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습니까? 비록 진군 속도는 느려졌지만 전투 자체는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래 봤자 병력의 충원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잖아?”
“······.”
“100만 명을 죽이면 200만 명을 충원할 기세야. 지금의 러시아는 아무도 말릴 수 없어. 이래서 차르를 죽였던 것인데 말이야.”
평범한 국가였다면 진즉에 백기를 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망자 숫자만 100만이 훌쩍 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평범한 나라가 아니었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광기에 휩싸였던 추축국의 나라들과 비슷하였다.
물론 가장 비슷한 것은 그 당시의 러시아, 아니 소련이겠지만.
아무튼, 지금의 러시아는 대한 제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전투 자체야 압도적이지만 아무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한다 해도 러시아군의 병력 충원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야말로 불사신을 상대하는 기분이군.’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 되살아나는 불사신.
지금의 러시아는 불사신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대한 제국의 국력이 강성하다 해도 불사신과의 전쟁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일단, 군을 볼가강까지 회군시킨다.”
호영은 마침내 그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
러시아에서 승승장구하던 원정군을 회군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폐하! 원정군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 쏟아부은 재원과 병사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이대로 회군하기에는 손실이 너무 큽니다!”
그의 결단에 군부 장성들이 다급히 반대를 표하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러시아를 멸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으니 미련이 남은 것이다.
하기야, 러시아를 멸망시켜야만 EU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련이 남지 않는 게 이상하였다.
호영도 그 때문에 마지막까지 선택을 주저하였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지만 호영은 미련에 질질 끌려 다니는 인물이 아니었다.
스스로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지금 회군하지 않으면 회군하고 싶을 때 회군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올해만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야. 아직 3년이 남았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8회 차가 시작된 지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호영의 말처럼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더욱 어려운 싸움을 해야 될 것입니다.”
“소장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군부야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했지만 러시아의 수도 정계는 여전히 어수선한 상황입니다. 아예 역성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 지금이 러시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계속된 반대에도 호영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EU가 없었다면 호영도 군부 장성들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이 러시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적기인 것은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EU에서 준비된 300만 대군이 아랍과 남미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제 EU와의 전면전이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러시아를 당장에 멸망시킬 수 있다면 모를까, 설령 모스크바를 점령한다 해도 수천만의 러시아인들이 계속 반기를 들 것이니 지금은 러시아를 정복하는 것이 시기상조로 보였다.
“러시아는 어차피 가만히 놔두어도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러시아는 나중에 처리하고 지금은 EU를 상대한다.”
이 말에 군부 장성들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받들었지만, 조금 뚱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번만큼은 호영이 판단 미스를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장성들은 알게 되었다.
호영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았음을.
왜냐하면 그해 겨울, 러시아에 유례없는 지독한 추위가 찾아왔던 것이다.
“폐하의 선견지명은 실로 대단하기 그지없습니다.”
“황제 폐하가 제국의 통치자라는 사실이 정말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자랑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번에도 황제 폐하의 결단이 제국을 살렸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그와 같은 결단을 내리시지 않았다면 아국은 정말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꼴이 날 뻔했습니다.”
호영은 자신의 통찰력과 결단력에 대해 극찬하는 군부 장성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회귀 전의 기억이 아직까지는 쓸 만한 것 같군. 뭐 그래 봐야 이제 몇 달 남지 않았지만 말이야.’
인간의 역사야 이미 바뀔 대로 바뀌어서 호영의 기억이 쓸모가 없었지만 기상 변화는 예외였다.
7회 차가 끝날 때, 소빙하기를 예상하여 식량난을 대비하였듯, 이번에도 회귀 전의 기억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
물론 유례없는 혹한이 아니더라도 호영이라면 러시아와의 전쟁을 차후로 미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무인들조차 버티기 힘든 혹한이 찾아온 이상, 러시아는 한동안 노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러시아가 아닌 EU와의 전면전.
호영은 곧장 EU와의 전면전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남미의 상황이 이대로 고착화될 것 같은가?”
EU가 동원한 300만의 대군 중 100만가량의 병력이 남미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도 추가적인 병력을 동원하여 EU의 진군을 막아 내고 있었지만, 남미는 본래 EU의 영향력이 강한 대륙이었다.
독립 왕국들이 추가로 한국의 세력에 합류하여 균형의 추를 맞췄지만, 그뿐이었다.
남미를 완전히 대한 제국의 세력권으로 삼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뜻이었다.
“추가적인 병력을 지원 보낸다면 흐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는 합니다.”
“추가적인 병력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최소 30만 이상의 대군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도 아니고 최소가 30만이라······. 모으기야 어렵지는 않겠지만 슬슬 병력의 한계가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1년 넘게 지속된 세계대전급의 대 전쟁으로 무한한 역량을 뽐내던 대한 제국에서도 조금씩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해외로 원정을 갔거나, 육로 수송 또는 해로 수송을 담당하는 군병의 숫자가 700만에 달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대한 제국의 본토에는 여전히 300만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병력은 어디까지나 본토를 수비하기 위한 병력.
중국, 일본 열도, 만주, 한반도, 몽골, 연해주까지, 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한 병력이었지 원정을 보낼 수 있는 병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병력만이 문제가 아니라, 식량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막대한 식량을 생산하는 동남아시아가 전화에 휩쓸리고, 본토에서도 계속해서 대규모 원정을 일으키는 바람에 비축된 식량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른 나라들처럼 농민들까지 전쟁에 동원하지는 않아, 아직 여력이 남아 있었지만 병력을 더 동원한다면 식량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전처럼 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란 뜻이었다.
“지금으로썬 추가적으로 병력을 동원하는 것보단, 장기전을 노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제국보다 EU의 상황이 더 안 좋을 것이니 말입니다.”
“장기전이라······.”
호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장 세계를 제패하기 원하는 그로선 장기전이란 제안이 썩 마음에 들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장기전이 최선의 대안이기는 하다.’
EU를 몰락시킬 뾰족한 수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제국의 역량으로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EU를 몰락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이스라엘을 멸망시킴으로써 유럽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랍은 동맹 세력일 뿐, 대한 제국이 아니었다.
유럽 공격에 협조는 하겠지만, 그래 봤자 총력전이 아닌 최소한의 병력을 동원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오히려 아랍의 입장에서는 지금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가장 이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의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대한 제국이 직접 아랍으로 군대를 보내 유럽을 공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육로든 해로든 간에 보급로가 지나치게 길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소수의 특수부대 위주로 파견한 것도 바로 보급로 때문이었으니 유럽을 직접 타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러시아를 점령하는 데만 성공했다면······.’
다시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를 정복하는 데 성공하였다면 러시아가 건설한 철도를 통해 유럽을 직접 타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겨울이 시작된 이상, 러시아에 미련을 갖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방법이 없다면 장기전이라도 노려야겠지.”
솔직히 장기전이라면 자신 있었다.
EU가 제아무리 강대국들의 연합이라지만, 8회 차의 대한 제국은 그야말로 세계 초강대국 수준의 국력을 가진 나라였다.
군사력뿐만이 아니라 체력도 엄청나다는 뜻인데, 지금 수준의 전쟁이라면 몇 년이고 지속할 수 있었다.
본토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내년이 되면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소란도 완전히 정리가 될 터.
동남아시아에서 새로 얻은 영토들은 땅 자체가 풍요롭기까지 하니, 식량 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EU의 상황은 어떨까?
EU는 현재 러시아를 지원하느라 엄청난 재원이 소모되었고, 인도 식민지 같은 경우는 동남아시아 및 아랍의 소란으로 교류가 완전히 중단된 상황이었다.
여기에 남미와 북미 식민지들은 대한 제국과의 전쟁으로 국가 경제에 악영향만 끼치고 있었으니, EU의 몇몇 국가들은 벌써 파산 직전에 몰려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새로이 모집한 300만의 대군도 EU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식민지의 병사들이라면 모를까, 유럽 본토의 병사들이라면 고용비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중무장까지 시켜야 하니, 재원 소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EU가 장기전을 치르는 게 가능할까?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하였다.
‘다만, 3년 이상을 버틴다면 그대로 8회 차가 끝나 버린다는 게 문제인데.’
그래서 호영은 가능하면 장기전을 피하고 싶었다.
EU의 입장에서는 3년만 버티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썬 이것 말고 방법이 없었다.
아까도 말했듯,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대신, 내년이 되면 시베리아라도 먹어야겠다. 만약, 8회 차가 끝나기 전까지 EU의 항복을 얻어 내지 못한다 해도 영토만큼은 최대한 넓혀야 하니 말이야.”
“확실히 시베리아를 먹는다면 업적 점수도 상당히 얻을 수 있겠군요. 인구는 별로 없지만 영토 크기는 무지막지하니.”
“업적 점수뿐만이 아니라, 시베리아에 있는 자원도 가치가 상당해. 천연 광물도 많고 석유와 가스에 마정석을 품고 있는 마물의 수도 어마어마하지.”
시베리아에는 니켈, 금, 은, 석탄, 다이아몬드와 같은 천연 광물이 풍부하였고 현실보다 가치는 낮겠지만 석유와 가스도 많았다.
무엇보다 대한 제국에는 서식하지 않는 다양한 마물들이 서식하였는데, 마정석의 가치를 생각하면 마물 역시 엄청난 자원이라고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