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
하지만 호영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돛을 펼쳐라.”
포양호에 수장될 수도 있음에도 거침없이 서쪽으로 나아가라 지시를 내리는 호영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혁현의 무리였다.
자칫 충돌이 벌어진다면 변명할 여지도 없이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인 대한 제국과 전쟁을 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혁현의 무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호영의 함대가 점점 다가오니 그들도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휘선으로 보이는 함선에서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제 곧 적의 공격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폐하! 함선을 물리시지요. 적이 포탄이라도 날린다면, 이 조그만 배는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공격 진형을 구축하는 혁현의 함대를 보며 참모들과 군부 장성들이 다급히 말했다.
호영의 무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수전이다 보니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되었다. 어차피 저들이 우리를 공격할 일은 없을 거다.”
언제나처럼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호영을 보며 몇몇 군부 장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참모들은 반신반의한 얼굴이면서도 호영을 믿는 것인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들 역시 혁현의 함대가 호영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폐하, 혹시 저들을 물리칠 계책을 사용하신 것입니까?”
“계책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그저 저들의 함대에 한족이 많이 타 있는 것 같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
그 말에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군부 장성들이었다.
“적들이 이동을 멈추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포격에 대비하십시오!”
“어? 이상하게 갑판이 혼란스럽습니다. 싸움이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선상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폐하!”
호영은 예상했다는 듯 태연하게 반응하였다.
“한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나 보군.”
“계획했던 일입니까?”
“아니. 그냥 간을 보던 한족들이 짐에게 복종하기를 선택한 것 같은데.”
“폐하의 위명이 한족들에게까지 퍼졌나 봅니다.”
이런 아부는 이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저들이 무엇을 하건 우리와 관계없으니, 우리는 그대로 진격해라.”
“충!”
호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100척의 함선이 천천히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호영의 말대로 혁현의 함대는 내부 반란에 대응하기에도 바빠 보였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함대가 한족 장수에게 지휘권이 넘어갔는지 마치 호영을 호위하듯 주위를 지켰다.
‘역시나 한족들은 계산이 빠르군. 반란을 일으킨 이유도 무리하면서까지 나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 주기 위함이겠지?’
반란군이 완전히 진압되고 황권 다툼 역시 대세가 정해지니, 한족들은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았다.
하나는 끝까지 혁현을 지지하며 충신을 흉내 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파벌을 전향하여 혁흔이나 호영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족들은 호영이 기대했던 대로 파벌을 전향하는 선택을 하였다.
호영에게 복종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혹시 모를 공친왕의 배신도 한족들이 있으니 대비할 수 있겠군.”
이미 그에게 충성을 받치기로 맹세한 관산이지만 호영은 관산을 100% 신뢰하지 않았다.
몇 년을 함께해 온 최측근들조차 100% 신뢰하지 않는데 뒤늦게 합류한, 그것도 외국인인 관산을 100% 신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족들로 하여금 혹시 모를 관산의 배신을 대비하기로 하였다.
한족 유저들이라면 만주족인 관산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유럽과의 협상
청나라의 수도 난창은 운치 있는 도시였다.
어떤 곳은 물의 도시 베니스가 연상되었고, 어떤 곳은 북유럽의 도시처럼 고풍스럽고 낭만이 가득하였다.
유럽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장소라 하는데, 호영이 보기에도 확실히 인기가 있을 법한 도시였다.
‘역시 수도만큼은 제대로 정비를 하였군. 일이 한결 쉬워지겠어.’
참모들은 운치 있는 난창의 모습에 감탄을 하며 즐거워하였지만 호영은 이 순간에도 난창을 지배한 이후를 떠올리고 있었다.
앞으로 난창을 어떤 식으로 다스릴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이다.
“백성들이 우리를 환대해 주고 있습니다.”
“저들도 우리가 자기를 지배할 것임을 아는 것일까?”
이제 곧 강남의 통치는 대한 제국에게로 넘어온다.
혁흔이 황위에 오르기만 한다면 곧바로 이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2억에 달하는 인구 전체를 북미로 이주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다만, 반군을 대신 진압해 주고 황실의 혼란을 안정시켜 주었으니 우리를 좋게 보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런가.”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국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청국 백성들이 더욱 열렬하게 함성을 내질렀다.
‘강남을 먹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겠어.’
흡족한 얼굴을 하며 황궁으로 향하였다.
황궁 근처에 도착하니 청나라의 대소 신료들이 대한 제국의 깃발과 황실의 깃발을 들고서 마중 나와 있었다.
누가 보면 자국의 황제가 친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저들은 순친왕의 파벌에 속해 있는 자들이 아닌가?”
“예. 소신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순친왕의 파벌에 속해 있는 자들이 짐을 이렇게 환영해 줄 줄은 몰랐군.”
“한족들처럼 저들도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달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봤자 숙청은 피할 수 없을 텐데.”
파벌을 전향할 것이라면 진즉에 했어야 했다.
아니면 한족들처럼 반란을 일으켜서라도 충성심을 보였어야 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저들은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다 뒤늦게 항복을 하였으니 숙청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새로 황제가 될 혁흔도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저들을 숙청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폐하가 아량을 베푼다면 그래도 살아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지 않겠습니까? 혁흔 황자도 황제 폐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아량이라······. 저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군.”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미 한족들이 그의 편에 섰는데 혁현의 편에 섰던 만주족들을 굳이 살려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능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 데다, 눈치까지 없으니.
“강남을 통치할 때 순친왕을 이곳의 제후로 임명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저들도 순친왕의 부하니 목숨만은 살려 주는 겁니다.”
그 말에 호영은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혁현을 살리자는 주장은 현실의 싱크 탱크나 센추리의 참모진 사이에서 제법 많이 나온 것이다.
원래라면 혁흔의 정적으로서 혁현을 살려 줄 수는 없겠지만, 대한 제국은 이후에 있을 강남 통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강남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선 정통성 있는 청나라 황자가 대한 제국의 제후로 있는 것이 좋다는 뜻이었다.
“일단 순친왕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아직,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혁현의 성격이야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가 과연 얌전히 제후로 남아 있을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직접 혁현을 만나 그의 생각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그를 살려 주고 제후로 임명할 것이다.
물론 호영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살려 둘 수 없겠지만 말이다.
“황제 폐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대한 향연을 준비하였는데, 지금 바로 연회를 즐기시겠습니까?”
황궁에 도착하니, 환관으로 보이는 이가 호영에게 물었다.
“연회보다는, 공친왕을 보고 싶은데.”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시간을 끌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환관은 호영의 말에 지체하지 않고 공친왕, 혁흔에게로 호영을 안내해 주었다.
“저기 계신 분이 공친왕이십니다.”
그림 같은 정원에 잘생긴 미남자 한 명이 우두커니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공친왕, 혁흔이었다.
“황제 폐하!”
“외모가 대단한데?”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혁흔, 아니 관산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호영은 그런 관산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반란 진압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도적들이 남아 있긴 하나, 그 정도는 청나라의 힘으로 충분히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니.”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반군 진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지금 시대는 정규군과 비정규군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압도적인 시대였다.
10만의 병력으로도 100만이 넘는 비정규군을 압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대한 제국의 정규군은 다른 나라의 정규군보다 훨씬 우수했다.
단순히 장교들의 무공 수준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무기 수준과 지휘관 역량, 전투 교리와 전술 등 모든 것이 뛰어났던 것이다.
물론 중국 유저들이 조직한 반군 조직도 다른 나라의 비정규군보다 우수하기는 하였다.
청나라군이 괜히 밀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 유저들의 무공 수준이 평균 이상이라고 하나, 개개인의 무공이 우수하다고 전쟁의 흐름이 극적으로 뒤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C급 이하의 무인들은 총과 화포에 당해 내지 못하기도 하였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거의 100만에 가까운 반군 조직을 진압한 한국군의 피해는 1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전쟁이었던 것이다.
“황위 다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폐하 덕분에 대세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황제로 추대해 주신다면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짐이 추대하라는 말이냐?”
“청나라에서 황제 폐하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그런가.”
속국도 아니고 형제 국가의 황제를 호영이 직접 임명하다니.
원래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텐데, 청나라는 고작 반년도 안 되어 대한 제국의 속국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래서 영토를 마구잡이로 늘리면 안 되는 것이다.
청나라는 결국 한족들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해서 이리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물론 나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지만.’
호영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 관산이 말문을 열었다.
“북미는 언제쯤 진출하면 되겠습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서 최대한 빨리 진출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니까.”
“그럼 일단 팔기군부터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보니까, 팔기군도 딱히 정예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던데.”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워낙에 중요한 일이다 보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산도 호영의 지적을 부정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황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팔기군부터 개혁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수들이 문제이기는 하나, 일반 병사들은 나름 무공도 익히고 조직력도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니, 장수들만 바꾸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