건, 우리 사이가 진지해 보이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헤어져도 문제없는 사이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열기와 흥분이 진정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론, 우린 가벼운 사이인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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