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
“차르가 미친 게지요. 자기 백성들을 이렇게 사지로 내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러시아는 전쟁에서 이긴다 해도 몇 세대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내정에만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호영은 인상을 썼다.
중앙아시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런 낭패를 보게 될 줄이야.
“원정군을 절반으로 나눠야 하나?”
“최소 50만 이상의 병력을 원나라에 지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50만이라······. 과연 그 정도로 충분할까? 러시아의 기세를 보면 무제한적으로 병력을 보낼 것 같은데?”
“······.”
아무도 그의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러시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정들이 다 죽으면 어린 아이들이나 여자들까지 끌고 올 것이 러시아 놈들이야. 특히 그 차르 놈은 완전 미치광이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군을 생각하면 된다.
그때의 소련군은 하루에 몇만 명이 죽건, 그 이상의 병력을 마구잡이로 징집시켰으니까.
아니, 센추리의 러시아는 오히려 소련보다 더할 수도 있었다.
총을 줄 필요도 없이 약 하나면 평범한 인간을 강인한 전사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집결시킨 230만의 원정군 중 절반은 원나라에 보낸다.”
“예. 알겠습니다.”
30만에 달하는 대군이 이미 원나라에 파견 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추가로 100만에 달하는 병력을 파견시켰다.
대한 제국으로선 원나라를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러시아를 압박할 방도를 찾아내도록.”
누군가의 말처럼 러시아가 계속해서 병력을 징집하여 전쟁에 내보낸다면 대한 제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은 200만이지만 500만, 어쩌면 1천만이 넘는 러시아군을 상대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대한 제국이 강하다지만 이 같은 소모전을 계속해서 감당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를 직접 공격해서라도 소모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차르 암살을 시도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차르만 죽는다면 후계자까지 없는 상황이니 러시아 국정이 마비되지 않겠습니까?”
러시아를 압박할 방도를 찾으라는 말에 충구가 기다렸다는 듯 그와 같은 말을 꺼냈다.
“실패했던 것을 또 하자고?”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호영이 생각하기에 차르 암살은 완전한 실패나 다름없었다.
차르의 친위군을 얼마만큼 죽였고, 황태자까지 제거한 것과 관계없이 차르를 죽이는 것은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충구처럼 몇몇 유저들은 차르 암살이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고작 다섯 명으로 차르의 친위 조직을 거의 반쯤 붕괴시켰으니 실패는 실패이되, 충분한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인원을 파견한다면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할 것입니다.”
“많은 인원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열 명. 열 명이라면 차르를 암살하는 데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호영은 그 말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실패할 리가 없다고? 다섯 명을 보냈을 때도 우리는 실패할 리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지?”
“2배입니다. 2배. 차르의 친위군은 이미 붕괴된 상태이고 러시아는 두 번의 시도는 없을 거라며 방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 달 동안 모스크바에 어느 정도 정보망을 갖추어 놓기도 하였고 말입니다. 지금이라면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대한 제국에 아무리 강력한 무인이 많다고는 하나, 누가 또다시 S랭크 무인이 암살에 나갈 것이라 생각할까?
S랭크 무인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무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러시아조차 방심하고 있지 않을까.
‘성공한다면 폭주하고 있는 러시아를 잠재울 수 있다. 나중에 시베리아를 집어삼키는 것도 한결 쉬워질 것이고 말이야. 그럼 실패한다면 어떨까?’
지난번의 실패로 대한 제국은 많은 것을 잃었다.
강력한 무공에 충성심까지 겸비한 다섯 명의 무인을 잃었고 국격과 위신에 큰 손상을 입었다.
또한 세계 지도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던 대한 제국의 화경 고수들을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갑자기 EU의 편에 선 것도 지난번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7회 차까지만 해도 대한 제국을 적대하면 언제 암살을 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튼 대한 제국은 지난번의 실패로 이렇게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에 또다시 실패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의 집착을 오히려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끝없이 나오는 화경 고수들도 두렵게 느껴질 테고 말이야.’
아시아권 국가들에서도 S랭크의 수는 많아 봐야 다섯 명에 불과하였다.
그마저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들만 다섯 명이지, 나머지는 두세 명이었다.
이렇게 S랭크의 존재가 희귀한 시대에 암살로만 열 명의 S랭크 무인이 동원된다면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 제국이 마음만 먹으면 각국의 지도자를 언제든 제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다.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온다면 차르 암살에 승인해 주도록 하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결국 호영은 충구의 주장을 받아 주기로 하였다.
또다시 차르 암살을 시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때는 스무 명을 보낸다.’
본국에서만 마흔 명이 넘는 S랭크 무인을 보유한 대한 제국이었다.
제후국의 무인들까지 합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에 여력은 충분하였다.
만약 이번에 실패한다면 그 뒤엔 더 많은 암살자를 보낸다.
그래서 어떻게든 러시아의 차르를 죽이리라.
“아, 그런데 아랍 국가들과 접촉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가 대한 제국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조금만 지원을 해 준다면 제국의 편에 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지원을 해 줘야 하지?”
“경제적인 지원과 무기 지원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나?”
“이왕이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협력해 준다면 더욱 관계가 좋아질 것 같습니다. 현재 아랍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전부 이스라엘에서 비롯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말입니다.”
아랍 세력은 6회 차 당시 종교 전쟁에서 패배하여 지금은 세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EU의 위성국가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이 아랍에서 세력을 크게 팽창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아랍 세력들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수부대를 파견해 주면 되겠군.”
호영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실제로도 그는 EU를 방해할 수만 있다면 특수부대를 파견하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예. 경제적인 지원에 특수부대까지 파견해 준다면 이스라엘을 상대로 충분히 선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에게 밀리는 이유도 EU의 지원 때문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놈의 EU는 어디에든 끼는군.”
“우리 대한 제국이 동아시아에서 웅크리고 있을 동안 유럽 열강들은 전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혀를 찼다.
국력은 분명 대한 제국이 월등한데, EU를 압도하지 못하는 지금의 형국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 원정군이 출정을 한다면 동남아시아를 완전히 재패할 수 있고, 차르 암살에 성공한다면 러시아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랍 세력과의 공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EU의 위성국가인 이스라엘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대리전의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EU가 대한 제국의 본토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역사가 없듯, 대한 제국 또한 EU의 본토인 유럽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차르를 암살하려는 것처럼 대규모 킬러 부대를 보낼 수도 없는 일이지.’
러시아와 다르게 유럽에는 사람을 보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피부색이었다.
동양인의 숫자가 적지 않은 러시아에서야 동양인 몇 명 움직이는 것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유럽은 달랐다.
유럽은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마법과 신성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기에 막무가내로 킬러들을 보낼 수도 없었다.
아무리 무공 실력이 출중하다 해도 상대의 정보가 부족하다면 암살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외에도 EU라는 세력이 애초에 연합이란 이름으로 뭉쳐 있는 세력이기 때문에 한두 명을 암살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프랑스 왕이나 영국 왕을 죽인다고 극적으로 바뀌는 게 없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대한 제국에서는 차르 암살은 실행에 옮겼으면서, EU의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것은 계획 단계에서 포기하였다.
‘물론 EU에게 타격을 줄만한 방법이 암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모략을 사용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권모술수.
호영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는 그이기에 더러운 수단이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의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판단하기에 EU 같은 연합 세력의 경우 권모술수로 상대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이를테면 이이제이를 이용하여 독일과 프랑스 아니면 스페인과 영국 등 EU의 중추 국가들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뭐 내부가 어수선한 교황청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지. 일단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EU의 정보는 의외로 얻기가 어려우니까.’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EU에게 일격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따라 주지가 않았다.
암살이든 권모술수든 EU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칭기즈칸처럼 육로로 유럽에 쳐들어가기엔 변수가 너무 많았고 말이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 결과를 지켜보자. 어쩌면 차르가 암살된 것을 보고 EU에서 항복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야.’
***
대한 제국 VS EU.
아시아 VS 유럽.
두 거대 세력의 전쟁은 센추리를 즐기는 모든 유저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아니, 유저들뿐만이 아니라 시베리아 북쪽 끝에 있는 인구 100만도 안 되는 조그만 공화국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세계의 패권이 걸려 있는 그레이트 게임.
비록 두 세력에 속해 있지 않는 국가들도 이 그레이트 게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승자가 정해진다면 그 승자는 현대의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니 말이다.
“러시아군이 200만을 동원하였지만 연전연패하고 있어. 원나라에게, 아니 대한 제국에게 지고 있는 거지.”
베네수엘라의 독립군을 이끌고 있는 볼리바르의 말에 동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아. 기세등등하던 아시아 태평양 연합군이 대한 제국군에게는 속수무책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