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
특이하게도 러시아의 비기는 마법이나 무공처럼 마나를 축적하거나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기를 사용할 때는 따로 마나가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건강한 육체뿐이었다.
즉, 육체만 있다면 누구든 비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러시아의 비기가 약제술이었기 때문이다.
“저 역시 러시아의 비기에 대해 어느 정도 들은 것은 있습니다. 일반 병사들을 전투에 미친 광전사로 만든다지요? 육체도 엄청나게 강해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그뿐입니다. 러시아 비약의 효과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무공에 비교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소. 그냥, 병사들을 이류 무인 정도의 육체를 가지게 만들 뿐이니까.”
테무르는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가 이야기한 대로라면 결코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의 비기는 아니었다.
무공도, 다른 어떤 비기도 익히지 않은 일반 병사를 약 하나로 이류 무인 정도의 육체를 가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사실 대한 제국에서야 이류 무인이 괄시를 받는 거지, 전 세계 심지어 아시아에서조차 이류 무인은 꽤나 대접을 받는 존재였다.
제국 기준으로 이류 무인이란 B-에서 B정도에 해당하는 랭크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테무르의 말대로 러시아의 비기가 별거 아닌 수준이었다면 원나라가 이런 처지에 놓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군요. 확실히 그 정도 수준이라면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하지만 풍월주는 테무르의 허세 섞인 발언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랑도의 대장인 풍월주가 보기에도 러시아의 비기는 그리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원나라처럼 인구가 적고 무공의 수준이 낮은 나라라면 러시아의 비기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대한 제국은 아니었다.
일반 병사를 이류 무인으로 만드는 것?
당장에 화랑도만 해도 일류 이상의 무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이류 무인이야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무인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보다 몸을 다루는 실력이었다.
즉, 검술이나 창술 그리고 보법 따위가 중요하였는데 육체만 이류 무인급이 되었다고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적이다! 러시아군이 나타났다!”
그때마침 러시아의 군대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푸, 풍월주. 일단 후퇴를 해야 할 것 같소.”
“후퇴라니요?”
“적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군을 뒤로 물려야 하오.”
러시아를 상대로 자신감을 보이던 테무르가 막상 적군을 보더니 그런 말을 하였다.
족히 15만이 넘어 보이는 러시아군의 규모를 보고 자신감을 잃은 것이다.
“테무르 경, 저 정도 숫자라면 화랑대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숫자를 봤음에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예, 그래 봤자 20만도 안 되는 규모이지 않습니까? 저를 한번 믿어 보시지요. 기필코 승리하겠습니다.”
“······.”
풍월주의 패기 넘치는 모습에 테무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칭기즈칸을 꿈꿨던 이 몸이 고작 러시아 따위에게 겁을 내다니!’
지금 풍월주가 보여 주는 모습은 본래 테무르가 보여 줬어야 할 모습이었다.
테무르는 엄청난 야심가인 동시에 담대 무쌍한 기개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속된 패배로 저도 모르게 위축되어 허풍쟁이처럼 행동하고 말았다.
고작 20만도 안 되는 러시아군을 보고 두려움에 질린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소! 풍월주의 뜻이 그렇다면 나 역시 여기서 싸우리다!”
“고맙습니다.”
그 같은 테무르의 모습에 풍월주는 씩 미소를 짓고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백색 군단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의 백색 군단은 위풍당당한, 마치 제국의 군단을 보는 것처럼 기세가 넘치는 군대였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만 그런 것이고 실제 전투력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였다.
애초에 제국의 군병들은 마약이나 다를 게 없는 비약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 게 없어도 충분히 강했으니 말이다.
“방포하라!”
쾅! 쾅!
백색 군단을 향해 4만의 원나라군이 포탄을 쏘았다.
대한 제국에서 지원해 준 대포로 포탄을 쏜 것이다.
그러자 포탄을 맞은 백색 군단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
워낙 밀집되어 있다 보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왜 저들은 대포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독일에서 후장포를 제법 많이 지원하였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진격 속도가 빠르다 보니 야포들이 뒤처진 것 같소. 전쟁이 발발하고 일주일 뒤부터는 그냥 보병만으로 움직이던데.”
“보병뿐이라면 더욱 쉽겠군요.”
계속해서 쏘아지는 포탄.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기만 하였다.
포병 전력이 없으니 반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포병 전력이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였다.
바로 옆에서 전우가 포탄에 맞아 죽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우라’를 외칠 정도였는데, 그야말로 광전사가 따로 없어 보였다.
그러한 러시아군의 모습에 풍월주의 미소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마약이나 다를 게 없다던 러시아 비약의 위력이 생각보다 만만찮다고 느꼈던 것이다.
“우라! 우라!”
러시아 비약의 위력은 돌격에서 정점을 찍었다.
‘돌격!’을 외치며 총검을 달랑 들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백색 군단.
원래라면 화승총으로도 두 방은 쏠 수 있는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B급 무인의 육체를 만들어 준다더니 러시아군의 이동속도가 어마어마하였던 것이다.
“우리도 이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역시 기병들과 함께 움직이겠소. 살아서 봅시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전개되는 전장을 바라보며 그와 같은 대화를 나누더니 따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테무르는 용기병을 이끌고서 러시아군의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고, 풍월주는 화랑대와 함께 정면을 향해 움직였다.
“우라! 우라!”
정면을 향해 움직인 풍월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군과 맞닥뜨렸다.
러시아의 중군과 마주한 것이다.
서걱!
풍월주는 10배가 넘는 적을 마주하였지만 조금도 물러섬 없이 맞서 싸웠다.
그가 이끄는 화랑대는 대한 제국이 자랑하는 특수부대 중 하나였다.
10배 차이 정도로 후퇴하거나 주춤할 자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군과 화랑대의 전투는 화랑대가 완전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랑들은 고작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을 때 러시아군은 수백 명을 넘어 수천 단위의 목숨이 끊어진 것이다.
“빌어먹을, 끝이 없군.”
“이거 좀비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화랑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좀비라도 되는 것처럼 끝없이 덤벼대는 러시아군을 보며 사기를 잃은 것이다.
“이래서 원나라가 수도를 빼앗기고 연전연패를 거듭한 것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러시아군은 광전사 수준이 아니었다.
비명도, 기합도 지르지 않고 오직 ‘우라!’만 외치며 돌격하는 러시아군의 모습은 좀비나 다를 게 없었다.
러시아 군병들의 눈빛만 봐도 살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적을 죽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전투력 수준은 화랑들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사기나 정신 무장을 비교한다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좀비 같은 러시아군의 모습을 보면 사기나 정신무장이 과연 존재하는지가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확실히 대단하긴 해.”
평범한 병사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전사를 만들어 주는 비기. 무공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함이 많게 느껴졌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결코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우리를 이길 수 없다.”
풍월주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검에 기를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가 검 전체를 뒤덮자 그는 그대로 기를 러시아군을 향해 내던졌다.
콰아아앙!
마치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강이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사지가 절단되고 심장이 꿰뚫려도 계속 싸우겠다면······ 아예 육신을 없애 주마.”
풍월주는 그렇게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S랭크의 위용을 과시하였다.
* * *
호영은 모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북미에서도, 중앙아시아에서도 연일 승전보가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멸한 군단이 네 개에, 전멸 직전까지 내몰린 군단이 두 개입니다.”
“원나라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사실상 전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군부 장성들은 가장 먼저 중앙아시아에서 있었던 전쟁 결과에 대해 떠들어 댔다.
화랑대의 활약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하였는데, 원나라에 파견 간 화랑대는 그야말로 전광석화가 따로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러시아군을 북쪽으로 밀어낼 정도였다.
당연히 전투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고 말이다.
“미주로 파견 간 싸울아비와 해병대의 활약도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EU의 식민지 왕국들을 다시 동부로 몰아냈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화주의 반군 세력도 순식간에 진압하였습니다. 이제 만주국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원나라에서 있었던 전쟁 결과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나자 이번에는 만주국에서 있었던 전쟁 결과에 관해 떠들어 대는 군부 장성들이었다.
‘8회 차가 시작되고 거의 처음으로 듣는 기쁜 소식이라 그런지 모두가 흥분해 있군.’
호영은 피식 웃었다.
그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군부 장성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물론 하나같이 시커먼 사내들이라 아이들처럼 귀엽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만주국과 원나라의 전쟁은 승기를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지원해 주지 않아도 두 나라는 알아서 승리를 가져다줄 터. 그러니 이제 우리는 다른 곳을 봐야 한다.”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흡족해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기색으로 말을 꺼내는 호영.
그런 호영의 모습에 신료들과 군부 장성들은 차분함을 되찾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동남아시아라 사료되옵니다.”
“소신도 동남아시아를 지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를 차지한 조선국을 제외하면 모든 나라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신료들이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동남아시아였다.
만주국과 원나라를 지원함으로써 동쪽과 서쪽의 위기는 해결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
그렇다면 당연히 남은 것은 남쪽뿐이었다.
물론 남서쪽에 있는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그리고 북쪽의 시베리아도 방비하기는 해야 했다.
하지만 남아시아든 시베리아든 아직까지는 그리 위협적인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도는 여전히 군웅할거의 시대였고 시베리아는 소빙하기를 정면으로 맞이하여 안 그래도 부족했던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
결국 두 곳 모두 대한 제국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남은 곳은 베트남, 태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 열강에 버금가는 지역 강국들이 산재한 동남아시아였다.
“하면 백제나 가야, 발해 등의 제후국들에게 얼마만큼의 지원을 해 줘야 할 것 같으냐?”
“물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