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32화 (332/345)

# 332

호영은 결코 일부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신하들이 한족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정말 능력이나 충성심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견제하려는 의미가 컸다.

즉, 한족들이 중앙정부에 입성하여 권력을 분할하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기에 호영은 한족 장수들의 반란 진압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이 같은 호영의 선택은 다행히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게 해 주었다.

반란 진압이 성공적으로 끝이 난 것이다.

때마침 원재가 호영에게 보고하였다.

“스스로를 초패왕의 환생이라 주장하던 항적이란 반군이 마침내 바다 너머로 도주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로 망명한 것 같습니다.”

호남성과 강서성을 시작으로 절강성, 복건성의 반군을 진압하였고 드디어 광동성의 반군까지 진압이 완료되었다.

아쉽게도 반군의 수장, 초패왕 항적이란 자는 잡아들이지 못했지만 반군을 모조리 진압한 것은 분명하였다.

“드디어 소요 사태가 끝이 난 것인가.”

“폐하, 이제 다른 지역에도 토지개혁을 시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겠지. 시간을 끌 필요가 없으니.”

벌써 7회 차가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3분기가 된 것인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남은 시간이 결코 많다고 볼 수 없었다.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시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만 토지개혁은 토지개혁대로 진행하되, 짐은 순행에 나서겠다.”

“6회 차 때처럼 수도를 순방하려는 것입니까?”

“아니, 수도만 순방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국을 순행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전국의 민심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순행을 나가야 한다.”

그 말에 원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자란 존재는 신비로우면 신비로울수록 통치에 이로웠지만, 그렇다 해도 얼굴을 아예 안 내비치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얼굴을 안 내비친다는 것은 결국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괜히 지방 곳곳을 순행했던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백성들에게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지, 한 번쯤은 알려 줄 필요가 있었기에 순행을 나선 것이다.

호영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그는 이번 기회에 강남의 백성들에게 이 나라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일깨워 줄 생각이었다.

‘내가 아니라면 그 어떤 황제도 순행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유저라는 이점으로 현실에서도 정무를 돌볼 수 있는 그만이 순행에 나서기에 가장 적합하였다.

“그럼,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일은 없도록 해. 민심을 얻기 위해 순방에 나서는 것인데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테러도 철저하게 대비하고.”

“예.”

그렇게 호영은 전국을 순행할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청나라에게서 강남을 받아 낸 이후, 처음으로 하는 순행이었다.

“황제 폐하 만세, 대한 제국 만만세!”

다행히 수도 인근의 민심은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저 엄청난 환호성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강제적으로 내지르는 환호성일 수도 있었지만 백성들의 밝은 표정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기야 수도의 민심이 나쁠 이유는 없지. 만주족이나, 한국인들이나 나로 인해 득본 이들밖에 없으니까.’

다만 문제는 수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민심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이다.

강서를 지나는 동안에 호영의 행차를 보고 환호성을 내지르는 백성 무리는 별로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절을 하거나, 고개를 숙이며 경외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절강과 복건을 지날 때는 경외감이 아니라, 두려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반청복명 운동 당시 한국군에게 호되게 당한 지역이라 그러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광동성과 광서성에 진입하니 백성들은 경외감도, 두려움도 아닌 적개심을 표출하였다.

“한족이여! 일어나라! 우리는 더 이상 야만족의 개가 아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곳은 한족의 땅이다! 오랑캐는 저리 꺼져라!”

어떤 이는 중화 혁명을 부르짖다 효수되었고, 또 어떤 이는 호영이 탄 마차를 향해 돌을 던지다 효수되었다.

하지만 여러 명이 효수된 상황에서도 호영을 향한 적대감은 여전하였다.

‘2년 안에 저들이 돌이 아닌 환호성을 날리게 만들리라.’

아직 강남의 농민들은 토지개혁이 자신들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알지 못했다.

그저 외국의 폭군이 나타나 이상한 명분을 만들어 지주들을 때려잡는다고만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년이 되어야 토지개혁의 효용을 알게 될 터.

아마 그때쯤 되면 호영을 향한 적대심으로 가득한 광동성과 광서성의 백성들도 호영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6개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순행을 끝마치고 수도로 돌아온 호영은 다시 정력적으로 정사를 돌보았다.

이번 회 차의 최대 과제는 토지개혁을 성공으로 마무리하는 것.

시간이 부족하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해 볼 생각이었다.

“폐하, 소장은 초원으로 가겠습니다!”

그가 정사를 돌보는 동안, 세계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북미에서는 남군이 승기를 잡으며 연신 북군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동남아에서는 대한 제국의 황자들 때문에 전쟁이 멈출 날이 없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지역 강국인 베트남과 태국은 이미 국토의 절반 이상을 제국의 황자들에게 빼앗겼고, 필리핀 같은 경우는 아예 나라가 통째로 빼앗긴 상태였다.

나머지 국가들도 그리 평화롭지는 않았는데 중국 난민들이 대거 밀려오고 있었고 해적들까지 기승을 부리는 터라, 연일 전쟁이 반복되었다.

참고로 인도에도 진출한 황자가 있었는데, 황위 쟁탈전에서 무려 두 번째로 순위가 높았던 대비라는 황자였다.

대비라는 이름의 황자는 오다와 김성근과 의형제를 맺고서 인도에 진출하였는데 이들이 인도에서 보여 주는 활약에 여러 영웅호걸들의 웅심에 불을 지폈다.

호영의 눈앞에 있는 사내도 바로 그 영웅호걸들 중에 한 명이었다.

“테무르, 준비는 다 끝났나.”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장수의 이름, 테무르.

한때 칭기즈칸을 꿈꾸던 몽골의 영웅도 대비 황자의 활약에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예! 러시아까지 정복해 내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군.”

“폐하께서 지원해 주셨는데, 그 정도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장이 무슨 일이 있어도 황제 폐하와 대한 제국의 위엄을 서방에 알릴 것이니.”

호영은 피식 웃었다.

8회 차에 세계 초강대국이 될 러시아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테무르에게 상당한 지원을 해 준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테무르의 충성심이 부쩍 상승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총애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런 착각을 해 준다면 나로선 나쁘게 볼 일이 아니지.’

호영이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테무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만, 소장은 초원을 정복하러 가겠습니다.”

“성공하길 기원하겠다.”

척!

테무르는 가슴에 주먹을 올리고는 그대로 떠났다.

사 황자와 함께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나를 따르던 장수들은 전부 전장에 나가 있는데 나만 이러고 있으니 뭔가 어색한 기분이군.”

언제나 전쟁을 곁에 두었던 그다.

무공 실력도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편에 속하는 그이기에 전쟁이 벌어지면 항상 선두에 서고는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어떤 전쟁이 벌어지건, 뒤에서 지원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끝이었다.

그 어떤 전쟁도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국력을 가진 대한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전장을 나돌 수는 없는 일이니.”

“그렇긴 하지.”

충구의 말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남까지 집어삼킨 대한 제국의 국력은 그야말로 세계 전체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상대 비교로 본다면 현대 미국과 비교해도 그리 처지지 않을 것 같은 국력을 자랑하였는데, 이 정도로 강성한 국가의 군주로서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랭크가 설령 S랭크라고 해도 말이다.

‘S랭크를 넘어선다면 또 모르겠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S랭크를 넘어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S랭크에 오른 것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쓰게 웃다가 충구에게 말했다.

“비축 식량을 모으는 것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폐하께서 지시했던 일이라 시급하게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전국에 식량 창고를 건설하였고 군부에도 군량미를 최소 20년 치 이상 분을 비축하라는 명령을 전달하였습니다. 다만, 문관들 중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식량을 비축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신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앞으로의 백년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백년대계라……. 풍요로운 강남을 얻었는데 식량이 부족한 경우가 있겠습니까? 제국의 국력이라면 식량이 부족할 정도의 위기를 겪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애초에 제후국이 변방을 감싸고 있으니 타국이 침략할 일도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충구가 의아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확실히 그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다.

안 그래도 지주들이 일으킨 반란군을 때려잡으면서 엄청난 양의 식량을 획득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대한 제국은 전통적으로 식량의 시세를 조정하기 위해 정부에서 식량을 사들였는데 그렇게 비축된 식량도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더 이상 식량을 비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전쟁이 문제가 아니다. 기후가 문제야.”

“……기후라면, 설마?”

“곧 소빙하시대가 올 것이다. 북방에 있는 만주족이나 몽골족을 최대한 남쪽으로 이주시킨 것도 바로 소빙하시대를 피하기 위함이야.”

“……!”

충격적인 사실에 충구는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하였다.

총명한 그도 기후 변화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10년 이내 기후가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기후가 변하면 전 세계적인 식량난이 찾아올 것이야.”

회귀 전에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한반도에서만 아사자가 100만이 넘게 발생했을 정도로 엄청난 식량난이 찾아오는 것이다.

‘다른 일들이야 인간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뀌고 있지만 자연은 그대로겠지.’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신뢰하지 않고 있는 호영이지만, 기후 변화 같은 것은 예외로 둘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그가 많은 역사를 바꾸었다 해도 자연까지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호영으로선 소빙하시대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요로운 대지를 차지했다고 안심했다간 그의 후계자들이 어떤 실책을 범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북방 인구를 남쪽으로 옮긴 것도 그 때문입니까?”

“몽골에서는 주드라고 부른다지? 재앙이 올 것임을 알고 있는데 대피를 시키지 않을 수 없지. 기후가 변하면 상황이 가장 안 좋아지는 곳은 북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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