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그러나 청나라 내에서 몽골족의 위상을 생각하면 10만은 너무 적게만 느껴졌다.
만약에 한국군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하였다면 지금 몽골군의 규모는 최소 2배, 어쩌면 3배 이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몽케테무르가 몽골 부족들을 회유하며 병력을 모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군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도착하였고 결국 몽케테무르는 부족한 병력으로 한국군과 맞서 싸우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둘 중 하나를 고민하고 있겠군. 무조건 항복을 할지, 아니면 한판 싸울지를 말이야.’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몽케테무르로 보이는 이가 수하 몇 명을 대동한 채 한국군 진영으로 접근하였다.
백기를 들고 있는 것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따로 이야기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호영의 생각처럼 무조건 항복을 하려는 것이든가.
“항복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직 전투 한 번 안 했는데요.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몇 번은 덤빌 겁니다.”
“애꿎은 몽골 전사들만 죽어 나가겠군요. 앞으로 명나라 전쟁에서 크게 쓰일 자들인데 말입니다.”
다가오는 몽케테무르를 보고 장수 몇몇이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몽케테무르가 도착하자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호영은 그런 장수들의 모습을 힐끔 바라보다가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몽케테무르에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테무르.”
“하하하! 대한의 칸! 반갑다!”
몽케테무르는 100년 전, 압록강 부근에서 만났던 몽골의 대칸, 테무르가 맞았다.
청나라와 손잡고 호영에게 삼국 동맹을 강요시켰던 바로 그 테무르 말이다.
“너무 그렇게 반가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
하지만 호영은 오랜만에 만난 테무르에게 선을 그으며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언제나 호쾌하기만 하였던 테무르가 눈을 끔뻑이며 당황하는 모습을 내보였다.
테무르에게는 호영의 반응이 예상외였던 모양이다.
‘예전에 어떤 사이였든 지금은 적일 뿐이다.’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야 하는 법.
그리고 애초에 호영은 테무르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필요에 의해 동맹을 했을 뿐, 오히려 자신에게 동맹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흠흠, 서먹해진 관계는 다시 회복하면 그만 아닌가? 우리는 한때 신성한 동맹을 나누었던 사이인데.”
“그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왔지? 나는 이미 전투준비 명령을 내린 상태인데 말이야.”
“……빨리 본론을 말하라는 거군. 알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대한의 칸이여, 우리와 손잡지 않겠나.”
호영은 피식 웃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했더니, 결국엔 회유였다.
하기야,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니 협상으로 상황을 이겨 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는 했다.
물론 청나라에게 나라 전체를 받기로 한 한국의 입장에서 몽골의 손을 잡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청나라를 배신할 생각이 없다.”
“내가 말하는 우리란, 몽골족만 말하는 것이 아니야. 위구르도 있고 저 북쪽의 러시아도 있다. 중앙아시아의 소국들도 있고! 대한의 칸, 한번 잘생각해 봐. 이들을 얻으면 중국 따위는 노릴 필요도 없어. 칭기즈칸처럼 세계 전체로 뻗어 나가면 되니까!”
명나라가 있는데 무엇을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나 했더니 결국 이거였다.
청나라 황제 푸린이 정복자를 꿈꾸었던 것처럼 테무르도 엄청난 야망을 가졌는데 이번 회 차에는 그 야망이 중앙아시아로 향한 모양이었다.
아마 남쪽에는 쟁쟁한 나라들이 있어 지레 포기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테무르의 목표가 무엇이건 호영의 선택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그는 땅덩어리만 넓지 실속은 없는 중앙아시아보단 얻을 게 많은 중국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정복하였을 때 관리하는 것도 중국 쪽이 조금 더 쉬울 것이고 말이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인가?”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진출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칸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나 보군.”
“나는 언제나 소화할 수 있는 영토만 노리는 편이라서. 중앙아시아나 유럽은 한국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그런가.”
“이제 이야기는 끝났겠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전쟁인데.”
호영은 더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적이었고 이제 곧 호영이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아무리 센추리에 익숙해진 호영이라지만 머지않아 죽여야 할 상대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눈감아 주는 것도…… 안 되겠나?”
하지만 테무르는 구차하게 나왔다. 어떻게든 한국군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그런 테무르의 모습에 호영은 쓴웃음이 나왔지만 단호하게 말하였다.
“청나라의 적이라면 나에게도 적이라서, 살려 둘 수는 없다.”
“하, 하, 하. 이번에도 청나라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구나.”
절망 어린 표정으로 탄식하는 테무르.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절망하는 것 같았다.
쿵!
“뭐 하는 거지?”
호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테무르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당당하던 놈이, 이렇게까지 해서 목숨을 건사하려는 건가.’
실망이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당당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대한의 칸이시여! 부디 우리 몽골족을 관대하게 용서해 주십시오!”
갑자기 존댓말까지 사용하는 테무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가 정말 작정하고 무릎을 꿇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호영의 결정이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실제로 호영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몽골족은 용서해 줄 것이다. 반란군은 처벌해야겠지만 말이야.”
“처벌하는 것은 저 하나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테무르, 너는 처벌을 받겠다는 건가?”
“제가 잘못한 일이니 당연히 제가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테무르의 대답에 호영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설마 여기서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발언을 할 줄이야.’
갑자기 무릎을 꿇는 행위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는데, 이런 이유라면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호영은 잠시 고심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좋다. 반란군을 죽이지 않아 주겠다.”
“감사합니다!”
“대신 너는 살아서 나를 보조해 줘야겠다.”
“예?”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몽골군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몽골군을 통솔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지. 테무르, 네가 그 역할을 해 줘라. 그렇게만 해 준다면 아무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저, 저를 믿으십니까?”
그 말에 호영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하면?”
“너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야 한다. 인질로서 말이야.”
물론 인질을 테무르 한 명만 둘 생각은 아니었다.
몽골의 주요 부족들은 전부 인질을 보내게 만들 생각이었다.
뭐, 이때는 인질이라 부르기보단 유학 교육이라고 세련되게 부르겠지만 말이다.
“살려 주신다면야, 인질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의외로군. 죽으면 죽었지 구차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살아 있어야 야망을 키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대놓고 야망을 키우겠다니.
이건 뭐,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지 독립하거나 반역을 일으키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늑대 조련하듯, 잘 조련하는 수밖에.’
몽골군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테무르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물론 원래는 테무르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그의 본심을 안 이상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이 몽골을 통제하고 언제든지 몽골족을 학살할 수 있는 능력만 유지한다면 테무르가 배신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압박 (1)
테무르가 항복한 시점에서 반역에 가담한 몽골군 전부가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고 끝이 났고, 한국군은 점령군으로서 몽골군은 패자로서 전장을 정리해 나갔다.
전장을 정리한 이후에는 다른 유력 부족들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초원의 대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몽골족의 반발은 없다시피 하였다.
이미 테무르의 패배가 몽골 전역에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한 제국은 오래전부터 강대국으로 이름을 떨친 나라였기에 초원의 대칸으로 모시는 것에 거부감이 덜했던 것이다.
그렇게 몽골의 유력 부족들까지 회유에 성공한 호영은 곧바로 테무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몽골군으로 하여금 장성 이남으로 내려가 청나라 황제를 도우라는 명령이었다.
만약 한국군이 장성 이남으로 내려가서 반란군을 진압한다면 그것은 내정간섭이 되어 뒷말이 무성했겠지만 몽골군은 아직 청나라 소속으로 알려져 있었다.
청나라의 몽골군이 청나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일에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테무르.”
“말씀하십시오.”
10만에 달하는 몽골군이 장성 이남으로 파견을 갔지만 테무르는 여전히 호영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테무르는 한국의 인질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참고로 호영은 테무르뿐만이 아니라 테무르의 혈족 전체를 인질로 두고 있었다.
유저라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그의 혈통을 위협하는 것이다.
“위구르를 점령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제가 그쪽에 아는 부족이 몇 있기는 한데, 위구르가 만만한 종족은 아닙니다. 워낙 기질이 사납고 지형도 척박한 터라,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도 말이냐?”
“예. 아무리 압도적인 힘이라도 도망치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호영은 쓰게 웃었다.
하기야, 몽골족도 비슷한 짓을 하기는 했다.
만약 한국군이 조금만 더 늦게 출정하였다면 아주 까다로운 상대가 되었을 터.
그런 의미에서 위구르는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수틀리면 본거지도 버리고 중앙아시아로 도망칠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네가 회유할 수 있는 부족들은 얼마나 되지?”
“회유라, 전쟁에 쓰기 위함입니까?”
“나는 이왕이면 모든 나라가 명나라에게 적대하기를 바라고 있다. 위구르 역시 마찬가지야. 도움이 안 되는 병력이라도, 그들이 와 준다면 명분이 되어 주거든.”
“그렇군요. 폐하께서 그 정도의 도움만 바라신다면, 3만 이상은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만이면 충분하다. 시간은?”
“한 달, 아니 보름 안에 데려와 보겠습니다.”
테무르의 답변에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 뒤라면 청나라도 얼추 정리되어 갈 터.
절대 늦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부탁하지.”
“예!”
그렇게 테무르로 하여금 위구르와의 연계를 준비시키게 한 호영은 그 이후로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이제 곧 센추리 역사에 없었던 거대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 거대한 전쟁 앞에서는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해도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최소 수백만이 격돌할 전쟁일 것이니, 준비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