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
한족 출신을 등용하여 반란을 진압할 것이라는 호영의 말에 많은 이들이 반대를 표하였다.
6회 차에 이미 한족 출신의 제후를 다섯 명 임명한 적이 있었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한족들을 불신하였다.
몽골이나 북한, 심지어 일본 유저까지 요직에 중용하는 상황에서도 그러했다.
워낙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짐 역시 그들이 제국에 충성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으니까. 단지, 짐은 그들의 욕망을 믿을 뿐이다.”
반청복명 운동으로 한창 떠들썩할 때도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던 한족들이 많았다.
민족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개인을 더 중시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뜻인데, 호영은 바로 그 개인주의자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한족들은 권력의 중심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욕망 앞에서는 가문도 민족도 생각지 않는 법이니까.’
호영이 결심을 확고히 하자 더 이상 반대하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반대하는 대신 한족 출신 중에 인재라고 생각되는 무장들을 추천하였다.
A랭크의 무공 실력을 가진 자, 관군에게 협력하여 반군을 진압했던 자, 녹영군 장수 출신이었던 자 등등.
호영은 곧바로 신하들이 추천했던 무장들을 황궁으로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앞에 모인 한족 출신의 인재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제국의 장수가 될 수 있게 해 주겠다. 대신, 충성심을 증명해라.”
난데없이 충성심을 증명하라니?
저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였다.
다만 눈치가 비상한 몇몇 이들은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임을 알았는지 눈을 빛냈다.
“충성심을 증명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토지개혁을 원활하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
예상했던 대로 한족 출신의 인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들은 대부분이 한족 신사층 출신으로서, 한족들 중에서는 기득권에 속했다고 볼 수 있는 자들이었다.
한마디로 토지개혁의 최대 피해자라는 것인데, 호영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토지개혁을 맡기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토지개혁이 성공한다면 소신도 중앙정부의 관료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장수가 된다면 어느 정도의 권력을 주어지는 것입니까?”
“폐하! 맡겨만 주십시오. 비록 소신은 한족이지만 그 어떤 장수보다 충성심 있는 제국의 장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신사층의 토지에 대한 집착은 어마어마하였지만, 권력욕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특히나 대한 제국은 한족 출신의 경우, 제후를 제외하면 중앙정부 입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나라였다.
청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앙정부의 관료나 중앙군의 장수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한족 신사층에서는 권력욕을 가진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권력욕이 상당한 한족들은 중앙에만 입성할 수 있다면 어떤 명령이든 무조건 따를 것이다.
물론 모두가 긍정을 표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층의 청장년 사내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기회를 노렸지만 중년 사내들은 대부분 언짢아하거나 두려운 기색을 하고 있었다.
토지를 개혁하려는 호영의 방침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한데, 토지는 어떤 식으로 개혁하시려는 것입니까?”
중년 사내 중 한 명이 언짢은 기색을 그대로 드러낸 채 호영에게 물었다.
“유상 몰수,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일정한 크기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에게 유상으로 토지를 몰수하여 소작농들에게 유상으로 토지를 분배할 것이다.”
“유상 몰수라면 시세대로 대가를 지급해 주시는 것입니까?”
“제국은 부유하다. 뒷말이 나올 일은 하지 않아.”
“……흠.”
불편한 기색이던 일부 중년 사내들이 표정을 바꾸었다.
제국이 강압적으로 한족 신사층의 토지를 강탈할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의외로 합리적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적당한 대가를 지급한다 한들, 토지를 몰수한다는데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신사층에게 있어 그깟 재물보다 중요한 것은 토지였기 때문이다.
‘저런 자들 때문에 토지개혁이 시급하다. 만약 토지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대한 제국은 유럽 열강들이 산업혁명을 할 때 여전히 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거야.’
여전히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일부 중년인들을 보며 호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토지개혁은 비단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시행하려는 정책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제국의 강성함이라면 강남 전체의 민심이 이반한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애초에 민심을 가장 쉽게 사로잡는 방법은 한족 신사층을 회유하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가 토지개혁을 시도하려는 이유는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서가 아닌, 제국의 백년대계를 위해서였다.
앞으로 문명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게 될 터.
지금 대한 제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며 명실상부 초강대국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지만 시대에 뒤처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토지를 개혁하여 기득권의 자본을 농업이 아닌 상공업에 옮기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상공업이 발전해야지만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짐의 명령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겠습니다.”
잠시 주저하던 이들도 결국 호영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대세가 정해졌는데 그들이 반항한다고 큰 의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예상했던 대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한족들을 불러 모아 토지개혁을 준비하던 도중, 어디서 소문이 퍼졌는지 전국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반청복명 운동이 한창 벌어질 때도 잠잠하던 신사층이 자신들의 토지를 유상 몰수하여 농노나 다를 게 없는 소작농들에게 유상분배한다는 소식에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뒤늦은 반란이군. 작년이었으면 조금 귀찮았을 테지만 말이야.”
호영은 조소를 짓고는 곧바로 토벌군을 편성하였다.
한족 출신의 장수들이 지휘하는 토벌군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원재를 통해 이들의 뒷조사를 시켰는데, 역시나 이 중에서 배신자가 나왔다.
영웅호걸로 이름 높은 위정국이란 자였다.
“왜 배신을 했지? 공을 세우면 공신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오나라가 통치할 때도, 명나라가 통치할 때도, 심지어 야만족인 청나라가 통치할 때도 우리 가문의 것이었던 토지를 강탈하려는데 어찌 가만있을 수가 있겠소!”
배신자라고 거창한 대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권력욕보단 토지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 이들이었다.
하기야 거창한 대의가 있었다면 반청복명 운동이 일어났을 때 참여를 했을 터.
“너 같은 것들을 계속 용납하는 나라들이었기에 오나라도, 명나라도, 그리고 청나라도 결국엔 무너진 것이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위정국의 말을 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
서걱!
호영은 단호하게 위정국의 목을 쳤다.
“계속 경계의 끈을 놓지 말도록. 또 배신자가 나올 수 있으니.”
“차라리, 충성심이 증명된 이들에게 반란 진압을 맡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토지개혁을 시행하기도 전에 배신자가 나오니 원재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충언을 하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군.”
“……송구합니다.”
“전에도 말했듯, 한족의 반란은 한족이 진압하도록 만드는 게 우리에게 이롭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원재는 여전히 근심을 털어놓지 못한 표정을 하고 물러났다.
그런 원재의 모습에 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측근인 원재조차 호영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한족들을 불신하고 있었다.
‘중국인이라고 다 똑같은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야.’
황보균처럼 제국에 이로운 중국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중국인들을 배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앞으로의 제국 통치를 위해서라도 한족 NPC들과 중국 유저들을 어느 정도 수용할 필요가 있었다.
“토지 조사 사업의 준비는 다 끝났나?”
“예. 청나라 관료들 중에 한족들을 대거 채용하였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전국에서 동시에 토지 조사 사업이 진행될 것입니다.”
토지개혁을 시행하기에 앞서 토지의 소유자를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소유자가 아닌 이에게 토지 비용을 줄 수는 없는 일이고, 반대로 토지를 이미 가지고 있는 이에게 토지를 얹어서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조사 인원들에 대한 안전 문제는 경찰 병력으로 전환된 청나라 군인들이 책임지기로 했으니 지금 바로 조사를 시작하도록 해라.”
호영이 그와 같은 선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지 조사 사업이 시작되었다.
무려 천만 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된,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문으로 퍼졌던 토지개혁이 마침내 실행에 옮겨지자 전국에서 일어나는 반란의 규모는 더욱 커져갔다.
빈민이나 소작농들이야 정부가 누구를 위해 토지개혁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니, 지주들의 명령에 같이 봉기하여 반란의 규모를 더욱 키웠다.
규모만 따진다면 아마 반청복명 운동 당시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래 봤자 무공을 익힌 이는 거의 없지. 대부분이 일반 농민들이니 말이야.”
“예, 더군다나 중장년층이 대부분입니다. 무공은커녕 싸울 힘도 없을 것입니다.”
“하긴, 혈기 넘치는 청년층은 대부분 용병으로 원정을 떠났겠군. 일부는 반청복명 운동 때 희생되었을 것이고 말이야.”
청나라가 지배했을 때만 해도 강남은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를 가졌지만 대한 제국의 지배가 시작되자 청년층이 크게 감소하였다.
이름난 명장들을 따라 외국으로 원정을 갔기 때문인데, 그 수만 벌써 천만이 넘었다.
물론 원정이 아니라, 아예 난민이 되어 타국으로 떠난 인원도 적지 않았다.
그들도 대부분이 청년층이었고 말이다.
“진압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충구의 말대로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반군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왔다.
일단 수도 주변은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고 강북의 소요 사태도 점차 진정되어 갔다.
다른 곳들도 전투 경과를 보니 곧 승전보가 차례차례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승전보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장수들의 질이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쯧. 한족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경계에 실패를 하여 기습을 허락하다니.”
“일기토를 하겠다고 대책 없이 나섰다가 사령관이 허무하게 죽은 적도 있었는데 뭐 경계의 실패쯤이야.”
압도적인 전력을 갖고 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게릴라전에 당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범해 전투에서 패한 것이다.
몇몇 신하들은 이게 다 능력 없고 욕심만 많은 한족 출신들을 기용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토벌군의 장수들이 된 한족 출신들은 오랜 시간 정규군을 통솔해 온 한국 장수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였다.
NPC인 경우, 정규군을 통솔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고, 유저인 경우는 중국인 특유의 만용을 버리다 실책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하지만 반대로 큰 성과를 거두는 중국인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