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대단하군!”
“마물 처리를 저렇게 깨끗하게 하다니!”
소환사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기사단장보다 더 실력이 좋은 거 아니야?”
“기사단장이 뭐야, 능력만 따지면 황제 직속 나이트로 손색이 없겠는데.”
“이상하다. 이미 갈 실력은 충분하고, 신분까지 훌륭한데. 왜 이런 곳에 머무는 거지?”
그들의 의아함은 모두의 의아함이기도 했다. 아론은 대외적으론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말로 중앙 진출을 사양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알게 모르게 황제의 미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왜냐하면 나이트들은 뛰어난 신성력과 기량, 그에 걸맞은 성과나 업적을 이룬 자만이 될 수 있었는데, 설사 모든 것을 충족했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뽑아 주질 않으면 나이트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이트는 황제가 직접 뽑아 고른 소수의 정예병이었고, 그녀의 눈 밖에 나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나이트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여 성기사들은 황제의 눈에 들 만한 일이라면 기를 쓰고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나이트가 되면 기사단장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나라 안팎으로부터 제국의 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다. 즉 어디서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주변 왕국에서도 나이트라고 한다면 제국의 국빈으로 대접해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으니, 말을 해 뭐하겠는가.
이렇듯 나이트의 찬란한 입지는 말년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적당한 때에 백작 이상의 지위를 얻어 호화로운 영지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낮은 신분이나 고만고만한 형편의 성기사들에겐 꿈이 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아론나이드가 나이트가 되지 못한 건, 아부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성격이 워낙 곧고 바르잖아.”
“그럴 수도 있지.”
따라서 실력이나 신분, 경험에서도 부족한 것이 없는 아론이 나이트로 불려가지 못한 것은 황제가 일부러 그를 뽑지 않았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알아서 추측하는 목소리를 냈다.
“아드리아 폐하께선 무척 까다로운 분이시니까. 조카라고 무작정 예뻐하진 않으실 거야.”
“맞아, 황제도 사람이니까. 무언가 예쁜 짓을 해야 좋은 자리를 주겠지.”
“저번에 벨라온 공작가의 장자가 별 업적이 없는데도, 폐하께 귀한 보석을 선물했다는 이유로 나이트가 된 걸 보면 분명해. 아론나이드는 폐하의 마음에 들지 못한 거지.”
소환사들은 금발의 청년에게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 측은하고 애처로운 시선 속에서, 나는 연정의 시선도 발견했다. 아론이 인기가 많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이지만 먼 곳에 있던 아론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이렇게 눈이 마주칠 줄이야. 멀리 있는데도 선연하게 느껴지는 눈길에 이상하게도 몸이 달아오른다. 그와의 정사에 여운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
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눈을 계속 마주치기엔 주변이 신경 쓰였다. 그와 관계를 하는 건 맞지만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태연하게 장화를 바라보았다. 이만하면 되었을까. 내 약한 신성력 때문에 잔존해 있는 마물의 껍질이 아직도 있을까. 어쩌면 소환 영역을 그려서 마계로 장화를 보내 버리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필수적이면서도 사소하고 귀찮은 작업에 열을 쏟던 나는 이만 청소를 끝내고 보고를 하러 가기로 했다. 숙소로 가서 쉬고 싶었던 것이다.
“말레드레드.”
그런 내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같이 소탕 작업을 했던 소환사였다.
“마물 청소하는 거, 도와줄까요?”
“아뇨, 거의 다 했어요.”
나는 적당히 웃었다. 그의 뺨이 보기 좋게 달아올랐다. 나를 향한 적극적인 호감이 느껴졌다. 그는 넉살 좋게 말했다.
“그럼 짐을 들어줄게요.”
“제 방어구인데요.”
나는 상냥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게 익숙지 않아서요.”
둘러 말했지만 만지는 게 싫다는 의미였다. 그는 머뭇거리면서도 도와줄 것처럼 손을 뻗었고, 나는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내 장화를 낚아챘다. 그리고 다시 발에 껴 보였다.
“봐요. 다 끝났죠.”
“아…….”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소환사가 당황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말레드레드!”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저녁에 소환사들끼리 모여 주점에 가기로 했는데, 함께 갈래요?”
소환사들끼리 친목 모임을 종종 갖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었지만,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정도는 알아 둬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협동 작전이니까 말이다.
나는 그와 그의 뒤쪽에 멀찍이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소환사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눈에서 호기심이, 몇몇은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뿜어져 나왔지만 지금은 하얀 침대가 우선이었다.
“다음에요.”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매우 아쉽다는 듯이 대답한 소환사는 다음 기회엔 꼭 함께하자는 말을 붙이고는 멀어졌다.
나는 지팡이를 챙겨 들었다. 마물의 표피가 떨어져 나간 방어구도 다시 챙겨 입었다.
장화를 신고 걷자 예전과는 다른 껄끄러움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마물의 표피로 부식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괜찮나?”
“네?”
보고를 하러 천막에 들어온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 앞엔 서류가 잔뜩 쌓인 나무 탁자가 있었고, 50대의 희끗희끗한 귀밑머리를 가진 남자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뒤쪽으로 낡은 듯한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왼쪽 눈에 자상이 눈썹을 가르며 나 있는 사내는 목소리만큼 매우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자상은 젊었을 때 마족에게 당한 흔적이다. 강력한 소환사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치열했던 마족과의 전투에서 한쪽 발을 잃었고 그 뒤론 전투가 아닌 실무만을 담당하고 있었다.
카란. 직책상 나의 상관이었지만 실제론 마물 소탕 작전을 전달하고 그 후의 보고를 받아 기록하는 신성국의 행정관이라 볼 수 있었다.
그는 짤막하게 설명했다.
“마물 소탕 시 선두에 서는 것 말이야.”
“영광일 뿐이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카란은 그런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젊은 혈기는 중요하지. 하지만 무모하지 않은 게 이 세계에서는 더 오래 살아남는 길이야.”
“…….”
내가 입을 다물자, 카란은 나를 힐끗 보았다.
“타박하려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선두에 설 일이 많을 거 같아 하는 말이야.”
카란은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상부는 자네를 사랑하는 듯하니.”
그 말은 내가 아닌 상부의 대외 정책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성기사와 사제를 관리하는 중앙은 소탕 작전을 할 때, 능력 좋고 반반한 인물들을 앞세운다. 이는 대외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신성국의 이미지를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어리고 재능 있는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했다.
“간사한 정책이지. 신성력이 없는 젊은 사람들은 결국 허드렛일만 도맡아 죽도록 봉사만 하다가 귀가할 텐데 말이지.”
카란은 그게 잘못되었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리고는 이내 멈칫했다.
“사설이 길었군.”
그는 보고용 기록 일지를 꺼내며 말했다.
“이제 보고해 봐.”
“네.”
나는 그에게 이번 소탕 작전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말없이 듣고서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고는, 보고를 마친 내게 나가 보란 듯이 고개만 까닥거렸다.
서류에 다시 얼굴을 파묻는 그를 보면서 문득 내 노후는 어찌 될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그처럼 실전에서 물러나 후배들을 보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때론 무표정하게, 때때론 중앙을 비판하며, 여전히 이 세계에 몸담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나는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 다 와 갈 무렵이었다. 멀찍이서 보였던 인영은 이내 뚜렷해졌다.
“아론.”
그는 밖에 서 있었다.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성기사는 허름한 숙소 천막 앞에서도 빛을 발한다. 나는 그를 보며 반갑게 말했다.
“왜 나와 있어. 안에서 기다려도 돼.”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주인이 없는 집인데요. 그럴 순 없습니다.”
“집이라고 하긴 너무 초라한데.”
“말레드레드가 있다고 하면 절대 초라하지 않아요.”
그는 사람의 기분을 띄워줄 줄 알았다. 나는 어느새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선 나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방어구를 풀기 시작했다. 아론은 가만히 있다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황금빛 눈이 내게 와 닿았다.
“…….”
뭐랄까. 저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가려워져 와 기분이 이상해진다. 유년 시절에 그를 찾아 헤매던 악몽이 끝났다는 행복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갑자기 사라진 때의 초초하고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걷잡을 수 없는 서러움도 치솟는다.
그러나 그 씁쓸하고 비애 가득한 감정들의 집합은 곧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얼어붙어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다시 말간 망망대해를 보는 듯한 잔잔함에 떠다닌다.
마치, 힘든 감정들을 극복해 냈다는 듯이.
한차례 이상한 감정 변화에 휩싸였던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여기.”
지팡이를 내밀자 아론은 그것을 받아 나무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차례대로 내가 벗은 가슴 방어구와 무릎 보호대까지 그의 손을 거쳐 선반으로 향했다.
“후우.”
무거웠던 장비를 벗자 시원함을 느낀다. 어깨까지 찌뿌둥하게 만든 소환사의 임무가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장화를 벗고 있었는데, 다른 것들과는 달리 마물에 부식된 장화의 앞코가 눌려서 벗는 게 수월치 않았다. 끙끙거리고 있자 아론이 말했다.
“제가 해 볼까요?”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를 시켜도 될까.
아론은 가장 주목받는 성기사로, 누구보다 훌륭한 배경과 핏줄을 가졌다. 고귀하다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람.
그런 그가 귀족도 아닌 사생아 출신의, 전투로 더러워진 소환사의 장화를 만진다는 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를 말 없이 바라보다가 다리를 내밀었다. 정말 할까 싶었는데,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론은 내 장화의 입구를 양손으로 잡고 손목을 비틀고 있었다. 그러면서 탈탈 털듯이 발을 빼내자 거짓말처럼 쉽게 장화가 벗겨졌다.
“마물 처리를 할 때 장화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서요. 자주 해 봤습니다.”
아론이 내 동그랗게 커진 눈을 보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장화 역시 선반에 올려놓았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가지런해 보기에 좋았다.
“고마워.”
아론은 내 인사에 조용히 웃었다. 나는 그 미소가 좋았다. 남들 앞에선 말수가 적어 보일지라도 그의 미소엔 요란하지 않은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화려하게 말하는 자들보다 그가 더 진실해 보였고 믿음직하게 다가왔다.
어디 미소뿐일까. 그의 눈빛이며 몸짓, 그 어느 하나 그의 진중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게 없었다.
그런 신실한 사내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