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29화 (329/345)

# 329

“이미 조약을 맺지 않았나?”

“조약이야······ 어기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하기야, 지금 같은 시대에 조약 같은 것을 제대로 지킬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특히 북미는 현재 난세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기에 협정이나 조약은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쪽이 먼저 조약을 어긴다면, 응징을 해 주는 수밖에.”

이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호영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슈워제네거 왕국의 배신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는 태도였다.

‘설령 바다 건너편에 있다 해도 나를 배신한다면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파병 간 원정군이 아니더라도 대한 제국의 무수히 많은 회사들이 북미에 진출한 상태였다.

지금은 청나라의 팔기군을 이주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앞으로 북미에서의 대한 제국과 호영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터.

만약 슈워제네거 왕국이 배신을 선택한다면 그대로 복수를 해 주면 그만이었다.

7회 차의 호영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아, 그 문제 말고도 다른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이주 문제인데······ 동남아 국가들이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족을 이주시키는 일 때문인가?”

“예. 청나라 정부에서 지금 이주를 권장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족들이 북미로 이주하지 않고 동남아 국가들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주로 지역 강국인 세 나라에 이주하고 있는데, 태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는 난민이나 다를 게 없는 한족들이 대거 유입되니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대책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지만 아직은 청나라 일이다 보니 소신이 관여할 수가 없어서 마땅히 방도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제국에 불만을 가진 한족이 많아 통제를 시도해도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내버려 둬라.”

“예?”

“어차피 통제할 수도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이주하는 한족들을 가만히 방치하다간 속국들이 불만을 품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일단 상국의 백성이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데 그 수가 만 단위에, 무법자처럼 행동하니 동남아 국가들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 제국이 따로 조치를 취해 주지 않는다면 동남아 국가들로선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깟 놈들이 불만을 품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맞습니다! 오히려 이참에 동남아를 우리가 노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고작 난민들 따위에 흔들리는 약소국인데, 공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갑자기 끼어드는 두 무장을 보며 호영은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사실 동남아 국가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문제였다.

청나라의 북미 이주에 관련된 사안도 지금의 대한 제국에서는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이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정이 이랬을까. 뭐 그놈은 애초에 과대 망상자였으니 나랑은 상황이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야.’

실제 역사에서 일본의 전국시대가 끝났을 때 한순간에 백수 처지가 된 사무라이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상당했다고 한다.

현재 대한 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대했던 강남 전쟁이 시시하게 끝이 났고 북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무장들을 만족시키기에 규모가 너무 작았다.

즉, 대한 제국의 무장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 상태라는 이유로 불만이 폭발 직전에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폐하! 소장에게 배 100척만 내주십시오. 소장이 군단을 이끌고 대만을 정복하겠습니다!”

“대만보다는 인도를 노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북미보다 더욱 가치 있는 땅입니다. 적절하게 분열되어 있어 정복하기도 어렵지 않고, 무엇보다 오만방자한 영국 놈들의 콧대를 부술 수 있지 않습니까!”

“황제 폐하, 황제 폐하께서는 중원의 황제이기도 하지만 초원의 대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초원의 대칸이시라면, 칭기즈칸의 역사를 재현하셔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초원을 정복하는 것은 황금 씨족으로선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나 다름없습니다!”

군부 장성들이 전쟁을 외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번성을 거듭하여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보니, 제국의 힘에 자신감을 가진 군부 장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업적 점수를 얻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필수라고 볼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는 것만큼 업적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는 거의 대부분의 군부 장성들이 전쟁을 부르짖고 있다고 봐도 좋을 수준이 되었다.

힘이 어중간했을 때는 온건파의 입김이 더 강했지만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 되니 강경파의 발언권이 훨씬 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시 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군. 어쩌면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그 방법을 말이야.’

호영의 권력과 위상은 여전히 절대적이지만 언제까지 무장들의 욕구를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경들의 요구 사항을 듣고 짐은 오랜 시간 고심하고 검토를 하였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위해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무관들이 원하는 것은 타국을 정복하는 것이고 문관들이 원하는 것은 내정에 집중하는 일이다. 지금의 제국은 평화롭기 그지없으니 문관들은 만족스러울지언정, 무관들은 제법 불만이 많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호영이었지만 대전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대소 신료들은 그의 입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튀어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정부가 주도해서 정복 사업이나 원정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즉, 대한 제국은 앞으로도 무관들이 바라는 전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

그의 말에 대전은 순식간에 싸늘한 분위기로 돌변하였다.

한국 유저들이나 NPC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다른 나라 출신의 유저들은 한눈에 봐도 불편한 기색이었다.

호영의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든 불만을 표시했을 것이리라.

그만큼 앞으로 절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호영의 발언은 무장들에게 큰 실망감을 가져다주었다.

“다만 민간에서 따로 정복 전쟁을 시도하는 것은 막지 않겠다.”

고요하던 분위기는 호영의 한마디에 완전히 깨졌다.

너무도 예상외의 발언이었기에 대소 신료 전체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폐하, 그러면 사병을 키워 외국과 싸우는 것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민간에서 정복 전쟁을 시도해도 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샤락 함대를 다시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군부 장성들이 저마다 궁금한 것을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호영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반응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태연한 어조로 설명하였다.

“사병을 키우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용병 회사를 세워 고용주와 함께 외국과의 전쟁에 나서는 것은 허락하겠다.”

“고용주라면?”

“황위 쟁탈전에 참가하였던 모든 황자들이 고용주가 될 것이다.”

그 말에 또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아직도 호영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고, 반대로 호영의 의도를 간파하고 탄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황금 씨족을 껴야지만 정복 전쟁을 허락한다는 뜻이로군요!”

몽골 유저, 테무르가 호영의 의도를 파악하였는지 경탄하는 얼굴로 그렇게 외쳤다.

“그렇다. 정복 전쟁을 원하는 이들은 무조건 짐의 황자들 중에 한 명을 골라 번국을 세우고 정복 전쟁에 나서야 한다.”

전쟁을 원한다면 전쟁을 하게 해 주되, 대신 자신의 자식을 왕으로 세운 뒤에 하라는 뜻이었다.

군부 장성들은 호영의 설명에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는지 다양한 반응을 내비쳤다.

스스로 왕이 되기를 원했던 자들은 아쉬워하였으며, 몇몇 이들은 중앙정부의 간섭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빠르게 입장을 정리한 이는 다름 아닌 황보균이었다.

“그럼 소장은 영친왕과 함께 베트남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황위 쟁탈전에서 황태자가 되는 것은 실패하였지만 나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삼 황자와 함께 베트남에 진출하겠다고 말하였다.

‘영친왕과 제법 사이가 가깝다더니, 정말이었나 보군.’

어쨌든 호영으로선 거부할 일이 아니었다.

황보균이 베트남을 정복하는데 성공한다면 호영의 아바타인 ‘대씨 일족’이 소유한 나라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베트남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다면 베트남의 힘도 약화시키고 국내 무장 세력의 힘도 약화시킬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베트남과의 외교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외국보다는 국내를 안정시키는 게 더 시급하였다.

“삼 황자가 원한다면 경의 뜻대로 해라. 대신 용병은 황보 세가의 재산으로 모아야 할 것이다.”

“하면 폐하, 강남의 봉읍을 팔아 재물을 마련해도 되겠습니까?”

“짐이 황보 세가에게 하사하였던 봉읍을 팔겠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호영은 황보균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베트남을 노리더니, 정말 작정한 것 같았다.

가문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봉읍까지 팔아서 용병을 모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그 정도도 해 주지 않는다면 베트남을 정복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테지.’

한국에서야 변방의 나라라고 폄하하고 있었지만, 베트남은 약소국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인구로 따지자면 세계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인구가 많았고 무공 수준도 제법 뛰어난 편에 속하였다.

제아무리 황보 세가가 대한 제국에서 명문가로 손꼽히는 가문이라 해도 베트남 정도 되는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황보균이 계획한 대로, 봉읍을 팔아 천문학적인 재원을 마련한다면 조금은 가능성이 올라갈 것 같았다.

“뜻대로 해라. 만약 짐에게 봉읍을 팔겠다면 짐이 시세보다 비싸게 사 주겠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황보균의 발언이 끝나자 여러 무장들이 손을 들고서 자기주장을 펼쳤다.

누구는 황보균처럼 인도차이나반도를 노렸고 또 누구는 대만이나 필리핀을 노렸다.

어떤 이들은 남미나 북미를 노리기도 하였다.

“북미는 청나라의 영역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곳으로 진출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그 말에 몇 명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넓었다.

노릴 수 있는 땅이 아주 많다는 뜻이었다.

‘이걸로 무장들의 불만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군. 이제 남은 문제는 공공의 적이 되지 않게끔 유도하는 것이려나?’

제아무리 국가 주도로 침략 전쟁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쨌든 제국의 황자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당연히 일방적인 침략을 받게 된 국가들로선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을 터.

어쩌면 6회 차의 명나라처럼 전 세계적인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세계 전체와 전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외교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딱히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좋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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