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한때는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라 자부하던 나라답지 않은, 허무한 멸망이었다.
“대만은 당연히 필리핀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대만을 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한국에게는 세 개의 항구와 항구 주변의 조차지를 주겠습니다.”
“우리 베트남이 한국과 청나라에 이어 세 번째로 지분이 높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해남도는 물론이요, 운남의 일부도 가져가겠습니다.”
“우리 태국이 비록 잠시 동안 명나라의 편에 섰지만 이후에 80만 대군을 동원하였던 점을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버티던 명나라가 결국 황제의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명나라의 수도였던 항저우에 동맹군의 주역들이 모였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명나라라는 거대한 나라를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
즉, 누가 어떤 영토를 갖게 될 것인지가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였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강남은 누가 갖게 되는 것입니까?”
베트남 황제의 동생이자 60만의 베트남군을 총지휘하는 응우옌 친왕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호영에게 집중되었는데, 청나라군과 한국군을 지휘하는 이가 호영이기 때문이다.
‘이제 명나라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졌으니 나와 청나라가 한판 붙었으면 싶은가 보군. 하기야, 중국을 지배한 두 나라가 끈끈한 동맹을 유지한다면 저들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사람들의 시선에는 짙은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야 동맹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공공의 적이 사라졌으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대부분의 나라들은 내심 한국이나 청나라를 ‘적’으로 규정하였을 것이다.
중국을 집어삼킴으로써 초강대국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호영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국은 명나라의 영토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
“청나라가 강남 전체를 갖는다는 말씀이십니까?”
“허어, 한국은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무엇을 얻습니까?”
명나라의 영토를 갖지 않겠다는 발언에 회장 전체가 술렁였다.
비록 동원한 군사 수는 50만 정도에 불과하다지만 누가 뭐래도 이번 전쟁의 주역은 한국이었다.
반명나라 동맹을 창설한 것도 한국이었고 중국 정부의 견제를 가장 심하게 받은 것도 한국이었으며 명나라 황제를 잡은 것도 한국이었다.
당연히 동맹군으로 참여한 나라들은 한국이 가장 많은 것을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설마 명나라의 영토를 갖지 않겠다는 발언을 할 줄이야!
청나라를 견제해야 하는 입장에서 실로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한국은 명나라 땅을 갖는 대신, 지금 청나라가 점유하고 있는 땅을 갖기로 했습니다. 즉, 강북과 몽골 그리고 추가적으로 위구르까지 우리 한국에게 넘어올 것입니다.”
“헉!”
“강북이 한국으로 넘어간다고?”
“두 나라의 관계가 생각보다 끈끈하잖아?”
“아니, 이건 끈끈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의 나라와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회장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인구 규모로 보나, 경제 규모로 보나 아니면 군사력의 수준으로 보나 한국과 청나라는 세계 1위를 다투는 초강대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는 있을 수 없다는 말처럼, 세계 1위와 2위는 결국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명나라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진 이상, 청나라와 한국은 경쟁 관계가 되어야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한데 청나라와 한국은 서로 다투기는커녕 마치 한 몸처럼 행동하였다.
청나라 황제와 호영 간의 밀약을 모르는 각국의 정상들로선 의문스럽고 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나머지 명나라 땅은 청나라가 가질 것입니다. 우리 한국과 청나라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죠. 안 그렇습니까?”
“······.”
호영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한 말처럼 한국과 청나라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강남을 내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빛에 담긴 경계심은 더욱 짙어졌다.
한국과 청나라가 한 몸처럼 행동하는 것을 알았으니 경각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센추리의 한국은 현실의 미국보다 강대국으로 만들 것이다.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 된다면 누구든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호영은 그들이 경계심을 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설픈 힘을 가졌다면 그들이 한국을 공공의 적으로 삼을 것을 두려워했겠지만, 한국의 힘은 그리 어설프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 준다면 오히려 고마워해 줄 생각이었다.
정당한 수단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중국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서로의 영토를 구분하는 대략적인 회의가 끝나자 호영은 참모들에게 현실의 일을 물었다.
그러자 원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삼인방이 저마다 칼을 빼 들었습니다. 곧 내전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칼을 빼 들었다는 의미는 5대 전구들이 움직인다는 의미인가?”
중국에는 본래 일곱 개의 군구가 있었지만 몇 년 전, 5대 군구로 재편되었다.
마치 명나라가 중군도독부, 좌군도독부, 우군도독부, 전군도독부, 후군도독부로 나눈 것과 비슷하였는데 중국의 경우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로 나누었다.
“예. 다섯 개의 전구 중에 북부 전구가 움직일 것입니다.”
“북부 전구는 누구 거지?”
“가장 중요한 전구이기에 어느 한 명이 소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북부 전구 내부에서 가장 먼저 내전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개의 전구 모두가 내전에 발을 담근 것은 아니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북부 전구만 내전에 휩싸여도 충분하다 볼 수 있었다.
중국의 수도가 내전에 휩싸인다는 말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북부 전구는 시작이다. 만약 내전이 시작되면 중국도 이곳의 명나라와 다를 게 없이 사분오열될 것이야.’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순간이겠지만 중국의 내전은 호영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었다.
내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1년 이상은 한국에게 간섭할 수 없을 터.
센추리에 집중하고 싶은 호영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 * *
“말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충구가 불쑥 말을 꺼내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청나라 황제의 서신이 도착했다.
서신에는, 이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데 한국의 황제인 호영은 언제 강북으로 돌아올 것이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정말 복수심만으로 움직였던 것인가. 아무리 내가 강남을 준다고 했어도 강북이란 거대한 영토를 포기하다니.’
심지어 황제 푸린은 강남까지 줄 수 있다고 했다.
약속했던 대로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강남이야 지금 당장 관리할 여력이 없어 강북만 갖겠다고 푸린에게 말했지만, 호영으로선 푸린의 반응이 무척이나 의아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푸린의 배신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였으니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청나라에서 약속을 지키겠다니, 호영으로선 환영할 따름이었다.
“강북으로는 언제쯤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으냐?”
“일단, 강북을 통치할 준비를 끝내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리들도 준비해야 하고, 특히 한족 문제에 대해 철저한 대비를 해 놔야 할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명나라의 땅을 통치하게 될 청나라보다 낫겠지만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강북을 통치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강북을 통치해 왔던 청나라조차 거듭된 반란에 고초를 겪지 않았던가.
그리고 강북의 인구가 2억에 달하니, 관리를 충원하는 문제도 시급하였다.
2억이란 인구를 통치하려면 관리의 숫자도 최소 100만 이상은 있어야 하니, 어떻게 보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볼 수 있었다.
“관리들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앞으로 중국 통치는 일본과 비슷한 방식으로 할 계획이다.”
“일본과 비슷한 방식이라 하시면?”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영주들을 강북의 제후로 삼아 영토의 일부를 중앙정부 대신 통치하게 할 생각이야.”
호영의 말에 몇몇 참모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 참모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하였다.
당연히 중앙 집권 체제를 이어 나갈 줄 알았는데 지방 자치를 일부라도 허용한다는 게 그들로선 놀라웠던 것이다.
“이번에 일본 영주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봉건제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것인데······.”
“봉건제여서 그나마 반란이 그 정도로 끝난 것이다. 만약 일본이 직할령이었다면 반란의 규모는 훨씬 컸을 거야.”
중국 정부의 회유로 일본 영주 중에 상당수가 독립을 꾀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규모는 무려 15만에 달했는데, 일본에 있는 영주 중에 한국 출신을 제외하면 반수 이상이 반란에 가담한 것이다.
‘무려 절반이 반란에 가담한 셈이지만 반대로 충성을 지킨 일본인 영주도 무려 절반이나 된다. 만약 충성을 지킨 일본 영주들이 없었다면 반란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었을 정도로 커졌을 거야.’
그는 일본의 통치 방식을 봉건제로 정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이번에 일본 영주들이 배신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간접 통치가 아니었다면 일본을 이렇게 오래 지배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충성을 지킨 영주들 덕분에 반란 진압이 어렵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
“솔직히 경들도 강북 전체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잖아? 2억에 가까운 한족들이 있으니 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일본을 통치했을 때처럼 영주나 친왕을 둔다면 통치가 한결 수월해질 거야. 우리가 직접 다스리는 인구가 훨씬 줄어들 테니까.”
“······하면 일본은 앞으로 직할령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남아 있는 일본 영주들을 전부 중국으로 불러올 것이니까.”
일본을 지배한지도 센추리의 시간으로 200년이 지났다.
이번 회 차가 끝나면 300년이 될 것이고 말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영주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일본인들의 참여가 미흡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 일본의 통치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좋았다.
즉, 직할령으로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여 충성을 지킨 일본 영주들에게 보상을 내릴 겸, 일본인들을 견제도 할 겸 중국의 영토를 하사하기로 하였다.
덤으로 일본 사무라이도 대거 끌어와 강북의 인구 비율도 변화시키고 말이다.
“물론 일본 영주들에게만 영토를 하사할 생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장수들 중에서도 공을 세운 이가 많으니 그들에게도 영토를 하사할 거야. 그리고 한족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 영지를 하사할 생각이고.”
“한족에게 영지를 하사한다는 말씀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