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22화 (322/345)

# 322

“······.”

호영의 말에 황보림은 심기가 불편한지 눈썹을 찌푸렸다.

7회 차의 황제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S랭크 무인의 자긍심은 인정할 만한 것이다.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경우는 S랭크 무인이 왕조차 무시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청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렇기에 호영도 황보림을 어느 정도 대우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황보림이 반군의 편에 서거나 외국으로 귀화한다면 대한 제국으로선 극심한 손해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폐하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꽤나 고민하던 황보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호영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흡족한 얼굴을 하였다.

“경은 역시 충신이다.”

“대한의 무장으로서 당연한 결정을 하였을 뿐입니다. 폐하, 앞으로도 소장에게 명령을 내릴 일이 있다면 주저 없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자신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과감하게 명령을 내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도록 하지.”

대답은 그리했지만 S랭크 무인을 함부로 대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7회 차가 되면서 S랭크 무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S랭크 무인의 존재는 여전히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략 병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황보림과의 대화가 만족스럽게 끝이 나자 호영은 현실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남진 계획을 수립하였다.

“흠흠!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공친왕을 황제로 옹립하는 것을 우선시할지 아니면 반군 진압을 우선시할지에 대한 선택지를 말하는 거겠지?”

“예, 그렇습니다.”

사실, 이미 로열 그룹의 컨트롤 타워에서는 반군 진압을 끝마친 이후의 계획까지 완성한 상태였다.

강남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계획을 대충이나마 수립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획이란 것은 상황에 따라 언제 바뀔지 모르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전쟁은 원체 변수가 많기 때문에 계획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어.’

처음 계획을 수립했을 때보다 여건이 좋으면 좋았지 나빠지지는 않았다.

특히나, 청나라의 친한파가 예상외로 많았다는 점이 더욱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계획에 변동은 없다.”

그렇기에 호영은 계획을 수정하지 않기로 하였다.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반란 진압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절강성을 빠르게 장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천지회의 본거지는 절강성에 있으니 말입니다.”

절강성은 명나라가 처음 발호되었던 지역이었다.

명나라의 수도도 절강성에 위치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명나라의 후신을 자처하는 천지회 역시도 절강성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물론 반군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천지회다 보니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본거지 자체는 절강성이었다.

“천지회를 제외하면 절강성에서 진압해야 될 반군 세력은 얼마나 되지?”

“본래 규모로는 홍건적이 가장 컸지만 홍건적은 선봉군인 맹호 군단에 의해 반쯤 와해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반군 세력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평천국과 흑기군 그리고 악씨 세가입니다.”

천지회 말고도 절강성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는 비밀결사 단체가 존재하였다.

조경호가 말했던 세 단체가 바로 그들이었는데, 특징을 말하자면 태평천국은 규모가 비대했고 흑기군은 조직력이 강했으며 악씨 세가는 정예하였다.

‘그리고 악씨 세가의 가주는 S랭크 무인이지.’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반군 세력 중에서 S랭크의 숫자는 다섯 명도 채 안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S랭크 무인을 휘하에 열 명 넘게 둔 호영으로선 그리 눈여겨 볼 특징은 아니었다.

뭐 회유될 가능성이 1%라도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진압 순서는?”

“계획대로 천지회부터 진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흠.”

천지회부터 진압한다는 계획은 얼핏 들어서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반청복명 운동에서 주동자 역할을 한 것이 천지회고 또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이 천지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먼저 진압하는 게 좋았다.

반군이란 결국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1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면 전투력이든 조직력이든 상당히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반군이 제대로 조직되고 활약한지는 겨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수뇌 역할을 하는 천지회가 몰락한다면?

반군의 조직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농민의 숫자가 절대 다수를 이루는 태평천국의 경우 홍건적이나 황건적처럼 순식간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다.

‘흑기군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겠지. 그놈들의 성향이야 복명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명성을 얻고 업적 점수를 쌓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나름 정예하다고 알려진 흑기군도 아마 천지회가 몰락하면 세력의 약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절강성에서 아예 벗어나려고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다만 악씨 세가가 문제인데.”

천지회니, 흑기군이니 그런 것들이야 유저들이 조직한 반군 세력이었지만 악씨 세가는 처음부터 존재하였던 세력이었다.

본래는 성씨를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던 자들이었는데, 청나라의 행정력이 약해지자 명나라의 마지막 충신 가문임을 자처하며 세력을 일으켰다.

그들이 세력을 일으킨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천지회가 무너진다고 해서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주가 화경 고수, 즉 S랭크 무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동요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악비를 잡기 위해 주작 팀을 파견하지 않았습니까? 주작 팀을 한번 믿어 보시지요.”

“주작 팀이라······.”

군대를 보내 천지회를 진압할 계획이지만, 비밀리에 특수부대의 역할을 해 줄 유저 스무 명을 파견시켰다.

주작 팀이라 불리는 유저들이 바로 그들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들은 여성 유저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여성 유저들의 목표는 단 하나.

악씨 세가의 가주이자 S랭크 무인인 악비를 제거하는 것이다.

‘과연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경선이 크게 활약했던 5회 차 이전을 제외하면 여성 유저들만으로 작전이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성 유저들의 능력도 크게 늘어나서 이번에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지만 호영으로선 솔직히 주작 팀을 신뢰하지는 못하였다.

아무래도 여성 유저들보단 남성 유저들이 더욱 전쟁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영은 악비 제거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었다.

“뭐 악비는 주작 팀에게 맡긴다 치고, 천지회가 과연 계획했던 대로 움직여 줄지가 문제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악씨 세가는 그리 중요도가 높다고 볼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도가 높은 것은 천지회였던 것이다.

“천지회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현장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긴, 맞는 말이군.”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싱크 탱크들이 워낙 믿음직스러워 저도 모르게 의지하려고 하였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호영의 능력이었다.

현장, 즉 센추리에서 그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반란 진압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계획은 충분히 세웠다. 그러니 더 이상 초조해할 필요는 없어. 모든 게 계획보다 더 좋게 진행되고 있으니 이제는 계획을 실행에 잘 옮기기만 하면 돼.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전투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지.’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전쟁.

오직 전쟁만 잘 치르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 * *

청나라의 땅 한복판에 이질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한 채 세워져 있었다.

돌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실용적이면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 꽤나 큰 회의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십수 명의 서양인들이 모여 있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고 교황청까지.

유럽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자랑하는 세력에 소속된 이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반란이 이렇게 빨리 진압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천지회였나? 아무튼 가장 큰 반군 세력이 벌써 붕괴되다니.”

“애초에 대한 제국의 개입이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 않습니까?”

“실로 야만적이고 미개하며 자긍심이 없는 나라입니다. 어찌 자국에서 일어난 내란을 타국이 진압하도록 한단 말입니까?”

서양인들은 원탁에 앉아 청나라 내전에 관해 떠들어 댔다.

이곳이 청나라의 땅인 마카오이니만큼 그들의 관심이 청나라 내전으로 향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리된 이상, 청나라 내전에 개입하겠다는 계획은 파기할 수밖에 없겠구려.”

굵고 짙은 곱슬머리를 가진 프랑스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리 말하자 깔끔한 인상의 노신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너무 당연한 말을 하시는 거 아니오?”

“이게 왜 당연한 이야기요? 무리한다면 지금이라도 개입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보는데.”

그들은 본래 청나라 내전에 개입하려고 하였다.

중국이 강북과 강남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그 강남까지 내전에 휩싸이니 탐욕스러운 유럽인들로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나라 때문에 그들의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 제국.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 청나라 내전에 개입하였던 까닭이다.

“아, 대한 제국을 두려워하는 영국으로선 어쩔 수 없으려나? 그런 주제에 태평천국이라는 반군을 지원하였다던데.”

“누가 대한 제국을 두려워한다는 말이오! 그리고 우리가 태평천국을 지원하였다니! 말도 안 되는 억측이오.”

“뭐 태평천국은 그렇다 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개입을 꺼릴 이유가 없지 않소? 아직 내전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우리 영국은 구태여 대한 제국과 충돌하고 싶지는 않소이다.”

“흥. 그냥 겁먹은 것이면서.”

“뭐요?”

두 사람은 으르렁거리며 말싸움을 벌였다.

아시아에서의 식민지와 각종 이권들을 나누어 갖겠다는 목적으로 뜻을 함께하는 그들이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

실제 역사에서 그러했듯 서로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내전이야 그렇다 치고 청나라와 동맹을 맺고 북아메리카에 진출하려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이오? 이것도 파기해야 하오?”

비대한 풍채를 가진 스페인 귀족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침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그들이 청나라의 내전에 개입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북미를 나눠 가질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즉, 청나라 정부에게 빚을 지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북아메리카 진출을 포기할 수는 없소.”

영국 노신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곱슬머리 프랑스인도 그 말에는 동조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에 진출하는 것은 유럽 열강 모두의 공동 목표였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오. 지금이 아니라면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할 기회는 또 없을 것이오.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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