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음껏’이라니. 도대체 그는 얼마나 하고 싶은 걸까. 적나라한 속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귀여운 단어에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그러나 입가의 미소는 곧 사라졌다.
“아, 읏…….”
그의 입술은 예상했던 대로 뜨거웠고 자극적이었다. 나는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의 입술을 따라 피어난 열기가 내 몸 곳곳으로 번져 가며 알 수 없는 간질거림을 만들었다. 나는 몸을 가늘게 떨며 눈을 감았다.
곧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는 내 바지와 방어구까지 모두 벗겨 버리고 나를 나신으로 만든 상태였다. 씻지 않은 채로 첫 관계를 한다는 것에 불편함이 다시 느껴진 나는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으나, 그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듯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래를 느끼고 싶습니다.”
“뭐?”
“빨아도 됩니까?”
정중한 목소리는 달콤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머릿속의 망설임과 잡념이 날아갔다. 황금빛 눈동자는 순수했고 그래서 더 강렬하게 나를 지배했다.
“허락할게.”
이미 그를 방으로 들였을 때 모든 걸 허락한 상태였지만, 그는 이렇듯 다시 묻는 정중함으로 내 자존심을 높여 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우월감을 여전히 느끼고 있음을 깨달으며 그의 숨결을 느꼈다.
그는 성스러운 무언가를 맞이하듯이 나를 정성 들여 애무했고, 곧 배꼽을 지나 간지러운 감각이 음모에 닿았다.
나는 긴장되는 몸을 느꼈다. 다리를 열어 주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파고들었다.
“아, 흐읏.”
아론은 음부에 얼굴을 박고 혀를 움직였다. 길고 물컹한 혀가 느껴지자 온몸이 짜릿하게 울렸다.
“읏, 아론……!”
나는 그의 이름을 외치고 말았다. 초반엔 그의 머리칼이 살짝 음모에 닿아 간질거렸지만 그 느낌은 이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음부를 자극하는 뜨겁고 축축한 혀의 촉감만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뒤틀듯이 몸을 움직였다.
“아, 아론!”
자지러지듯이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강렬한 애무에 다리를 좁히자, 아론은 멈칫해서 고개를 들었다.
“……너무 좋아.”
아론은 그 말에 무언가가 잘못되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확인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았다.
이전보다 더 깊고 강하게, 혀를 놀리면서.
“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어렸던 울보 아론이 내 음부를 핥게 될 거라고. 금욕적인 성기사로 추앙받는 그가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해 내 멍울과 속살을 애무하게 될 거라고.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배덕감에 치를 떨면서도 좋아 죽겠다는 듯이 흐느꼈다.
아론은 내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손으로 허벅지를 고정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의 혀가 음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며 민감한 곳을 꾹꾹 누를 때면 나도 모르게 허벅지를 바르르 떨며 아랫배를 들썩거려야만 했다.
“흐읏……!”
쾌감이 휘몰아친다. 나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늘 상상해 왔고 바라 왔던 감각이 이런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반응했다.
“아, 좋아!”
“……더 기분 좋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가 어느새 혀를 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흐읏……!”
혀가 사라진 곳에 입술이 닿았다. 나는 촉촉한 감촉이 느껴지자 움찔했다가, 곧 그가 입술을 묻고서 멍울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아까보다 훨씬 크게 신음을 터트렸다.
“아앗……!”
높아진 신음을 따라서 눈앞도 빙그르르 돈다. 온몸을 쥐어오는 듯한 강렬한 자극에 이상한 느낌을 받고 만다. 도저히 멈출 수 없는 파도에 떠밀리는 기분.
곧 나는 그게 절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
힘이 빠진 채로 나는 왠지 사과를 하고 말았다. 아론은 입술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 체액으로 젖어 있는 입술이 한없이 민망했고 적나라해 보였다. 아론은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쁠 뿐입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행복이 넘쳐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눈빛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불편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그렇게 솔직하게 반응해 주세요.”
그의 감정의 밀도가 내 감정의 밀도와 비교할 수 없이 짙은 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우리가 정말 가벼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치솟았지만, 그의 벗은 몸을 보자 불편한 생각들이 날아가 버렸다.
그의 몸은 정말 훌륭했다. 누구든 탐낼 것 같은, 완성된 남자의 육체는 어린 시절의 유약함을 모두 벗어던진 듯했다.
용병이었던 아버지를 닮은 걸까. 나는 근사한 몸이 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자 긴장하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열기가 그의 하체에서 느껴졌다.
나는 내 허벅지에 닿은 거대한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커다랗고 단단한 성기는 아름다운 외양과 달리 흉기처럼 느껴졌다.
두려우면서도 어떤 느낌이 들까, 호기심이 치솟았다. 내가 각오하듯 주먹을 말아 쥐자, 귓가에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을 원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깊어진 황금빛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란 게 너무도 명확해서 마주 보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는 다정하고, 또 음험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원한다는 것이 분명했다.
“말레드레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제게 모든 것을 주세요.”
주문과도 같은 그 말은 귓가가 아닌 가슴에 박혔다. 나는 그가 원하는 게 내 육체에 한정된 것일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그의 목을 손으로 끌어당겼다.
나 역시 그의 전부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아……!”
굵은 성기가 안을 가득 채우며 밀고 들어왔다. 배 속이 뻐근해질 정도로 커다란 성기였다.
“후……. 말레드레드…….”
좁은 질벽으로 들어오는 게 쉽지 않았는지 아론의 미간이 찡그려져 있었다. 그는 최대한 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들어왔지만, 그의 성기는 내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크기였다. 나는 최대한 다리를 벌렸고, 골반이 벌어지도록 허리를 들썩였다.
그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지만, 성기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질벽을 채우면서 밀고 빠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아랫배가 화끈할 정도로 강하게 쑤셔 왔다. 그것은 짜릿함과 쾌감을 동반했으며 믿을 수 없는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전율을 느끼며 온몸을 떨었다. 아론은 내가 흥분하는 것을 보자마자 동작을 빨리했는데, 커다란 성기가 강하게 밀어 넣어졌다가 나가니 전신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전해졌다.
“흣……!”
거침없는 동작에 몸을 넘어서 정신마저 모두 파괴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제발, 천천히……!”
“아.”
아론이 고개를 들었다. 놀란 듯이 커진 눈은 혹시라도 내가 고통스러웠는지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천천히만 해 줘.”
나는 그의 뺨을 슬쩍 만지면서 말했다. 아론은 내 손길에 멈칫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흣, 아……!”
선한 그는 착실하게 내 말을 따랐다. 훨씬 느려진 동작으로 움직이는 그는 저주에 걸린 것처럼도 보였다. 왜냐하면 그의 눈은 온통 음욕으로 물들어서, 더 깊고 강하게 움직이고 싶어 하나 몸은 나를 위해서 느린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꿈틀대는 그의 근육이, 그리고 거칠어진 숨결이, 그 음험한 눈빛과 하나가 되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의 아래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읏, 말레, 드레드……!”
아론은 생각보다 빨리 절정에 달했다. 그도 그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지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사정을 허락하듯이 그의 몸을 허벅지로 꽉 조였다.
“흣……!”
아론이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낮게 탄식했고, 나는 배 속을 채우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아찔함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나는 눈을 감으며 그의 사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미안해요. 처음이라…….”
머리를 깊게 수그린 그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따스하게 끌어안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말레드레드…….”
그는 조용히 내 이름을 읊조렸다. 그 목소리는 고요했으며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몸에 남은 열기와 잔존하는 쾌락을 희미하게 느끼면서 그의 ‘처음’이라는 말을 상기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도 이제 막 훈련소에서 나왔을 터였다. 그전까지는 금녀 구역에 있었을 테고, 그 이전에는 어찌했던 걸까.
그의 외양을 생각해 보면 훈련소를 들어가기 전부터 많은 유혹을 받았을 텐데.
‘어째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첫 관계를 맺은 걸까. 나는 그의 단단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그가 도시에서 사라진 시점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열세 살 즈음이었던가. 황제의 서거로 도시 전체에 암울함이 깃들었다. 아론은 그때 홀연히 사라졌다.
그를 키운 귀족은 그가 도망갔다고만 말했다. 나는 변명하듯 말하는 그의 가라앉은 눈을 보면서 혹시 아론이 어딘가에 불쌍하게 묻힌 건 아닌가 생각했다. 양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아이가 죽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었다. 그렇게 죽은 아이는 늘 도망갔다고 표현되었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커다란 황금빛 눈의 유약한 소년을 머릿속에서 떨쳐 버리지 못하고 나는 깊은 숲과 강 상류를 한동안 떠돌아다녔다. 그가 잘 가던 버려진 유적지나 망가진 성터를 오랫동안 배회하기도 했다. 그의 흔적 혹은 시체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끝끝내 찾지 못했다.
괴로워하던 나는 결국 맘 편하게 생각해 버렸다.
아론은 어딘가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물론 그 후로도 몇 년은 꿈속에서 아론을 만났다. 소년은 마물에 반쯤 잡아먹히고 있거나 어둠 속에 묻혀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를 구하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고 그날은 더욱 침울해했었다.
“말레드레드.”
그런데, 그 악몽 속의 소년이 믿을 수 없이 근사하게 성장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