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1화 (11/220)

11.

그가 떠난 것은 새벽녘이었다. 나는 비몽사몽 간에 그가 나가는 것을 느꼈고, 아론은 내게 일어나지 말라고 하며 덮는 천을 목 끝까지 끌어당겨 주었다.

“더 쉬어도 돼요.”

그는 다정하게 말했다. 밤을 흐르는 별빛처럼 눈에는 신비로움과 평안함이 가득했다. 마치 너를 위해서 하늘에서 가져왔다는 듯이.

나는 그가 주는 분위기에 적잖이 긴장이 풀려 버려 침대의 늪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론은 아늑함에 빠진 나를 바라보고는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갔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무기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갑옷을 모조리 챙겨 입는다는 것은, 그가 수련을 하러 훈련소로 향한다는 것이니까.

소탕 작전을 하고 밤새 육체관계를 나누고 나면, 쉬고 싶을 만도 한데.

나는 작게 감탄했다. 그가 뛰어난 성기사가 된 것은 신분이나 재능 덕만이 아니란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아론이 과연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생각하다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왔나.”

다시 눈을 떴을 때, 마왕은 테라스에 서 있었다. 멀리서 화산이 폭발하는 광경이 여전히 암담하게 다가왔으며 목덜미에는 덥고 습한 바람이 불편하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의 앞에 거대한 원형 거울 같은 것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거울 표면에는 여러 인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마치 물결 속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그림자처럼, 모습은 뚜렷하지 않았다.

마왕은 내가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그 인영들에게 말했다.

“그만하지.”

그러자 거울이 흔들리며 인영들이 사라졌다. 어느새 거울은 검은 기운으로 변해 마왕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게 뭐죠?”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묻자 마왕이 순순히 대답했다.

“다른 장소에 있는 동족과 대화하는 방법이지.”

“동족? 마족을 말하는 거예요……?”

나는 새삼스럽게 겁을 먹고 말았다. 마왕이 입가를 올리며 물었다.

“무서운가?”

“…….”

솔직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제가 된 후 그들이 처참하게 만든 대지를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에, 마족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손발이 긴장되며 뒷목이 서늘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공포에 몸이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이다.

마왕은 얼어붙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다.

“나보다도 마족을 더 무서워하는가.”

“……당신은.”

나는 멈칫해서 말했다.

“저를 유희 상대로만 생각하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그건 그대에게만 해당되는 거야.”

마왕은 눈을 빛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잔혹함으로 번쩍이는 눈을.

나는 왠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대의 동족은 여전히 말살해야 하는 목표물로밖에 안 보이니까.”

마왕은 그대로 내 앞으로 따라붙었다.

“내가 그 무서운 마족들의 수장인 걸 잊은 건 아니지?”

“그, 그만…….”

나는 그가 가까워져 오자 덜컥 두려워지고 말았다. 그는 그런 내 반응을 즐기듯이 곧 목덜미로 입술을 가져왔다. 나는 그를 얼떨결에 밀었으나 곧 그에게 두 손목을 잡혀 순순히 목을 내어 주고 말았다.

굳어 버린 몸. 이내 그의 차갑고 낮은 숨결이 목덜미에 달라붙는 것이 느꼈다. 곧 그의 입술이 여린 살을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목을 뜯어 먹히는 게 아닌가, 싶어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마왕은 그런 내 상태를 느꼈는지 두 손으로 은근하게 내 허리를 감아 왔다.

“딱딱해져 있는 건 취향이 아닌데.”

“읏…….”

먹이 이야기인지 섹스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숨을 멈췄고, 마왕의 손이 내 옷 사이로 파고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를 해하려고 했다면 벌써 해했을 거야. 그러니.”

왠지 식은땀이 나고 열이 오른다. 그의 긴 손가락이 내 몸을 자신의 것인 양 매만지고 있었다.

“긴장 풀어. 다른 사내의 냄새를 달고 왔으면서,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섭섭하지.”

“……!”

나는 흠칫해서 그를 보았다. 마왕은 한쪽 입가를 올려 비웃음을 보였다.

“설마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그게…….”

“냄새가 이리 풀풀 나는데. 몇 번이나 했지? 그 금발의 성기사와.”

마왕은 상대가 누군지 확신하고 있었다. 기억을 훔쳐봤던 그였기에 오히려 뭐라 얼버무리는 것은 어설픈 짓이 될 게 분명했다.

나는 반응하지 않으면서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의 손가락이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며 신음을 내야 했다.

“아……!”

“말해 봐.”

마왕의 손이 은밀한 입구를 지분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불쑥 그의 손가락이 안을 찔러 거침없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아, 아읏!”

“이토록 끈끈하게 젖을 정도면 몇 번이나 이 안에 사정해야 하는지.”

“흐으읏…….”

“입으로 들려주기 싫다면 내가 직접 확인해 보지.”

마왕은 일부러 손가락을 구부려 안을 긁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서 흰빛, 붉은빛, 까만빛이 번갈아 가며 요란하게 튀는 걸 느꼈다. 마왕은 멈추지 않고 굵은 손으로 안을 휘저었으며 안쪽 질벽을 누르면서 빠져나오는 행위를 반복했다.

“아, 읏……!”

나는 그의 몸에 기대고 말았다. 늘어져서 고개를 그의 가슴으로 파묻자, 마왕이 그런 내 뒷목을 한 손으로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이내 상당히 강한 악력으로 누르기 시작하자, 나는 그 자극으로도 쾌감을 느끼고 말았다. 얄궂게도 아래에서 느껴지는 자극과 위에서 전달되는 자극이 합쳐져서 더욱 야한 탄성을 쏟아 내고 말았다.

“아……!”

“그대의 몸은 참으로 솔직하단 말이지.”

마왕은 웃으며 말하더니, 이내 나를 침대로 넘어뜨렸다. 마왕의 자극, 그리고 그 이전에 아론과의 관계로 이미 진이 빠져 있던 나는 저항하지도 못하고 등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마왕은 침대에 완전히 늘어져 버린 나를 보며 음험하게 눈을 빛냈다. 내가 헐떡거리는 모습에서 이미 완전하게 흥분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는 얼굴이었다.

“그대에겐 이런 게 강한 자극이 될 거야.”

“아, 아…….”

두 다리를 잡고 벌리자 음부가 그를 향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아론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그 틈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걸 느꼈다.

나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 치욕감. 그리고 그 치욕감 밑으로 치솟는 은근한 쾌감. 이런 것들이 혼합되어 내 얼굴에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나는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혼란한 감정적 기로에 섰다.

“이런, 이런.”

“아읏, 그, 그만 쑤셔, 흣…….”

나는 새하얗게 질려 더듬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색스러웠다.

“다른 사내의 체액을 많이도 담고 있군.”

“아……!”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나 본데. 이렇게 줄줄 쏟아 낼 정도면.”

“읏, 흐읏, 앗‥‥‥!”

마왕은 어느새 손가락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긴 손가락은 눅눅한 안으로 쑥 들어가 깊은 곳까지 찌르며 빠져나왔고,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흣, 아……!”

“그대는 벌써 절정에 도달한 느낌인데.”

“으, 읏, 그, 그만……!”

나는 애절하게 외치고 말았다. 그가 민감한 안쪽을 찌를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마왕이 히죽거렸다.

“정말 그만해도 되나? 이렇게 속살이 옴짝거리는 걸 보면 더 해 달라고 안달 난 거 같은데.”

손가락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눈앞이 핑핑 도는 것을 느꼈다. 입이 말라 왔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두 허벅지에 힘을 주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히려 그는 내 음부가 더 잘 보이도록 다리를 좌우로 벌렸으며 손가락의 움직임을 빨리했다.

“아, 아……!”

나는 절정을 향해 가는 짐승처럼 들썩거렸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하는 행위들이, 그리고 그게 다른 남자와의 관계 이후라는 음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오로지 쾌감만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아으흣……!”

“좋아.”

마왕은 내가 절정에 달해 크게 신음했다 늘어지자 그제야 손을 빼냈다. 나는 잔뜩 흐려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느새 그의 몸에는 옷이 사라져 있었다. 흉측하게 길고 큰 성기가 보였으며 그것이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해할 것처럼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성기사의 것을 모두 덮어 주지.”

“…….”

“나의 것으로.”

마왕은 음험하게 말했다. 그의 미소에는 잔혹함과 오만함이 묻어 있었고, 눈빛엔 어떤 자비도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아닌 자를 상대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찔하고도 현혹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나의 취향은 정말 구제 불능인 걸까. 자기반성적인 회의감에 잠깐 휩싸였을 때, 마왕이 허리를 밀어붙였다.

“윽‥‥‥!”

“다른 생각하지 마.”

나는 너무하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마왕은 그 살벌한 눈빛이 오히려 맘에 든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 차라리 그렇게 도발적인 얼굴로 나를 노려봐.”

“아읏! 읏!”

“그게 훨씬 맘에 드는 얼굴이니까.”

마왕은 어둡게 웃으며 뜨겁게 달궈진 중심을 삽입했다. 그의 성기가 파고들 때마다 허리 뒤쪽이 뻐근해질 정도로 쾌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에게 떠밀리다시피 침대에서 요동쳤다. 그가 내 몸에 자신의 성기를 박아올 때마다 나는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튀어 올랐고 뜨거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 행위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손가락이 내 유두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말해 봐. 이곳도 그가 빨았나?”

“아, 아읏…….”

“입술을 박고 혀로 빨며 구슬렸나?”

마왕은 은근하게 나를 취조했다. 그의 음란하면서 짓궂은 추궁은 그의 달궈진 성기가 안쪽을 꽉 누를 때마다 더욱 음란하게 나를 흔들었다.

나는 호흡을 가쁘게 내뿜었다. 마왕이 내 유두를 꾹꾹 누르며 살짝 잡아당기자 배 속부터 짜릿한 느낌이 몰려와 눈앞까지 뿌옇게 만들었다.

“봐, 이 음탕하고 요사스러운 몸을. 그대는 참으로 정직한 사제야.”

“아, 아읏!”

마왕이 더 깊게 허리를 내리눌렀다. 커다란 음경이 안쪽에 콱, 하고 박히는 느낌이 기막힐 정도로 선명해서 나는 절망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마왕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속삭였다.

“관계를 지독하게 좋아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 말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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