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
과연 장수들만 바꾸는 것으로 팔기군이 정상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팔기군을 최초로 창설한 것이 관산이었으니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뭐 팔기군의 전투력이 예상보다 저조해도 청나라의 물량이라면 북미에 나라를 건설하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북미에 있는 모든 국가의 인구를 다 합해도 2억이 될까 말까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청나라를 따라 북미로 이주할 인구가 어느 정도나 되려나?’
사실 민심 장악력이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는 청나라다 보니 정부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한 북미로 이주할 인구는 그다지 많을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만주족 인구를 제외하면 많아 봤자 천만 정도가 따라갈까?
물론 한국으로서도 너무 많은 인구가 북미로 넘어가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한국이 강남을 노리는 것은 강남이 비옥한 땅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2억이란 인구가 살아가기 때문이으니 말이다.
‘한 3천만 정도만 넘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청나라는 북미의 원주민을 백성으로 받아들이면 되니 지배계급의 인구는 3천만이면 적당할 것 같았다.
그 이상이면 솔직히 한국으로서도 청나라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면 짐이 따로 도와줘야 될 것은 없나?”
“폐하께서 저를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도움입니다.”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짐은 이만 가 보겠다. 혹시 대한 제국의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도록.”
그가 등을 돌리며 떠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관산이 다급히 말했다.
“아, 폐하. 그런데 유럽 열강들과 이야기는 나누어 보셨습니까?”
“함께 북미에 진출하는 건에 대해서 말이냐?”
“예.”
“아직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의외군요. 저는 그들이 먼저 접촉해 올 줄 알았는데.”
“대한 제국의 국력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누구도 대한 제국이 더 강해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사실 얼마 전에 유럽 열강 측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다시 그들과 협상을 시작하는 건가?”
호영은 반가운 기색으로 그리 말했다.
청나라가 유럽 열강과 손잡고 북미에 진출하는 것은 그가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그들은 저보다, 황제 폐하를 찾았습니다.”
“짐을?”
“예. 이야기를 들어 보니 대한 제국과 협상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폐하에게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하였는데, 어쩌시겠습니까? 한번 그들과 만나 보시겠습니까?”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협상을 하고 싶다고? 나랑 할 협상이 뭐 있다고.’
설마 북미 진출을 대한 제국과 함께하려는 것일까?
호영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유럽 열강들이 오만하고 자신감 넘친다지만 대한 제국이 더욱 팽창하게끔 의도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전쟁 선포를 위해 찾아왔다는 것이 훨씬 현실성 있게 느껴졌다.
“일단 한번 만나 봐야겠군. 북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볼 필요가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들에게 말을 전할 테니, 내일쯤이면 알아서 폐하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가 끝이 났다.
호영은 청나라 황실이 베풀어 준 연회를 즐기며 유럽 열강들이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를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렸다.
* * *
여러 나라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여러 명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호영을 찾아온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나우만 대주교.
교황청에서 보냈다는 신부 한 명이 혼자서 그를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제 폐하.”
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어느 정도 호영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예를 받아 주고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짐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지?”
나우만은 단도직입적인 호영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대신하여 대한 제국과 친선을 맺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부디 황제 폐하께서는 저희의 성의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전권 대사라고 봐도 좋은가?”
“예. 그렇게 봐도 무방합니다.”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전권 대사라니.
호영은 교황청의 위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느꼈다.
타국에게 그것도 나라가 아닌 종교 단체에게 전권을 위임하기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친선이라······. 짐은 유럽 열강들과 친해져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 황제 폐하께서는 북아메리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의 발언에 호영은 흠칫하였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상대가 단도직입적인 태도를 취하니 오히려 호영이 당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내색하지 않고서 곧장 답하였다.
“북미의 제국들은 오래전부터 아국과 우호 관계였기 때문에 약간의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따로 답할 말이 없군.”
“그렇습니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나우만의 모습에 호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나의 의도를 알고 있는 건가?’
뭐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유럽 열강들은 청나라에 꽤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대한 제국에 관해서도 관심이 없지는 않을 터.
그러니 호영이 청나라를 이용해 북미에 진출하려는 의도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유럽 열강들과의 동맹이 무산된다 해도 청나라를 북미로 이주시키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회 차가 아니라면 북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무슨 의도로 짐에게 북미에 대해 물은 것이지?”
호영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그리 물으니 나우만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유럽에서는 요즘 북아메리카에 진출하는 문제가 크게 화제입니다. 내전에 휩싸인 지금이야말로 북아메리카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냐며 화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에서는 아시아의 맹주, 대한 제국과 손잡고 북미에 진출하고 싶어 합니다. 대한 제국이 도와준다면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입니다.”
“······.”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호영은 잠시 침묵하였다.
청나라도 아니고 대한 제국에게 이런 제안이 들어올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유럽 열강에서 먼저 대한 제국과 손잡으려 하다니. 설마 우리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인가?’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라면 대한 제국 같은 강대국에게 북미 서부를 내주는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호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은 기색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우만 대주교가 짐을 찾아온 이유도 아국과 북미 진출을 같이하자는 네 나라의 뜻을 짐에게 전하기 위함인가?”
“예, 그렇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이따가 다시 거론하는 것으로 하고, 먼저 북미 진출에 대해 답하자면 대한 제국은 유럽 열강들과 손잡을 생각이 없다.”
“······폐하께서는 북미 진출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까?”
“짐은 지금 가지고 있는 영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지라 굳이 북미까지 노릴 이유가 없다.”
물론 본심은 아니었다.
계획을 세울 때마다 최우선 순위를 세력 확장으로 두는 그가 영토를 늘리는 일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유럽 열강들에게 굳이 본심을 드러내 경계를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그렇습니까?”
“대신, 아국은 관심이 없어도 청나라의 생각은 다를 것 같군. 청나라라면 북미 진출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청나라라······.”
나우만이 말끝을 흐리자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먼저 청나라에게 제안을 한 것은 유럽 열강 쪽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역제안이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나우만도 범상치 않은 인물인 것은 확실한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나쁘지 않군요. 2억의 인구와 수준 높은 무공을 가진 청나라라면 동맹으로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청나라의 해군력으로 과연 북아메리카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자신들이 먼저 제안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다.
“그건 우리가 도와주면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뭐, 우리 해군력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태평양을 정복하신 대한 제국의 해군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폐하께서 청나라의 북미 진출을 도우시는 이유를 저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득을 얻겠다고 청나라가 북미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호영은 그런 나우만의 물음에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청나라에게 받을 것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교황청은 왜 유럽 열강의 북미 진출을 도우려는 거지?”
민감하다고 볼 수 있는 질문에 나우만은 주저 없이 대답하였다.
“유럽 열강의 세력권이 넓어져야 교황청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군.”
교황청의 대주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고 세속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센추리에서의 교황청은 현실의 교황청과 전혀 다른 조직이었기에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간혹 전해지는 교황청의 악명만 들어 봐도 그들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탐욕적인지를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호영은 헛기침을 하고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면 짐을 찾아온 다른 이유는 무엇이냐? 북미 진출에 관한 이야기 말고도 할 이야기가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우선은 앞으로의 세계 분할에 관해 대한 제국의 입장을 알고 싶습니다.”
“세계 분할이라고?”
“예. 현재 세계는 두 개로 나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유럽 열강과 아시아 열강으로 말입니다.”
전형적인 신부의 외모를 하고 있는 주제에 말하는 태도는 무슨 강대국의 지도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대한 제국이 어디까지 영토를 확장할 것인지 유럽 열강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데?”
“예?”
“인도를 점령하면 전쟁을 선포할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영국이 불편하게 여기기야 하겠지만 다른 유럽 열강들은 방관할 것입니다.”
“남미에 진출하면 스페인이 불편하게 여기겠군.”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남미의 어느 곳을 진출하느냐에 따라 스페인의 대응이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