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
하지만 호영만 살아남았을 뿐, 그날 열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직 호영을 경호하였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유가족분들은 어디 계시지?”
“저기에 계십니다.”
장례식에 도착한 호영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경호원들의 유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며칠이 지나서인지 오열을 하거나 곡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음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자신의 자식이나 남편이 죽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호영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사죄하였다. 자신을 구하다 죽은 목숨들이었다.
제아무리 경호원의 역할이 호영을 경호하는 것이라지만, 목숨까지 희생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호영으로선 고맙기도 하고 자신 때문에 귀한 목숨이 죽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느끼고 있으니 유가족들에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리 펴세요. 회장님이 사죄할 일이 아니잖아요?”
“······.”
최재영이라는 경호원의 부친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호영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자 최재영의 부친이 호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죄할 이들은 따로 있죠. 그렇지 않나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요. 회장님의 목숨을 노리고 우리 아이의 목숨을 앗아 간 그 테러범들. 회장님께서 그 테러범들에게 복수해 주는 것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차분하지만 한편으로는 싸늘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최재영의 부친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유가족들도 다르지 않겠지.’
호영은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본래라면 적절한 선에서 중국 정부와 타협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대단하다 해도 한 국가와 맞서 싸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실제로 재벌들과 충돌했을 때도 그는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이 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테러를 가하고 테러를 지시한 이들에게 보복할 것이다.
그게 설령 중국 정부라고 해도 말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호영은 곧바로 회의를 소집하였다.
허영만, 조경호처럼 현실에서 호영을 보좌하는 이들을 비롯하여 센추리의 측근들까지 모두 모였다.
“나는 중국 정부의 만행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번 테러를 지시한 이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할 것이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호영은 한 가지 선언을 하였다.
테러를 당했으니 테러로 복수하겠다는 선언이었는데 이건 전쟁 선포와 다를 게 없었다.
일개 개인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저 역시 회장님의 뜻을 지지합니다!”
“당연한 소리입니다! 짱개 새끼들을 어떻게 가만 놔둡니까?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제가 람보처럼 짱개 놈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엄청난 선언을 하였지만, 로열패밀리의 간부들은 일체 동요하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김성근 같은 경우는 이곳이 센추리인 줄 아는지, 자신에게 ‘출정’ 명령을 내려 달라 부탁하였다.
‘이들이 있는데 중국이라고 두려울 게 뭐가 있는가.’
그는 일개 개인이 아니었다.
로열 그룹의 수장이자 대한 제국의 황제이며 대한 길드의 실제 소유자였다.
한국은 물론이요, 동아시아 전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였으니 중국 정부에 대적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회장님께 테러를 지시한 이는 일전에 로열 그룹의 본사를 찾아왔던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한영이란 자입니다.”
“아! 그놈을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원재의 말에 김성근이 큰 목소리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물론 누구도 김성근의 말을 신경 쓰지 않은 채 테러를 지시한 한영을 어찌 처단할지를 의논하였다.
“총만 구할 수 있다면 로열 가드든, 다른 군 출신이든 얼마든지 보내 한영을 암살할 수 있습니다.”
원목이 무뚝뚝한, 그러나 자신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무려 중국의 권력 서열 7위의 권력자인 한영을 암살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영의 정적을 지원하여 정치적으로 한영을 징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회장님께서 ‘눈에는 눈, 이에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한영의 암살이 성공할 가능성이 100%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원만 확실하게 해 준다면 100% 성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영을 우리가 직접 응징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복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정적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한영을 죽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사형 제도를 생각하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한영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의견이 엇갈렸다.
허영만을 비롯하여 주로 현실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쳤고, 주로 센추리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다소 감정적인 주장을 펼쳤다.
호영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허영만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나?”
“아무래도 한영의 정적과 협의를 가져야 하니, 최소 몇 달 이상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보름이라면 모를까, 몇 달이라면 너무 늦는다.”
몇 달이나 필요하다는 말에 호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회장님, 비록 시간이야 걸린다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더 이득입니다. 한영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국 정부가 이대로 끝낼 것 같으냐? 분명 또다시 나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이미 실패했는데 또다시 회장님의 목숨을 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만약에 나를 노릴 생각이 없다면 사과를 하지 않더라도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무죄를 밝히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중국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분명 나를 노리고 있거나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봐야 할 거다.”
그 말을 듣자 허영만은 더 이상 이견을 내세울 수 없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호영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 호영의 심복인 그로선 이견을 내세울 수가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윤 대표, 지원을 최대한 해 준다면 며칠 내로 한영을 죽일 수 있지?”
“길어야 일주일 안에 결판이 날 것입니다. 물론 정보 지원도 확실하게 해 준다는 가정하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정보 지원이라······.”
호영은 원재를 바라보았다.
로열 그룹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이가 원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재는 그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에서 어느 정도 정보망을 만들기는 하였으나, 서열 10위 안의 권력자들에 대한 정보력은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평소에 무엇을 하는지, 어디서 생활하는지 같은 대략적인 것은 알아도 그들의 스케줄을 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죄송하다는 듯,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로열 그룹의 정보실이 아무리 대단해도 센추리 안에서의 정보나 유저들에 대한 정보라면 모를까, 중국 정부 그것도 서열 높은 권력자에 대한 정보까지 갖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마 그것은 한국의 정부도 갖지 못한 정보가 아닐까?
“우리만으로 안 된다면 새로운 조력자가 필요하겠군.”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실 생각입니까?”
애초에 로열 그룹의 힘만으로 중국의 권력자를 죽이는 것은 무리였을지 모른다.
아니, 그보다는 로열 그룹의 힘이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로열 그룹은 한국의 대통령까지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테러 당일, 호영에게 중국과의 외교를 어찌할지를 물어 온 적이 있었다.
만약 이때 호영이 ‘전쟁’을 주장하였다면 이미 한국과 중국의 전쟁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로열 그룹의 영향력은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절대적이었다.
수십만 정도가 아니라 수백만이 넘는 열성적인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래야겠지. 하지만 한국 정부에게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도움을?”
“북한과 몽골,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각국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호영의 입에서 여러 국가의 이름이 나오자 허영만을 비롯한 간부들이 입을 떡 벌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에 기겁한 것이다.
“······정치인 한 명을 죽이는 게 아니라, 외교전으로 가시려는 것입니까?”
“한영을 죽이는 일에도 도움을 얻겠지만 죽이고 난 이후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 역시 전쟁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으니 말이야.”
아무리 호영이 복수에 불타오르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한영을 죽이고 중국과 전쟁을 할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한영을 죽이겠지만 중국과의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여러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한국 혼자서는 중국과 대적하는 게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여러 나라가 끼어든다면 중국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래서 호영은 중국과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나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중국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들도 지금이 기회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테니, 나를 충분히 지원해 줄 거다.’
중국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였던 베트남이나 태국이라고 중국을 좋아하겠는가?
화교들이 완전히 정치를 장악한 나라들을 제외하면 중국을 좋아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세계 각국은 중국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견제해 줄 것이다.
명분도 호영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암살하는 데 여러 나라의 도움을 얻는다면 정보가 샐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갑자기 충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견을 내세웠다.
“정보야 새기는 하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우리가 단독으로 한영을 죽일 수는 없으니 말이야.”
“차라리 여러 나라에게 도움을 청할 필요 없이, 하나의 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나의 나라? 어떤 나라를 말하는 거지?”
“미국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사태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
호영을 향한 테러는 결국 센추리에서 비롯된 것.
동남아시아나, 일본 그리고 몽골 정도면 이번 사태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센추리에서 미국은 아직 머나먼 나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센추리에서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지만 현실에서 중국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지 않습니까?”
“중국을 경계하는 것과 한영을 죽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다른 나라들이야 센추리를 직접 관여하는 한영에게 원한이 많겠지만, 미국이야 중국의 권력자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즉, 호영과 힘을 합쳐서 죽여야 할 만큼 가치가 높지 않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