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04화 (304/345)

# 304

만약 중국 정부와 계속 마찰을 빚게 된다면 그녀에게 더 못된 짓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결혼 1년 만에 그녀를 과부가 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만······ 딱 이번만 타협할까? 내가 중국 정부와 타협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도 있을 텐데.’

재력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었고, 권력은 재계와 정치계가 그의 눈치를 살피는 수준이었다.

사회적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로열 그룹의 구성원만 수십만에 대한 길드나 대한 제국의 유저들까지 포함하면 수백만이 넘었다.

그가 나이만 충분하다면 대선에 나선다 해도 어렵지 않게 당선될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그의 위상은 그만큼 엄청났다.

호영이 만약 중국 정부와 타협을 한다면 그는 6회 차를 포기하더라도 재력이나 권력은 계속 유지시킬 수 있었다.

중국에게 굴복했다며 일부 유저들이 반발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한 제국의 황제는 그였고 대한 길드의 주인도 그였다.

유저들의 반발쯤은 충분히 이겨 낼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 정부와 타협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문제였다.

어차피 그에게 거창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불끈.

하지만 고민을 거듭하던 호영이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 그게 시작이다.’

한 번 나약한 생각을 하니 심리적으로 계속 위축되고 말았다.

중국 정부와 타협이라니.

‘나 같은 범재는 발걸음을 멈추면 그대로 퇴보하게 된다.’

거창한 애국심이나 대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호영은 신념이라고 할 만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향상심이었다.

만약에 중국 정부와 타협을 한다면 명나라와의 전쟁도 멈추게 되고, 대한 제국의 성장도 그대로 올 스톱 될 것이다.

대한 제국의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호영 그 자신의 성장이 멈춘다는 의미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호영은 자신의 성장이 멈추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정체하는 일 없이 계속 진보하자고 자신과 맹세를 하였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정말······. 하지만 조금만 더 나를 믿고 기다려 줘. 절대 무리하지 않을게.”

길고 길었던 생각을 멈춘 호영이 경선의 어깨를 잡고는 그렇게 말했다.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자 경선은 한숨을 내쉬다가 호영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대신 막다른 길까지는 가지 마세요. 막다른 길 앞에서는 꼭 멈추라는 거예요. 아시겠죠?”

“그래. 멈추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너의 말대로 할게.”

호영은 그렇게 경선과 약속을 하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회장님.

원재와의 통화가 끊어지지 않았는지 휴대폰에서 원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뭐라고 했지?”

-예?

“저택을 나가지 말라고 했던가.”

-예. 지금 회장님을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저택 안에서 숨어계시는 것이······.

“이럴 때일수록 더욱 나의 건재함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회장님! 너무 무모합니다.

“나는 로열 가드를 믿는다. 미국도 뚫을 수 없다는 경호 실력을 가지고 있잖아?”

말문이 막혔는지 원재가 잠시 침묵하였다.

호영은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고 있을 원재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경호는 최고 수준으로 할 거야. 그리고 나 말고도 간부들 전체, 아니 간부의 가족들까지 경호를 하도록. 중국은 간부들도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만 끊는다.”

-부디 안전에 유의해 주십시오. 회장님의 어깨에 로열 그룹뿐만이 아닌, 한국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

뚝.

전화가 끊기고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무거웠던 어깨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고는 로열 그룹의 본사로 향하였다.

* * *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한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보좌관에게 물었다.

“한국은 아직도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는가?”

“예. 한국의 대통령이 말하기를, 자신은 센추리에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소국 따위가 짜증 나게 하는군. 게임에서라도 어떻게든 우리를 이겨 보겠다고 발악하는 거야, 뭐야!”

한영은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에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가상현실 때문에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창피하기 그지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권력조차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으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열 그룹은? 그놈들도 여전히 제 잘난 맛에 살고 있나?”

“상대가 알 수 있게끔 확실한 경고를 해 주었는데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정부에 끝까지 맞서 싸우려는 것 같습니다.”

“허, 방쯔 주제에······. 게임에서 조금 잘나간다고 현실을 모르나 보군.”

“명령만 내리십시오. 한국에 나가 있는 대원들이 로열 그룹을 깨끗하게 정리할 겁니다.”

그 말에 한영은 혹하는 것을 느꼈다.

암살이라니! 이 얼마나 편리한 수단이란 말인가?

로열 그룹의 간부들을 암살한다면 명나라를 공격하고 있는 대한 제국을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었다.

대한 제국만 정리한다면 청나라나 베트남, 필리핀 따위는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미국만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놈을 죽이는 것인데.’

하지만 중국이 아무리 깡패 국가라고 해도 세계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세계인들의 시선은 동아시아로 쏠린 상태였다.

센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전쟁도 전쟁이지만 중국 정부의 만행이 워낙 이슈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정부가 센추리에서 벌어들일 이득을 생각하면 세계 여론 정도는 잠시 무시하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계 여론을 빌미로 미국이 간섭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론에서야 중국과 미국이 이제 동등해졌다며 새로운 냉전 시대가 왔다고 떠들어 대지만 여전히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었다.

중국은 최소한 10년 이상은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

그렇기에 한영도 미국의 간섭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가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도 한국에서 극단적인 반응이 나올 것을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의 간섭을 걱정해서 그런 것이다.

아무튼 미국의 간섭을 걱정해야 하는 한영의 입장에선 아직 ‘암살’이란 수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암살은 아직 일러. 대신, 간부나 가족들을 납치해 보도록.”

“워낙 경호가 철저하여 납치는 쉽지 않을 듯싶습니다.”

“해 보고 말해, 해 보고! 아무리 경호가 대단해도 중화의 전사들이 그깟 민간 경호를 못 뚫겠어?”

“알겠습니다.”

“납치가 실패해도 계속 압박해. 우리가 작정하고 압박하다 보면 그놈들이 아무리 대단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어도 동요하는 자들이 나올 테니까.”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에서 서열 7위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영이다 보니 그 역시 몇 개의 사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제법 규모가 큰 사조직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어떤 사조직도 로열 그룹의 간부진으로 구성된 로열패밀리만큼 조직력이 탄탄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사조직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모든 조직과 비교해도 로열패밀리만큼의 조직력을 가진 곳은 없었다.

로열패밀리의 멤버들은 마치 옛 시대의 그것처럼 충이나 의리 같은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을 개방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라는 시대의 흐름에 발을 내디딘 중국인들은 이미 잊어버린 사고방식들을 말이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로열패밀리처럼 조직력이 탄탄한 조직이어도 틈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의 압박이 계속 이어진다면?

배신자는 몰라도 중국 정부와의 마찰을 꺼리는 이들은 분명 생겨나게 될 것이다.

한영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자들이었다.

로열 그룹 안에 친중파를 만들어 어떻게든 그룹을 분열시키려는 의도였다.

“아, 그리고 그놈들 조직 안에 일본인들도 꽤나 있다고 했지?”

“예. 4회 차와 5회 차 때, 일본 원정 당시 적지 않은 일본 유저들이 로열 그룹에 합류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그 안에 야망을 가진 자들이 있나?”

“찾아보면 꽤나 있을 겁니다.”

“찾아봐. 일본 놈들한테는 지금이 기회잖아? 어떻게든 야망을 부추겨 지금 배신하게끔 만들어.”

“예, 알겠습니다.”

“일본에 일본 해방 전선이란 독립군 단체도 있었다는데, 그놈들도 한번 다시 조직할 수 있게 해 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지금 일본 해방 전선을 만들어 봤자, 대사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유저들은 그대로 있을 거 아니야? 나도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그냥, 일본인들을 자극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한국인들은 몰라도 일본인들은 절대 마음속 깊이 로열 그룹의 회장을 따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만 회유하고 압박해도 일본 유저들은 알아서 갈라져 나갈 터.

그 이후에 일본 해방 전선까지 미쳐 날뛴다면 로열 그룹은 안에서부터 분열하게 되리라.

한영은 벌써부터 로열 그룹의 분열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감히 대국에게 저항한 대가를 곧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이나 북조선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일단 베트남의 정부와는 이야기가 제법 잘 통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들도 유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한국 정부와 다르게 베트남은 중국과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하고 있었다.

한영의 보좌관이 말했던 것처럼 베트남 정부는 센추리 유저들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간섭을 기회로 여기고 센추리 유저들을 통제할 구실을 만들고 있었다.

“북조선은?”

“제법 뻣뻣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조선에게 믿는 구석이라고? 그냥 그 돼지 놈이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번 두고 보자고. 속국이 감히 대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어떤 대가로 돌아올지에 대해서 말이야.”

한영은 그렇게 말하며 이를 갈았다.

중화주의를 뼛속까지 간직하는 한영에게 북한은 속국에 불과하였다.

대국이 명령을 내리면 언제든 따라야 하는 속국 말이다.

그런데 센추리에서 북조선 자치령이란 것을 얻게 된 이후, 한국과 지나치게 관계가 개선되었다.

이번에도 한국을 따라 중국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을 정도였다.

‘태국 이놈들도 한번 두들겨 줘야 하는데······. 요즘 들어 소국들이 너무 거만해졌단 말이지. 대국을 상대로 간을 보다니 말이야.’

눈에 살기를 머금은 한영은 훗날을 기약하였다.

일단 로열 그룹을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비상시킨 이후에 소국들을 정리할 것이다.

명나라만 잘 키운다면 미국을 앞지르는 것도 어쩌면 가능해질 수 있었다.

미국을 앞지르기만 한다면 소국들을 정리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 될 것이고 말이다.

* * *

저택을 감시하는 외국인들을 파악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호영의 안전에 위협이 생긴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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