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그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것밖에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게르 밖에서 낯선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달은 그 목소리를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총병관의 신변을 한족 장수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경호를 철저히 하였는데 이상하게 낯선 자가 게르에 입장하려 하고 있었다.
서달로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을 텐데? 경비들은 뭘 한 거지?”
“들어가겠습니다.”
“감히!”
낯선 자가 예고도 없이 천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채앵!
한족 장수들이 다급하게 검을 빼 들었다. 서달 역시 재빠르게 자신의 검을 들고서 예친왕의 목에 겨누었다.
그들이 그렇게 다급히 움직인 이유는 단순했다.
게르 안에 들어온 이들이 하나같이 수상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만주족도, 한족도 아닌 행색. 심지어 무기까지 들고 있었다.
예친왕이 있는 게르 안에 무기를 패용한 자들이 정상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을 터.
한족 장수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너는 도대체 왜 거기에 있는 거야!”
“가, 갑자기 나타나서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더욱 당황했던 것은 동료가 수상하기 그지없는 세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문충.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중국 유저로 숨겨진 책사 노릇을 하는 자였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서달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유저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침입자의 손에 잡혀 있었다.
서달이나 한족 장수들로선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통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통역해라.”
그러던 중 침입자가 한국말로 이문충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연히 서달은 그 말을 못 알아들었는데, 대신 이문충이 붙잡힌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침입자들이 통역으로 쓰기 위해 한국말을 잘 쓰는 이문충을 붙잡은 것이다.
“여기서 명나라의 비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 누구냐?”
이문충이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이문충이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고 침입자들의 질문을 대신 말해 준 것에 불과하였다.
“다시 한번 묻겠다. 이곳에서 청나라와 한국을 싸움 붙이도록 유도한 자들이 누구냐?”
“······.”
“아무도 답을 하지 않는 것인가?”
“한국인이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마침내 한족 장수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정체 모를 침입자의 등장에 당황하다가 이제야 제 할 말을 한 것이다.
“막는 이들을 모조리 죽이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 장수도 침입자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세 명이서 대놓고 부대 내부로 잠입했다는 뜻이었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황한 것도 잠시, 장수는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실력이 있기는 한가 보구나. 하지만 네놈들은 이곳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어째서지?”
“이곳엔 우리가 있으니까!”
장수의 말에 침입자들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 이놈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장수가 검을 들고 기합을 내지르니 검에서 푸르른 빛이 올라왔다.
바로 검기였다.
그러자 침입자들도 각자 패용하고 있던 무기에 기를 싣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를 싣다는 행위만 같을 뿐, 결과는 전혀 달랐다.
“거, 검강?”
“저렇게 완벽한 검강이라니! 진짜 화경 고수라는 말인가!”
“말도 안 돼, 세 명의 화경 고수라니!”
6회 차에서 S랭크 무인의 경지는 보통 화경 고수라고 불렀다.
본래는 검기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A랭크 무인을 화경 고수라고 불렀지만 유저들의 실력이 상승함에 따라 경지를 나누는 기준도 조금씩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아무튼, 화경 고수란 어느 때이든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졌었는데, 눈앞에 바로 그 절대적인 존재가 세 명이나 서 있었다.
자연히 당당하게 나섰던 장수의 목소리도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누가 우리의 아군이고, 우리의 적인가.”
한족 장수들이 침묵하고 만주족 장수들이 눈치만 살필 때, 서달의 손에 잡혀 있던 예친왕이 손을 들고 말했다.
“우리 만주족이 한국의 아군이고 저기 한족이 한국의 적이요. 우리를 살려 준다면 우리는 한국의 사신을 죽인 행위에 대해서 사과하고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한국군을 도울 것이오.”
“죽고 싶은가!”
갑작스러운 예친왕의 행동에 서달이 검을 흔들며 위협하였지만 예친왕은 꿋꿋하였다.
비록 나약하지만 눈치가 비상한 예친왕은 누가 지금 유리한 상황인지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겨우 세 명이지만 모두가 절대 고수인 침입자 편에 선다면 한족의 마수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역시나 한족이 문제였군.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어쨌든, 한족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되겠어.”
예친왕의 말에 침입자 중 한 명이 그리 대답하며 조금씩 한족 장수들한테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누가 봐도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한족 장수들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러자 서달은 이를 악물더니 예친왕을 향해 외쳤다.
“이렇게 된 거, 당신이라도 죽여야겠어! 당신이 죽으면 사람들은 한국의 짓이라 생각할 것이니,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이곳에서 아바타를 잃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었지만 상대가 화경 고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목숨을 버리느니, 최소한의 역할은 하고 죽는 게 나으리라.
서걱!
하지만 서달은 아쉽게도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다.
어느새 날아온 검기에 그의 팔이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으악!”
푹.
팔을 잃은 고통도 잠시, 서달은 목이 꿰뚫린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침입자 중에 한 명이 순식간에 이동해서는 서달을 죽인 것이다.
“······엄청나군.”
예친왕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실로 경이적이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겨우 세 명이서 수십 명의 장수들을 압도하다니!
심지어 소란을 듣고 찾아온 서달의 친위병들조차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한국에서는 화경 고수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구나. 그것도 세 명이나!’
청나라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S랭크 무인의 자존심이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청나라의 S랭크 무인 숫자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다 합해도 네 명이었는데, 그마저도 몽골족 한 명, 만주족 한 명, 한족이 두 명이었다. 한족 중에 한 명은 유저였고 말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세 명의 화경 고수가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르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폐하께서 한국에게 저자세를 취한다는 것이 꽤나 불만족스러웠는데······. 현명하신 판단이셨어.’
* * *
단숨에 사달을 비롯한 한족 장수들을 정리한 호영은 한쪽에 방치되어 있는 만주족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장수로 보이는 모습들은 아니었다.
‘정백기를 데려갈까도 생각했는데, 이래서야 데려가 봤자 도움이 안 되겠네.’
생각했던 것보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정백기의 모습에 호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최정예라 불리는 군대의 수뇌부가 이렇게 형편없는 자들로 이루어졌을 줄이야.
그나마 정백기의 기주, 즉 사령관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는 것 같았다.
한족 장수들이 모두 죽고 난 이후,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 온 것이다.
“감사하오. 덕분에 살았소.”
호영은 언짢은 표정을 지우고는 마주 인사하였다.
물론 마주 인사할 때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상대는 호영의 신분을 알고서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설마 이국의 황제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황제가 화경 고수라는 사실도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고 말이다.
“협조해 줘서 고맙소.”
“협조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황제 폐하, 그저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예상했던 대로 예친왕이란 자는 호영이 황제인 것을 알자 극진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마치 자국의 황제를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단순히 호영한테만 정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군 전체를 극진하게 대해 주었다.
물자도 지원해 줬고 후방 보조라는 다소 굴욕적일 수도 있는 부탁에도 흔쾌히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로써 뭉케테무르를 치는 데 거리낄 게 없어졌군.’
예상치 못했던 중국 정부의 방해가 있었지만 S랭크의 무인인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방해였다.
이제 남은 것은 몽골 친왕 뭉케테무르를 제압하는 것.
그리고 뭉케테무르를 제압하는 것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몽골군은 처음, 우월한 기병 전력을 이용하여 치고 빠지는 유목민족 특유의 전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몽골군의 전술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니, 효과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만 보고 말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치고 빠지는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동력.
바로 이 기동력에서 오히려 밀렸던 까닭이었다.
원정에 나선 한국군은 처음부터 몽골을 목표로 삼아 조직한 군대였다.
당연히 기동 전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기병의 규모가 보병보다 훨씬 많을 정도였다.
대략 12만에 달하는 병력이 기병이었는데, 몽골군은 전 병력을 다 합해도 10만이 되지 않으니 제아무리 치고 빠지는 전술이라 해도 이 정도의 숫자 차이에서는 통할 리가 없었다.
결국 몽골군은 1만 이상의 피해를 입고서 치고 빠지는 전술을 포기하게 되었다.
치고 빠지는 전술을 포기한 이후 몽골군이 취한 행동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들의 친왕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지금부터 강행군이다! 모두 속도를 높여라!”
견제가 사라지니 한국군의 이동속도도 자연히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산도 없고 강도 없는 초원 지역이라 더욱 거칠 것 없이 내달렸다.
“폐하! 저희는 몽골 친왕의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작은 부족들입니다! 부디 저희에게 죄를 묻지 말아 주시옵소서!”
눈치가 비상한 부족장들은 대세의 흐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간파하고는 호영에게 투항하는 사자들을 보냈다.
북진을 거듭할수록 호영을 찾아오는 사자들의 수는 늘어났다.
몽골의 저항?
약육강식과 강자존의 법칙을 숭상하는 몽골인들이었다.
강자가 누구인지 이토록 명확한데 호영에게 저항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한국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진격을 거듭하였다.
한국군이 몽골의 친왕이 있는 올란바토르에 도착한 것은 초원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숫자가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너무 빨리 왔으니까.”
올란바토르에서는 몽골군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수도와 다를 게 없는 곳이었기에 무조건 사수해야 하는 도시였던 것이다.
해서 몽골군은 회전을 준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올란바토르 앞에 집결한 몽골군의 규모는 10만 정도로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물론 반란군에게 10만은 작다고 볼 수 없는 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