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23화 (323/345)

# 323

“애초에, 이제 와서 원정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자원이 소모되었습니다. 청나라와 동맹을 하지 않더라도 원정은 무조건 해야 합니다.”

유럽 열강들은 꼭 탐욕 때문이 아니더라도 식민지 건설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재정 구조부터가 이미 식민지 통치가 아니라면 유지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유럽 열강들이 힘을 합쳐 아시아에 진출하고 또 북미 진출에 나서려는 것이다.

참고로 인도의 일부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 같은 경우는 동아시아를 가장 먼저 노렸지만 대한 제국이 있는 한 동아시아 진출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다.

물론 아시아의 가치를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7회 차에서 괄목적인 성과를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북미라면?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거대한 전쟁에 휩싸인 북미라면 어떨까?

북미 국가들의 국력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서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만 동아시아보다는 훨씬 쉬웠다.

일단 거리부터가 훨씬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국은 물론이요, 남미의 일부를 식민지로 삼은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까지 북미 전쟁에 끼어드려는 것이다.

“청나라가 아니라 대한 제국과 동맹을 맺는 것은 어떻습니까? 대한 제국과 함께 북아메리카에 진출하는 것입니다.”

교황청의 나우만 대주교가 하는 말에 좌중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나 영국 노신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대주교님도 아시겠지만 대한 제국은 현재로썬 세계 제일의 국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2억의 인구를 가진 청나라조차 대한 제국에게 복종하고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요?”

나우만 대주교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영국 노신사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강력한 국력을 지닌 대한 제국인데 북아메리카에 진출한다면 대한 제국의 힘이 지나치게 커집니다.”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로군요.”

“예. 대한 제국은 지금처럼 아시아에만 영향력을 행사하게 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물론 나중에 러시아가 동방으로 진출할 때 적절하게 막아 주면 더 좋을 것이고 말입니다.”

영국 노신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페인과 독일, 영국과 프랑스는 분명 유럽 4강의 강대국들이었지만, 유럽인들이 보기에도 대한 제국의 국력은 실로 두렵기 짝이 없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인구가 4억이 넘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한데, 만약 우리가 북아메리카에 진출할 때 대한 제국이 동아시아를 넘어 서방으로 세력을 진출하면 어떡하실 것입니까?”

“······.”

노신사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나우만의 물음은 영국 정부에서도 꽤나 경계하고 있던 일이었다.

대한 제국의 서방 진출.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대한 제국의 국력이라면 유럽은 힘들어도 인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미 세계 각지에 회사를 만들었다.

우리 영국이 차지한 인도 남부에도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어.’

유럽의 열강들만 팽창하는 것이 아니었다.

팽창 속도로 따진다면 오히려 대한 제국의 팽창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볼 수 있었다.

영토야 10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경제 규모는 팽창을 거듭하여 이제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렇다고 실제 역사에서의 명나라나 청나라처럼 시장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한 제국의 상인들은 각종 특산품을 싣고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크로드에서도 대한 제국의 상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지만 바다에서의 활약도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다르게 대한 제국은 해군력도 실로 강대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태평양의 무수히 많은 섬들을 100년 동안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미래의 대한 제국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당장의 대한 제국도 상대할 수 없지 않습니까?”

“······대주교님,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유럽에서 교황청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지만 영국은 국교가 따로 있었다.

자연히 노신사의 목소리도 퉁명스러워졌다.

“대한 제국과 손잡으시지요.”

“그들이 아메리카에까지 진출한다면 나중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될 거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유럽에 진출하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

“대한 제국과 손잡아 그들의 팽창을 아메리카로 향하게 하세요. 그러면 대한 제국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우만 대주교의 말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이미 대한 제국은 세계 제일이나 다를 게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차라리 대한 제국이 세계 제일임을 인정하고 그들의 팽창이 서방으로 향하지 않게 막는 것이 중요하였다.

같이 북미로 진출하자고 제안한다면 적어도 7회 차에 한해서는 서방으로 진출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 유럽 열강 전체가 힘을 모아 대한 제국의 팽창을 저지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나우만의 제안은 노신사에겐 그리 마음에 드는 제안이 아니었다.

세계 4분의 1을 지배하였던 대영제국의 부활을 염원하던 노신사로선 동양인들의 제국을 세계 제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유럽 열강 전체의 힘을 모으자고? 과연 누가 힘을 모아 줄지 의문인데. 적어도 우리 프랑스는 대한 제국과 싸울 생각이 없거든.”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 제국과의 전쟁으로 7회 차를 허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기든 지든, 손해뿐인 전쟁입니다.”

노신사와 다르게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대한 제국과의 전쟁에 반대 의견을 내보였다.

두 나라는 영국처럼 인도까지 세력을 뻗친 것도 아니었고,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구태여 대한 제국과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프랑스와 독일이 빠진다면 스페인도 어쩔 수 없겠소. 솔직히 대한 제국의 팽창을 저지하기는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우리 또한 대한 제국과의 전쟁은 부담스러워서.”

스페인까지 반대 의견을 내보이자 노신사는 이를 악물었다.

‘긍지도 야망도 없는 천박한 것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대한 제국과 전쟁하고 싶었다.

다른 열강들이야 대한 제국의 주 무대가 아시아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인도와 호주, 브루나이 등을 노리고 있는 영국으로선 대한 제국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이 단독으로 대한 제국과 맞서 싸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대한 제국이 육로나 해로로 영국의 본토로 침공한다면 모를까, 인도나 아시아에서는 대한 제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대주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소만.”

비웃음이 역력한 프랑스인의 말에 영국 노신사는 불편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흥! 혼자 고고한 척은. 여러분, 어쩌시겠습니까? 우리 프랑스는 대주교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데.”

“청나라가 아닌, 대한 제국과의 동맹이라······. 좋소! 대신, 대한 제국과 협상을 할 때 남 아메리카에는 절대 진출하지 못하게 하였으면 좋겠소이다.”

“그거야 스페인이 알아서 대한 제국과 협상을 할 일이고, 독일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독일 역시도 대한 제국과 동맹을 맺고 북아메리카에 진출하겠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영국인데······.”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노신사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대세에 따랐다.

대한 제국과 동맹을 맺고 북미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 * *

하워드 슈워제네거는 방금 전에 접견했던 한국인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반대의 처지가 되었군.”

그를 찾아온 한국인은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농사를 대규모로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공식적으로는 무역을 하기 위해 북미에 온 것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한국 정부의 사신으로서 하워드를 찾아온 것이다.

‘내가 한국의 도움을 바라야 하는 처지가 될 줄이야.’

사신으로서 하워드를 찾아온 한국인의 제안은 간단하였다.

군사를 보내 줄 것이니, 그 대신 영토를 달라는 제안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들어 줄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겠지만 하워드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고민을 거듭하였다.

그는 비록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미국이 초강대국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이었고 또한 센추리에서도 미국이 초강대국이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제안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동양의 군대가 위대한 미국의 땅에 상륙한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북미의 정세를 생각해 보면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북군, 아니 연방군이라 불리는 공화주의 세력이 만들어진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고작 한 달 만에 연방군은 북미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연방군에 소속된 군사 수만 100만에 육박할 정도였다.

남군에서도 연합군을 창설하여 군주제를 하고 있는 나라들끼리 동맹을 결성하였지만 세력에서 턱없이 밀리는 상태였다.

이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을 이어 나간다면 연합군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연합군에 소속되어 있는 하워드의 슈워제네거 왕가도 몰락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하아, 어쩔 수 없나.”

하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결론은 하나였다.

대한 제국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

즉, 대한 제국의 군대를 불러들여 연방군을 밀어내는 것이 지금으로썬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결정을 내렸다. 대한 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현명하신 결단이십니다.”

다음 날이 되자 하워드는 곧바로 한국 정부의 사신을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제안에 응하겠다고 말하였다.

섣부른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하워드가 처해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한 제국의 군대, 아니 청나라 군대라고 했던가? 그들은 언제쯤 지원을 올 수 있지?”

“아직 청나라의 내전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는 최소 반년 이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하워드는 눈을 부릅뜨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이라고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설마 반년 이상이 필요할 줄이야.

그것도 최소가 반년이라 하니 언제 지원군이 당도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7회 차 안에 지원이 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내전이 끝나지도 않았으면서 지원을 보내니 마니 하며 자신 있게 떠들어 대다니. 감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눈을 부릅뜨며 노기를 터뜨렸지만 눈앞의 한국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일개 상인조차도 기개가 남다른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외신은 국왕 폐하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하면, 방도를 찾아내라. 반년은 너무 늦는다.”

“소수의 용병들을 먼저 지원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용병? 그것도 소수라고?”

또다시 심기가 불편해져 목소리도 날카롭게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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