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
하지만 무인은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청나라 황제가 유저들의 존재를 위협으로 여기고 S랭크 무인에게 경호를 받으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황 공이라면 변절자 가문의 황보림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황보림은 청나라 황제를 경호하는 근위대장이었다.
“근데 다른 화경급의 무인들은 없나? 황개 한 명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황제를 죽이는 거야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야.”
“결과를 보고 참여한다고 하였습니다.”
“간을 보는군. 개 같은 것들이.”
유영복은 혀를 찼다.
자신도 반청복명을 주장하는 천지회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청을 위해 일단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직도 간을 보며 고고한 척하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청나라에서 높은 작위나 신분, 재력을 가진 인사들이었다.
‘정부 놈들이 사라져서 뜻을 모으기가 한결 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개 같은 놈들이 남아 있어.’
자랑스러운 중화가 어찌 야만족 처단에 일치단결하지 않은 것일까?
뼛속까지 중화주의에 물든 유영복으로선 한탄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한데, 거사 날짜가 언제지?”
“열흘 뒤입니다.”
유생의 답변에 유영복은 눈을 크게 떴다.
“열흘 뒤라고? 설마 센추리 시간으로 열흘 뒤라는 건가?”
“예. 맞습니다.”
“그렇게 빨리 거사를 치른다고?”
7회 차가 시작된 지 현실 시간으로 고작 나흘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즉, 센추리 시간으로 겨우 보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다른 회 차였으면 아직도 정보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시점.
그런데 천지회는 벌써부터 거사를 계획하고 날짜까지 정해 놓았다.
최소 두 달을 예상하였던 유영복으로선 실로 놀랍게만 느껴졌다.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이미 거사 준비는 철저하게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자신감이 지나친 거 아닌가? 상대는 이 나라의 황제야. 강북까지 통치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중원을 거의 200년 동안 지배한 자라고.”
유영복은 짜증이 서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청나라 황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 유생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청나라 황제가 소수민족인 만주족 출신이라 해도 어쨌든 중원의 절반을 지배할 정도의 역량을 가진 인물이었다.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나라 황제는 유저가 아닙니다.”
“……확실한 정보인가?”
“유저라면 굳이 파업을 계속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청나라 황제는 지금 파업 중에 있었다.
자신이 총애하는 아들을 황태자로 삼으려다가 신하들이 반발하자 떼를 쓰는 것인데, 유생의 말처럼 청나라 황제가 유저라면 이런 유치한 짓을 계속할 리가 없었다.
하루빨리 내정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유저가 아니라면 죽일 이유가 없지 않나? 오히려 그 누르하치였던 유저가 황위를 잇게 될 수도 있는데?”
“황제 정도의 거물을 죽여야 천하에 우리의 뜻을 알릴 수 있지 않습니까? 중화가 우리를 지지해 준다면 그깟 만주족 따위가 재기하는 두렵지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청나라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처지에 중국의 내전까지 겹쳐 중국 유저들은 아직 힘을 합치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청나라나 대한 제국의 치세에서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유저들의 숫자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세계 전체를 주목시킬 만한 커다란 사건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다.
그 커다란 사건이 바로 청나라 황제를 시해하는 것으로 만약 성공만 한다면 중국 유저들은 곧바로 일치단결하여 반청복명 운동에 합류할 것이다.
“흠, 확실히 그렇기는 하겠군……. 알겠다. 열흘 뒤에 흑기군 전체를 이끌고 이곳으로 오겠다.”
유영복은 결국 청나라 황제를 시해하는 것에 뜻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그 역시도 중국 유저들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 * *
호영은 로열 그룹의 회장이 되고서 신문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의 신문뿐만이 아니라 외국의 신문까지 꼭 챙겨 보았다.
로열 그룹의 영향력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로열 그룹의 회장인 그 역시 해외 사정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잘 번역되어 있는 외국의 신문들을 읽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중국에서 내전이 아닌 다른 소식이 적혀 있었다.
중국 내전이 시작된 이후,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언제나 내전과 관련된 소식들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센추리에 관련된 소식이 올라온 것이다.
“놈들이 이렇게나 빨리 움직이다니.”
쾅!
호영은 휴대폰으로 신문 기사를 읽다가 책상을 내리쳤다.
이미 알고 있었던 소식이지만, 신문으로 다시 소식을 접하니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중국 비밀결사의 거사가 성공하다!
청나라 황제, 자신의 침소에서 죽은 채 발견돼!
반청복명 운동은 과연 성공하나?
호영이 불쾌하게 여겼던 소식은 다름 아닌, 청나라 황제의 죽음에 관련된 소식이었다.
바로 어제 강남에서 일어난, 청나라 황제 시해 사건.
천지회를 비롯한 중국의 비밀 단체들이 벌인 짓으로 판명됐는데, 명나라의 부활을 알리는 소식 같아서 호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명나라란 멸망한지 100년도 넘게 지난, 과거의 망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천지회의 손에 죽은 청나라 황제가 푸린 그자는 아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 유저들이 일치단결할 것은 분명해 보이는군.’
내전으로 인해 조금씩 몰락해 가고 있는 나라였지만 중국은 호영에게 있어 여전히 위협적인 나라였다.
물론 현실에서 위협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핵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다섯 개로 분열된 지금의 중국으로선 한국을 어찌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니 말이다.
다만, 센추리에서의 중국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나라가 몰락하는 것과 관계없이 중국에는 여전히 1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었다.
당연히 5천만이 안 되는 인구를 가진 한국으로선 중국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10억이 넘는 인구는, 유저의 수가 억 단위라는 뜻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보, 식사 안 하세요?”
그때, 문 밖에서 경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영은 신문 페이지를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밖으로 나가니 경선이 차려 준 아침상이 보였다.
“먹어야지.”
“손 씻고 오세요.”
“그래.”
경선이 차려 준 아침상을 맛있게 먹은 호영은 곧바로 로열 그룹의 본사로 출근하였다.
“회장님 나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비서들의 직각 인사를 받으며 집무실에 들어서니 얼마 지나지 않아 허영만이 들어왔다.
“회장님.”
“아침부터 결제할 게 있나?”
“결제할 것은 있지만, 그보다 회장님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를 찾는 손님이야 한두 명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는 허영만의 선에서 잘 처리되었다.
물론 미국의 CIA나 주한 미국 대사, 그리고 재벌 회장급은 호영이 나섰어야 했지만 말이다.
“스스로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라고 주장하는 손님입니다.”
“누르하치? 사칭이 아니라 진짜 누르하치를 말하는 건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얼추 맞는 것 같기는 하였습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들도 많이 알고 있었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호영의 경쟁자이자 동맹국의 수장이었던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였기 때문이다.
“불러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호영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자칭 누르하치라고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이자가 진짜 청나라의 태조라고?’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외모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모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고시생처럼 생겼는데…….’
자칭 누르하치라고 주장하는 이의 첫인상은 바로 이것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사내의 모습은 노량진에서 최소 3년 이상 고시 준비한 고시생과 똑같았다.
누르하치하면 떠오르는 강인한 인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청나라의 태조라고?”
“그, 그렇습니다.”
더듬거리는 말투를 보니 더욱더 의심이 갔다.
누르하치가 비록 호영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언사 자체는 언제나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처럼 말을 더듬거리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어디지?”
하여 호영은 시험을 하고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상대가 청나라의 태조가 아니라면 절대 모를 질문들이었다.
‘누르하치가 맞는 건가?’
하지만 의외로 상대는 머뭇거리지 않고 잘 대답하였다.
2년 전, 또는 3년 전의 일이라서 기억하기 어려운 일들도 곧잘 맞힐 정도였다.
“이름이 뭐라고?”
결국 호영은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안다는 것은 누르하치가 맞거나 혹은 누르하치의 관계자일 가능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산이라 합니다.”
“만주족인가?”
“예. 하지만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 거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는데…….”
직접 찾아와서 얼굴을 공개하고 자신의 거주지까지 알려 주다니.
호영으로선 자신을 경계하지 않은 관산의 태도에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막말로 호영이 무력으로 관산을 억압한다면 어쩌려고 이러는 것일까?
‘중국 정부에 당한 일이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할 텐데.’
이 같은 호영의 의문에 관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로열패밀리는 아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송호영 회장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신상 정보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내가 복수를 대신 해 줬다지만, 그게 그렇게 큰 은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애초에 나를 위해 한 행동이고 말이야.”
“복수 때문에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존경스러워서 이러는 것입니다.”
“어떤 점이 존경스럽다는 거지?”
“개인으로서 중국 정부와 맞서 싸웠고 또 이겨 내지 않았습니까? 센추리에서도 그렇게 대단했는데, 현실에서도 위대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 주셨으니 저로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요 근래 호영이 자주 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관산이었다.
경외에 가득 찬 표정 말이다.
‘로열패밀리야 내가 이익을 함께 공유하니 존경심과 충성심을 보여 주었던 거지만, 설마 외국인까지 나에게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이야.’
실로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명성과 업적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청 태조, 누르하치이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인물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