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
하지만 호영이 입고 있는 마법 무구는 소령 이상의 장교라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괜찮아졌기에 아티팩트의 발전은 실로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아티팩트나 마법이 발전하긴 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마법사들의 처우도 이제 조금 개선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도 이제 주 전력이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신태용의 말에 호영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극과 극이었다.
로열패밀리 간부들 중에서 말단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은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고, 핵심 간부에 속하는 무인들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파벌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
어느 조직이든 파벌 다툼이 없을 수 없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만 봐도 전우회니 향우회니 동문회니 온갖 단체를 만들며 파벌 다툼을 하고는 한다.
무슨 대단한 권력이나 재물이 보장되는 자리가 아님에도 그러했다.
만약에 대기업처럼 서열에 따라 권력과 부, 명예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면?
파벌 다툼은 한층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로열패밀리는 파벌 다툼이 의외로 적은 편에 속하였다.
간부 자리 하나가 이제는 국회의원보다 인기가 많고 이권이 보장되는 자리임에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벌 다툼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법.
크게는 허영만과 조경호가 이끄는 현실의 로열 그룹과 민건우가 이끄는 대한 길드 그리고 나머지 7인회가 이끄는 대한 제국의 핵심 멤버들이 조용하게 권력을 다툰다면 작게는 대한 제국의 핵심 멤버들끼리 다투기도 하였다.
물론 신태용이 말하는 마법사는 이 파벌 다툼에 끼지도 못한다.
문신과 무신이 다투는 경우는 있지만 마법사 세력은 아직 파벌 다툼을 할 정도로 세가 커지지 않은 것이다.
“마법사들의 마법은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이지?”
“아직 마법 강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미국의 중소 국가보다는 우위에 있습니다.”
“그 정도면 확실히 괄목할 만한 성장이긴 하군. 마법이 약한 동양에서 미국의 중소 국가보다 강한 마법 실력을 가지다니 말이야.”
회귀 전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더욱더 놀랍다고 볼 수 있었다.
탈아시아를 시도하며 무공보다는 마법에 주력하던 서일본의 일본 제국조차도 8회 차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유럽의 마법을 일정 부분 따라잡았다.
그마저도 전투 마법만 아주 조금 따라잡았을 뿐, 아티팩트 제작 능력은 다른 동양 국가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전투 마법은 물론이요, 아티팩트 제작 능력까지 동양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 근접해지고 있었다.
지금이 겨우 6회 차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경의 말처럼 앞으로 전투 마법사들을 배려해 주기는 해야겠어, 공을 세울 기회를 더 준다거나 직급을 더 높여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한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경이 마법사들을 밀어주는 이유가 무엇이지?”
호영의 질문에 신태용은 잠시 침묵하였다.
하지만 침묵하는 시간을 짧았다. 그는 이내 당연하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소장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황제 폐하를 위해 마법사들을 추천해 준 겁니다. 마법사들의 실력이 늘어났는데 그들을 중히 써 주지 않으면 나라에서도 손해일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가?”
신태용의 대답에 호영은 피식 웃었다.
다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호영도 믿었겠지만 신태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한반도 지배를 꿈꾸던 야심가, 신진호였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을 밀어주는 이유는 자신의 파벌로 만들기 위함인가. 하긴, 여러 파벌 중에서 가장 약한 편이니 마법사에게 손을 내밀 만하군.’
호영은 신태용이 마법사들을 추천한 의도가 음흉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신태용의 말처럼 마법사들의 실력이 늘어났다면 나라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중히 써 줘야만 하는 까닭이었다.
‘여성 유저들도 많이 성장했다는데 그들도 기회가 생기면 바로 전장에 보내야겠어.’
중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인재 수는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여성이란 이유로, 마법사란 이유로 차별할 수는 없었다.
기존 유저들의 반발이 걱정되기는 해도 인재란 인재는 모조리 기용하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폐하!”
호영이 인재들의 활용에 관해 열심히 구상하고 있을 때 전령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항상 이럴 때면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오던데.’
그의 예상은 이번에도 적중하였다.
“명나라가! 명나라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선수를 빼앗겼군.”
청나라가 명나라를 침공하기로 한 날은 정확히 5주 뒤였다.
한 달하고 일주일이 더 지나야 청나라의 공격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가 벌써 전쟁을 일으켰으니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명나라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청나라가 어디까지 밀릴 것 같으냐? 내부 문제로 어수선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
현재 청나라에서는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제가 한족 출신의 권신들을 숙청하고 난 이후, 유저들이 이곳저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다행히도 몽골족은 한족 출신의 유저들과 뜻을 같이하지는 않았는지, 사태를 방관하고 있었지만 몽골족이 아니더라도 청나라의 내부 사정이 무척이나 어지러운 것은 분명하였다.
한마디로 명나라와 전쟁하기에는 최악의 상황이란 뜻이었다.
“아닙니다. 명나라가 공격한 곳은 청나라가 아니라, 대리국과 초나라 그리고 대만입니다!”
“수상한 군사 이동을 보인다는 첩보가 있기는 했지만······ 설마 명나라가 그런 식으로 움직일 줄이야.”
호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로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명나라가 강대국이라지만 청나라라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 세 나라와 전쟁을 벌이다니.
실로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당장 참모들을 소집해라. 명나라에 관해서 토의를 해야겠다.”
“충.”
참모들에게 소집령을 내리고는 그 역시 조정으로 향하였다.
“모두 들었을 것이다, 명나라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호영이 서두를 열자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
“명나라가 정말 미친 것 같습니다. 동맹을 구해야 할 상황에 오히려 적을 더 만들다니.”
“중국 절반을 지배하니 오만해진 것이겠죠. 원래 중국인들은 오만하지 않습니까?”
“그보다 우리가 모르는 수작을 부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수작 부릴 게 뭐가 있습니까? 이미 중국은 동서남북 전체에 적을 두었습니다. 이면 전쟁도 아니고, 사면 전쟁이나 마찬가지인데 명나라가 제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어떻게 버텨 낼 수 있겠습니까?”
명나라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참모들이 생각하기에 파격적이기보다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보였다.
청나라와 한국이 동맹한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동맹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만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진짜 영문을 모르겠군. 중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호영이라고 명나라의 의도를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청나라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명나라의 전쟁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원재의 갑작스러운 말에 호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우리는 중국 정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도 사실상 명나라가 아닌 중국 정부에 의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하면 지금 명나라가 침공한 나라들도 중국 정부에 의해 무너질 것이란 말이냐?”
“소신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호영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저 가설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원재의 말처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만약 원재의 말대로 청나라가 침공하기 전에 명나라의 전쟁이 끝이 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가 명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
물론 명나라가 세 나라를 상대로 5주 안에 전쟁을 끝낸다 해도, 명나라의 전력이 갑자기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군량미와 병력이 손실되어 전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명나라를 후방에서 견제해 줄 세력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한국이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했던 이유는 청나라와의 동맹도 동맹이지만 명나라를 후방에서 견제해 줄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는 대만이, 육로에서는 대리국과 초나라가 명나라를 견제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가 일으킨 전쟁에서 세 나라가 멸망하게 된다면 명나라를 후방에서 견제해 줄 세력이 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명나라가 청나라와의 전쟁에 전력을 다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막강하기 그지없었던 명나라의 힘을 반쯤 내분 상태에 처해 있는 청나라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고 결국 전쟁은 승기를 점칠 수 없게 되었다.
“황실 정보부장님의 가설대로 상황이 돌아간다면 동간도도 안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북조선 자치령을 말하는 건가?”
“예. 북조선, 즉 북한은 중국 정부에 항상 휘둘리는 위치이지 않습니까? 만약 중국 정부의 입김이 닿는다면 북조선 자치령도 갑자기 반기를 들 수 있습니다.”
호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부 상황만큼은 안정적이라 생각하였는데 중국 정부가 나섬으로서 확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도 청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5회 차 때 했던 것처럼 청나라와 명나라가 치고받고 싸우는 사이에 어부지리를 노리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 같네.’
아직 가설에 불과하였고 확신을 더해 줄 어떤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호영은 만약의 일을 가정하기로 하였다.
한국의 지도자로서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일본의 영주들에게 짐의 명을 전해라. 병력을 집결시키라고! 세리자와를 도와 필리핀을 평정해야겠다!”
“충!”
“또한, 동남아시아 일대의 지역 강국인 베트남과 태국에게 사신을 보내도록! 대리국과 초나라가 무너지면 곧바로 그들과 동맹을 체결할 것이다.”
“충!”
명나라를 견제할 세력이 사라질 것이 두렵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였다.
새로운 세력을 끌어들이면 되는 것이다.
필리핀과 태국 그리고 베트남.
이 세 나라라면 중국 강남 전체와 대만으로까지 세력을 넓힌 명나라를 견제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 * *
인도에 카스트제도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중국에도 인도의 카스트제도 같은 신분제도가 존재하였다.
총 다섯 개의 신분이 존재하였는데 가장 낮은 신분은 농얼다이, 즉 농민공의 2세였고 그다음은 가난한 부모의 2세, 그다음은 스타 연예인의 2세, 그다음은 재벌 또는 국유 기업에서 일하는 부모의 2세였다.