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98화 (298/345)

# 298

마지막으로 가장 위에 있는, 한국의 다이아수저를 능가하는 특권을 지닌 계급이 바로 관얼다이, 즉 고위 공무원의 2세였다.

왕전. 그는 이 다섯 개의 신분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관얼다이로 태어났다. 그것도 그냥 관얼다이가 아니었다.

조부는 팔로당의 장군이었고 부친은 무려 전 국가부주석이었다.

중국에서 이 정도면,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셈이었다.

그야말로 중세 귀족을 능가하는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덕분에 왕전은 태자당 수뇌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비록 현 주석이 절대 권력을 확립한 이후부터 태자당의 위상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기는 하나, 혁명 원로 2세들이 모인 태자당은 여전히 중국 정계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귀족 계급이었다.

왕전은 이 태자당에서 수뇌부의 일원이었으니, 그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어나고서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적이 없었고 하기 싫었던 일을 억지로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센추리라는, 음모론이 무성한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오직 현실의 신분 하나로 명나라의 도독이 된 그는 무려 20만이 넘는 군대를 통솔한 채 전쟁에 나선 상황이었다.

상대는 한때 강남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던 초나라였다.

6회 차가 되고 명나라가 팽창하면서 국력이 급격하게 쇠퇴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강성한 힘을 지닌 국가였다.

하지만 왕전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센추리에서 어떤 힘을 갖고 있든 간에 유저라면 결국 그가 가진 현실의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항하겠습니다!”

“저, 전하!”

“싸우지도 않고 투항이라니!”

그리고 초나라와의 전쟁은 왕전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전쟁이 개시되고 불과 열흘.

명나라군은 오직 행군만으로 초왕의 항복을 받아 냈다.

유저였던 초왕이 시기적절하게 투항을 해 왔던 것이다.

‘지금쯤이면 대리국이나 대만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고 있겠지? 참 쉽네, 가상현실이란 것도.’

왕전은 센추리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명나라를 현실에서 통제하고 있는 중국 정부 또한 센추리에서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쉬우리라 예상하였다.

대부분의 국가, 심지어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 등의 강대국들조차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채 내분을 일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벌써 강남 전체를 장악하였으니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청나라만 꺾어도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 * *

명나라가 일으킨 전쟁은 5주도 안 되어 끝이 났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강대국들이 불과 5주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19세기가 되면서 전쟁이 몇 주 만에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지만, 그것은 교통이 발달한 이후의 이야기였다.

아직 도보로만 군대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지금 시대에서는 몇 주 만에 전쟁이 끝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특히나 명나라가 무너뜨린 대리국이나 초나라는 열강까지는 아니어도 지역 강국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였다.

행군에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해도 5주 안에 대리국과 초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100만의 군사력을 동원한다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명나라는 바로 그 100만 대군으로도 불가능했을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대군을 동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천재적인 작전이나 전략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명나라군이 한 것은 그저 행군한 것뿐.

그런데 명나라는 오직 행군만으로 세 나라를 무너뜨렸다.

이제 명나라 주변국들은 명나라와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명나라의 팽창에 순응하느냐의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청나라와 대한 제국은 현실에서 이미 대놓고 반중국 노선을 표방하였기에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국가들 같은 경우도 아직 청나라라는 방파제가 존재하였기에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러시아 역시 동방에서 힘쓰지 못하는 상황이라 중앙아시아의 유목국가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명나라의 급격한 팽창으로 국경을 맞대거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명나라와 마주하게 된 나라들은 두 가지 갈림길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였다.

단순히 센추리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연계되는 문제였기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결정이 빨랐던 국가는 태국이었다.

명나라의 패권주의에 순응하는 친명 노선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반면 동남아시아의 또 다른 지역 강국인 베트남은 태국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였다.

청나라, 대한 제국처럼 명나라에 맞선다는 선택을 한 것이었는데, 두 나라가 이렇게 상반된 선택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유저들의 영향력이 현실의 권력자를 능가했는가, 능가하지 못했는가.

즉, 태국의 경우 센추리 유저들이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억지로 친명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반대로 베트남 같은 경우 센추리 유저들이 정부의 영향력을 압도하는 상황이라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동남아시아의 지역 강국인 두 나라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니, 국제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라오스나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각각 태국과 베트남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종주국의 뜻을 따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브루나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은 엄연한 자주국이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고민이 길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필리핀이었다.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 그리고 호주 등이 중립을 선택할 때까지, 필리핀은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물론, 필리핀이 친명 노선과 반명 노선을 두고 간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실 외부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자신들의 입장을 표방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했다.

현재 필리핀의 국내 상황은 6회 차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안 좋아진 상태로,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혁명군, 독립군, 공화군 등, 왕실에 반하는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수도가 있는 루손섬을 제외하면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를 게 없었다.

왕실과 반란군 간의 내전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명나라가 대만을 집어삼키고 바다에서부터 필리핀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노선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것이다.

“뭐라! 중국인들이 반란군을 지원하였다고?”

하지만 명나라가 반란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한 이후 필리핀의 노선은 반명으로 굳혀졌다.

반란군을 지원하는 명나라에게 복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또다시 한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겠군. 아쉬운 일이나, 어쩔 수 없지.’

필리핀 국왕, 세리자와는 쓴웃음을 지었다.

독립하겠다는 열망으로 일본에서 필리핀으로 넘어온 그였지만 아직 한국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는 이른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제 발로 한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명나라를 선택하느니,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 주는 한국을 선택하는 게 백배 천배 나은 일이었다.

“한국에 서신을 보내라! 고는 한국과 동맹을 맺어 명나라에 맞서 싸울 것이다!”

세리자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과의 동맹을 표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반응이 왔다.

서신이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국의 군대가 필리핀으로 넘어온 것이다.

미리 준비한 것이 분명한, 전격적인 움직임이었다.

* * *

호영은 무려 2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목적지는 몽골 초원이었고 출정한 이유는 몽골 친왕, 뭉케테무르 칸의 발호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어코 대리국까지 무너졌나.”

2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 지 불과 한 달. 겨우 한 달 만에 명나라의 전쟁이 끝이 났다.

무려 세 개의 나라가 명나라에게 복속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저항 세력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저항 세력을 제거하는 게 전쟁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소식이군.”

하긴, 유저들이야 현실의 힘으로 복속을 강요했겠지만 NPC들까지 복속을 강요시키는 것은 제아무리 중국 정부여도 무리였을 것이다.

당연히 NPC들은 반란군을 조직한 채 명나라에게 맞서 싸울 터.

‘다만 유저들이 중국 정부의 첩자 노릇을 하며 저항 세력의 정보들을 모조리 명나라에게 알려 줄 것이란 점이 문제야.’

반란군이 장기간 활약하려면 게릴라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저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였고 그 유저들은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명나라의 내부 정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끝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청나라가 정상이었다면 계획대로 명나라를 쳤을 텐데, 그게 참 아쉬운 것 같습니다.”

청룡창이란 별칭을 사용하는 정희승이 아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참고로 최근 들어 센추리에서 별칭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본래는 A랭크 이상의 무인들에게만 칭호나 별호 따위가 붙여졌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별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회 차가 바뀔 때마다 아바타의 이름이 바뀌는 터라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별칭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김성근이 계속 김성근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라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나서는 거지, 지금이라도 정상으로 만들어 주려고.”

정희승의 말대로 본래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명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 전쟁 준비를 끝내 놓고 북조선 자치령의 혹시 모를 반란까지 원천적으로 차단해 놓은 상태였다.

청나라가 먼저 군사를 움직였다면 한국 또한 곧바로 바다를 통해 명나라를 공격하였을 터.

하지만 청나라는 지금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황제, 푸린의 예상보다 훨씬 반청 운동의 규모가 컸던 것이다.

‘명나라가 괜한 자신감을 보인 게 아니었어. 청나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 같은 전쟁을 벌인 것이 분명해.’

처음에는 중국 정부의 힘을 믿고 미쳐 날뛴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명나라.

그들은 이번 6회 차를 철저하게 준비하였고, 지금 그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오히려 방심했던 쪽은 호영이었을지도 모른다.

호영은 주석이 죽고 난 이후만 생각하고 명나라를 조금 무시하였으니 말이다.

“폐하, 지금 막 황실 정보부에서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하며 현실의 정보를 가져다주는 전령들이 있어서 센추리 안에서도 정보 전달은 거의 실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지금 전령이 전달하려는 정보도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정보일 터.

호영은 고개를 돌린 채 전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정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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