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07화 (307/345)

# 307

“바로 이동한다.”

학살이 끝나자 호영은 곧바로 군을 이동시켰다.

청나라군은 본래 유목국가였고 원정에 나선 한국군은 기병이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동맹군 전체가 기동력이 탁월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군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이동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만은 않았지만, 혼란에 빠진 명나라군이 대비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는 낼 수 있었다.

“감축드립니다. 명나라군이 퇴각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의 승리입니다!”

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명나라의 군대는 200만이 넘었다.

하나 빠르게 움직이는 동맹군의 군대에게 200만이란 숫자도 의미가 없었다.

직접 부딪치는 병력은 많아 봐야 30만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명나라군 30만과 호영이 지휘하는 동맹군 30만 간의 전투.

전투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였다.

명나라가 정상적인 상태였어도 동등한 규모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인데, 지금은 상태마저 비정상적이었다.

아직도 명나라 군관들은 혼란에 빠진 채 센추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영이 명나라군을 압도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순식간에 30만의 명나라군을 깨부순 호영은 퇴각하는 명나라 병사들을 보며 외쳤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그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명나라군의 피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단번에 30만이란 숫자를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줄여 보겠다는 의도였다.

서걱, 서걱!

물론 호영은 명령만 내린 채 뒤에서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황제이자 군의 총사령관이었지만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전투에 나서는 무인이기도 하였다.

이번 추격전에서도 호영은 친위 군단 소속의 기병 부대를 이끌고 직접 패퇴하는 명나라군의 뒤를 쫓았다.

“도, 도망쳐!”

“빌어먹을! 방쯔 놈이 어떻게 이리 빨리!”

S랭크라는 엄청난 무공 실력은 추격전에서도 어김없이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순식간에 명나라군의 병사들을 무찌르고 가장 먼저 도주하던 지휘부까지 뒤쫓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방쯔 놈이!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느냐!”

운이 좋게도 사령관으로 보이는 이도 붙잡을 수 있었다.

이것은 호영이 의도한 것이 아닌, 아주 우연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좋아하는 내색조차 하지 않은 채 통역을 통해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모를 리가. 중군도독부의 도독이 아닌가?”

중군도독부 왕전.

무려 100만의 병력을 통솔하는 명나라의 다섯 명뿐인 도독 중 한 명이었다.

참고로 나머지 도독들은 최대 60만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으니 도독 중에서는 왕전이 가장 힘이 세다고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황제보다 셀 수도 있겠지.’

명나라의 황제라고 해도 결국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황제의 영향력보다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훨씬 강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100만을 지휘하는 왕전의 권력은 어떻게 보면 황제의 권력을 능가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중국 정부의 입김을 받는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네놈이 센추리에서의 내 지위만 알고 현실에서의 지위를 몰라서 이러는구나!”

“알아야 될 필요가 있나?”

“감히! 내가 태자당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나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다니! 방쯔 따위가 감히 나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호영은 조소를 지었다.

누가 중국인 아니랄까 봐, 허세가 엄청났다.

태자당이 중국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외국인에게까지 협박을 할 줄이야.

그것도 중국 주석이 죽고서 중국 전체가 혼란에 빠진 지금 상황에서 말이다.

“중국 정부의 분노도 감당했던 나다. 네깟 놈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나?”

“······가, 감히!”

“감히는 무슨. 누가 보면 자기가 황제인 줄 알겠네. 포로 주제에 말이야.”

“나에게 모욕을 주다니.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서걱!

더 이상 왕전의 말을 들어 줄 필요가 없었다.

과감하게 왕전의 목을 벤 호영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용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웃기는 소리. 과연 한 달 뒤에 누가 용서해 줄 수 있는 위치가 될지 두고 보자고.”

시간이 제법 지났어도 중국 정부를 향한 분노는 여전했다.

명나라를 무너뜨려야지만 이 분노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명나라를 무너뜨려 주마. 네놈들이 혼란을 수습한 이후에도 센추리에는 발도 디딜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앞으로 중국 정부를 센추리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리라.

그것이 중국 정부를 향한 호영의 복수였다.

* * *

쾅!

“뭣이? 왕전이 죽어?”

한영은 팔걸이를 내리치며 분노를 토해 냈다.

안 그래도 베이징 정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관리하는 센추리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다니!

“소국의 신생 기업 하나 정리하지 못해서 이 꼴이라니! 네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소, 송구하옵니다.”

한영의 분노에 심복들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변명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명나라가 멸망할 거야. 동이 놈들 때문에 우리가 세운 명나라가 멸망할 거라고!”

심복들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였지만 한영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만큼 왕전의 죽음이 한영으로 하여금 깊은 분노를 이끌어 낸 것이다.

“감히, 소국 주제에 대국을 분노케 만들다니. 내, 그 방쯔 놈들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

한영은 태자당 소속의 왕전과 비슷한 선언을 하고는 심복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랑들에게 전해라. 송 회장이라는 방쯔 놈을 사살하라고!”

“헉!”

“위, 위원님!”

로열 그룹의 회장을 사살하라는 지시에 심복들이 기함을 할 듯이 당황했다.

상대는 한국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었다.

더군다나 엄청난 현금 부자이기도 하였는데,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곧 권력이었다.

만약 무력으로 로열 그룹의 회장을 죽인다면,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관계는 물론이요, 전 세계의 대기업들과도 사이가 벌어질 것이다.

어쩌면 중국의 기업들과도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겨우 소국의 신생 기업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뭘 그렇게 당황하는 거야!”

“하, 하지만 위원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본국의 상황이 어수선하여······.”

“시끄럽다! 송 회장이라는 놈을 죽이겠다는데 본국의 사정이 왜 나오는 것이냐!”

“송 회장을 죽이면 한국과 전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소국과의 전쟁이 두려운가?”

“······.”

좌중은 잠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한국과의 전쟁이 두렵냐고?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두렵지 않다고 외쳤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대적할 수 있는 강대국이라 생각하는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권력 서열 7위인 한영의 수하들이다 보니 그들도 지금 베이징 정계가 어떤 상황인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주석의 후계자가 불과 몇 달 전에 죽은 이후로 아직까지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중국 정계를 막후에서 지도하던 원로들 또한 주석과의 권력 다툼으로 뒷방 늙은이 처지가 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지금 중국 정계는 주석이 되겠다는 야심가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데,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 즉 개판인 상황이었다.

심지어 권력 7위였던 한영조차도 야심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전쟁을 한다?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전쟁이 두렵지는 않지만, 지금 정계가 어수선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소국을 징벌하는 것은 혼란이 수습된 이후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영의 말이면 절대적으로 따르는 심복들조차도 전쟁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계가 어수선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분쟁이 필요하다. 공공의 적이 있어야지만 중화가 다시 하나로 뭉칠 테니까!”

“한국을 공공의 적으로 삼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심복들은 처음 듣는 한영의 계략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였다.

로열 그룹의 수장을 갑자기 죽인다고 했을 때는 복수심에 노망이 났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야 한영에게 다른 뜻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영의 계략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야 나쁘지 않은 전략일 수 있었지만 한국은 공공의 적으로 삼기에 너무 작은 나라였다.

공공의 적이 필요하다면 미국을 이용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지만 명분이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도로는 중국을 다시 집결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천민우의 죽음이 의심스럽지 않았던가. 그 배후를 한국으로 지목한다면 그깟 명분쯤이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나라의 크기는 한국 정도가 충분해. 그 이상이면 지금의 중국으로선 조금 부담이 갈 것이니 말이야.”

몇 달 전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던 주석의 후계자, 천민우.

만약 그의 죽음이 한국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라면 중국 정계도 하나로 뭉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권력이 좋아도 제국의 황태자가 소국의 사람에게 죽었다는데 분노하지 않을 중국인들은 없을 것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송 회장이란 자를 대놓고 처단할 생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미국이 간섭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내가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이 아닌 분쟁이다.”

그 말에 심복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척살하는 게 아니라 은밀하게 암살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지금 중국의 사정이 안 좋다고 해도 증거가 없다면 한국 따위가 중국을 몰아세울 일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한국에 나가 있는 전랑들에게 위원님의 명령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영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호영이라고 했던가? 용기는 가상하다만 소국에서 태어난 주제에, 감히 대국을 능멸하니까 죽는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로열 그룹의 회장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 * *

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같이 뒷좌석에 탑승한 윤원목이 호영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 요즘 중국 정부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갑작스러운 물음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점이?”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게 저로선 너무 수상합니다.”

호영의 경호를 책임지는 윤원목으로선 요 근래 조용하기 그지없는 중국 정부가 수상할 만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열 그룹의 본사나 계열사의 근처에 정체 모를 자들이 배회하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중국인이 분명한 자들이 로열 그룹의 임원들을 납치하려는 일도 있었다.

중국 정부가 로열 그룹을 감시하는 것을 넘어 무력까지 써서 괴롭히려고 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로열 그룹의 정보력과 로열 가드의 경호가 대단하여 납치를 모조리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중국 정부의 집착이 심히 부담스러웠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