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45화 (345/345)

# 345

이렇게 러시아를 원나라에게 넘기는 것으로 대한 제국의 군사행동이 중단되자 EU와 대한 제국 간의 전쟁도 점점 소강상태에 빠졌다.

EU로서는 구사일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EU로서도 마냥 기뻐할 입장은 아니었다.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도전했던 8회 차 초반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EU는 여러모로 힘이 빠진 상태였다.

남미 절반을 잃었고 북미에 대한 지배력도 흔들리게 되었으며 인도 식민지는 아예 교통이 차단되었다.

더군다나 동쪽으로 대한 제국의 제후국인 원나라와 마주하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아랍 세력과 치열한 기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한때 대한 제국의 라이벌로까지 부상했던 EU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상당히 초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대한 제국의 경우 8회 차가 끝날 때쯤 되니 세계 초강대국을 넘어, 그야말로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나라가 되었다.

실질적인 대한 제국의 영토야 동아시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일부에 국한되지만 제후국까지 포함하면 영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세계 절반 이상은 되었던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군사력은 세계 전체가 연합해도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현실의 미국에 버금가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의 초강대국이 된 것이다.

비록 8회 차에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호영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의 성과라면 최소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었다.

“EU와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잠시 동안 평화를 갖게 되겠군.”

“아마 EU에게는 최악의 평화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호영은 8회 차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금이야 대한 제국이 EU나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압도하고 있다지만 유저들이 퇴장하고 NPC들이 다시 전면에 선다면 어떻게 역사가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EU가 재부상하여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도전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겉으로는 EU와 평화협정을 맺고서 뒤로는 EU의 분열을 획책하였다.

유저들이야, 현실의 여론도 있으니 EU의 해체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NPC들은 입장이 다른 법이었다.

호영은 유럽인들 중에, EU를 원치 않는 이들을 찾아냈고 은밀하게 그들을 후원하였다.

일이 그의 뜻대로 돌아간다면 8회 차가 끝나기 무섭게 EU에 큰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처음에는 동유럽 회원국들이 EU의 탈퇴를 주장할 것이고 나중에는 네 강대국이 분열하지 않을까?

어쩌면 10년 내에 EU가 사분오열될 수도 있었다.

“시베리아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도 반대 세력이 전부 축출되었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

“9회 차의 대한 제국은 훨씬 강대한 나라로 발전해 있을 겁니다.”

“이보다 강해진다면 어떤 나라가 되려나?”

100년 뒤의 대한 제국이라······.

회귀를 경험한 호영으로선 사실 기대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였다.

그가 기억하는 세상은 8회 차까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8회 차도 내가 기억하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9회 차에서도 8회 차처럼만 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그가 한 생각처럼, 어차피 8회 차에서도 그의 기억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역사가 변해도 너무 변해 버렸던 까닭이었다.

그러니 그의 기억 속에 없는 9회 차라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이룩한 대한 제국은 어떤 위기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였으니 말이다.

#에필로그

8회 차에 대한 제국이 이룩한 성과는 현실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로열 그룹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인데, 이제 어떤 나라도 로열 그룹을 단순히 기업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기업을 넘어선 국가, 그것도 영국이나 프랑스, 한국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으로 대하였다.

당연히도 로열 그룹의 수장인 호영의 위상은 한 국가의 정상들과 다를 게 없었다.

세계 강대국들이라면 대부분이 호영과의 외교 채널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의 위상도 더욱 높아졌다.

더 높아질 곳도 없었지만, 중국 내전으로 촉발된 한국의 경제위기를 해결해 줌으로써 전 국민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물론 그 위기를 통해 호영의 천문학적인 현금 자산은 기업들의 주식, 부동산, 채권 등으로 바뀌어 영향력이 훨씬 강화되었고 말이다.

“이제 여유가 조금 생길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여행이나 가 볼까?”

“여행요?”

“한 번도 가족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잖아. 그러니 호근이도 데리고 가족 여행을 가 보자.”

“좋아요!”

경선이 환하게 웃었다.

여행을 가자는 호영의 말이 그만큼 기뻤던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겠어.’

호영은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내년에는 센추리를 플레이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자고. 여유 시간에는 최대한 가족과 함께하도록 노력하자고 말이다.

물론 이 같은 다짐이 과연 지켜질지는 그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경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세계 제패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센추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업적 점수를 얼마나 받게 될지 궁금하군.”

여행을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경선을 뒤로 하고 호영은 센추리 접속 기기로 향하였다.

어느덧 정산 시간이 되었다.

8회 차의 업적을 정산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어쩌면 중국만한 땅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한때 초보자의 섬이라 불렸던 센추리의 가상 대륙.

매일같이 전쟁만 일어나는 본 게임과 다르게,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진정한 가상현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상 대륙은 이제 전 세계인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지구이자, 현실이었다.

우스운 말일 수도 있었지만, 이 가상 대륙에서 가상현실을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가상 대륙의 문물은 현실 이상으로 발전하였고 자유도도 엄청났는데, 대륙의 크기가 어느덧 러시아와 북미를 합친 것보다 커져 있었다.

아마 9회 차에는 지구의 육지 면적보다 커질 것 같은 기세였는데, 이렇게 되면 호영의 소유로 된 영토는 현실의 러시아보다 넓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8회 차에 호영이 세운 업적을 생각하면 그 정도쯤 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70% 이상을 집어삼켰으니 말이다.

“근데 왜 아무것도 안 뜨는 거지?”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갑자기 그의 눈앞이 번쩍하며 찬란한 황금빛 광채가 쏟아졌다.

‘뭐지? 8회 차의 업적 정산부터는 뭔가 달라지는 건가?’

한동안 변화가 없었던 센추리에 새로운 무언가가 추가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광채가 사라지고 그 안에서 의문의 여성이 튀어나오자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패치나 이벤트가 아니라 더 중요한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송호영 님.”

“······누구십니까?”

“신입니다.”

뜬금없는 그 말에 호영은 눈을 찡긋거렸다.

“신이라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송호영 님을 과거로 불러들인 이가 바로 저라는 뜻입니다.”

“······!”

호영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였다.

정말 신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존재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동안 쭉 지켜봤습니다. 1회 차부터 8회 차가 끝날 때까지.”

여성이 불쑥 그와 같은 말을 꺼내니 호영은 가슴을 옥죄는 기분을 느꼈다.

굳이 지금 호영의 눈앞에 나타난 이유가, 더 이상 지켜볼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저승사자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군.’

대한 제국에서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황제로서 군림하는 그지만, 신 앞에서는 일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애써 불안한 표정을 감추며 여성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만약 8회 차까지 결과를 보고 성과가 미흡하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걸 처음으로 돌려서 새로운 회귀자를 뽑을 계획이었죠.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무리 신이라지만 세상을 게임처럼 과거로 돌릴 수 있다니.

“······저 말고도 회귀자가 있었습니까?”

“예. 정확히 14만 7,801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럼 그들은 지금 어디에?”

“원래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꾼 현실에서.”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이대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었으니 최악은 면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이, 심지어 기억까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막막하게 느껴졌다.

‘기억을 잃은 채 과거로 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입술을 질끈 깨물던 호영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시간을 돌리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만약 시간을 돌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뭘 하실 겁니까?”

“지금까지 그래 왔듯,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멈추지 않으실 겁니까?”

“예.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 보고 싶습니다.”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그리 답했다.

그러자 여성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호영으로선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소였다.

“호영 님이 바꾼 현실이 저로서는 가장 마음에 듭니다.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그 말씀은?”

“시간을 돌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 그러니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성은 그 말을 하더니 갑자기 흐릿해지기 시작하였다.

“가시는 겁니까?”

“예. 저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을 겁니다. 센추리에 간섭할 일도 없을 것이고요. 갑자기 과거로 돌리지도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뜻대로 살아가십시오.”

“······감사합니다.”

호영은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왜 자신을 선택하였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호영에게 기회를 주었다.

무려 회귀라는 기회를 말이다.

그러니 호영으로선 감사한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성은 그런 호영의 감사에 그저 미소만 지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진짜 가 버렸군.’

-플레이어의 8회 차 업적 점수는···.

여성이 사라지고 눈앞에 익숙한 문구가 떠올랐다.

업적 결산에 대한 문구였다.

호영은 업적 결산이 어떻게 되가는지 본체만체 하고는 여성의 말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였지?’

만약 어려운 주문을 했어도 그대로 지켰을 호영이다.

하지만 초심을 지키라는 주문은 그에게 그다지 어려운 주문이 아니었다.

“경선에게 미안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도 미친 듯이 센추리를 해 줘야겠네.”

호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센추리는 그에게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황제로서 군림하는 삶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깝지가 않았다.

그러니 신이 말한 대로, 초심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리라.

《로열 센추리》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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